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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07화 (307/351)

# 307

6화

사실 상황은 너무 순식간에 시작되었고 격전도 그만큼 빠르게 결말이 났다. 흑풍대와 다크나이트가 마법사들을 무참히 베고, 위기감을 느낀 네이폴이 살아남고자 7서클 최강의 바람의 마법인 토네이도 어택으로 주위를 초토화시켰고, 마현이 그런 네이폴의 서클을 완전히 깨트려 버림으로써 이미 싸움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한 게 아니었지만 길게 잡아봐야 10분이 채 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 그사이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기사들과 병사들이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현을 완벽히 에워싼 것도 나름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마현은 무릎을 꿇고 오열하고 있는 네이폴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더니 서서히 좁혀오는 기사들 중 한 명에게 집어던졌다.

“후후.”

엉겁결에 네이폴을 안아들고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기사를 향해 마현은 차갑게 웃었다.

“누, 누구냐?”

“나?”

기사의 물음에 마현의 입술에서 웃음이 진해졌다.

“카칸.”

“……?”

“나 카칸은 살아서 돌아왔다. 이 전장에!”

그 말을 끝으로 허공으로 몸을 훌쩍 띄웠다. 그리고는 목소리에 마력을 담았다.

“보라, 내가 바로 카칸이다!”

* * *

보통 전쟁 첫날은 서로의 전력을 가늠하는 정도로 가볍게 끝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테누타 대 트로켄 전의 첫날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시작은 가벼웠을지 몰라도 접전이 끝나고 그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트로켄 왕국의 대승.

불리한 판세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을 만큼 테누타 왕국에 극심한 타격을 입힌 그야말로 압승이었다.

비록 테누타 왕국의 정규군 피해는 경미하다고는 하나 테누타 왕국의 주요 전력 중 가히 최고라 손꼽아도 손색이 없는 마법병단이 완전히 몰살당했다.

아니 단 한 명은 살아남았다.

마탑주 네이폴.

하지만 그는 이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살아 있어도 산 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또한 대륙 제일의 용병대가 야심차게 창설한 검은여우 용병기사단이 전멸했고, 검은여우 용병대는 대패했다. 대장 미겔은 겨우 목숨만 살아 도망치듯 후퇴했다.

그들의 전력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단순히 용병대의 패배라고 치부하기엔 그 파급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패배로 인해 테누타 왕국 쪽에 참전한 무수한 용병들과 병사들의 사기가 무참히 꺾인 것이다.

전쟁은 기세 싸움이다.

그런데 그 기세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 * *

저벅 저벅 저벅.

마현은 홀로 트로켄 진영 본진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인파들 사이에 길이 만들어졌지만 승전에 기뻐하며 내지르는 환호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함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강함을 보면 사람들은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공포와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 사람들의 표정이 바로 그러했다.

마현은 그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힘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전장에서 본신의 내력인 흑마법을 드러냈다.

여섯 마탑의 세뇌로 인해 흑마법에 대한 공포가 하르센 대륙에는 과도하게 퍼져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불안감과 공포에 물든 눈으로 여유롭게 적진에서 홀로 걸어온 마현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카칸 경!”

사람이 예쁘게 보이면 버선발로 나와 환대를 한다고 했던가?

트로켄 왕국의 총사령관 버드런트 공작이 딱 그 모습이었다.

도저히 공작의 체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들갑스럽게 뛰어와 마현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 뒤로 총사령부 소속 지휘관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일반 병사들나 용병들과는 다르게 환한 얼굴로 마현을 환대했다.

그런 그들의 조금 뒤쪽에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서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몇몇 지휘관들은 고개를 숙여 보이기까지 했다.

“자, 자! 일단 안으로 듭시다!”

버드런트 공작은 손수 길을 열어 마현을 중앙지휘실로 안내했다.

중앙지휘실 중앙에 놓여 있는 긴 탁자의 상석에 앉은 버드런트 공작의 얼굴을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그 맞은편에 마현이 앉았고, 양옆으로 케이슨과 왕귀진이 자리했다.

“국왕 전하를 대신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오.”

“감사의 말은 이르오.”

“……?”

고개를 숙이다 말고 버드런트 공작은 의문이 담긴 눈으로 마현을 쳐다보았다.

“그 말은 승전 후에 듣겠소.”

“스, 승전?”

“보름.”

“……?”

“보름 안에 전쟁을 종식시킬 생각이오.”

마현은 앞에 놓여 있는 지휘봉을 지도 위 어느 지점에 올려놓았다. 그곳은 지금 자신들이 앉아 있는 전선이었다. 마현은 아무 말 없이 지휘봉으로 길게 선을 그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현의 지휘봉이 어느 한 지점에서 딱 멈췄다.

“헉!”

버드런트 공작은 너무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노, 농담…….”

놀라기는 지휘관들도 매한가지였다.

