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15화
일단 용병기사단에서 전력을 끌어올리려면 그 둘의 힘이 절실했다. 그들의 전력이 높아져야 하는 건 자신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것 외에도 전장에서 단원들을 지켜줄 방패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현이 둘을 지도하는 수련의 방식은 전혀 달랐다.
케이슨은 어제 다듬은 검술을 몸에 익숙하게 만들기 위한 수련에 중점을 두었고, 아이작의 경우에는 실전에 가까운 대련으로 하야스 가의 검술에 드러난 허점을 고의적으로 노려 스스로 허점을 메우게 만들었다.
“아이작, 그게 아니다!”
그렇기에 마현의 지도는 혹독했다.
“좀 더 팔 쪽으로 마나를 밀어 넣으란 말이다.”
얼마나 마현이 혹독하게 몰아쳤는지, 늘 깔끔함을 유지하던 아이작의 본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거기에는 추레한 청년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땀투성이의 몸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고, 머리는 까치가 집을 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헝클어져 있었다.
그런 모습은 아이작만이 아니었다.
“단장, 그 부분에서는 마나를 더욱 힘차게 하체로 밀어 넣어야 합니다. 마나가 발바닥에서 느껴질 때 발을 구르는 것입니다.”
케이슨의 모습도 아이작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마현은 케이슨과 아이작을 대하는 데 한 치의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다른 단원들도 오랜 시간의 수련이 다들 힘에 부치는지 잠시 쉬려고 하다가도, 케이슨과 아이작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마현이 케이슨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것을 두고 제이든이 하극상을 보였다며 길길이 날뛸 정도였다.
* * *
“독한 놈.”
제이든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임시 연무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아이작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이작은 마치 마현에게 당한 것을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더 거칠게 단원들을 몰아붙이며 훈련을 시켰다. 몰골이 다들 엉망이었지만 깔끔함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작이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금발 머리를 찰랑 넘겼다.
“우리 용병기사단의 아름다운 레이디, 자브라가 무사하려면 이 정도의 수련은 당연한 겁니다.”
아이작은 자브라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호호호. 제이든, 다 나를 위해서라잖아. 그러니까 엄살 부리지 마.”
팡!
자브라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제이든의 등을 상당히 강하게 후려쳤다.
“큭!”
“아이작도 수고했어.”
자브라는 아이작에게 눈웃음을 날리며 먼저 씻기 위해 군막으로 향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내일이면 다시 전장에 서겠군.’
마현은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에서 다시 임시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3일이라는 시간이 찰나처럼 지나갔다.
그 사이 무얼 이룰 수 있겠는가 싶고, 내일부터 당장 무언가를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만은 다져놓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단원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짧은 3일 동안 케이슨은 달라졌다.
뭔가 얻은 바가 큰 모양이다.
깨달음을 얻는 순간 실력이 한층 진보한다고 했다. 지금 케이슨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검술에서야 아직까지 허점이 많았지만 투박하기만 하던 기세만은 날카롭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케이슨의 검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반면 아이작은 오히려 반보쯤 후퇴한 듯했다.
자신이 익히던 검술과 마현의 검술이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고, 그 결과 서로 상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빠진 고민이 그렇게 만든 듯했다.
성장통이리라.
그 쓰라림을 더 크게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눈에 띄게 실력이 향상되는 케이슨의 모습이 그를 더욱 자극하며 좌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성장통이 지나면 더욱 발전하겠지. 하지만!’
내일부터는 피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마현으로서는 성장통이라는 열병을 기다려 줄 시간이 없었다. 내일부터는 피가 마르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
뜻한 바는 아니지만 아이작의 검에는 고민과 함께 망설임이 들어섰고, 그런 망설임이 깃든 검은 자칫 동료를 벨 수도 있다.
마현이 일단 그에게 원한 것은 동료를 위한 방패였지 그들을 찌를 수 있는 검은 아니었다.
‘강제로 깨트려야겠군. 충격이 크겠지만 이겨낸다면 더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거다.’
마현은 아이작에게서 눈을 돌려 단원들, 즉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깨트리지 못하면 버린다.’
어찌되었든 마현은 아이작을 제외하고 동료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한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과 전장의 피로 성장하는 것뿐.
낙오자가 되지 않는다면 마현은 더욱 그들을 높게 끌어올려 줄 것이다. 물론 그 대가는 자신의 피로 물들 복수의 길을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한두 명씩 용병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임시 연무장에 퍼질러 앉아 있는 케이슨 용병기사단에게 호기심을 잠시 보였다.
하지만 이내 피곤과 피에 절은 몸을 이끌고 저마다 해야 할 일을 찾아 움직일 뿐 그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그들이 군막 주변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면 오늘 싸움도 끝이 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전장에 나갔다 왔다고는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한 차림의 기사와 두어 명의 귀족들이 임시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용병연대장 나집 르 클로드와 그의 부관인 월레 트 시몽, 그리고 10명의 호위기사단이었다.마치 야유회나 유흥을 위해 사냥터를 찾은 듯한 그들의 모습에서 왜 마현은 고디머 자작과 케이슨이 용병연대장에 대해 안 좋은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중간 이름에 ‘르’가 들어간 걸 보면 작위는 백작인데…….’
백작 작위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그들의 여유있는 모습들이 과하게 느껴졌다.
“용병연대장은 몬테팔코 왕국의 공작이자 소드 마스터인 다리오 폰 클로드 각하의 장남일세. 그의 아버지는 바로 총사령관이기도 하지.”
