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
1화
콰르르르 콰과과광!
하인히르 후작을 비롯해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 위로 엄청난 불덩이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으아악!”
“사, 사람 살려!”
불덩이를 미처 피하지 못한 몇몇의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의 기사들은 군마와 함께 화마에 휩싸여 죽어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브루넬로 왕국의 최고의 기사단이라 일컬어질 만큼 대부분의 기사들은 불덩이를 피하거나 방패 등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특히 하인히르 후작은 압도적인 무위로 불덩이를 쳐내며 마현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찰튼, 하인히르 후작의 이목을 끌어라!”
“명!”
체스와프 마탑주의 두 제자의 목을 벤 철용은 마현의 명에 군마를 몰아 하인히르 후작을 향해 달려 나갔다.
“여기다!”
철용은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하인히르 후작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후아앙― 콰광!
오러가 담긴 철용의 롱소드와 하인히르 후작의 바스타드소드가 부딪히자 귀가 먹먹해지는 폭음이 터졌다.
“마법사를 찾아라, 어서!”
그 와중에도 하인히르 후작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은 마현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전력으로 질주했다.
“저기 마법사가 있다!”
하인히르 후작을 대신해 기사단을 이끄는 부단장인 듯한 자가 밀러를 검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로 인해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의 진로가 미묘하게 틀어졌다. 기사단이 밀러를 향해 접근하자 마현은 그들의 시야에서 약간 비켜나게 된 것이다.
마현은 습관처럼 한 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한 무공이 아니었다. 무공을 빙자한 마법이었다.
“필드 쇼크!”
콰그그그극!
마현이 강하게 내딛은 곳에서부터 땅거죽이 뒤집혀나가기 시작했다.
마현은 곧바로 다시 한 번 더 발을 강하게 구르며 필드 쇼크 마법을 시전했다.
콰르르르르르!
다시 필드쇼크 마법이 시전되자 이번에는 땅거죽은 헤집어지는 것도 모자라 군데군데 터져나갔다.
그렇게 작은 지진이 일어난 곳은 밀러를 향해 질주하던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의 군마 아래였다.
푸히이잉!
쿠히이잉!
군마들은 튀어 오르고 뒤집히는 흙더미에 발을 제대로 디디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저자다! 저자가 대마도사다!”
군마가 쓰러질 때 간신히 허공으로 몸을 날린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의 부단장이 마현을 가리켰다. 아직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던 기사단원들이 말을 다독이며 일제히 마현을 노려보았다.
‘용케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마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철용과 한바탕 싸우고 있는 하인히르 후작의 등 뒤였다.
“그리스 앤 홀드!”
가장 단순한 것이 때로는 가장 치명적이 살수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단 한순간의 실수가 목숨과 직결되는 싸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헉!”
하인히르 후작은 미끄러지는 발을 애써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몸이 굳어지자 상당한 허점을 노출시켰다.
철용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고 롱소드로 하인히르 후작의 가슴을 크게 베고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욕심이 앞서 동작이 커진 탓인지, 아니면 하인히르 후작의 경지가 생각보다 높은 것인지 신형이 흐트러진 와중에도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러 철용의 롱소드를 막았다.
쾅!
하인히르 후작은 충격의 여파를 다 막아내지 못한 모양인지 뒤로 넘어질 듯 물려났다.
“다, 단장님! 위험…….”
뒤로 물러나는 하인히르 후작의 뒤에 마현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부기사단장이 급히 소리치며 주의를 주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푹!
마현은 가차 없이 하인히르 후작의 등에 롱소드를 찔러 박았다.
“크헉!”
하인히르 후작은 몸이 경직되며 짧은 단발마를 내뱉었다. 이어 철용의 롱소드가 하인히르 후작의 심장을 찔렀다.
푹!
철용의 일검은 하인히르 후작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조금의 부족함이 없었다.
절명한 하인히르 후작의 목이 아래로 꺾였다.
마현은 하인히르 후작의 몸에서 롱소드를 뽑으며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을 쳐다보았다.
단지 땅을 뒤집어 기사들을 낙마만 시킨 터라 죽은 이들은 없었다. 모두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상태였지만 하인히르 후작의 죽음에 망연자실한 모습들이었다.
“찰튼!”
마현은 철용을 부르며 블링크 마법으로 기사들 중심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리고는 서클 단전에서 마력을 폭사시켰다.
“운드 애그러베이션!”
마현의 몸에서 폭사된 마력은 한순간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푸학!
상처 악화 마법에 그들의 몸 곳곳이 터지며 허공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윽!”
경상자들은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극심한 고통에 신음을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으아악!”
중상자들은 단발마를 지르며 목숨을 잃었다.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마현은 롱소드를 땅에 박았다.
롱소드를 통해 마력을 땅으로 흘려보냈다.
“지옥에서 꿈틀거리는 화마를 이끌어내리라, 라버 가싱(Lava gushing)!”
