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8화>
호록.
모닝커피 한 모금이 이른 새벽의 졸음을 쫓는다.
-AT모건에서만 최소 32억 달러의 수익이 발생할 예정입니다.
"피유."
머리를 털던 종혁은 휘파람을 불었다.
‘이게 다 얼마야.’
전 세계 메이저 증시의 메이저 증권사들에서 뽑아낼 수익만 생각해도 선뜻 계산이 안 된다.
‘이후 공매도 작업까지 생각하면…….’
종혁은 계산하기를 포기했다.
"들킬 위험은 없나요?"
-전 세계에 수만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지분을 흩트리고 자금을 돌렸습니다. CIA 할아버지가 와도 저희를 찾진 못합니다.
종혁은 권&박 홀딩스에 이목이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해 미국 닷컴에 투자하기 전부터 이 작업을 지시했다.
이목이 집중되면 좋은 일보단 나쁜 일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만 빼면 말이죠.
이 작업을 새로 설계하고 완성시켜 준 게 러시아다.
KP컴퍼니처럼 완전하게 드러난 투자회사들에 괜찮은 사람들을 섭외해 준 것도.
러시아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로스차일드나 석유 부자들, 그리고 숨겨진 부자들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뭐겠냐고 했지.’
다 이런 식으로 자금을 넓고 은밀하게 퍼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로 보면 티끌이지만, 하나로 뭉치면 태산.
러시아 정보국이 자금을 운영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우린 러시아에 정당한 값을 지불했어요, 박 이사님."
정보가 아니라 돈을 주고 의뢰를 맡겼다.
-하지만!
"압니다. 그래서 몇 번 더 꽈 버린 거잖아요."
종혁은 러시아가 완성시킨 예술 작품에 손을 댔다.
박태규는 그걸 해낼 인재였고, 결국 해냈다.
러시아가 도와주겠다 제의한 이유가 태규의 작품이 어설펐기 때문이었는데, 러시아가 작업하는 걸 죽 지켜보던 태규는 결국 그 모든 노하우를 습득해 버리더니 이젠 러시아도 자금의 흐름을 좇기 힘들 정도로 꼬아 버렸다.
"그들이 절 친구처럼 대해 주지만, 완전히 믿지 않습니다."
정보국을 믿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을까요?"
-음. 알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해 주시고…… 아, AT모건에 우리 여사님 돈이 얼마나 투자됐죠?"
-하핫. 2백만 달러 정도 매입했습니다.
"그거 터지면 쏴 주세요. 엄마 빌딩 사 드리게."
-또요?
"나이 드신 분들에겐 부동산이 최고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전 새벽 운동하러 갈 시간이네요."
-이 새벽부터 운동을 하다니…… 경찰대도 참 힘든 곳이군요.
"어쩌겠어요. 이게 커리큘럼인데."
새벽 운동은 엄연히 학점에 포함되는 경찰대학의 정식 과정 중 하나이다.
오늘도 볼로 밀어 전화를 끊은 종혁은 운동복을 갖춰 입고 개인 기숙사를 나섰다.
* * *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임에도 운동장 트랙에는 동기와 선후배들이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이 종혁을 발견하곤 우르르 몰려왔다.
"종혁아, 저번 주 토요일에 또 범죄자 잡았다며?"
"이번엔 뭐야? 소매치기? 성추행범? 설마 조폭?!"
마치 먹이를 물고 온 어미새를 마중 나온 새끼 새들처럼 조잘거린다.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데? 본청에 쁘락지 심어 놨어?"
아이들이 꺄르르 웃었다.
"아니? 누가 학장님이 통화하는 걸 들었다는데?"
"학장님 쁘락지가 본청에 심어져 있는 건가……."
"아, 가능성 크다."
"맞아. 학장님 계급이……."
치안정감. 대한민국 경찰 서열 2위로, 차기 경찰청장 1순위라고 할 수 있는 계급이다.
"아, 나도 눈앞에 범죄자가 있으면 때려잡을 수 있는데! 종혁아, 다음엔 나 꼭 데려가라. 응? 응?"
"나도!"
"우리도!"
‘아서라. 너희 잡을 일 있냐.’ 나이는 천차만별이지만, 이제 겨우 1학년이다.
곧 2학년이지만, 솜털조차 이제 막 자라나는 신생아.
단순한 소매치기라도 검거하다가 골로 갈 수 있었다.
"그래. 상황 봐서. 자, 다들 운동하자!"