그 사이 케이슨이 다가왔다.
“그다지 평판이 좋지 못하군요.”
그들이 지나오는 길목에 서 있던 용병들이 나집을 비롯해 그의 일행들을 향해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게 마현의 눈에 보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케이슨은 나직한 한숨을 섞으며 대답했다.
“전과(戰果)를 올리기 위해 무리한 수를 많이 쓰니까. 그로 인해 다른 전장보다 용병들이나 농노병들의 사망자의 수가 배는 된다고 그러더군.”
마현은 케이슨의 설명을 들으며 대략 나집이 어떤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상당히 의외군요. 총사령관의 아들이 하필 용병연대장이라……, 거기에 보통 공작가 장남이면 후작의 작위가 내려지지 않나요?”
“클로드 공작 각하는 상당한 야심가라고 하더군. 백작 가문으로 시작해 공작까지 올라섰으니 얼마나 대단한 야심가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이미 신하로선 정점에 올라섰다지만 그가 이루지 못한 것이 있네. 바로 몬테팔코 왕국의 검이라는 호칭일세.”
“몰테팔코 왕국의 검이라.”
“비록 하야스 후작이 왕실 기사단장인 파블로 반 브로드키 후작에게 최고의 검사 자리를 내주었다고는 하지만 브로드키 후작은 혈혈단신이네. 그렇다 보니 가문으로만 따진다면 여전히 몬테팔코 왕국의 검은 하야스 가문의 것이지. 공작은 그 명예에 상당히 집착을 하는 편이지. 그리고 장남인 나집 백작에게 백작위가 내려진 것은 그들 가문의 전통일세. 작위야 백작이지만 왕국의 모든 귀족들이 그를 후작으로 대하고 있다네.”
“거기다가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이죠.”
어느새 다가온 아이작이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싸가지 없는 놈이라……. 그렇게 보이는군.”
마현의 목소리가 낮아지는 것과 동시에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그 일행들이 어느새 걸음을 멈춘 채 마현과 케이슨, 그리고 아이작이 있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케이슨은 얼굴이 굳어졌고, 마현의 얼굴에선 싸늘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어이, 오줌싸개.”
아이작이 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큰 소리로 나집을 불렀다. 그러면서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오랜만이다, 오.줌.싸.개!”
아이작은 히죽 웃으며 ‘오줌싸개’라고 힘주어 그를 불렀다.
“히익!”
아이작의 호칭에 나집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달아올랐다.
빠드득!
얼마나 이를 세게 갈았대는지 그 소리가 마현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네놈이 여기에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기는, 설마 내가 한가하게 여기 놀러온 것으로 보이냐?”
아이작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더니 나집을 향해 입바람을 훅 불렀다.
“단장, 부단장.”
아이작은 손을 들어 케이슨과 마현을 불렀다. 비록 소속은 다르지만 어차피 한 번쯤은 부딪혀야 할 사이다. 더욱이 임시 연무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군막이 쳐져 있으니 보고 싶지 않다고 안 보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케이슨과 마현은 아이작 옆으로 다가갔다.
“케이슨이라고 합니다.”
케이슨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부드럽고 예절바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 깍듯한 인사에 나집은 흡족한 듯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칸.”
하지만 마현은 달랐다.
“……?”
짧게 이름만 말하는 마현의 소개에 나집이 황당한 얼굴로 눈을 치떴다.
“뭐라고 했느냐?”
나집 옆에 서 있던 한 중년 기사가 나직하게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못 들었나?”
“뭣이라?”
당연히 나집의 안색은 험악하게 바뀌었으며, 중년 기사의 입에서는 호통이 버럭 터져 나왔다. 그 중년 기사는 다소 과장되게 보일 정도로 얼굴을 부들부들 떨며 검 자루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아이작 때문인지 검을 빼지는 않았다.
“구구절절한 건 알아서 파악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 몸이 이름도 찬란한 케이슨 용병기사단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말씀. 그러니 이 두 분, 내 상관이니까……. 까불면…….”
아이작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또 오줌싸개 만들어 준다.”
아이작은 짓궂은 꼬마 아이처럼 보란듯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비록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모두 아이작의 말을 들었다. 그 소리에 나집은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양 뺨이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크크크.”
“푸힛!”
이들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단원들이 자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는 나집은 물론이고 그를 수행하는 기사들도 모두 들었다. 당연히 나집의 호위기사들이 단원들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에 단원들은 저마다 단청을 피우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언젠가는 네놈을…….”
나집은 단숨에 웃음거리가 되자 아이작을 향해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뭐? 뭐 그런 날이 올까 싶다만.”
“히익!”
나집은 입술을 깨물며 아이작을 노려보다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가자.”
얼음장 같은 목소리를 내뱉고는 나집은 먼저 말머리를 돌려 그들을 지나쳐갔다.
“마르틴.”
“예, 마이 로드.”
나집이 중년의 호위기사단장인 마르틴을 불렀다.
“케이슨 용병기사단이라고 했지?”
“그렇게 들었습니다.”
“용병이면 용병이지 기사단은 무슨.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특히 그 부단장이란 놈.”
“그게……, 8전선 군단사령부에서도 손을 썼는지 그들에 관한 정보가 모두 막혀 있습니다.”
“내 이름이나 가문의 이름으로도?”
“아시지 않습니까? 포크너 군단장이 어떤 자인지.”
나집의 눈살이 탐탁지 않게 찌푸려졌다.
“그런 무시를 당하고도 그냥 넘어가면 나와 가문의 수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