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00화 (300/351)

# 300

24화

“그라스, 재미있는 걸 생각해냈군.”

“무슨 내용입니까, 마스터?”

“하긴 너무 오래 시간을 끌기는 했군.”

켈더는 점원의 질문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십좌왕이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

“용병계의 열 명의 신진 소드마스터가 아닙니까? 혹시……, 그들입니까?”

점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에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부단장 카칸까지.”

소드마스터 열한 명.

특급 어쌔신들이 일거리가 없어 손을 놓은 지도 어느덧 7~8년이 되어 간다. 이 정도 일이면 그동안 놀고먹었던 것을 단번에 채우고도 남을 거금이 들어올 것이다.

“두당 500골드.”

일의 위험도에 비해 제시한 액수가 좀 낮았지만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인해 그 정도는 감안해줄 수 있다.

“거기에 단서가 달려 있다.”

“……?”

“이와 똑같은 의뢰가 피의 달에도 똑같이 들어갔다.”

“예? 그 무슨!”

점원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분노를 표출시켰다.

“백야와 피의 달, 두 길드 중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죽인 쪽에만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되면 약속한 5천 5백 골드 외에도 추가로 2천 골드를 지불한다는 옵션까지 붙어 있다.”

켈더의 말에 점원의 얼굴에서 분노가 사그라지고 냉철함이 떠올랐다.

“그래서 재미있다는 거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륙 제일의 어쌔신 길드는 우리 백야다. 공짜로 웃돈도 받을 수 있는데 포기할 수야 있나?”

주인의 얼굴에서 후덕한 웃음이 사라졌다.

“특급 어쌔신, 전원을 소집해라.”

피비린내 자욱한 미소가 켈더의 입가에서 번졌다.

* * *

“어찌하면 좋겠나?”

“내 생각에는 이번에 실력행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네. 좋던 싫던 체스와프 덕에 마탑의 체면이 구겨진 것도 사실이니.”

이베른의 질문에 바람, 로쉴드 마탑주 네이폴이 대답했다.

“나도 찬성일세. 안 그래도 체스와프 때문에 적잖이 찜찜하던 차였는데……. 어차피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이니 기왕 생색을 낼 바에야 마법병단의 규모만 조금 키워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훗날 배로 돌려받으면 될 것이니.”

바다, 샤메일의 마탑주 셰이머스가 네이폴의 말을 거들었다.

“다들 그리 생각하시는가?”

이베른은 고개를 돌려 대지, 듀락의 마탑주 카밀로와 조화, 스플린의 마탑주 벨로를 쳐다보며 의견을 물었다.

“구겨진 체면을 다시 살리는 데 동의하네.”

벨로가 대답했다.

이어 카밀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규모는 각 마탑에서 10명으로 하지. 6서클 한 명, 5서클 두 명, 나머지는 4서클이면 되겠군.”

“제대로 실력행사를 하자는 소리군.”

“어쭙잖게 일을 벌여봐야 안 하는 것보다 못하지.”

네이폴의 말에 이베른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되면 60명으로 마법병단을 꾸리면 될 것이고……, 이 정도 규모라면 우리 중에 누구 한 명이 가야겠군.”

이베른은 고개를 들어 원탁에 앉아 있는 마탑주들을 쳐다보았다.

누가 가겠느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내가 가지.”

네이폴이었다.

“자네가?”

“카밀로에게 그 카칸이라는 자를 보고 여전히 찜찜함을 털어내지 못했다고 했다지?”

네이폴의 질문에 이베른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카칸이든 아니든 상관없네. 단지 그 이름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네이폴은 과거에도 마현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게다가 마현을 죽일 때 가장 무거운 상처를 입기도 했었다. 당연히 다른 마탑주들에 비해 그의 증오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리하게.”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이베른은 다른 말없이 받아들였다.

* * *

“피와 달, 백야. 두 곳 모두 의뢰를 받아들였습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습니다.”

두 곳을 움직이는데 7천 5백 골드라는 엄청난 거금이 소요된다. 하지만 목적만 달성한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이번 전쟁으로 용병계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되면 돈은 자연스럽게 굴러들어오게 마련이다.

대륙 최고의 어쌔신 길드 두 곳이 움직였으니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미겔은 고개를 돌려 히메네스를 쳐다보았다.

“마탑은 어찌되었나?”

“방금 답변이 왔습니다.”

히메네스가 마탑에서 보내온 서신을 미겔에게 넘겼다.

“호오, 대단하군.”

마탑이 지원하기로 한 마법군단의 규모는 미겔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화르륵!

미겔은 흡족한 얼굴로 마탑에서 보내온 서신을 촛불에 태웠다.

“나머지 세 용병대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히메네스의 질문에 미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눈동자만 올려 히메네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히메네스는 오싹함을 느꼈다.

히메네스의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 미겔은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원래 나는 질문 받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네. 처음이니 봐주지. 해골, 바쿠, 붉은늑대 용병대는 트로켄 왕국으로 출전할 거다.”

히메네스로서는 뜻밖의 대답이었다.

