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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50화 (350/351)

# 350

24화

좌좌좌좍!

마치 물에 얼음이 어는 것처럼 제갈묘을 파묻은 흙이 회색빛 바위로 변해갔다.

동시에 제갈묘의 머리에 마현의 홀드 마법이 쏟아져 내렸다.

쿵!

마치 바위에 갇힌 것처럼 변한 제갈묘 머리 앞으로 제갈문이 허공에서 처참하게 떨어져 나뒹굴었다.

“으악!”

제갈문 앞에는 왕귀진이 서 있었다.

“꺄아악!”

그런 제갈문 옆으로 제갈영영이 철용의 손길에 이끌려 내동댕이쳐졌다. 마현은 제갈문과 제갈영영을 제갈묘처럼 땅속에 파묻고는 그 주위를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쿠그그극!

마현이 양손을 허공으로 까딱거리자 땅속에서 거대한 바위 세 개가 떠올랐다. 그 바위 속에는 제갈묘와 제갈영영, 제갈문이 파묻혀 있었다.

* * *

이른 아침.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마현은 조용히 눈을 떴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앙?”

폐가 한쪽에서 잠을 자고 있던 걸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저 태상방주님, 그리고 흑풍마군님.”

북경 분타주인 궁개가 안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이렇게 시끄러워!”

“황궁에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궁개가 얼른 소란의 이유를 말했다.

“황궁에서?”

걸왕은 낯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폐가의 있으나마나한 문으로 내시 한 명이 들어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냘프지만 꽤나 박력이 들어간 목소리.

바로 동창도독인 박인태였다.

“그대는?”

마현은 그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전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모시고 오라는 황제폐하의 명이십니다.”

“그렇군요.”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어제 제갈세가의 안가가 완전히 부서졌던데……, 죄인들은 어디에 있는지…….”

과연 동창이었다.

어제 일어난 일을 벌써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현은 손을 뻗어 북경 분타 마당 한구석에 놓여있는 네 개의 커다란 바위를 가리켰다.

바위를 본 박인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에 있다는 말씀인지…….”

“저들을 데려가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것이오.”

마현의 말이 끝날 때쯤 박인태는 바위 한복판에 사람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끙!”

박인태는 앓는 소리를 삼키더니 동창의 무사들을 시켜 튼튼한 수레 네 대를 가져오라 명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동창 무사들이 낑낑거리며 네 개의 바위를 힘겹게 수레에 실을 수 있었다.

문제는 바위가 너무 무거워 수레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현이 마법으로 바위의 무게를 슬쩍 가볍게 만들어주고 나서야 수레가 겨우 자금성으로 향했다.

“정말 싫다, 싫어! 으이구, 내 팔자야. 전생에 뭔 죄를 지었다고 말년에 이리도 고생을 하는지……, 에효!”

걸왕은 깨끗이 세안하고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게 몹시 불편한지 연신 투덜거렸다.

* * *

이른 아침부터 태화전은 고관신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동이 트기 전에 파발로 도착한 소식에 의하면 황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며, 아침 일찍 대전회의를 개최한다는 황명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쾌차한 황제를 직접 본 이가 없고, 또한 깨어나자마자 대전회의까지 연다고 하니 신료들은 이 일을 두고 서로의 생각을 논의하기에 바빴다.

그로 인해 여느 때보다 태화전 내 대전은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모두가 의문에 찬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유독 심각한 표정을 짓는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 원직, 장제, 유기량, 황영기였다.

“어젯밤 제갈세가의 안가에 괴한들이 들이닥쳤다고 하오.”

“어허, 장 상서.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네.”

원직이 장제의 말을 잘라버렸다.

“그래도 어찌…….”

“보나마나 무림인들의 짓일 것이외다.”

유기량이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무슨 연유로 폐하께서 정신을 차린 후 바로 대전회의를 여신 것인지…….”

유기량의 말에 제갈세가에 대한 일은 금세 잊혀졌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러다가 자칫 무림말살정책에 제동이라도 걸린다면…….”

“어허, 황 지휘사. 그런 불길한 말씀을 입에 담다니요.”

원직은 황영기의 말에 낯을 찌푸렸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아니 됩니다.”

이 넷에게 있어서 무림말살정책은 반드시 실행되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조정의 대신들을 휘어잡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황제가 깨어났으니 그들은 다된 밥에 혹여나 재가 뿌려질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황제폐하께서는 온전한 몸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수렴청정이 끝난 게 아니니 너무 심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어차피 내일입니다. 하루만 시간을 벌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대전회의가 끝나는 대로 태후마마를 찾아뵙고 일을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원직의 말에 모두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폐하 납시오!”

그 말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고관신료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섰다. 원직, 장제, 유기량, 황영기, 이 네 사람도 각자 자리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섰다.

잠시 후, 병색이 완연한 황제가 내시의 부축을 받으며 용상에 앉았다.

