# 262
11화
캉!
“이거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롱소드의 주인인 마현을 향해 아이작은 퉁명스럽게 눈을 흘겼다.
“아버지가 누구지?”
“부사령관인 하야스 후작이 제 아버지입니다.”
마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켁?”
“헉!”
다들 그 이름에 상당히 놀랐는지 외마디 경악성을 터트렸다.
아이작은 어깨를 슬쩍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뒤로 물러나며 검을 회수했다.
“이해합니다. 아들인 저 역시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아버지인데다가 뜻에 안 따르면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쥐어터지거든요. 에효, 내 팔자야.”
아이작은 진심 어린 한숨을 푹 내쉬며 케이슨에게로 다가가 어깨에 팔을 살포시 얹었다. 그리고는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보다 더 슬픈 건……. 더 이상 아름다운 레이디들을 파티장에서 만날 수 없다는 거죠.”
그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어깨까지 떨기에 운줄 알았더니, 초롱초롱한 눈을 깜빡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저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 * *
“흠…….”
마현은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그사이 아이작은 자브라에게 바싹 붙어 무엇인가 말을 건네고 있었고, 자브라는 그의 말에 깔깔 웃고 있었다.
그러는가 싶더니 야솝의 목을 팔로 감싸더니 애들처럼 장난을 치기도 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케이슨이 카칸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글쎄요.”
마현은 아이작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때였다.
군막 안에서 조용히 수련을 하고 있어야 할 밀러가 한스와 함께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군막에 야전침상 하나가 더 들어왔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우리 용병기사단에 한 명 더 편입되었다고 하더군.”
“끄응.”
케이슨이 앓는 소리를 삼켰다.
“아무래도 하야스 후작이 독하게 작정한 모양이군.”
“그나저나 저자인가?”
밀러가 야솝과 뒤엉켜 장난치고 있는 아이작을 가리키며 물었다.
“예, 밀러 님. 부사령관의 차남이라고 하더군요.”
“이잉?”
밀러도 적잖게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작정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군.”
밀러가 케이슨의 심각한 얼굴을 보며 그 심정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고민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아이작을 잠시 쳐다본 마현이 다시 케이슨과 밀러에게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무슨 뜻인가?”
“받아들이죠.”
“……?”
“……?”
당연히 밀러과 케이슨은 마현을 쳐다보았다.
“무슨 의도로 보낸 것인지 모르지만, 그냥 잘 써먹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케이슨은 선뜻 내키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아이작이라는 저자, 케이슨 단장의 아래는 아닐 겁니다.”
“서, 설마…….”
밀러가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야스 후작가의 천재는 차남이 아니라 왕실기사단에 소속된 장남일 텐데?”
“그렇습니까?”
마현은 흥미롭다는 듯 흘깃 아이작을 다시 쳐다보았다.
“장남은 어느 정도입니까?”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군. 모르긴 해도 삼십 대 후반에 소드 마스터가 되지 않을까 입을 모으고 있을 정도라네.”
마현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렇다면 두 가지군요.”
“……?”
“하야스 후작가의 천재에 대한 소문이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스스로 실력을 숨겼거나…….”
마현의 말에 케이슨과 밀러가 고개를 돌려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근데 밀러 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아마도 하야스 후작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군요. 어찌되었든…….”
힘이 들어간 마지막 말에 케이슨과 밀러는 마현을 쳐다보았다.
“잘 써먹으면 됩니다. 한 5년 정도…….”
마현은 롱소드를 뽑아 땅에 무언가를 그렸다.
그건 마현이 끼어들기 전의 케이슨 용병대의 진형이었다.
“원래는 케이슨 단장의 자리에 제가 들어가고, 단장을 왼쪽 날개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이든을 오른쪽으로 보내 그레오와 손을 맞춰 균형을 잡는 동시에 자브라를 왼쪽 날개 후미로 끌어올리려고 했습니다.”
마현이 롱소드로 왼쪽 날개 부분을 가리켰다.
“내심 걸리던 것이 그렇게 하면 균형 면에서는 어떻게 되겠지만 오히려 전체적인 면에서 허점이 많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롱소드로 밀러와 야솝이 있는 꼬리 부분을 콕 찍었다.
“문제는 여깁니다. 허술합니다. 너무나도…….”
마현이 발로 땅에 그려진 쐐기 진을 지우고 다시 롱소드로 새로운 진형을 그렸다.
“전에 케이슨 용병대의 쐐기 진을 그대로 쓰되, 선봉에 제가, 오른쪽 날개에 아이작을 넣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마현은 롱소드를 거뒀다.
“기사단이 되면 전장은 더 위험해집니다. 그가 들어오면 단원들은 더 안전해집니다. 5년 동안 단원들이 강해지면 됩니다.”
“휴우, 나는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군.”
밀러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마현이 고개를 돌려 아이작을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아이작이 야솝과 장난을 그만두고 다가왔다.
“받아들여 주는 겁니까?”
“조건만 맞으면.”
