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05화 (305/351)

# 305

4화

“죽여주겠어. 둘 다!”

미겔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어려 있었다.

“됐어, 자브라.”

케이슨이 자브라를 말리며 미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어차피 이거 이외에는 달리 답이 없겠군.”

케이슨은 투핸드소드를 들어 올리며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매우 슬퍼보였다.

“항상 나는 너의 그런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어.”

미겔은 천천히 투핸드소드로 바닥을 긁으며 금방이라도 검을 들어 올릴 기세였다.

파밧!

미겔은 바닥을 긁던 검 끝으로 흙뭉치를 케이슨의 얼굴을 향해 튕겼다.

“큭!”

흙먼지가 케이슨의 얼굴을 뒤덮었고, 그 순간 미겔은 잔인하게 웃으며 케이슨을 덮쳤다.

하지만 그 사이에 히메네스가 끼어들었다.

쾅!

폭음과 함께 미겔은 그 자리에서 멈췄고, 히메네스는 피를 토해내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입가로 흘러내리는 피를 히메네스는 닦지 않았다.

“크크크.”

히메네스는 미겔의 속을 뒤집는 웃음소리를 한참이나 내뱉었다.

그런 그를 향해 몇 명의 조장들이 잽싸게 나섰지만 야수처럼 피를 흘리며 앞을 막아선 안드리치의 무지막지한 힘에 가로막혔다.

“안드리치의 목숨을 구해준 값일 뿐이다.”

히메네스는 힘겹게 서 있는 와중에도 케이슨을 향해 자존심을 드러냈다.

“고맙소.”

케이슨은 그런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미겔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크크크. 웃기군. 아주 웃겨!”

미겔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며 케이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케이슨도 그에 맞서 투핸드소드를 들어 올렸다.

쾅!

그 순간 둘 사이에서 오러와 오러가 만들어낸 강력한 폭음이 터졌다.

* * *

“지옥의 겁화가 이 땅의 모든 것을 삼키리라, 라버 가싱!”

마현의 주위로 땅거죽이 갈라지며 붉은 용암이 터져 나왔다. 이글거리는 용암은 붉은 피를 머금은 땅 위의 모든 생명들을 집어삼켰다.

“지옥의 겁화가 하늘에서도 떨어지나니, 파이어 레인!”

후둑, 후두두둑!

자그만 불덩이 수만 개가 비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

땅과 하늘.

어느 곳으로도 피할 곳은 없었다.

상상 속에서나 그려질 법한 마계의 땅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크아악!”

“뜨거워, 살려줘!”

대략 오백 명 정도 되는 세 용병대가 불길에 싸여 무참하게 죽어나갔다.

그렇게 한 폭의 지옥도를 만들어낸 마현은 허공답보를 펼치듯 허공을 밟고 올라갔다.

하늘에 우뚝 선 마현의 시선은 적진, 네이폴과 마법병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후후.”

옅은 웃음을 흘리더니 마현의 신형은 한줄기 잔상만을 허공에 남기고는 네이폴과 마법병단이 있는 곳으로 화살처럼 날아갔다.

* * *

거대한 폭발이 있은 후 그로 인해 만들어진 불길에 의해 이베른의 집무실 외벽은 부서져 있었고, 방 안은 검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그 중앙에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베른의 모습은 방 안의 모습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은백색의 단아한 풍취를 보이던 머리카락과 수염은 뜨거운 불길에 검게 그을려 구불구불해져 있었다. 거기에 얼굴과 손은 숯덩이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고, 하얀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던 화려한 로브는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누렇게 변색된 채 끝자락이 검게 타 말려 올라가 있었다.

그라스가 서 있던 곳을 노려보는 이베른의 눈동자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살심이 일렁거렸다.

‘정말로 네놈이 다시 살아 돌아왔단 말이냐!’

이베른은 자신이 죽였던 과거 카칸의 얼굴과 얼마 전 검은여우 용병기사단의 창단식에서 처음 본 카칸의 얼굴을 함께 떠올렸다.

‘힘겹게 만든 나의 왕국이다. 네놈 하나 때문에 무너질 듯싶으냐? 오냐, 죽여주마! 다시 한 번 죽여주마! 마계에 떨어져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이베른의 살심은 유형화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순간 짙은 살기가 뒤섞인 빛의 마나가 눈부시게 폭사되었다.

“스, 스승님!”

“마탑주님!”

불에 타 반쯤은 유실된 문이 벌컥 열리며 십여 명의 태양, 스피네타 마탑의 중추 마법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의 모습도 이베른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이베른에게 가장 총애를 받는 대제자 사크스가 다가서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사크스는 이베른의 몸에서 폭사되는 유형화된 살기에 움찔하며 곧 뒤로 물러났다. 이베른은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베른은 그 순간 자신만의 생각에 깊이 잠겨 있었다.

‘네이폴!’

그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여섯 마탑에서 60명의 마법병단을 꾸려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괜, 괜찮으십니까?”