“황태후마마 납시오!”

촤르르륵.

황제가 앉아 있는 용상 뒤로 발이 쳐지며 황태후도 대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정사는 이 어미의 것이 아닙니다. 황상,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어마마마.”

황제는 황태후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 후 대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짐이 쓰러진 뒤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들었노라.”

그 말에 원직, 장제, 유기량, 그리고 황영기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런 움직임을 황제는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짐의 부재를 틈타 세 치의 간악한 혀로 어마마마의 귀를 더럽히고, 제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이 있었다 들었다!”

얼굴의 병색이 무색하리만큼 위엄이 실린 황제의 목소리는 대전 안을 쩌렁쩌렁 뒤흔들었다.

그 소리에 원직을 비롯한 넷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황제폐하, 신 원직…….”

“그 입 닥치지 못할까!”

황제는 원직을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그동안 원직을 비롯한 군부의 실세들에게 힘을 실어주던 수많은 관료들도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그들을 외면해버렸다.

“억울하옵나이다. 신은 오로지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원직, 정녕 목이 달아나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황제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극에 달했다.

“정말 억울하옵나이다!”

하지만 원직은 멈출 수 없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몰라도 지금 물러난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시끄럽다. 여봐라, 원직의 죄를 고할 죄인을 들게 하라!”

‘서, 설마!’

원직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철컹, 철컹.

아니나 다를까. 쇠사슬로 포박된 제갈묘가 대전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제갈묘를 본 순간, 그리고 그 뒤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마현과 걸왕을 본 순간 원직의 몸은 석상처럼 굳어졌다.

“죄를 고하라.”

황제의 명에 무릎이 꿇린 제갈묘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짐의 약조를 믿으라.”

황제의 그 말 한 마디에 제갈묘는 고개를 돌려 원직, 장제, 유기량, 그리고 황영기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황제를 올려다보며 지금껏 그들과 함께 꾸민 일들을 담담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갈묘의 말은 이러했다.

자신은 살기 위해, 그들은 공백 상태가 된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황태후를 감언이설로 속이고, 황제의 반사 상태를 이용하여 무림말살정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계속될수록 넷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고, 대전 안은 수군거림과 놀람으로 인해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거짓이옵니다. 거짓이옵니다, 폐하!”

원직은 살기 위해 목청껏 외치고 또 외쳤다.

“저자의 거짓된 망발에 넘어가지 마시옵소서.”

장제와 황영기 역시 원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허황된 거짓으로 폐하의 귀를 더럽히는 것이냐!”

다만 유기량만은 묵묵히 서 있다가 제갈묘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 발을 휘둘렀다.

“컥!”

하지만 그 전에 마현의 손아귀에 목줄기가 잡혔다.

“박 도독!”

“하명하시옵소서, 폐하.”

눈에 띄지 않은 곳에 서 있던 박인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 죄인들을 지하수옥에 처 넣으라!”

“명!”

박인태의 복명 소리가 울려 퍼지자 동창 무사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와 넷을 끌어냈다.

“억울하옵나이다!”

그들은 끝까지 황제를 향해 애처롭게 소리쳤다.

원직과 장제, 유기량, 황영기가 동창의 손에 끌려 나가자 대전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졌다. 모든 대신들이 황제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조금 전 그들처럼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최대한 몸을 숙이고 또 숙였던 것이다.

그렇게 대전이 조용해지자 황제는 손을 들었다.

“대명호국대마장군 마현은 짐 앞으로 오라!”

황제의 말에 마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른 아침 황제와 나눈 이야기에는 지금 같은 상황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의 지엄한 명을 거스를 수 없는 법.

마현은 황제 앞으로 다가갔다.

“모든 대신들은 들으라.”

황제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담겼다.

“대명호국대마장군 마현은 짐의 목숨을 살린 은인이다.”

“폐, 폐하.”

마현은 깜짝 놀라 황제를 쳐다보았다.

“부마도위는 싫다고 했었지?”

마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질문을 던지는 황제의 얼굴에 승자의 미소가 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런 마현을 외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부로 마현은 짐의 의동생이다!”

“폐, 폐하!”

“그, 그건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고관신료들이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하여 그에게 흑풍마황의 별호를 짐이 손수 내리노라!”

“폐, 폐하!”

이번에는 마현이 황제를 불렀다.

“짐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시 황군을 무림으로 보내겠노라.”

황제는 웃었다.

마현의 눈에 비친 황제의 웃음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한순간 대전을 장악한 적막감.

황제는 신료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원직의 작당들이 아직 숨어 있단 말이더냐!”

진노한 황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흑풍마황! 만세! 만세! 만만세!”

대전 안에서 고관신료들의 만세 삼창이 울려 퍼졌다.

“으하하하!”

그 만세 삼창 속에 황제의 웃음소리가 섞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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