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47화 (347/351)

# 347

21화

이제 마현에게 있어 이곳 중원은 고향이나 마찬가지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마현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때 무영각주 마충이 안으로 들어왔다.

‘주군!’

마충은 금세라도 눈물이 치솟을 것 같은 눈동자로 마현의 무사 생환을 감격해했다. 하지만 이제 공식적이든 사적이든 마현의 개인 수하가 아닌 그는 그렇게 눈빛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했다.

마현도 그런 마충을 향해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줬다.

“공 군사님.”

마충은 짧은 해후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서둘러 공효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

“방금 개방에서 급한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급한 전서?”

“제갈묘가 자금성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뭣이야?”

공효는 너무 놀라 그만 큰 소리로 반문했다.

“그와 동행한 이들이 이번 무림말살정책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전군도독부 원직, 병부상서 장제, 무림토벌군 대장군을 맡은 유기량, 경위지휘사사의 지휘사 황영기라고 합니다.”

“어쩐지 황군의 움직임이 빠르게 무림의 요충지를 세세히 파고든다 했더니……, 빠드득!”

공효는 다른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듯 이를 박박 갈았다.

쾅!

야율초재가 두꺼운 탁자를 강하게 내려쳤다.

“이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을 봤나!”

“마 각주.”

“예, 소……. 흑풍마군님.”

마충은 저도 모르게 ‘소교주’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려다가 서둘러 말을 바꿨다.

그 반응에 사공찬의 얼굴이 무겁게 굳어졌다.

“걸왕께서는 지금 어디 계신가?”

“현재 북경 개방 분타에 계십니다.”

“알겠네.”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승님. 일단 걸왕님을 먼저 찾아뵌 후, 황제폐하께 가보겠습니다.”

“알겠다.”

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 각주,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지금 당장 흑풍대를 소집해주게.”

현재 마현과 함께 귀환한 흑풍대 열 명은 그동안 떨어져 있었던 나머지 흑풍대원들과 따로 해후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흑사신과 함께.

“알겠습니다, 흑풍마군님.”

마충은 서둘러 대전을 빠져나갔고, 마현은 다른 이들과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를 따라 설린도 함께 일어났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설린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마현은 그런 설린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금방 다녀오리다.”

마현의 말에 설린은 불안함이 가득한 얼굴을 세차게 옆으로 흔들었다.

“린아.”

그런 설린을 설관악이 나직하게 꾸짖었다.

“무사히 다녀오게.”

“다녀오겠습니다.”

마현은 설관악에게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런 후 설린의 손을 잡고 가볍게 토닥거렸다.

지금의 급박한 상황은 그들에게 여유로운 해후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든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설린은 그렇게 울음기가 살짝 배인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마현의 손을 놓아주었다.

마현은 서둘러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자신의 거처이자 흑풍대가 머무는 흑풍전이었다. 마현은 흑풍전에 들려 깔끔한 묵빛 무복으로 갈아입은 뒤, 흑풍대가 대기하고 있을 흑풍각으로 향했다.

“주군!”

흑풍각으로 들어서자 대형 연무장에 이미 흑풍대가 통일된 흑색 무복에 완전무장을 한 채 마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

무뚝뚝하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

“주군을 다시 만나니 저희도 감개무량합니다!”

“역시 너희들에게는 무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군.”

마현은 흑색 무복으로 갈아입은 왕귀진을 비롯해 하르센 대륙에서 함께한 열 명의 흑풍대를 둘러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군도 무복이 가장 잘 어울리십니다.”

왕귀진이었다.

“해후의 술 한 잔은 나중으로 미루겠다. 이렇게 만나자마자 다시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너희들을 이끌고 가게 되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닙니다!”

“주군과 함께라면 어느 곳이든 상관없습니다.”

마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흑사신을 쳐다보았다.

“우리도 준비 끝!”

흑도가 하얀 이를 드러냈다.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출전한다!”

마현의 명이 떨어졌다.

“명!”

“명!”

흑풍대와 흑사신은 힘찬 목소리로 복명했다.

* * *

북경 개방 분타.

“그놈이 살아 있을 줄이야!”

걸왕은 노기에 의해 붉어진 얼굴을 부들부들 떨었다.

“일이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미타불!”

걸왕과 함께 자리하고 있던 소림의 방장, 혜공이 답답한 목소리로 불호를 읊었다.

“문전박대를 당한 이유가 설마 그것 때문이었을 줄이야. 허어, 이를 어쩐단 말인가……, 무량수불.”

혜공 옆에 앉아 있던 청하진인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황제가 반사에 빠진 날.

무림맹 내 싸움이 끝난 후 제갈묘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불에 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시신 가운데 제갈묘로 짐작되는 옷을 입은 이가 발견됐을 뿐이다.

모두가 찜찜한 마음이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갈묘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제갈세가가 감쪽같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역시 그것도 찜찜했지만 그저 초야에 은둔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래도 후환이 두려워 몇몇 문파가 그들의 뒤를 쫓았지만 허사였고, 다시 몇몇 문파가 나서려 했지만 곧 청천벽력 같은 무림말살의 명이 황실에서 반포되어 버린 것이다.

