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48화 (348/351)

# 348

22화

『살릴 수 있겠는가?』

청룡은 고개를 돌려 황제를 쳐다보았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러려고 왔소.』

마현은 청룡을 지나쳐 황제 앞으로 다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꼭, 꼭 살려주시오.』

마현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청룡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다시 사라졌다.

“후우.”

마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허진과 걸왕에게서 전해들은 것처럼 황제는 잠이 든 상태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마현은 마기를 끌어올렸다.

일단 투시 마법으로 황제의 몸을 관조했다.

황제의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다만 급격히 원기가 빠져나가면서 생기를 잃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마현은 자신의 특기이자 하나의 능력인 혼을 살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황제의 몸을 살핀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남은 것은 정신, 즉 그의 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현의 마기가 눈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감겼던 마현의 눈이 다시 부릅떠지자 그의 눈동자는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사기가 가득한 마현의 사안(死眼)은 황제의 몸을 꿰뚫었다.

마현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죽은 듯이 누워 있는 황제의 몸 위에 또 한 명의 황제가 있었으니, 바로 육신을 벗어나 구천을 떠도는 혼령이었다. 마현의 짐작대로 황제는 어둠의 신, 키야의 개입과 동시에 그 절대적인 힘의 여파로 육신과 이어주는 끈이 끊어져 혼이 이탈해 버린 것이다.

황제의 혼령은 체념이 가득한 쓸쓸한 눈빛으로 자신의 육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현은 급히 마기를 온몸으로 돌렸다.

그리고 입이 열렸다.

『폐, 폐하.』

인간의 음성이 아닌 죽은 자만이 들을 수 있는 혼령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황제의 혼령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황제의 혼이 놀라 움찔한 것이다.

황제는 구름처럼, 혹은 풍선처럼 둥실 자리에서 떠서 마현 앞으로 다가왔다.

『짐이 보이는 것이냐? 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냐?』

황제의 눈에서 체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한 줄기 희망이 들어섰다.

마현에게 건네는 그 목소리는 애절했다.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옵니다. 아주 잘 보이옵니다.』

마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황제를 향해 엎드렸다.

『보는구나. 정녕 나를 보는구나. 그래 너라면, 너라면 짐을 볼 수 있었던 게야.』

울음이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혼령인 그의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아니 혼령은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존재였다.

『왜 이제야 왔느냐? 왜 이제야 왔어!』

황제는 마현을 꼭 안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허망하게 마현을 몸을 지나쳤다.

『죄송합니다, 폐하. 신 조금 먼 곳을 다녀오느라 늦었사옵니다.』

『과연 내 눈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로구나. 보았느니라, 짐은 보았느니라. 어두운 빛 속에서 신으로 짐작되는 존재가 너를 부르는 것을…….』

황제는 어둠의 신 키야를 본 모양이었다.

또한 오랜 시간 혼령으로 떠돈 것이 쓸쓸했는지 상당히 수다스러워졌다.

『폐하, 황공하오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사옵니다. 인간의 혼이 육신과 떨어져 중천(中天)에 머물 수 있는 날은 49일이옵니다. 신이 폐하를 보았을 때 49제의 날이 다 되어가는 듯하옵나이다. 당장 폐하의 혼령을 육체에 넣고 싶지만 먼저 급히 아뢰올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전한 후 폐하의 혼을 육체에 넣어드리겠나이다.』

황제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마현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황제의 눈동자는 몹시 요동쳤다.

『그럴 수 있느냐? 정녕 그리될 수 있더냐?』

『그러하옵나이다! 지금 신이 먼저 말씀을 올리려는 이유는 혼이 육신에 들어가면 반나절 정도 흐른 후에야 의식을 차릴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 후에도 상한 원기가 복원되려면 족히 몇 달은 걸리옵나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금 닥친 일을 이해하기 어려우실 테니 신이 지금 먼저 말씀을 올리겠나이다.』

마현의 말에서 황제는 자신이 이렇게 된 이후 뭔가 큰 일이 터졌음을 깨달았다.

『그래, 무어냐?』

황제의 목소리도 전처럼 근엄해졌다.

『현재 무림은…….』

마현은 자신이 무림을 떠나고, 동시에 황제의 혼이 육신과 떨어진 날부터 무림말살정책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무림이 황군의 칼날 앞에 풍전등화와도 같은 신세로 전략했음을 상세하게 알렸다.

『어마마마께서?』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이었지만 황제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럴 만도 하실 분이시다. 어마마마께서는 평생 짐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셨던 분. 하지만 그 때문에 역사에 큰 오명을 안겨드릴 수는 없는 법. 짐이 정신을 차리는 즉시 그 일부터 해결하겠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마현은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허나 짐이 깨어나기까지 시간이 든다 하니 그대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먼저 해결해 놓도록 하라.』

『감사하옵나이다.』

마현은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약간의 충격이 있을 것이옵니다. 심지를 굳건히 해주시옵소서.』

『그깟 충격이 대수겠느냐! 하거라!』

황제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어떤 고통이나 충격이 와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럼 시작하겠나이다!』

마현의 몸에서 사신 키디악의 기운인 사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용풍권처럼 휘몰아쳐 황제의 혼령을 휘감았다.

『큭!』

황제의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현의 눈에서 사기가 황제를 향해 폭사되었다.

지금 마현이 시전하려는 마법은 과거 흑사신에게 신체를 줄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마법이었다.

강제로 혼을 육체에 집어넣는 일이기에 큰 고통이 수반되는 마법이기도 했다.

『으윽!』

황제의 고통스런 신음에도 마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혼령을 육신, 그중 백회혈로 밀어 넣었다.

