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44화 (344/351)

# 344

18화

“으아아아!”

이베른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이윽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팔들의 주인.

흉측한 형상의 마물들이 이베른을 꽁꽁 끌어안으며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러자 이베른의 몸은 그들의 손에 이끌려, 마치 늪에 서서히 빠지는 것처럼 땅 아래로 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놔라, 놔라! 놓지 못할까!”

펑 펑 퍼버벙!

이베른은 역류되는 마나를 쥐어짜 흉측한 마물들을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꾸웩!

그 마법에 몇몇 마물들이 나가떨어졌다.

―크허어엉!

그러자 더욱 흉포한 울부짖음이 검은 빛 아래에서 터져 나왔다.

후악―

검은 물체가 역오망성에서 이베른의 머리 위로 튀어 올라왔다.

―크하아아앙!

다시금 터트린 흉성 가득한 포효.

검은 피부에 붉은 눈동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거대한 짐승. 그 짐승의 머리는 세 개였다.

바로 지옥의 문을 지키는 켈베로스가 나타난 것이다.

―카르르르!

허공에서 나직하게 울음을 토한 켈베로스는 단숨에 이베른의 어깨와 목, 그리고 한 팔을 물어버렸다.

“으아아아악!”

이베른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베른의 몸은 켈베로스의 힘에 이끌려 땅 아래로 푹 떨어졌다.

번쩍― 쩌적!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역오망성은 불씨가 꺼지듯 훅 사라졌다.

“꺼억!”

그와 동시에 이베른의 맞은편에 서 있던 마현이 격한 숨을 터트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위를 올려다보며 거친 숨을 내쉬는 마현의 눈에 하늘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갈라진 하늘의 틈에서 검은 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 빛은 마현의 몸을 집어삼켰다.

* * *

하늘도 없고, 땅도 없다.

하물며 색도 없다.

마현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장소.

그곳은 군신 아이벤을 만났던 곳과 흡사했다.

하지만 분명 다른 곳이라는 것을 마현은 알 수 있었다. 같은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곳.

마현의 앞에 검은 빛 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빛은 서서히 커지며 사람 모양의 형체로 변했다. 하지만 눈도 없고, 코도 없었다. 마치 실루엣처럼 형상만 가진 순수한 검은빛 그 자체였다. 마현은 그 빛에서 느껴지는 위엄만으로 그것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어둠의 신, 키야!’

마현의 한쪽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미천한 종이 어둠을 관장하는 부신, 키야를 뵈옵니다.”

마현은 깊게 머리를 숙였다.

『너는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 나의 욕심으로 태어난 아이다.』

마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의 욕심으로 새로운 육체를 얻어 이 땅에 온 존재.』

그 말 한 마디에 마현은 이제껏 품어왔던 모든 의구심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사신 키디악의 금단의 흑마법.

중원에서의 얻은 새로운 육체.

그리고 다시 하르센 대륙으로.

군신 아이벤과의 접신과 8서클.

마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너로 인하여 빛과 어둠이 다시 균형을 찾은 순간, 너로 인해 또다시 균형이 깨어졌다.』

마현은 고개를 들어 어둠의 신, 키야를 쳐다보았다.

『주신의 권능 아래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

어둠의 신, 키야가 마현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신의 분노는 오로지 나의 몫.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선택권이 없느니라. 소멸 아니면…….』

마현의 주먹이 굳게 쥐여졌다.

『새로운 삶을 얻은 곳으로 돌아가는 것.』

마현의 눈이 부릅떠졌다.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가겠습니다. 가겠습니다!”

마현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의 그의 눈가에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웃고 있는 그의 입술을 적셨다.

『좋은 선택이다. 일주일 후 이 시각, 너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 * *

“주군!”

흑도의 목소리.

마현은 눈을 떴다.

“복수한 것이 그리도 기쁩니까?”

흑도는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보지 못했나?”

“무얼 말입니까?”

“……검은빛.”

“이잉?

흑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만 본 것인가?”

마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마현은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그의 웃는 얼굴에는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스승님, 그리고 설린……. 곧 제자가 돌아갑니다, 내가 돌아가오.’

마현에게 더 이상 용병들의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흠…….”

흑도는 그런 마현을 보며 짐짓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머리를 빙빙 돌렸다.

“주군이 미친 거…….”

따악!

흑권이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악! 왜 때려!”

흑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퍽!

“에라이!”

흑검이 그런 흑도의 뒤통수를 다시 후려쳤다.

“이, 이것들이…….”

후우웅! 퍽!

흑창이 창대로 흑도의 뒤통수를 다시 후려갈겼다.

“끄륵!”

흑도는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 * *

일주일이란 사실 매우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하르센 대륙의 역사에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주일이 되어버렸다.

마탑의 붕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과거 마탑의 패악.

그 패악에 종지부를 찍은 마현. 그리고 마현이 내린 마탑 해체의 명.

마신의 오명을 벗은 어둠의 신들.

그 도도한 역사의 회오리가 하르센 대륙에 휘몰아쳤다.

그 바람이 시작된 곳.

마현과 흑풍대, 케이슨 용병기사단, 그리고 알랜이 바람 식당의 별채 마당에 모여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진한 숙취가 묻어 있었다.

