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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15화 (315/351)

# 315

14화

후우우웅!

그 순간 살을 베는 듯한 마나의 진동이 느껴졌다.

선두에서 가장 느긋하게 걷고 있던 마현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해 월코트 자작을 비롯해 기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누구냐?”

성곽 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만큼 그들은 켄타키 성의 외성 정문에 가깝게 접근했다는 뜻이다.

성곽 위를 올려다보니 기사로 보이는 자가 잔뜩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파괴의 힘을 마나에 담아 지옥의 겁화를 땅거죽 위에 씌우리라, 시트 오브 플레임즈(Sheet of flames)!”

콰르르르르!

마현의 몸 바로 앞에서 뜨거운 화염이 솟아올랐다. 그 화염은 관도를 따라 일직선으로 내달려 두터운 정문을 집어삼켰다.

“저, 적이다!”

성곽 위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불덩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리라, 파이어 버스트 리터레이트!”

쿵 쿵 쿵 쿵 쿵!

마현의 양손에서 다섯 개의 바위만한 불덩이가 쏘아져나갔다. 두터운 정문은 삽시간에 불덩이에 완전히 휩싸였다.

끼이익, 끼익!

그러자 정문은 삐거덕거리며 신음을 토해냈다.

제아무리 요새의 두터운 정문이라고 해도 모든 부분을 철로 만들 수는 없다.

또한 해자 위로 가교처럼 펴고 접어야 할 정문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당연히 불과 물에 강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나무도 함께 쓰일 수밖에 없었다.

마현이 노린 것은 바로 그 나무였다.

인위적인 불길이라면 충분히 버틸 테지만 마법으로 인해 만들어진 불은 다르다. 어지간한 잡철들마저 녹여버릴 정도인데 제아무리 불에 강한 나무를 썼다 해도 나무는 나무였다.

“쏴라!”

그 순간 성곽 위에서 백여 명의 병사들이 활로 무장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마현은 그 순간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허공답보를 하듯 허공을 밟고 성곽보다 더 높이 뛰어올라갔다.

“헉!”

그 모습에 몇몇 병사들이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윈드 커터 리터레이트!”

윈드 커터 마법은 하위 서클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보다 확실한 마법은 없었다.

하위 서클이기에 마법 시전에 소요되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더욱이 병사들은 일반 궁병인지라 철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모두들 가볍고 활동이 편한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 경갑옷이라면 윈드 커터 마법으로도 충분했다.

쐐애애애액!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은 가차 없이 몇몇 궁병들의 몸을 베어버렸다.

푸학!

성곽 위에 피가 뿌려졌다.

“으아악!”

“크아악!”

피가 뿌려진 곳 위에 비명이 뒤덮였다.

“위, 위다! 위를 향해 쏴라!”

안색이 창백해진 기사는 검을 뽑아 마현을 향해 가리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궁병들이 마현을 향해 활을 겨누며 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마현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기사 바로 앞이었다.

“헉!”

기사는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재빨리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마현의 손속이 더 빨랐다.

팡!

마현의 장심이 기사의 배를 강타했다.

“쿨럭!”

기사는 피를 뿜어대며 뻣뻣한 고목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

“히익!”

“사, 사람 살려!”

단 한 수에 기사가 죽자 그 근처에 있던 궁병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몇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곧 무기를 팽개치고 살기 위해 죽어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필드 쇼크!”

마현이 다리를 크게 내딛자 성곽 위 장판석과 바위들이 지진에 흔들리는 것처럼 크게 요동쳤다. 서로 앞을 다투며 도망가기 위해 몸부림치던 궁병들은 그로 인해 마치 도미노처럼 우르르 넘어졌다.

“앞에서 가로막지 마!”

“비켜, 비키란 말이다!”

넘어져 뒤엉킨 상태에서 먼저 살겠다고 동료들의 몸을 밟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바람에 성곽 위는 비명과 욕설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땡땡땡땡땡―

그사이 다른 성곽 위에서는 적의 기습을 알리는 종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콰과광― 콰르르!

정문이 무너지며 흑풍대가 성 안으로 들어섰다.

“흑풍대주.”

마현은 정문으로 들어선 왕귀진을 불렀다.

“예, 주군.”

“무의미한 살상은 가급적 피한다. 목표는…… 내성에 위치한 영주관과 켄타키 후작이다.”

“명!”

나름 군사도시라서 그런지 켄타키 성의 대처는 생각보다 빨랐다. 상당히 떨어진 내성 쪽 문이 열리며 상당수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멸시켜라!”

마현은 외성 성곽에서 내성 쪽에서 튀어나온 근 천여 명의 중갑보병들과 완전 무장한 기사단 1개 부대를 보며 냉혹하게 명을 내렸다.

마현의 명에 흑풍대는 빛살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는 외성 정문에서 내성으로 향하는 넓은 대로 중앙에 일(一)자로 길게 섰다.

후우우우―

흑풍대의 몸에서 짙은 어둠 같은 묵빛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 마기는 땅속으로 스며들었고, 동시에 흑풍대원들의 눈에서 검은 마기가 폭사되었다.

“적이다, 쳐라!”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듯한 자가 검을 뽑아들며 소리치자 긴 창을 든 중갑보병들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그 속도에 맞춰 기사단도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척척척척척척!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흑풍대가 서 있는 대로 위를 무겁게 내리누르며 다가올 때였다.