“그 조건……, 뭐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년.”
“5년?”
“5년 동안 케이슨 용병기사단에서 탈퇴할 수 없다는 조건. 그게 다야.”
마현의 제안에 아이작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으아아아아!”
그러더니 아이작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쁘지만은 않은 조건일 거야. 적어도 그 시간이면 소드 마스터로 가는 단서 하나쯤은 훔쳐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안 그런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아이작?”
장난스럽게 머리를 쥐어뜯던 아이작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어떻게 알았지?”
아이작이 몸을 일으키며 마현을 쏘아보았다.
“아마 하야스 후작께서도 알고 있을 걸?”
“끄응.”
마현의 말에 아이작은 더욱 얼굴을 구겼다.
“근데 왜 나한테 반말이지?”
“너보다 강하니까.”
마현은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젠장!”
아이작은 애꿎은 돌을 발로 찼다.
* * *
약간의 소란 끝에 아이작이 케이슨 용병기사단에 입단했다.
물론 아이작이 앞으로 5년간 용병기사단에서 탈퇴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단원들 앞에서 선언한 후였다.
어찌되었든 잡음이 크지 않게 입단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작정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단원들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지만, 자브라와 야솝이 적극 찬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잠시 멈췄던 훈련에 다시 들어갔다.
마현은 제이든을 시작으로, 그레오와 자브라, 그리고 야솝에 이르기까지 직접 검을 겨눠 그들의 실력을 알아보았다.
그중 가장 놀라운 이는 바로 자브라였다.
하지만 그녀의 무위에 놀란 것도 있었지만 마현을 진정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그녀의 검술이었다. 묘하게도 케이슨의 검술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에게서 검을 배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케이슨과 자브라의 경우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단원들의 검술은 생명을 담보로 실전에서 갈고 닦은 용병들의 태생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케이슨과 자브라를 제외한 다른 단원들은 체계적으로 닦아야 할 기초조차 부족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았기에 마현의 고심은 당연히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마현은 마교 입마관 시절 기초무공으로 배운 광마보와 마혼검, 그리고 몇 가지의 적수공권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마교의 입장에서 기초 중의 기초였지만 어지간한 삼류무공보다는 확실히 뛰어난 고급 기초마공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고스란히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마현은 구결을 없애고, 모든 투로를 토막 내 실전에서 필요한 부분만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잘 부탁합니다.”
마현이 고민에 잠긴 사이 아이작이 투핸드소드를 빼들며 마현 앞에 섰다.
그런 아이작의 모습에 잠시 고민을 접으며 롱소드를 들어올렸다. 아이작이 펼칠 검술은 이미 하야스 후작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함께해야 했기에 그의 수준을 어느 정도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마현이 롱소드를 까딱거려 임시 연무장으로 들어오라고 신호를 보내자 아이작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가 순간 달라졌다.
가벼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진중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과연.’
하야스 후작의 아들답게, 또한 하야스 가문의 차남답게 아이작에게선 그의 아버지와 비슷한 기운이 풍겼다.
“하앗!”
아이작은 낭랑한 기합을 터트리며 마현에게로 달려들었다.
아침에 아버지와의 대련을 보았기 때문인지 아이작은 곧바로 투핸드소드에 마나를 담아 마현을 공격해 들어갔다.
마현도 그런 아이작의 모습에 진중하게 그와 검을 마주했다.
쾅 쾅 쾅!
순식간에 십여 합이 지났다.
‘흠.’
마현은 다시 한 번 정통 기사 가문의 힘을 아이작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아이작이나 케이슨이나 몸에 담은 마나의 양은 비슷하다. 아니 순수하게 마나의 양만 따지면 케이슨이 좀 더 많았다.
하지만 케이슨에 비해 아이작이 마나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매끄러웠다.
동시에 검술의 기초가 탄탄했다.
그렇지만 마현의 눈에 아이작의 검술의 허점, 즉 하야스 가문의 허점이 몇 군데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하야스 후작의 경우 강력하고 압도적인 마나로 그 틈을 메웠지만 아이작은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지만 아이작과 케이슨이 부딪힌다면 쉽사리 승부가 나지는 않겠지만 결국 아이작이 이길 것이 분명했다.
‘명문 검가의 검술이 대략 이 정도이군.’
하지만 마현은 몇 십 합 더 그와 검을 나눴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하야스 가문의 검로를 대략 파악하게 되자 마현은 뒤로 물러났다.
“후후.”
아이작은 어깨로 숨을 들이킬 만큼 많이 지쳤지만 자세는 조금도 흩트리지 않았다.
“어떻소?”
아이작이 물었다.
“좋군.”
마현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케이슨에게로 향했다.
“그게 다요?”
아이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다야.”
마현은 굳이 하야스 후작가의 검술까지 부족한 점을 메워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하야스 후작가의 검술은 그 나름대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무림의 유수 문파와 비교를 해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케이슨 단장부터 다시 시작하죠.”
“그러지.”
케이슨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시 검을 뽑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