"오오!"
"좋았어! 오늘도 열심히 뛰어 볼까!"
1학년들은 하나로 뭉쳐 운동장 트랙을 달리며 까르르 웃었고, 2학년, 3학년들은 그런 그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정확히는 종혁이다.
"하, 저놈은 부소대장 안 하겠지?"
"그렇지. 금메달 땄잖아."
경찰은 경찰대학을 졸업해 간부가 된다고 해도 군 복무를 해야 한다. 다만 간부이기에 기동대 부소대장으로 2년 동안 대체 복무를 한다. 그런 이후에 2년 반 동안 순환 보직을 돈 후, 원하는 과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금메달을 두 개나 딴 종혁은 예외이다.
졸업을 하자마자 곧바로 순환 보직이다.
기수가 씹히는 거다.
"확 씨, 날 잡아?"
"아서라. 제3 기숙사 세운 게 종혁이다."
원래 경찰대는 2인 1실이 원칙인데, 종혁으로 인해 1인 1실로 바뀌었다. 그것도 모자라 침대도 최고급으로 싹 다 바뀌고 에어컨과 히터도 최신식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기수가 씹힌다지만, 은혜 잊는 개새끼는 되지 말자."
"야 씨, 누가 그런대?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럼 됐고. 뛰자."
"어. 아, 그런데 쟨 왜 기숙사를 지은 걸까? 수석으로 들어온 놈이 말이야."
"내가 아냐. 부잔가 보지."
"아닌데. 쟤 엄청 어렵게 살았다고 했는데……."
"안 뛰어?"
"아, 알았다고!"
프라이버시 보호와 아침 보고를 편히 받기 위해 기숙사를 새로 지어 버린 걸 모르는 그들은 칼날처럼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뛰기 시작했다.
침대, 에어컨, 히터 등은 자신의 방만 바꾸는 게 눈치 보여서 그냥 전부 바꾸어 준 것이다.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킬 겸 말이다.
"아, 추워! 방학 좀 얼른 와라!"
"그 전에 기말시험부터 생각해야지."
"……씨발."
경찰대학의 방학은 2월 말부터 시작한다.
"개 추워!"
"졸라 추워!"
달리며 흘린 땀이 빠르게 식자, 모두 다급히 기숙사를 향해 달렸다.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기숙사에 다 와 갈 때쯤이었다.
"종혁아!"
"예! 선배님!"
"학장님이 부르신다. 얼른 가 봐!"
"예?"
‘갑자기 왜?’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 * *
척!
거수경례하는 종혁을 학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어, 그래. 앉아, 앉아."
학년 수석인 것도 모자라 무려 기숙사를 세우고, 침대, 에어컨, 노트북 등을 죄다 최신식으로 바꾼 종혁이다.
예뻐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런 학장의 옆에는 사십대 후반의 중년인이 앉아 있다.
‘어? 청장님?’
지금의 경찰청장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경찰청장이 되는 인물이다.
종혁이 형사가 막 된 시기에 청장이 되었던 인물이자, 경찰 예산 증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바쁘시다면 다음에 오겠습니다."
"아냐. 괜찮아, 앉아."
조대길 학장이 따뜻하게 웃는다.
"어떻게 된 거야?"
원숭이 박상철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예. 박상철이 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가……."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서는 그놈을 발견한 거야?"
"예, 그렇습니다."
"암. 그래야지. 무릇 참된 경찰이라면 잡아넣은 범죄자도 살펴볼 줄 알아야지!"
실제로도 경찰 시스템이 그렇다.
범죄자가 출소하면 그 주소의 관할서와 검거한 형사에게 출소 사실이 통보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관련 전과가 있는 범죄자들을 죄다 경찰서로 소집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조대길 학장은 덤덤히 대답하는 종혁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래도 몸 사려 가면서 해. 큰일 해야 될 간부가 그런 잡범 잡다가 몸 상해서야 되겠어?"
"하하. 알겠습니다."
"아, 맞아. 이쪽은 처음 보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놀란다.
종혁은 일어나 그에게도 거수경례를 했다.
"본청에 들를 때 뵌 적 있습니다, 차장님. 경찰 간부후보생도 최종혁입니다. 충성."
본청 차장. 이 사람 역시도 치안정감이다.
"……최기룡입니다. 날 봤다 한들 잠깐 스쳐 간 것에 불과했을 텐데 기억하다니 놀랍군요."
"편히 이야기하십시오."