“못난 놈들!”

걸왕은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진 과거 무림맹 소속 정파 무가들을 떠올리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금쯤 모두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아미타불.”

“흥! 그러면 뭐 해? 코앞까지 황군이 들이닥쳤는데. 제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황군의 벽력탄과 화포를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아? 에잉!”

걸왕은 아무 잘못도 없는 혜공에게 괜히 신경질을 퍼부었다. 사실 무림의 정파 가운데 그나마 가장 걱정이 덜한 곳이 지금 모인 이 세 문파였다. 소림사, 무당파, 개방.

제아무리 황실이라고 해도 민초들의 인심을 얻고 있는 종교의 성지 소림사와 무당파만은 무조건 황군으로 밀어버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황실에서는 소림사와 무당에 소속된 승려와 도인들의 단전을 폐하고, 모든 무공서를 불태워 없애라는 황명만 내려온 것이다.

또한 개방은 거지들이 모여서 만든 방파다.

수만, 수십만의 황군이라고 해도 이 땅에 존재하는 거지들을 모두 없앨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개방 총타와 분타만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무림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걸왕은 나직하게 탄식했다.

‘응?’

걸왕은 반쯤 무너진 벽을 통해 분타 마당 한구석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빛을 보았다.

쿵쿵쿵쿵쿵!

순간 그의 가슴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서, 설마!’

걸왕이 아는 상식에서 저런 빛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명.

걸왕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혜공과 청하진인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 걸왕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부서진 벽면을 통해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검은빛이 사그라지고 다수의 검은 그림자가 개방 분타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걸왕이 눈을 부릅떴다.

검은 그림자들이 순간 형상을 갖추더니 그 선두에 서서 걸왕을 향해 웃고 있는 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

“이, 이놈!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

걸왕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흑풍마군?”

걸왕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온 청하진인 역시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잘 계셨습니까?”

마현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이노옴!”

걸왕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뺨에는 곧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살아 있었던 것이냐?”

목소리도 어느새 잠겨 있었다.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마현은 몸을 살짝 틀어 청하진인과 혜공에게 포권을 취했다.

“이상하게 천기가 밝다 했더니……, 마 시주가 살아 있어서그랬구려. 아미타불.”

혜공은 기쁜 기색을 담담한 표정으로 감추며 반장을 취했다.

“지랄한다. 천기는 무슨,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숨만 푹푹 내쉬던 화상이.”

걸왕이 그런 혜공을 비꼬았다.

심통이 가득한 목소리다.

애꿎은 화풀이가 혜공에게 쏟아진 것이다.

“허허허, 아미타불.”

혜공은 그저 담담한 웃음으로 걸왕의 말을 받아넘겼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네놈도 들어오너라, 커험!”

그렇게 마현과 걸왕, 혜공과 청하진인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마현은 좀 더 상세하게 현재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결국 남은 시간은 이틀밖에 없다는 소리군요.”

“그렇지. 짧으면 이틀, 길면 사흘.”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마교와 달리 정파는 중원 곳곳에 퍼져있기 때문에 황군의 이동 시간이 하루 정도 더 걸린다고 했다.

집결 후 바로 공격하지 않고 전의를 다지며 하루쯤 휴식을 한다면 하루를 더 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단 황제폐하를 만나봐야겠습니다. 상태가 어떤지도 알아봐야겠구요.”

“하지만 어떻게…….”

걸왕은 의문이 담긴 질문을 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딱!

“그렇군. 네놈에게는 이 이상한 능력이 있었지.”

마현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없으니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그사이 걸왕께서는 모든 개방의 제자들을 풀어 제갈묘의 행방을 찾아놓으십시오.”

“그리하겠네.”

마현은 걸왕의 대답을 들은 후 곧바로 그 자리에서 자금성으로 텔레포테이션 마법을 펼쳤다.

* * *

황제의 침전인 건청궁.

그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는 사방신의 수장 청룡은 모습을 감춘 채 미약한 숨결을 내쉬고 있는 황제를 내려다보며 슬픈 눈빛을 띄었다.

청룡은 황실 십대고수인 만큼 황제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음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조정에서 내놓은 49일의 말미마저 채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다.

청룡이 입술을 살짝 벌리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려는 바로 그때였다.

그의 눈썹이 곤두섰다.

예기가 담긴 청룡의 시퍼런 눈빛이 황제가 누워 있는 침실 앞으로 향했다. 인기척도 없었건만 어느새 황제의 침소를 범한 이가 있었던 것이다.

침소를 살필 수 있는 사방에서 살을 베는 듯한 살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청룡을 비롯한 사방신의 살기였다.

그때 청룡의 손이 살짝 올라갔다.

황제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청룡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바로 마현이었던 것이다.

『멈춰라!』

그의 전음이 사방신에게 전해졌다.

『오랜만이오.』

마현은 청룡이 몸을 숨기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포권을 취했다.

청룡이 마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차피 숨어 있어 봐야 마현이 자신을 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이제껏 황제의 곁을 지켜온 바로는 적어도 지금 마현은 그가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죽었다고 들었소.』

청룡의 전음이 무겁게 흘러나왔다.

『덕분에…….』

마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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