“일어나라, 나의 분신들이여!”

왕귀진을 시작으로 흑풍대원들의 입에서는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와 검은 마기와 공명했다.

푸학!

잘 다져진 대로의 바닥 곳곳이 터지며 갈라졌다.

그리고 바닥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크흐흐흐흐!

―크크크크크!

음산한 마성이 순식간에 병사들과 기사단을 에워쌌다.

푸히이잉!

그 마성에 말들이 놀라 날뛰기 시작했다.

“워! 워!”

기사들은 말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전혀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으악!”

결국 미쳐 날뛰는 말들의 말발굽 아래 병사들이 짓밟혀 죽거나 다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땅을 뚫고 나온 검은 그림자, 다크나이트들이 일제히 마기를 내뿜으며 병사들 사이로 뛰어든 것이다.

“크아악!”

“마, 마물들이다! 사람 살려!”

“살려줘!”

병사들의 대열이 무너진 건 한순간이었다.

다크나이트들의 무력은 엄청났다.

나크나이트의 전력은 하나하나가 소드마스터에 육박하거나, 몇몇 다크나이트들은 소드마스터를 뛰어넘는 무력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다크나이트들을 귀속시키기 위해 흑풍대는 대륙의 모든 전장을 돌아다닌 것이다. 소드마스터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최강의 병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다크나이트들이 자그마치 일백 기다.

애당초 일천 명의 중갑보병과 고작 서른 안팎의 기사들이 당해낼 수 있는 무력이 아니었다.

“이, 이건 싸움이 아니야.”

월코트 자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비록 아군의 힘이지만 그 무시무시한 힘에 공포를 느낀 탓이다.

넋 나간 채 중얼거리긴 했지만 월코트 자작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싸움은 싸움이라고 말하기에도 무색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월코트 자작 뒤에 서 있는 아홉 기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검은 다크나이트와 그 주변에 튀는 선명한 붉은색의 피.

그 학살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눈동자는 짙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몇 분.

고작 몇 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마차 몇 대가 나란히 지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대로 위에 깔려 있는 건 오직 붉은 피뿐이었다.

“월코트 자작.”

마현의 목소리에 월코트 자작은 깜짝 놀라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한 폭의 지옥도에 몸서리치느라 마현이 가까이 다가선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대 차례다.”

큰 충격으로 인해 머리가 혼미했지만 월코트 자작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지금쯤 내성 영주관에서 벌벌 떨고 있을 켄타키 후작에게서 항복을 얻어내는 것은 마현이나 흑풍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서야 재빨리 정신을 차리는 월코트 자작을 보며 마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은 뒤 먼저 걸음을 내딛었다.

피로 만들어진 붉은 융단을 지나 마현과 흑풍대, 그리고 월코트 기사단은 내성으로 들어서는 정문 앞에 섰다.

내성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소규모의 기사단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마현은 외성의 정문을 부쉈던 것처럼 요란하게 내성 문을 부수지는 않았다.

그는 다만 아직까지 가지고 다니던 롱소드를 뽑아 들고 내성 정문을 단숨에 반으로 잘라버렸다.

우지끈― 쿠당탕탕!

내성 정문은 반으로 갈라지며 힘없이 무너졌다.

척 척 척!

생각보다 적은 수의 기사들이 마현과 흑풍대, 월코트 기사단을 막아섰다. 동시에 후문 쪽으로 빠르게 멀어지는 몇몇 기운들이 감지되었다.

“훗!”

마현은 실소를 터트렸다.

“후문인가?”

월코트 자작은 내심 예상했다는 듯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귀족으로 그런 행위를 두고 비난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어쨌거나 귀족들은 넓은 영토보다, 그 영토를 지키는 요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목숨이었다.

“월코트 자작.”

마현은 월코트 자작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흑풍대는 마무리하라.”

마현은 흑풍대에게 명을 내리고는 단숨에 내성 후문 쪽으로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 순간이동했다.

* * *

“문을 열어라! 어서 문을 열란 말이다!”

한 노장의 기사가 말을 달리며 후문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기사 뒤로 다섯 명의 기사와 튼튼하게 만들어진 투박한 마차가 후문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마현과 월코트 자작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일행들보다 앞서 달리는 노장의 기사 바로 앞이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도록.”

마현은 월코트 자작의 몸을 뒤로 밀며 롱소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마현의 그림자가 노장의 기사를 덮쳤다.

오로지 후문에 집중하고 있었던 까닭인지 노장 기사의 대처는 느렸다.

“헉!”

헛바람을 다 들이마시기도 전에 그는 머리 정수리부터 아랫배까지 이어지는 부위에 화상을 입은 듯 뜨거움을 느꼈다. 그게 그가 살아서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푸학!

노장의 몸과 그가 타고 있던 군마가 반으로 갈라졌고 허공으로 뿌려지는 핏물 사이로 마현의 신형이 튀어나왔다.

“저, 적이다!”

노장의 기사 뒤로 마차를 호위하던 한 기사가 급히 말을 세우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보다 마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콰과광!

마차 선두에서 호위하고 있는 기사의 목이 날아간 것과 거의 동시에 마차 뒤에서 네 개의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눈 몇 번 깜빡일 짧은 시간 동안 여섯 명의 기사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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