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
7화
핑 핑 핑!
흑도의 손에서 무형의 기운이 쏘아져나가 몬텔레의 몸 몇 곳을 때렸다.
“끄으……!”
점혈을 한 것이다.
핑!
거기에 마지막으로 아혈마저 짚어 목소리마저 막아버렸다.
흑도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진 몬텔레에게 손을 내밀었고 우악스럽게 머리카락을 움켜잡으며 강제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몬텔레의 목을 돌려 마법사들과 용병들이 싸우는 곳을 강제로 쳐다보게 만들었다.
“잘 봐, 죽어나가는 쥐새끼가 누군지.”
흑도는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몬텔레를 향해 나직하게 말하고는 허리를 들어올렸다.
“으랏차!”
흑도는 허공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런 흑도의 신형은 허공에서 마치 순간 이동 마법을 펼친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으아아!”
“아이구야!”
몬텔레가 흑도의 신형이 사라졌다고 느낄 무렵, 마법사들과 용병들이 뒤엉킨 싸움판에서 조금은 이상한 비명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허걱!”
“아니고, 나 살려!”
그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용병들의 몸이 솟구쳤다. 동시다발적으로 허공으로 튕겨 올라간 용병들은 부서진 모래 감옥을 등지고 서 있는 아그논 앞으로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치적거린다! 나오너라, 이놈들아! 으하하하하!”
흑도의 걸걸한 웃음이 중간에 한 번 터져 나왔고, 연이어 용병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이 종잇장처럼 날아와 아그논 앞으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렇게 눈 몇 번 깜짝할 사이에 살아 있는 용병들은 모두 아그논 앞으로 짐짝처럼 쌓였다.
짐짝 취급을 받은 용병들이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 채 그저 눈만 끔뻑거리고 있을 때였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이 잡놈들아!”
마법사들의 머리 위에서 흑도의 짙은 살기가 담긴 일갈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타, 탑주님!”
마법사들은 그제야 무력하게 무릅을 꿇고 있는 몬텔레의 몰골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스승님!”
티모시를 비롯해 몇몇 마법사들이 몬텔레를 불안한 목소리로 불렀다.
“모두 여기서 살아 나갈 생각은 접어라!”
흑도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장난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과거 무림을 질타하던 폭군, 광풍도마 사극유의 진면목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마, 마법사?”
플라이 마법과도 같은 허공답보에 듀락, 대지의 탑 마법사들은 순간 흑도를 마법사로 착각하고 말았다.
“분명 흑마법사일 것이다! 대지의 빛을 뿌려라!”
티모시는 조금 전 몬텔레가 그랬던 것처럼 같은 명령을 내렸다.
후우우웅!
대지의 빛이 사방에 가득 채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오판이었다.
흑도는 무인이다.
“갈!”
그럼에도 마치 진흙 바닥을 나뒹구는 것처럼 기분 나쁜 질척거림이 온몸에 느껴지자 흑도는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일갈은 내질렀다.
후아아악!
그러자 사방을 뒤덮고 있던 대지의 빛이 흑도를 중심으로 불이 꺼지듯 사그라졌다.
“헉!”
마법사들은 소리만으로 대지의 빛을 담고 있는 마나를 밀어내 버리는 흑도의 모습에 기겁성을 삼켜야 했다.
“제자들은 대지의 빛을 뿌리고, 수석, 차석 마법사들은 저자를 공격하라! 어서!”
티모시는 마나를 다급히 끌어올리며 넋을 잃고 망연히 서 있는 마법사들에게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흑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흑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흑도가 다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곳은 티모시 바로 앞이었다.
“거추장스런 녀석이구나!”
흑도는 도를 번쩍 들어올렸다.
티모시는 대지, 듀락의 부탑주다.
단지 몬텔레의 제자라는 이유로 부탑주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그는 엄연히 5서클 마스터의 대마법사였다.
“샌드 배리어(Sand barrier)!”
후그그극!
티모시 앞으로 모래 방벽이 만들어졌다.
“흥!”
몬텔레 탑주도 어찌하지 못한 흑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부탑주 티모시는 흑도에게 있어 그저 힘이 조금 센 아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또한 샌드 배리어가 강력한 방어 마법이기는 하지만 흑도가 상대했던 적의 검막은 그보다 더 강한 것이다.
촤아아악!
흑도는 도에 강기를 담아 모래 방벽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종잇장처럼 찢어진 모래 방벽 뒤로 사색이 된 티모시의 얼굴이 드러났다.
흑도는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이미 갈라진 모래 방벽을 다시 가르며 티모시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히, 히익! 블링크!”
티모시는 거리를 벌려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에서 몸을 내뺐다.
그가 흑도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내고 흑도에게 마나를 집중하려 할 때였다.
티모시의 등 뒤로 흑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섬뜩한 소리가 티모시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쿵!
죽음의 고통을 인지할 사이도 없이 티모시의 몸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너, 너!”
“흥!”
흑검은 황당해하는 흑도를 향해 코웃음을 친 후 마법사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흑검이 휘두르는 청아한 반월의 강기는 마법사들의 피를 머금으며 붉은 마기를 드러냈다.
“으아아악!”
그것에 질투심을 느낀 흑도도 마법사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두 마리의 성난 사자가 사슴 떼 속을 누비고 다니는 광경이 연출됐다.
“이, 인간이 아니……!”