헤집어진 땅거죽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콰그그그 콰과과과광!
파도처럼 출렁거리던 땅거죽이 터지며 이글거리는 화마를 토해냈다. 그 화마는 용암이었다.
용암은 기사들의 다리를 집어삼켰다.
그사이 기사들 속으로 난입한 철용은 마현과 함께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날렵하고 매섭게 기사들의 목숨을 단숨에 끊어버리고 있었다.
브루넬로 왕실 제1기사단이 궤멸을 당하는데 걸린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마현은 살아 있는 마지막 기사의 목숨을 끊은 뒤 주검이 된 하인히르 후작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았던 바스타드소드를 집어 들었다.
“찰튼, 전쟁을 끝내라.”
철용은 마현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죽은 하인히리 후작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롱소드를 이용해 수급을 찍어 높이 치켜 올렸다.
“하인히르 후작은 죽었다!”
철용은 내력을 담아 사자후를 터트렸다.
마현은 하인히르 후작의 바스타드소드를 든 채 이미 심장에 구멍이 난 상태로 죽어 있는 체스와프 마탑주의 시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심장에 하인히르 후작의 바스타드소드를 꽂았다.
마현은 고개를 들어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임무는 완수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체스와프 마탑주는 그의 두 제자를 지키려다가 하인히리 후작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현은 체스와프 마탑주의 시신을 그대로 안아들었다. 하인히리 후작의 검이 몸에 꽂힌 채였다.
“회군하겠습니다.”
마현은 일루젼 마법을 회수하며 홀로 남겨진 군마에 훌쩍 올라탔다.
* * *
“와아아아!”
“몬테팔코 왕국, 만세! 만세!”
“케이슨 용병기사단, 만세! 만세!”
길이 열리자 병사들에게서 터져 나온 함성은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군영 안 지휘군막 앞에 도착할 때까지 끊어지지 않았다. 지휘 군막 앞에는 포크너 후작을 비롯해 서둘러 도착한 지휘관들이 그들을 마중하러 나와 있었다.
마현은 군마에서 내려 체스와프 마탑주의 시신을 포크너 후작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흐음!”
체스와프 마탑주의 시신을 내려다보는 포크너 후작의 입술 사이로 무거운 침음이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마현은 철용에게서 건네받은 하인히르 후작의 수급을 그 옆에 내려놓은 후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대가 미안해할 것이 뭐가 있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포크너 후작은 체스와프 마탑주의 죽음에 꽤나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래도 헛된 죽음은 아닌 모양이야.”
포크너 후작은 그 옆에 놓인 하인히르 후작의 수급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슬프다든지 애통하다든지 하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체스와프 마탑주가 비록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6대 마탑의 주인 중 한 명이지만 이렇게 전장에 나온 이유는 용병들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의 신분이 가진 이름값과 거기에 걸맞은 대우가 다르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자신이 아닌 왕국에서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고디머 자작. 이 사실을 국왕전하와 총사령부에 알리게.”
포크너 후작은 고디머 자작에게 명한 뒤 마현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나중으로 미루지.”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봐야 하겠지만 포크너 후작은 생략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마현 뒤에 서 있는 케이슨 용병기사단원들이 하나같이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슨 용병기사단원들은 주위의 환호 속에서도 좀처럼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비록 체스와프 마탑주를 지키지 못했다고는 하나 그 정도가 조금은 심한 듯싶었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 포크너 후작 자신이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이제 전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군.”
포크너 후작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희들은 돌아가서 쉬겠습니다.”
“그리하게.”
포크너 후작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현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단원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부디 내 사람이 되어주길 빌겠소.’
단원들의 얼굴을 쳐다보는 마현의 눈동자에 살기가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졌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 * *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무거운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이 시팔!”
다혈질인 제이든이 군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친 욕설과 함께 애꿎은 야전침상 모서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의 표정이나 성격으로 보건데 당장이라도 마현에게 한바탕 욕지거리라도 퍼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저 마현을 잠시 노려보며 이를 아드득 갈 뿐이었다.
제아무리 제이든이 그동안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마현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지만 전장에서 보여준 엄청난 화력의 마법이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일단 앉아라.”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레오가 제이든을 말렸다.
“앉기는 뭐를 앉아?”
그래서일까, 제이든은 애꿎은 그레오에게 날을 바싹 세웠다.
“시팔, 너 같으면 앉겠냐고?”
제이든은 그레오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하지만 마현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앉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혼자 서서 씩씩거릴 뿐이었다.
“일단 앉아.”
그레오는 그런 제이든을 강제로 앉혔고, 제이든 역시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다들 조용!”
결국 케이슨이 나섰다.
“휴우.”
케이슨은 쇳덩이보다 더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며 마현을 쳐다보았다.
“왜 그를 죽였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마현은 단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그 대답을 하려면 저에 관한 것부터 대답해야겠군요.”
마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제 이름은 카칸. 카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