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39화 (339/351)

# 339

13화

용병 길드 본부 앞 번화가에서 용병들의 거리로 이어진 대로.

그곳에 사크스를 비롯해 카뮈와 카네티가 각기 마탑의 마법사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이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만 척후의 보고에 의하면 이곳으로 향하는 도중 곳곳에서 몇몇 용병대가 합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깟 용병대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십좌왕이라고 일컬어지는 놈들이지요. 그리고 케이슨 용병기사단 역시 매한가지구요.”

“그럴 줄 알고 마탑 무고에 있는 공격 마법 스크롤을 준비했습니다.”

“마법 스크롤을?”

사크스의 미간에 골이 깊게 파였다.

“일단 마법 스크롤을 이용해 용병들의 거리로 들어서는 대로에 트랩을 깔아 1차적 피해를 주는 동시에 안전거리를 만든다면 놈들을 괴멸시킬 승산이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제아무리 자신과 두 탑주, 그리고 삼백여 명의 마탑 마법사들이 나섰다고 해도 10여 명의 소드마스터들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때마침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흑마법사 밀러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반드시 전멸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무단으로 마법 스크롤을 가져온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카뮈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만약 카뮈의 작전대로만 이뤄진다면 미미한 피해조차 없지 않고 완벽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후에 마탑주 자리에 오르실 때를 대비하여 이 정도 무용담 하나쯤은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탑주란 말에 사크스의 얼굴이 봄날의 바람처럼 부드럽게 풀어졌다.

“마법 스크롤을 무단으로 방출한 죄는 제가 나중에 달게 받겠습니다.”

“큼!”

하지만 드러내놓고 마음에 들어 하는 표정을 지을 수는 없는지라 사크스는 멋쩍은 기침을 내뱉었다.

비록 이베른에게 사전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반마탑의 상징인 십좌왕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처리하는 일의 전권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을 성공적으로 괴멸시킨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마법 스크롤이야 대장장이, 샤토 탑을 쥐어짜면 얼마든지 다시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

‘저, 저놈이?’

그 모습에 카네티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카뮈의 모습에 이제껏 자신이 놓쳤던, 아니 마이런까지 놓쳤던 사실이 떠올랐다.

사크스는 마탑의 공공연한 유일한 후계자.

즉, 차기 마탑주라는 사실이다.

이베른이 아직까진 정정하지만 늙은 그가 언제까지 마탑주 자리를 지키고 있겠는가. 정확히 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머지않아 마탑은 사크스의 것이 된다.

카뮈는 이베른이 아닌 사크스에게 자신의 미래를 건 것이다.

그런 점이 사크스도 싫지 않은 모양인지 카뮈를 대하는 태도에서 상당한 호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카네티 탑주.”

카네티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사크스가 그를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부마탑주님.”

“카뮈 탑주를 도와 대로에 마법 트랩을 까세요.”

카네티의 눈썹이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아닙니다, 부마탑주님. 이미 구상한 트랩이 있으니 저희 탑이면 족합니다.”

“아, 그러십니까?”

“예, 부마탑주님.”

“흠……, 그럼 카네티 탑주는 바다, 샤메일 탑의 제자들을 이끌고 골목골목에 빈틈없이 포위망을 짜세요.”

카뮈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카네티에게 지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모든 작전이 카뮈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일이 성공한다면 모든 공은 카뮈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즉, 그 말은 자신은 이 일에 들러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크스의 명에 반기를 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카네티는 입술을 깨물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사크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하기 때문이다.

카네티는 카뮈의 득의에 찬 미소를 보며 소매 속에서 손을 억세게 말아 쥐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카네티는 애써 분노를 삼키며 몸을 돌렸다.

“뭣들 하나? 당장 이 주변을 완벽히 포위한다.”

“명!”

“명!”

카네티의 명에 바다, 샤메일 탑의 마법사들이 빠르게 대로에 인접한 골목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조화, 스플린 탑의 제자들은 여러 장의 마법 스크롤을 꺼내 대로 중앙에 마법진과 함께 트랩을 바삐 깔기 시작했다.

* * *

“이제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습니다, 마탑주님.”

케이디의 보고에 게오르게의 눈이 질끈 감겼다.

죽은 줄 알았던 카칸의 등장.

그리고 마탑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분명 카칸이었습니다.”

케이디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흠…….”

게오르게는 고심에 찬 침음성을 삼켰다.

자신의 결정은 수백에 이르는 대장장이, 샤토 마탑의 마법사들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그렇기에 게오르게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어두운 미래보다야 불확실하지만 밝은 미래가 더 좋겠지?”

게오르게의 말에 케이디의 얼굴이 굳어졌다.

“불만인가?”

게오르게의 질문에 케이디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 미래를 위해 희생당한 제자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그렇습니다.”

“그렇군.”

케이디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오르게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3서클 이상의 모든 제자들을 마법 스크롤로 무장시켜 집결시키겠습니다.”

“우리는 사크스와 조화의 스플린, 바다의 샤메일, 그들의 등을 친다. 적어도 그 정도 선물은 들고 가야겠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케이디, 그대가 직접 맡아.”

“……?”

“나는 카칸을 만나러 가겠네.”

게오르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하겠습니다.”

게오르게는 케이디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눈을 직시했다.

* * *

용병들의 거리로 향하는 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지체됐다. 흑풍대를 따르는 몇몇 소수 용병대원들이 계속 합류해 왔기 때문이다.

