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35화 (335/351)

# 335

9화

저벅 저벅 저벅.

용병들의 거리가 오로지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쿵 쿵 쿵 쿵!

그들이 지나가자 길가에 늘어서 있는 주점에서 투박한 파음이 흘러나왔다. 용병 한 명이 ‘빨리 이 거리에서 사라지라’는 뜻으로 맥주컵을 들어 탁자를 내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쿵쿵 쿵쿵 쿵쿵!

그러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맥주컵을 들어 탁자를 내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용병은 묵묵히 맥주컵을 두들기며 적의에 찬 시선만을 던질 뿐이었다.

“천한 것들. 쯧쯧쯧!”

한 마법사가 그런 용병들을 조롱기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혀를 찼다.

“천한 것들? 이 호로새끼가!”

마법사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목소리를 분명히 들은 용병도 있었다.

팡!

산만한 덩치에 털이 수북한 한 용병이 들고 있던 맥주컵을 그대로 마법사들에게 집어던졌다. 노기는 담겼지만 그냥 가볍게 던진 맥주컵이었기에 마법사들은 손쉽게 피할 수 있었다.

촤작!

하지만 맥주컵에 맥주가 담겨 있다는 것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는지 갈리오의 얼굴과 옷에 맥주가 한가득 뿌려졌다.

“차, 차석 마법사님!”

“이 잡종 놈들이!”

그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던 마법사가 급격히 마나를 일으키며 털북숭이 용병을 향해 아쿠아볼을 만들어 날렸다.

쑤아앙!

느닷없는 기습 공격에 털북숭이 용병의 얼굴에 사색이 짙게 깔렸다.

“마이크! 실드!”

순간 그 옆에 있던 동료 용병 마법사가 재빨리 튀어나왔다.

차장창창창!

하지만 실력의 차이 때문인지 실드는 아쿠아볼을 이기지 못하고 여지없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여파에 휩쓸린 용병 마법사는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졌다.

“샘!”

그러자 털북숭이 용병이 뒤로 날아가는 용병 마법사를 빠르게 안아들었다.

“쿨럭!”

창백한 얼굴을 한 용병 마법사는 기침과 함께 피를 한 모금 울컥 토해냈다.

“이 개새끼들!”

털북숭이 용병은 동료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마탑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자리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용병 마법사가 절박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털북숭이 용병은 마탑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고, 마탑 마법사의 몸에서는 전보다 더 강한 마나의 기파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용병 마법사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결의에 찬 눈빛을 하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파밧!

그러자 그의 몸을 은은히 덮고 있던 푸른 마나가 서서히 검게 물들어갔다.

“흑마법사?”

그 기운을 감지하자 갈리오를 비롯한 마탑의 마법사들의 눈이 일제히 용병 마법사에게 돌아갔다.

“이야압!”

그때 털북숭이 용병의 입에서 거침없는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헉!”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털북숭이 용병의 메이스가 마탑 마법사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마탑 마법사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콰직!

머리를 비켜간 털북숭이 용병의 메이스는 마탑 마법사의 어깨를 완전히 부숴 버렸다.

“으아악!”

마탑 마법사는 그 자리에 쓰러졌고, 곧 부서진 어깨를 움켜잡은 채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휘하 마탑 마법사가 쓰러졌지만 오히려 갈리오의 입에서는 비릿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콰과광!

갈리오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감돌기가 무섭게 그의 손에서는 강력한 마나가 뿜어져나갔다.

“으아아악!”

그것은 용병 마법사는 물론이고 털북숭이 용병도 어디로 피할 틈이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다. 털북숭이 용병은 한순간 화염에 휩싸였고 그대로 절명했다.

“죽여 버리겠다!”

용병 마법사는 거침없이 어둠의 마나를 뿌리며 갈리오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너무도 분명한 서클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벽이었다.

“마신을 섬기며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다! 주신과 빛의 아레스의 이름으로 일벌백계를 하리라!”

갈리오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함으로 포장하며 달려드는 용병 마법사를 향해 차가운 살기를 뿌렸다.

“거센 물살이 승천한다, 워터스파우트(Waterspout)!”

쏴아아아아―

바닥을 뚫고 올라온 거센 물기둥은 용병 마법사뿐만 아니라 어둠의 마나까지 순식간에 휩쓸며 집어삼켰다.

물기둥 안에 갇힌 용병 마법사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파란 물기둥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후후.”

갈리오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마법을 거둬들였다.

5서클의 강력한 마법에 꼬리를 말고 있을 용병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상상일 뿐이고, 바람일 뿐이었다.

거리의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리고 살기가 더 진해졌다.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용병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십? 아니 수백?

주점에 있던 용병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갈리오를 비롯해 마탑 마법사들을 촘촘히 포위했다.

“뭐 하는 짓이냐?”

갈리오는 순간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스르릉!

그것에 답하듯 검이 뽑혔다.

쿵!

철퇴가 탁자 위를, 바닥 위를 찍었다.

“감히 주신과 아레스의 이름을 더럽히려는 것이냐?”

갈리오는 이를 악물고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용병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 위협은 용병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용병들 중에는 신을 믿는 자도 많다. 하지만 안 믿는 자도 많다. 하루하루를 전장에서 살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은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배부른 사람들의 헛소리이기도 했다.

또한 용병으로 떠도는 마법사들의 수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암암리에 흑마법을 익힌 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들과 생을 함께하는 용병들에게 있어 흑마법은 자신을 지켜주는 동료의 힘에 불과할 뿐이었다.