가뜩이나 경황이 없어 머리가 복잡한데 사크스로 인해 머릿속은 더욱 헝클어졌다. 이베른은 살심이 여전히 묻어나오는 눈동자로 사크스를 노려보았다.

“헉!”

사크스는 그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뒷걸음을 치려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평소의 스승이라면 ‘아차’하며 살기를 거두고 어떻게든 부드러운 모습으로 그를 달래줬겠지만 오늘은 너무도 달랐다.

‘일단 벨로를 만나야겠어. 벨로를…….’

이베른은 조화, 스플린 마탑주 벨로를 떠올렸다.

“사크스.”

“예, 예. 스, 스승님.”

“당장 조화의 마탑으로 모이라고 각 마탑주에게 연통을 넣어라! 나는 지금 조화의 마탑으로 갈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어서 달려가지 못할까?”

후들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부여잡고 일어나는 사크스에게 이베른은 여전히 살기가 담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사크스는 마치 적에게 쫓기듯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잿더미가 된 스승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베른은 그 순간 붉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 * *

똑똑똑.

“무슨 일이지?”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벨로는 두툼한 책을 덮으며 방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태양……, 어? 이러시면 안…….”

콰당!

약간의 소란과 함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소란에 벨로의 미간이 좁혀졌다. 문으로 들어서는 이베른을 확인한 순간 미간의 주름은 펴졌지만 눈가는 더욱 깊은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자네답지 않게…….”

벨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베른이 빠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벨로는 침음을 삼키며 손을 저어 방문을 닫게 했다.

“무슨 일인가?”

“당장 마법병단을 파견한 전장으로 가야 하네. 당장!”

“당장?”

벨로는 낯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그래, 지금 당장!”

평소 이베른답지 않게 꽤나 거칠고 직설적인 대답이었다.

“자네도 알지 않은가? 아무리 각 왕국 간 워프게이트진을 운용한다고 쳐도 전쟁이 발발하면 폐쇄되어 아무도 이용할 수 없네. 나라고 해도 말일세.”

이베른 역시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경황이 없다 보니 그것을 잊고 있었다.

이베른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무슨 일인가?”

벨로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후에야 불에 그슬린 이베른의 몰골이 눈에 들어왔다.

“……카칸.”

그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카칸?”

벨로의 억양도 살짝 커졌다.

“그놈이 살아 있다.”

“뭐, 뭐야?”

벨로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로 인해 의자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서, 설마?”

벨로는 이베른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이름만 같은 줄 알았던 용병, 카칸.

“우리를 농락했어. 빠드득!”

이베른의 턱에서는 이가 갈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만들어졌다. 그 이름을 듣자 벨로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자, 잠깐. 그렇다면……? 네, 네이폴과…….”

벨로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 * *

“정화 마법을 펼쳐라, 어서!”

네이폴은 아수라장으로 변해가는 전장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마법병단을 재촉했다. 스스로 나서면 좀 더 편하게 밀러의 흑마법을 빛의 마나로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겠지만 네이폴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카칸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흑마법이 다시 등장했다.

그것도 자신이 뻔히 참가한 전쟁에서.

‘살아난 것이 분명해! 아니 처음부터 죽지 않았던 것인가? 아니야, 분명히 죽었어. 그럼 그의 후손인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혼란은 네이폴의 심장을 거세게 뛰게 만들었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죽인 흑마법사 카칸과 어떤 인연으로든지 연관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상념에 잠긴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하늘에서 툭 떨어지듯 모습을 드러냈다. 네이폴은 흠칫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해를 등지고 선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네이폴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카, 카칸?”

분명히 카칸이 서 있던 곳에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 마법 중 하나를 터트렸는데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랜만이다, 네이폴. 한 이십 년 만인가?”

네이폴이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치켜뜬 눈동자에 마현의 차가운 미소가 담겼다.

“네놈은 누구냐?”

네이폴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카칸.”

흥분한 네이폴의 목소리와 달리 마현의 목소리는 너무도 차분했다.

“감히 그 이름을 쓰고도 무사할 거라 여긴 것이냐?”

“내 이름을 내가 쓰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

마현의 대답에 네이폴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분명 카칸은 내 손에 죽었다. 밝혀라, 너는 누구냐? 그의 후손이더냐?”

평정심을 잃어버리자 네이폴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말이 많아졌다.

그리고 목소리는 격앙되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후후.”

마현은 대답대신 한없이 시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네이폴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어금니를 꽉 깨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당황하던 빛이 그의 얼굴에서 점차 사라지며 눈매가 가늘어졌다.

누군지 상관없다.

지금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가 자신의 손에 한 번 죽었던 카칸이든, 아니면 그의 후손이든.

어차피 한 번 죽였던 이다.

더욱이 지금 자신 역시 과거의 카칸처럼 7서클 마스터였다.

거기에 자신에게는 60명의 마법병단이 있지 않은가?

거기에서 실력이 고만고만한 이들을 뺀다고 해도 확실한 전력, 6서클의 마법사만 해도 자그마치 여섯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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