“이런…….”

그라스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겔 앞으로 다가왔다.

“이러다 용병대 재정이 바닥나겠습니다.”

히메네스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그라스는 자신과 달리 미겔의 간계를 이해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도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그놈들에게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고.”

히메네스는 둘의 대화가 조금 더 진행되어서야 미겔의 음모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겔은 세 용병대를 트로켄 왕국 쪽으로 출전시킨 후, 전장에서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뒤통수를 치게 만든 것이다.

지독할 정도로 독하고 무서운 자였다.

아마도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전쟁이 터지는 즉시, 고립될 것이 분명했다.

히메네스는 이번 전쟁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과 안드리치, 그리고 그들이 데려온 14명의 기사들을 주축으로 만든 검은여우 용병기사단의 전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거기다가 소드마스터인 미겔과 그의 용병대는 대륙 최고의 수준이 아닌가.

‘흠…….’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전장에서 반드시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미겔이 이중 삼중으로 쳐놓은 덫은 빠져나갈 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했다.

‘젠장!’

히메네스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미겔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검은여우 용병대로 들어올 때 그는 머지않아 미겔을 제거하고 용병대를 자신이 접수하리라 믿었다.

한데 시간이 지나며 미겔의 진면모를 발견할 때마다 자신감이 옅어지고 있었다.

“수고했네. 이틀 후 출전이니 그동안 푹 쉬도록.”

히메네스는 고개를 살짝 숙인 후 그라스와 함께 미겔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쉽지 않지요?”

그라스가 히메네스의 속마음을 꿰뚫어본 듯 불쑥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히메네스는 일부러 그라스의 질문을 피해갔다.

“이 전쟁에서 카칸만 죽일 수 있다면 장차 마탑주들에게 막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마 단장님이 원하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라스는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뻔했다.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요?”

“저도 편한 대장을 한 번 모시고 싶어서 그렇다고 해두죠.”

그라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말했지만 히메네스의 자존심은 완전히 구겨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라스의 조언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것이기도 했다.

“먼저 실례하겠소.”

히메네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먼저 사라졌다.

“어디 보자……, 이제 할 일이…….”

그라스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집무실로 가지 않고 검은여우 용병대 건물을 빠져나가 후미진 골목길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그라스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네게 내릴 명령이 있다.”

마현이었다.

“하명하십시오.”

“삼 일 후, 개전 날 오후에…….”

* * *

테누타 왕국이 마침내 선전포고를 했다.

개전 이틀 전 아침,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트로켄 왕국 수도로 가기 위해 저택을 나섰다.

“어젯밤 어디 다녀왔나?”

케이슨이 마현 곁으로 다가왔다.

“이베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왔습니다.”

“이베른이라면 태양, 스피네타의 마탑주?”

“그렇습니다.”

마현의 대답에 케이슨은 험난한 여정의 길에 발을 내딛었음을 실감했다.

“카칸.”

“…….”

“우리 친구지?”

케이슨의 물음에 마현은 군마, 풍이를 잠시 멈춰 세웠다.

“친구입니다.”

마현의 진지한 대답에 케이슨은 길게 한숨을 내쉰 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 밑으로 들어가겠네. 어젯밤, 그 말을 하려고 갔었다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마현은 고개를 돌려 말을 멈춘 채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쳐다보았다.

“고맙다. 이것만은 약속하지. 가장 먼저 내가 죽겠다.”

“하하, 역시 카칸답군.”

아이작이 그 말에 기분이 좋은 듯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죽을 때 죽더라도 소드마스터나 만들어주고 죽어!”

제이든은 잔뜩 목소리를 비꼬았지만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가자!”

케이슨이 힘차게 외치며 말고삐를 당겼다.

* * *

마현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조화, 스플린 마탑의 각 왕국을 잇는 워프게이트진을 이용해 트로켄 왕국 수도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었다. 그리고 다시 트로켄 왕국의 주요 거점을 잇는 워프게이튼진을 이용해 개전 바로 하루 전날 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통의 용병들이라면 이렇게 워프게이트진을 이용해 손쉽게 전장에 올 수 없었지만 마현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그들과 대우 자체가 달랐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트로켄 왕국의 대(對) 테누타 전의 총사령관 버트런드 공작이 마현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직접 환대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오, 이렇게 와 준 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소. 국왕전하를 대신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오.”

버트런드 공작의 환대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는 마현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에 기댈 수밖에 없을 정도로 트로켄의 국력이 약해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드마스터인 히메네스와 안드리치가 트로켄 왕국을 떠나면서 그나마 간신히 지탱해 오던 국방력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개전이 내일이라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으면 하오.”

버트런드 공작은 케이슨의 눈치를 언뜻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모리악 자작.”

버트런드 공작은 부관인 모리악 자작을 불렀다.

“예, 총사령관님.”

“지금 가서 십좌왕과 세 용병대의 대장들을 중앙지휘실로 모셔오도록.”

“명!”

“지휘관들도 중앙지휘실로 소집하라.”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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