게다가 마탑이 마신으로 치부하는 신들 중에는 군신 아이벤이 있다.

아이벤은 마탑에게는 마신일지 몰라도 용병들에게는 든든한 신 중에 하나가 아닌가.

그런 그들에게 부신 아레스의 이름은 두려움을 주지 못했다.

“마탑의…….”

자신의 위협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용병들을 보며 갈리오가 다시 소리치려 할 때였다.

쐐애애액!

그의 앞을 가로막은 한 용병이 아무런 말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헙!”

갈리오는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최대한 몸을 뒤로 젖혔다.

서걱!

하지만 갈리오가 제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이 있다 해도 그는 마법사다. 그런 그가 기습적으로 휘두른 용병의 검을 피할 재간은 부족했다. 그의 가슴 언저리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차, 차석 마법사님!”

근처에 있던 마법사들도 몸이 굳어 그저 소리로만 애타게 그를 부를 뿐이었다.

쐐애애액!

다시금 갈리오를 향해 날아드는 용병의 칼날.

갈리오는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뒤로 뛰었다.

서걱!

그의 등이 다시 베이며 붉은 피가 튀었다. 하지만 갈리오는 고통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그는 다만 빠르게 뛰어가 어깨가 부러져 바닥에 쓰러져 있던 휘하 마법사를 부둥켜안고 몸을 돌렸다.

푹!

“컥!”

단발마가 터져 나왔다.

그 비명의 주인은 갈리오가 아닌 어깨뼈가 부스러진 휘하 마탑 마법사의 것이었다.

그처럼 필사적으로 움직여 약간의 시간을 만들어낸 갈리오는 캐스팅이 필요 없는 최하급 공격 마법을 용병에게 날려버렸다.

“마나 미사일!”

퍼석!

갈리오의 마나미사일은 얼굴에서 가장 약한 부분, 용병의 눈을 그대로 짓이기며 파고든 후 머리 뒷부분까지 부숴 버렸다. 용병은 뇌수를 쏟으며 그대로 절명했다.

“훅훅!”

갈리오는 온몸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자신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휘하 마탑 제자의 시신을 옆으로 밀어 넘겼다. 그 즉시 용병들의 공격은 없었지만 일단 몸을 방어하기 위해 실드를 몸 주위에 쳤다.

“으아악!”

그사이 휘하의 다른 마탑 마법사 한 명이 용병의 무지막지한 도끼에 머리가 으깨지며 죽어나갔다.

“정신들 똑바로 차리지 못해!”

갈리오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휘하의 마탑 마법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쯧!’

그 멍청한 꼴을 보니 휘하의 마탑 마법사는 살아남기 틀린 듯싶었다.

‘나 혼자만이라도 살아야 한다.’

갈리오는 품에서 작은 원통 하나를 꺼내 하늘을 향해 치켜세웠다. 그의 마나가 원통 안으로 스며들자 폭죽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퍼벙! 펑펑펑펑!

위급을 알리는 폭죽이다.

‘10분! 10분만 견디면 된다!’

그 시간도 넉넉히 잡아서다.

갈리오는 실드에 온 마나와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몸을 웅크렸다.

마치 딱딱한 등껍질 안에 거북이가 몸을 숨기듯.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용병들 대부분이 우악스러운 검사들이지만 용병들 중엔 소수의 마법사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법.

“마나 동결 마법을 펼칩시다!”

2진처럼 후미에 물러서 있던 용병 마법사들 중 하나가 외쳤다.

비록 저서클의 마법사들이지만 힘을 합친다면 작은 거리 하나쯤은 마나를 동결시킬 수 있었다.

그 마음은 빠르게 하나가 되었고, 둥글게 서 있던 마법사들을 중심으로 주변의 마나가 마치 호수의 물이 얼듯이 동결되어갔다.

지이잉!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

갈리오는 동결되는 주변의 마나를 느끼며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마나 동결 마법을 힘으로 깨트리고 용병 마법사들을 쳐 죽이고 싶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었다. 물론 갈리오의 능력이라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검을 들이밀고 있는 용병들 때문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었다.

마나 동결 마법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실드 마법을 풀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무리 짧다 해도 그사이에 용병들의 검이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재빨리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야 하는데 이미 주변은 마나가 동결된 터라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쫘자자작!

결국 갈리오 지척까지 파고든 마나 동결 마법은 그가 펼친 실드까지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갔다.

“실드를 부수시오!”

한 용병 마법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말에 용병들은 얼음이 언 듯 반투명하게 결빙되어 가는 실드 하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급 마법사들의 마나 동결 마법만으로 갈리오의 실드를 부숴 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부서진 실드 마법이 복원되지 않게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오시오! 내가 부수리다!”

거구의 용병들이 하나둘 나섰다.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는 검 종류가 아닌 거대한 도끼나 철퇴 같은 타격 무기들이었다.

“으랏차!”

마치 벌목이라도 하려는 듯 앞으로 나선 용병들은 기합을 지르며 무기를 힘껏 들어 올려 실드 하부를 강하게 내려쳤다.

쿵!

실드가 강하게 울렸다.

하지만 마탑에서 나름 한 실력을 발휘하는 갈리오의 경지는 5서클 중급. 비록 마나 동결 마법에 실드가 훼손되었지만 여전히 견고하기만 했다.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퉤!”

오기가 발동했는지 거구의 용병들은 손바닥에 침을 뱉어가며 병장기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쿵 쿵 쿵 쿵!

그리고는 실드 하단을 마구 두들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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