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75화 (275/351)

# 275

24화

“열 명 내외라…….”

“속하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가장 먼저 뛰어든 것은 바로 속하였습니다. 대략 마법진으로 뛰어든 순서대로 주군과의 거리가 생기지 않았을까 사료되옵니다.”

“흠……, 일리가 있는 말이군. 그렇다면 일단 흑풍대를 찾아야겠군.”

마현은 철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 언어도 통하지 않아 힘들어 할 텐데, 최대한 빨리 찾아봐야겠어.”

“송구하오나 속하가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이곳이 주군의 세상이십니까?”

철용의 질문에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있어 마음이 든든하군.”

마현의 담담한 목소리에 철용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철용, 나는 이곳에서 피의 길을 걸을 생각이다.”

“속하는 주군과 함께라면 어떤 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이곳에 나를 죽였던 원수들이 있다. 그들을 죽일 것이다. 그들은 중원과 비교하자면 구파일방,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어차피 속하의 목숨은 주군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마교를 세울 것이다. 물론 이름은 다르겠지만. 그리고 돌아가자, 중원으로. 다 함께.”

마현은 철용을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 * *

라케르크 백작의 죽음으로 인해 하루 휴전이 된 날 아침.

창, 창, 차장!

이른 아침부터 임시 연무장에서는 검과 검이 부딪히는 파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아이작과 철용이었다.

이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검을 나누고 있는 이유는 바로 아이작 때문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작이 조르다시피 철용을 닦달해 임시 연무장으로 나온 것이었다.

철용은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들이 주군이 세울 하르센 대륙의 마교, 흑탑의 주역들이 될 거라고 했지?’

철용은 아이작과 검을 마주하며 어제 마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마현은 철용에게 이곳에서 마공을 전수하지 말라는 명을 받았다. 굳이 마교의 마공을 전수하지 않는 수준에서 이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정도는 괜찮다고 여겼다.

‘어라?’

아이작의 검의 투로가 살짝 바뀌었다.

‘호오!’

철용의 눈에서 흥미로운 기색이 엿보였다.

그 이유는 바로 아이작의 검술 투로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작이 미묘하게 철용의 검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설프지만 차근차근 맥을 짚어왔다.

철용의 호기심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대로 비무를 진행해야 하나?’

분명 마공을 전수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지만 달리 생각하면 검을 섞는 것 자체가 마공을 전수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철용은 그 순간 뒤로 급히 물러나며 롱소드를 내렸다.

“왜 그러시오?”

철용은 아이작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스스로도 자신의 검을 따라 한 것을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걸 어쩌나.’

『그 정도는 괜찮다.』

철용은 마현의 전음에 눈을 크게 뜨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군막 옆에는 마현이 서 있었다.

“주군.”

“계속 해.”

마현은 군막 옆 간이의자에 앉았다.

그런 마현의 뒤로 밀러가 서 있었다.

‘분명 어둠의 기운이었어.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야.’

밀러는 심장을 에워싸고 있는 서클에서 온몸으로 퍼져가는 마나에 미세하지만 어둠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꼈다. 타인의 마나로 서클이 완성되었기에 그저 착각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제 전장에서 마법을 펼친 후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밀러는 철용이 팔목에 차고 있는 은팔찌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통역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

결코 흔한 물건도 아니거니와 구하고 싶다고 금세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런 아티팩트를 금세 구해와 철용에게 준 것이다.

거기에 다른 대륙이라니.

드래곤 산맥 너머 미지의 대륙이 있을 거라는 가설은 들어봤어도 실제로 다른 대륙의 인물이 하르센 대륙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거기에 흔하지 않는 흑안에 흑발.

그러고 보니 카칸도 흑안에 흑발이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 생김새가 미묘하게 달랐다.

이제는 마현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내 사람이 되라…….’

밀러는 깊은 한숨을 속으로 삭혔다.

* * *

8군단장실.

탁자 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촛불 아래에는 전장을 옮겨놓은 듯한 지도가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는 8군단의 조직도가 놓여 있었다.

포크너 후작은 지도와 조직도를 내려다보며 고심하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그때 고디머 자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네가 이 시간에 웬일인가?”

“따뜻한 홍차를 가져왔습니다.”

“안 그래도 입이 심심하던 차였는데 잘 되었군.”

고디머 자작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들고 온 주전자에서 홍차를 따라 포크너 후작에게 건넸다.

“요즘 들어 표정이 밝아 보여 다행입니다.”

다른 이들은 항상 포크너 후작의 딱딱한 표정만을 보았겠지만 근 20여 년 이상 그를 모셔온 고디머 자작은 미세한 변화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 보이는가?”

“예, 후작님.”

“요즘만 같다면 전쟁도 그다지 힘들지 않은데 말이야.”

포크너 후작은 홍차를 마시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대단한 전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소드 마스터가 둘, 소드 마스터 경지에 발을 걸친 이가 하나. 대륙 어느 기사단에게도 그런 전력은 없을 걸세.”

“아쉬워 보입니다, 후작님.”

“아쉽지, 아쉽지 않다고 이야기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세.”

포크너 후작은 홍차가 담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들을 잡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단 말이야. 하야스 놈의 말대로 내 후작 자리를 줘서라도 잡고 싶은데…… 그런 걸 받을 놈도 아니고.”