왜냐하면 마현의 지휘봉이 딱 멈춰선 곳은 바로 테누타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수도를 점령해야만 트로켄 왕국이 살 수 있소. 테누타 왕실을 볼모로 잡고 불가침 조약을 반드시 채결해야 하오. 왜냐하면 전쟁 후 우리는 없을 테니까.”

마현의 말에 버드런트 공작과 지휘관들은 그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머지 회의는 저녁에 했으면 하오.”

마현은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명령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누구도 마현의 행동을 탓하지 않았다.

“그럼, 저녁에 뵙겠소.”

마현은 케이슨과 왕귀진을 대동하고 중앙지휘실을 빠져나갔다.

* * *

“휴우.”

테누타 왕국 총사령관인 페로스 공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정을 낼 기력마저 상실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총사령관님.”

소드마스터이자 중앙 전선 총기사단장을 맡은 알베르 후작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자네가 죄송할 것이 뭐가 있다고.”

페로스 공작은 알베르 후작을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조치를 취해야 할 듯싶습니다.”

“흠……. 일단 오늘 저녁은 푸짐하게 지급하게. 목만 축일 수 있을 정도로 약간의 술도 지급하고.”

페로스 공작은 고개를 돌려 부관에게 그리 명했다.

병사들을 달래는데 먹을 것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물론 단순히 먹을 것만으로 땅에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기가 더 내려가는 것은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하겠습니다.”

“네이폴 마탑주는 어떤가?”

페로스 공작은 고개를 돌려 알베르 후작에게 물었다.

“좋지 않습니다.”

“폐인이 되었겠구먼.”

페로스 공작은 왕실 소속 종군 마법사를 통해 네이폴의 상태를 전해 들었지만 알베르 후작의 대답으로 보아 짐작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모양이었다.

“검은여우 용병대는? 자네 얼굴을 보니 물으나 마나겠군.”

페로스 공작의 말에 알베르 후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문제는 의문의 흑마법사인데…….”

페로스 공작은 단숨에 마법병단을 죽음으로 몰고 간 카칸의 섬뜩한 표정이 떠올렸다.

“흠……!”

페로스 공작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제가 막아보겠습니다, 총사령관님.”

“자네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7서클 마스터인 마탑주 네이폴마저 꺾은 흑마법사였다.

제아무리 알베르 후작이 소드마스터일지라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와 살바토레 백작, 그리고 쿳시 백작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드마스터 셋이라…….”

페로스 공작은 고개를 돌려 나이 든 두 백작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전장에서 태어나 전장에서 늙은 기사들이었다.

전장에서 한평생을 보낸 만큼 싸움에 임하면 검술과 전략 면에서 모두 노련할 터였다. 거기에 소드마스터이니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도 가지고 있다.

“그저 명을 받들 뿐입니다.”

두 기사는 결연한 얼굴로 에둘러 출전할 뜻을 밝혔다.

“다만 우리 셋만으로는 힘들 것입니다.”

“어떤 지원을 바라는가?”

“흑마법사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목을 가려줄 마법사들이 필요합니다.”

당연한 소리다.

페로스 공작은 고개를 돌려 종군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지금 바로 왕실마법궁에 소식을 넣겠습니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인가?”

페로스 공작은 눈을 감으며 침음했다.

* * *

케이슨 용병기사단에게 배정받은 제법 큰 군막 안으로 마현과 흑풍대가 함께 들어섰다.

군막 안으로 들어온 케이슨은 마현 앞으로 걸어가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시각 이후로, 이 케이슨은 성심을 다해 카칸 님을 주군으로 모실 것을 맹세합니다.”

케이슨의 엄숙한 충성 서약에 마현은 말없이 그의 등을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케이슨 용병기사단원들은 조금 당황한 듯했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케이슨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인지라 쉽사리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감성은 이성에 묻혔다.

“저 아이작, 카칸 님을 평생 주군으로 섬기지는 못하나 함께하는 그날까지 이 목숨을 맡기겠습니다.”

케이슨 다음은 아이작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케이슨과 달리 완전한 충성 서약은 하지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진심이 묻어나왔다.

이어 하나둘씩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이든, 주……, 주……. 크흠. 주군께 충성을 맹세……. 갑자기 하려니 입이 안 떨어지는군. 어찌되었든 충성하지. 뭐 말도 최대한 빨리 고치겠…….”

제이든이 어색한지 연신 말을 더듬었다.

“제이든.”

당연히 케이슨이 고개를 살짝 돌려 눈을 부라리며 제이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아, 알아요. 근데 마음먹는다고 바로 입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변명을 주절거리는 제이든의 모습에 케이슨의 미간에 골이 깊게 파였다.

“주군, 잘 부탁드립니다.”

제이든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재빨리 마현을 향해 몸을 깊게 숙였다.

‘훗.’

마현은 피식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엄연히 말해 기사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충성 서약 역시 중구난방이었지만 그들의 진심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 마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고자 하는 길에 겨우 한 걸음 뗀 기분이었다.

이제야 함께하고 싶은 이들과 같은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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