강제로 황제의 혼령이 육신에 들어가자 마현의 사기가 황제의 몸 위에 엄습했다.

“허억!”

황제의 육신이 눈을 부릅뜨는 것과 동시에 몸이 활처럼 휘어지며 부들부들 떨렸다. 마현의 사기가 황제의 육신과 혼을 어루만지자 그의 피부는 검게 물들었고, 붉은 핏줄은 푸르게 변색되었다.

그때 지붕 위의 공기가 바뀌었다.

사방신의 살기였다.

『그대들은 폐하가 죽기를 바라는가?』

마현의 일갈에 살기가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황제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황제의 몸은 끈적끈적한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현 또한 황제와 별반 다름없이 무복이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현은 사안으로 황제의 몸을 살폈다.

“휴우.”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마현은 청룡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한 시진 반.』

짧고 탁한 청룡의 전음.

‘한 시진 반이라…….’

마현은 ‘끙’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룡.』

『…….』

『폐하께서는 대략 6시진 후면 깨어날 것이오. 일단 궁녀를 시켜 몸을 좀 닦아주시오. 아울러 넷이 돌아가며 하루에 2시진 정도씩 추궁과혈로 원기를 다스리면 더욱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수 있을 것이오. 물론 원기를 다스리는 약재도 함께 처방하면 더 좋고.』

마현의 전음을 듣고 천장에서 청룡이 내려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말이 사실인가?』

『이 상황에서 내가 농이나 나눌 위인으로 보이시오?』

청룡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는 마현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고맙소.』

『고맙기는……, 나도 살자고 한 일일 뿐이오. 그럼!』

번쩍!

마현은 텔레포테이션 마법을 이용해 단숨에 자금성을 떠났다.

* * *

자금성에서 개방 분타로 돌아온 마현은 곧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황제의 혼령을 육신에 안착시키느라 생각 이상으로 마력을 소모한 까닭이었다.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해진 초저녁.

마현이 운기조식을 마치고 눈을 떴다.

“기다렸다, 이놈아!”

계속 호법을 서 주었던 걸왕이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찾았다.”

“……!”

“쥐새끼처럼 잘도 숨어 있었더구나, 낄낄낄.”

걸왕은 차가운 눈빛으로 웃었다.

“어딥니까?”

“북촌.”

“북촌이라 하시면…….”

“개방의 이목이 유일하게 닫지 않는 곳이 세상에 두 곳 있는데, 그중 하나지.”

개방의 이목이 닫지 않는 두 곳.

한 곳은 자금성이었고, 다른 한 곳이 바로 북경 북촌이었다.

북촌은 고관대작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어지간한 이들은 발걸음도 옮기기 어려운 곳으로 유명했다.

“오늘 자금성으로 여러 대신들과 함께 입궐하는 것을 보고 혹시나 싶어 뒤져 보니 그곳에 숨어 있더구나.”

과연 제갈묘다운 생각이었다.

마현은 부서진 벽 사이로 어둑해진 밤하늘을 보았다. 그리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그런 놈을 죽이기에는 이런 밤이 더 좋습니다.”

“나도 가마!”

걸왕도 나섰다.

“대명호국대마장군이 나서는데 대명호국대정장군이 나서지 않으면 말이 안 되지요.”

“그런가? 그렇군! 하하하하하!”

걸왕은 이제껏 잊고 있던 명예관직을 떠올리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혜공대사와 청하진인이 안 보이는군요.”

“귀찮아서 돌려보냈다. 어차피 그놈들 있어 봐야 도움이 될 것도 없고.”

“그렇군요.”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흑풍대, 흑사신.”

마현은 마당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흑풍대와 흑사신을 집결시켰다.

“가자, 감히 본교를 농락하려 든 제갈묘의 하찮은 목줄을 끊으러!”

“명!”

“명!”

짧고 우렁찬 복명과 함께 흑풍대와 흑사신은 마현과 걸왕을 뒤따라 조용히 개방 분타를 벗어났다.

* * *

쪼르르르.

술잔에 술이 담겼다.

제갈묘는 술잔을 들어올렸다.

“자 다들 한 잔 하자구나.”

푸짐하게 상이 차려진 식탁에는 제갈묘를 비롯해, 현재 가주 자리에서 물러나 총관 자리에 오른 제갈휘, 제갈세가의 장녀인 제갈영영, 그리고 소가주 제갈문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

제갈영영은 잔을 들지 않은 채 제갈묘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

“약속 잊지 않으셨겠죠?”

제갈묘의 얼굴에서 기분 좋은 미소가 사라지며 불편한 기색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는 곧 웃음을 활짝 지어 보였다.

“암, 그리하마. 남궁가의 식솔들은 살려주겠다. 천하를 손에 넣는데 그 정도를 못 들어줄까.”

“고마워요, 아버지.”

제갈영영은 그제야 웃음을 보이며 술잔을 들어올렸다.

“녀석.”

제갈묘는 만면에 자애로운 웃음을 띠며 제갈영영을 쳐다본 후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제갈문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는 또 뭐가 그리 못마땅해서 그리 인상을 쓰느냐. 쯧쯧쯧.”

제갈묘는 제갈문을 보며 혀를 찼다.

“갑갑해 죽겠습니다.”

제갈문의 짜증 어린 목소리를 듣자 제갈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형님, 우리야 유유자적하는 이런 생활도 좋지만 문이야 아직 혈기왕성할 시기가 아닙니까?”

“큼!”

제갈묘는 술잔을 탁자 위에 탁 내려놓으며 제갈문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지내야만 하는 겁니까?”

“문아!”

제갈묘는 근엄한 목소리로 제갈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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