포크너 후작은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아이작 경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나마 아이작이 있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 있다네. 그런데 자네가 이 시간에 웬일인가?”

포크너 후작은 고디머 자작을 쳐다보았다.

“총사령부에서 급한 정보가 내려왔습니다.”

“총사령부에서?”

“브루넬로 왕국 측에서 하인히리 후작을 8전선으로 급히 내려 보냈다는 첩보입니다.”

“하인히리 후작?”

하인히리 후작은 브루넬로 왕국 최강의 소드 마스터이자,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의 기사단장이기도 했다.

“라케르크 백작의 죽음으로 충격이 크긴 컸던 모양이군.”

“8전선에서마저 밀리면 브루넬로 왕국의 패배가 확실시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마저 죽는다면 이 지루한 전쟁을 끝낼 수 있겠군.”

포크너 후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이 언제쯤 적진에 도착한다고 하던가?”

“내일입니다.”

고디머 자작의 대답에 포크너 후작의 입언저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하늘이 도우심이야.”

내일은 대장장이 샤토의 마탑주인 체스와프가 도착하는 날이었다.

더욱이 체스와프가 8전선으로 온다는 것은 브루넬로 왕국 측에서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사안일 것이다.

“체스와프 마탑주의 경호는 어디로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마탑주와 그의 두 제자만이 이곳으로 오니 경호에 각별히 신경 써야겠지.”

“그렇다면 케이슨 용병기사단이겠군요?”

“솔직히 고민을 했었는데 하인히리 후작 덕에 손쉽게 결정하게 되었군. 체스와프 마탑주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이라면 하인히리 후작과 브루넬로 왕국의 제1기사단의 궤멸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야. 조만간 전쟁이 끝나겠군.”

포크너 후작은 찻주전자를 들어 어느새 비어버린 찻잔에 홍차를 채웠다.

* * *

어두웠던 밤은 가고 여명이 밝았다.

군막을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멍한 정신을 깨웠다.

“흐읍!”

마현은 폐부 가득 숨을 들이마셨다.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지만 마현의 얼굴은 아주 밝았다.

“상쾌한 아침 공기야.”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뒤따라 나온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분 좋은 일이라…….”

하기야, 묻는 아이작도 솔직히 어이없는 질문임을 알고 있었다. 어제도 다른 날과 별반 차이 없이 전장에서 뒹굴고, 귀환하여 온몸에 가득 묻은 피를 씻어내고 자기 전에 명상을 한 것이 다였다.

아이작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날 속에서도 이유 없이 기분이 좋을 때가. 마현도 그냥 그런 날 중의 하루라고 편히 받아들인 것이다.

“사람 모이기 전에 얼른 씻어야겠다.”

아이작은 재빨리 씻으러 자리를 떴다.

하지만 마현의 기분은 단지 그냥 좋은 게 아니었다.

그 이유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오늘이란 말이지.’

마현은 입술에서 웃음을 지었다.

‘죽어서 잊지 못할 늙은이가 오는 날.’

마현은 오늘 군영에 도착하는 체스와프 백마법사를 떠올렸다. 그를 떠올리자 눈에서 다시 웃음이 만들어졌다. 눈도 웃고, 입술도 웃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시퍼런 칼날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주군.”

그때 철용이 다가왔다.

“오늘이군요.”

철용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들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피 보기 아주 좋은 날이군.”

마현은 어느 때보다 밝게 웃고 있었다.

그때였다.

포크너 후작의 호위기사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마현에게 군례를 취했다.

“군단장님께서 바삐 찾으십니다.”

“알겠소.”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철용을 쳐다보았다.

“철용, 단장에게는 회의에 참석하고 온다고 전하라.”

며칠 전부터 케이슨은 전장에 관한 모든 일을 마현에게 위임했다. 아무래도 몬테팔코 왕국 측, 엄밀히 말하자면 포크너 후작을 상대하는 데는 자신보다 마현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주군.”

마현은 호위기사를 따라 8군단 지휘군막으로 향했다.

지휘군막에는 이미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마현이 도착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지 않아 모든 지휘관들이 자리했다.

그들이 다 모이자 고디머 자작과 함께 포크너 후작이 지휘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이른 시간이지만, 조금 후면 체스와프 마탑주가 도착할 것이다.”

포크너 후작은 고개를 들어 마현을 쳐다보았다.

“카칸.”

“말씀하시지요.”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그의 호위를 맡아라. 체스와프 마탑주와 그의 제자 둘만 온다고 하니 호위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포크너 후작의 명령에 마현의 입술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살짝 고개를 숙이는 마현의 눈동자에서는 살기가 빠르게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늘이 지나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만 브루넬로 측에서 흘러나온 첩보에 의하면 오늘 전장에 하인히리 후작과 왕실 제1기사단이 합류한다고 한다.”

하인히리 후작과 왕실 제1기사단이란 소리에 지휘관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쾅!

그 모습에 포크너 후작이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다들 정신을 어디다 놓는 것인가?”

그 호통에 지휘관들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그들까지 잡는다면 이 전쟁의 승리는 우리 몬테팔코 왕국의 것이 될 것이다.”

포크너 후작의 목소리에는 강한 집념이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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