어젯밤 모두 죽어라 술을 퍼마셨기 때문이다.

지독한 숙취에 누군가 엄살 섞인 신음이라도 흘릴 법 하건만 모두의 얼굴은 침울했다.

“……주군.”

자브라였다.

그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브라.”

마현은 부드럽게 자브라의 이름을 부른 후 아이작의 어깨를 강하게 꾹 눌렀다.

“정말 다시 돌아오실 수 없는 겁니까?”

아이작의 질문에 마현은 담담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뺨을 가볍게 툭 건드렸다.

“하야스 후작께도 안부 전해주고. 잘 살아라.”

마현은 자브라와 함께 아이작을 한 번 더 주시하고는 몸을 돌려 밀러를 쳐다보았다.

“무거운 짐만 넘겨주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니야, 덕분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내가 고맙네.”

밀러는 마현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리고 그대는 영원한 나의 주군일세. 자네가 원하던 그런 세상을 꼭 만들겠네. 빛과 어둠을 떠나 모두가 평등한 마법사의 세상을.”

마현은 깊게 숙인 밀러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험험.”

밀러는 눈물을 흘린 것이 부끄러운지 헛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틀었다.

“케이슨.”

케이슨은 붉어진 눈으로 군례를 취했다.

마현은 그런 케이슨의 손을 잡아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감사했소.”

“아닙니다, 주군.”

“잘 지내시오.”

“함께한 날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마현은 케이슨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친 후 몸을 돌렸다.

“제이든, 그레오, 야솝.”

“니미럴.”

제이든은 울먹이면서도 그답게 거친 말을 툭 내뱉었다.

마현은 제이든과 그레오, 야솝의 손을 돌아가며 잡아주었다.

“아이작!”

흑도가 아이작을 험악한 목소리로 불렀다.

“왜?”

“자브라, 행복하게 해줘. 아니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흑도는 그 말을 내뱉더니 눈물 가득한 눈망울로 자브라에게로 뛰어가 그녀를 폭 안았다.

“흐이잉, 자브라. 흐이이잉!”

“너 그 손 안 놔! 죽고 싶냐?”

아이작이 둘 사이에 끼어들며 버럭 소리쳤다.

그렇게 아옹다옹하며 이별의 정을 나눈 후 마현과 흑사신, 그리고 흑풍대는 별채 마당에 그려진 자그만 역오망성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모두들 잘 있으시오. 그리고 감사했소.”

마현은 자신을 마중 나온 이들에게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주군!”

“……주군!”

그러자 그들 모두 바닥에 부복하며 격앙된 목소리로 마현을 불렀다.

쏴아아아아―

마현이 그들의 부름에 대답할 시간조차 없이 하늘이 갈라지며 검은빛이 역오망성 마법진 위로 쏟아져 내렸다.

* * *

대역죄인 마현 사지(大逆罪人 魔玄 死地).

험악한 내용을 담은 거대한 비석이 세워진 폐가.

패가가 금지(禁地)임을 상징하는 붉은 줄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후아암!”

폐가를 지키고 있던 몇몇 병사가 나른한 오후의 무료를 이기지 못하고 길게 하품을 내품었다.

그때 폐가 위의 푸른 하늘이 갈라졌다.

“응?”

연신 하품을 하느라 고개를 젖히고 있던 한 병사가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이, 이보게.”

하품을 길게 하던 병사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손으로 옆에 서 있는 동료 병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왜 그러는가?”

“저, 저기!”

동료 병사는 하품을 한 병사의 손짓에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헉!”

동료 병사는 너무도 놀라 입을 쩍 벌렸다.

하늘이 갈라지는 것도 모자라 검은빛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장소도 다름 아닌 바로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폐가.

“히익!”

동료 병사의 몸이 마치 풍이라도 든 것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사, 상제께서 노하신 모양일세.”

하품을 하던 병사는 언제 하품했냐는 듯 핏기가 가신 창백한 얼굴로 허둥댔다.

“아이고, 하늘님, 상제님.”

두 병사는 바닥에 바싹 엎드려 하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그 검은빛은 하필이면 험악한 글귀가 새겨진 비석 앞에 뚝 떨어졌다.

“히국!”

이윽고 검은빛 속에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들.

“상제께서 현신하셨구나!”

병사들 중 한 명은 너무 놀라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후우웁! 이야, 그래 이 공기야, 바로 이 공기!”

숨을 힘껏 들이마신 흑도가 감격에 겨운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함께 모습을 드러낸 마현과 흑사신, 흑풍대도 다시 중원으로 돌아와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밝은 분위기가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

“이잉? 뭐라?”

흑도의 인상이 확 찌푸려지며 목소리가 험악해졌다.

“대체 저게 뭔 소리야?”

흑도의 말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흑도가 보고 있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비석에 새겨진 험악한 글귀를 읽게 되었다.

“대역죄인 마현 사지? 이런 개잡놈의 비문을 봤나!”

흑도는 비석을 향해 단숨에 일장을 내질렀다.

콰르르르 콰과광!

마치 천둥이라도 친 것처럼 파음이 울려 퍼지며 돌조각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비석이 있던 자리엔 잘게 부서진 돌조각만이 수북했다.

“흠…….”

그것을 본 마현의 입에서 무거운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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