왕귀진이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서둘러라!”

흑사신과 밀러의 힘을 믿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마탑이다 보니 안심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마차 몇 대는 한꺼번에 오갈 수 있는 대로에서 십(十)자 형태로 갈라지며 폭이 조금씩 좁아지는 길. 그곳이 바로 용병들의 거리로 들어서는 초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라면 인파로 북적거려야 할 용병들의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유령마을을 보는 듯 거리에는 적막감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필두로 흑풍대와 그를 따르는 이백여 명의 용병대원들이 용병들의 거리로 들어섰다.

‘이상하다!’

아무리 용병들의 거리에서 사단이 벌어졌다 해도 이렇게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기척이 없다는 게 의구심을 자아냈다.

왕귀진은 서둘러 앞으로 나가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수신호에 이백여 명의 용병들이 일사분란하게 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케이슨과 아이작이 왕귀진 곁으로 다가왔다.

“이상하오. 아무리 마탑 마법사들의 횡포에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꽁꽁 숨었다고는 하나 이렇게까지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심각한 위기 상황이 있다는 것이오.”

기감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황량한 모래사막 한가운데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왕귀진은 마현이 자신의 몸에 새겨놓은 마법 능력 중 하나인 투시 마법을 일으켰다. 묵빛 마나가 문신으로 새겨진 마법진을 거쳐 그의 눈으로 스며들었다.

투시 마법이 펼쳐지자 선명한 건물들이 마치 흑백처럼 바뀌었다. 곧 사물의 형태가 굵은 선처럼 변하며 점점 투명해져갔다.

‘이런 찢어죽일 놈들!’

왕귀진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건물 곳곳에 죽어 있는 죄 없는 평민들과 용병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대로 주변 건물들 안에 살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분노하기는 다른 흑풍대원들도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여기서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왕귀진은 솟구치는 살기를 애써 가라앉히며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런 왕귀진의 눈에 골목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마탑 마법사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하이드 마나 포스 마법인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왕귀진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나갔다. 마현을 통해 얻은 마법 지식들 중 하나인 하이드 마나 포스 마법이 떠올랐다. 마법사들은 그 마법을 이용해 기척을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상황판단을 끝내고 막 투시 마법을 거두려는 왕귀진의 어깨를 검세옥이 살짝 건드렸다.

왕귀진이 검세옥을 바라보자 그는 자신들이 서 있는 곳에서 대략 10미터가량 떨어진 대로 바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왕귀진을 비롯해 흑풍대가 그 대로 아래를 좀 더 유심히 살폈다. 그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바닥에 묻혀 있는 마법 스크롤 수십 장이 눈에 들어왔다.

규칙적으로 깔려 있는 것을 보면 그 스크롤을 이용해 마법진을 설치해 놓은 것 같았다.

현재로선 밀러가 없기에 그것이 어떤 마법진인지 확인하는 건 어려웠다. 함께 온 용병대원들 중에도 용병 마법사들이 있긴 하지만 저서클인 그들의 능력으로는 그 마법진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슨 일이오?”

왕귀진은 손짓으로 각 용병대장들을 불렀다.

『바닥에 함정을 깔아놓은 것 같소.』

그리고는 그들에게 전음으로 자신이 본 사실들을 전했다.

왕귀진의 전음에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것도 모르고 이 길에 들어섰다면 아마 전멸을 면치 못했을 거라는 사실에 등이 서늘해질 정도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린 것이다.

『각 용병대장들은 대원들을 뒤로 물리도록. 그리고 곧 벌어질 전투에 대비하라.』

왕귀진의 명에 용병대장들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 각 대원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마법 트랩은 나와 부대주가 맡는다.』

왕귀진의 명에 흑풍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풍대는 좌측,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우측을 부탁하오.』

왕귀진은 우측 건물과 골목길 사이사이에 기척을 감추고 숨어 있는 마탑 마법사들의 위치를 소상하게 전달했다.

『작전 시작은 우리가 트랩을 무너트리는 바로 그 순간이오.』

왕귀진의 말에 케이슨과 아이작은 긴장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르릉!

모든 준비가 끝나자 왕귀진은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서걱 서거걱!

철용은 왕귀진을 따라 롱소드를 이용해 대로 위에 깔린 장판석을 잘랐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십여 개의 자그만 암기를 양손에 나눠 들었다.

둘은 눈빛을 교환한 후 트랩이 설치된 대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파밧!

왕귀진은 우측, 철용은 좌측 건물의 벽을 발로 밟으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투시 마법을 이용해 바닥에 감춰진 마법 스크롤을 향해 강기를 담아 암기를 내쏘았다.

핑―

십여 개의 암기가 빛살처럼 빠르게 대로 위에 떨어졌다.

파박 파바박!

그로 인해 대로에 깔린 장판석들이 부서지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곧 대로에서 용암이 분출되듯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광!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폭발이 일어난 대로 주위에 불로 만들어진 거대한 장벽들이 솟아올랐고, 칼날보다 더 예리한 모래창이 바닥에서 촘촘히 솟아올랐다. 거기다가 바람으로 만들어진 칼날들이 그 주변을 휘몰아치며 지나갔다.

“큭!”

그 기세가 얼마나 엄청난지 허공에 떠 있던 왕귀진과 철용마저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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