그때부터 차마 눈 뜨고는 보지 못할 무자비한 살육이 시작됐다. 그리고 백여 명의 마법사들을 모두 전멸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으어, 으어어어!”
그 참혹한 광경에 아혈을 점혈 당해 말도 할 수 없는 몬텔레가 온몸으로 울부짖었다.
비록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부릅떠진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격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정적.
아그논도, 덩컨도, 바드도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늑대왕 용병대 소속의 용병들은 숨소리조차 죽여야 했다.
그들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상상을 넘어서는 놀라움에 입을 한껏 벌렸으나 목구멍이 그만 막혀버린 것이다.
“악마 같은 놈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잠시 후, 몬텔레는 아혈이 풀리자마자 원독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질렀다.
서걱!
흑창의 창이 그런 몬텔레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런 놈들에게 우리 주군이…….”
흑창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너!”
흑창이 바드를 가리켰다.
“예? 옙!”
바드는 화들짝 놀란 뒤, 재빠르게 흑창 앞으로 뛰어와 부동자세를 취했다.
흑창이 피범벅이 된 시신들 쪽으로 손을 뻗었다.
우웅―
마나가 요동치자 시신들 사이에 떨어져 있던 창 하나가 허공을 날아와 흑창의 손에 쥐어졌다. 흑창은 몬텔레의 수급을 창으로 찍어 들어올렸다.
“마탑 앞에 꽂아라!”
피 냄새를 진득하게 풍김에도 불구하고 흑창의 모습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마기에 취해 붉어져 있었다.
극도의 인내심으로 끓어오르는 피를 애써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 마탑 앞에……. 알겠습니다!”
바드는 크게 복명했다.
* * *
단상 위에 놓인 태사의.
콰직!
그 팔걸이 한 귀퉁이가 이베른의 손아귀에 부서졌다. 그의 눈은 노기를 참지 못하고 연신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 아래 마이런과 카네티가 죽은 듯 바싹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고, 그 옆으로 사크스가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오연히 서 있었다.
“그러니까 두 놈이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다가 다 잡은 고기를 놓쳤다? 지금 이 말이더냐!”
절대자의 위엄에 노성이 더해지자 바닥에 바싹 엎드려 있던 마이런과 카네티의 몸이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쿵!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마이런은 머리를 바닥에 강하게 찧으며 더욱 깊게 몸을 낮췄다.
“한 번만 용서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에 뒤질세라 카네티 역시 몸을 더욱 낮게 숙였다.
그들을 내려다보는 이베른의 눈에서는 살심이 넘실거렸다.
생각 같아서는 둘 모두를 쳐 죽여도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탑이 견고하지 않은 지금은 참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용서는 이번 한 번뿐이다.”
이베른은 살기를 거둬들였다.
“휴우.”
“하아.”
목을 옥죄어오던 살기가 걷히자 둘은 미약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나라.”
이베른의 허락이 떨어지고 바싹 바닥에 엎드려 있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젊은 마법사가 사색이 된 얼굴로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 무슨 경망스러운 짓이냐!”
분위기가 좋지 않은지라 사크스는 나직하게 호통을 쳤다.
“크, 큰일…….”
그러자 마법사는 나직하게 보고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사크스는 이베른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마법사에게로 바투 다가섰다.
“마, 마탑 앞에…….”
“어허!”
여전히 젊은 마법사가 머뭇거리며 말끝을 흐리자 사크스는 나직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마탑 앞에 몬텔레 탑주님의 수급이…….”
“뭐, 뭣이라?”
사크스는 너무 놀라 큰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너무나도 조용한 자리인지라 굳이 사크스의 입을 통하지 않아도 모두 젊은 마법사의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파바방!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이베른의 몸에서 거센 마나가 폭사되었고,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태사의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했나?”
이베른은 폭사된 마나를 염력 마법으로 변화시켜 젊은 마법사를 코앞까지 끌어당겼다.
“컥, 컥!”
마법사는 매서운 기운과 쉽사리 감당할 수 없는 마나의 기세에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몬텔레 탑주……, 크으! 의 수, 수급이……, 커헉! 마탑 앞에…….”
하지만 이베른 앞이다.
숨이 막혀도 이베른의 질문에는 대답해야 한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막혀가는 숨결에도 모든 힘을 쥐어짜내 힘겹게 대답을 토해놓았다.
뿌드득!
하지만 그 대답을 다 늘어놓기도 전에 이베른의 손에서 목뼈가 부러진 젊은 마법사는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축 늘어진 마법사의 시신을 이베른은 바닥으로 팽개치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전시 체제로 들어간다! 지금부터 모든 힘을 동원해 반마탑을 선포한 놈들을 몰살시키겠다!”
“며, 명!”
“명!”
이베른의 얼굴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반쯤 폐허가 되어버린 주점 안.
두 개의 탁자가 놓인 곳에 왕귀진이 누워 있었다.
“흠…….”
그의 완맥을 잡고 있던 흑권이 미약한 신음을 삼켰다.
“수장, 이 녀석 상태 어때?”
흑도의 질문에 아그논을 비롯해 살아남은 늑대왕 용병대 대원들이 하나같이 귀를 쫑긋 세웠다.
“기혈이 뒤틀렸다. 일단 악화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 호법을 서거라.”
흑권은 기절한 왕귀진을 일으켜 앉히고는 그 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왕귀진의 명문혈에 손을 얹었다.
흑권이 무얼 하려는지 알기에 흑도와 흑창, 흑검은 품(品)자 형태로 호법을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