"흠. 그러지. 자네 어디 최씨인가?"
최기룡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린다.
‘와, 오랜만에 듣는 질문인데?’
미래엔 너무 꼰대 같다며 잘 하지 않는 질문이다.
"경주 최씨 충렬공파입니다."
최기룡의 눈이 커진다.
"으하핫! 이거 같은 집안 사람이었구먼!"
이번엔 종혁이 놀란다.
‘같은 집안이었어?’
그렇다고 한들 최씨에게 도움받은 건 없지만, 그래도 거리감이 좁혀진다.
"그렇지. 우리 충렬공파가 아니면 이런 불세출의 영웅이 나올 수가 없지! 종자 돌림인가?"
"예, 그렇습니다."
"내 조카뻘이구먼."
최기룡은 푸근히 웃으며 눈을 빛냈다.
개천에서 태어난 용, 유도 영웅.
십대 때 해결한 사건만 무려 5건이고, 가장 굵직한 건으로 한상원 사건이 있다. 또 경찰대학에 기숙사를 세우고, 경찰에도 작전 지원 기기 구입을 해 달라며 무려 5억씩을 매해 기부하는 자수성가 알부자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종혁은 이 사람이 여기 왜 있냐는 듯 슬쩍 조대길 학장을 봤다.
"아, 여기 최 차장이 내 후임으로 올 사람이라 인사 왔기에 잠시 소개시켜 주려고 불렀어. 앞으로 학교 다니면서 불편한 거 있으면 이 사람과 이야기하라고 말이야."
"예?"
‘다음 학장이 이분이었어?’ 종혁은 잘 부탁한다며 웃는 최기룡을 멍하니 보았다.
종혁이 나간 자리.
조대길 학장이 온기가 남은 찻잔을 들어 올렸다.
"어떤가. 쓸 만해 보이지?"
"글쎄요. 아직은 지켜봐야죠.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뛰는 망아지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려는 경찰에 어울리는 놈인지.’ 방금 전까지 동네 아저씨였던 최기룡은 눈을 매섭게 빛내며 남은 찻물을 들이켰다.
"잘 마시고 갑니다."
* * *
‘경찰대 학장이라면 한직으로 밀려나는 건데.’
그런데도 경찰청장이 되는 걸 보면 엄청난 능력자임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면 경찰대 학장 출신 청장님들이 제법 있었지.’
종혁이 죽는 날까지 합하면 거의 7명이었다.
"종혁아! 학장님이 왜 부르신 거야?"
"어? 아, 몸조심하라고."
"와아. 학장님에게 그런 말을 들어? 좋겠다!"
‘좋기는.’ 최고위 간부는 되도록 만나지 않는 게 좋다.
그래야 조직 생활을 오래한다.
물론 종혁은 되도록 많이 만나야 되지만.
아는 간부가 많을수록 그 조직을 잡을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보다 1교시 뭐야?"
"기초 범죄심리학."
종혁과 함께 움직이던 동기들의 얼굴이 썩는다.
이놈의 범죄자들 심리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
"임성원 교수님인가?"
‘임성원 의원.’ 훗날 국회의원이 되는 인물이다.
경찰 출신으로 가끔은 같은 형사들끼리도 ‘저건 아닌데?’ 할 만한 일을 하지만, 그래도 경찰의 권익 보호와 향상을 위해 노력하던 인물이다.
현재는 경찰대학 행정학과 및 기초 범죄심리학 교수다.
강의실에 도착한 그들은 모두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켰고, 이윽고 임성원 교수가 하품을 하며 등장했다.
종혁과 1학년 법학과 총원 50명이 몸을 일으켰다.
경찰대학의 학부는 법학과와 경찰행정학과로 나뉘는데, 이 안에서 세부 과목이 또 나뉜다.
"차렷. 경례!"
"충성!"
"그래. 좋은 아침이다. 자리 앉아. ……하아암. 어우, 날을 샜더니 졸리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작은 웃음이 잔잔하게 터져 나왔다.
장난이었다는 듯 씩 웃은 임성원 교수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 강의가 시작됐다.
3시간짜리 강의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계를 힐끔 본 임성원 교수는 마무리를 준비했다.
"이제 곧 기말고사지?"
"아아."
생도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과제도 과제지만, 시험이 더 싫은 그들이다.
"좋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아닌데요!’ 생도들은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임성원 교수는 무시했다.
"어제 일본 뉴스 본 사람?"
생도들은 동기들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최종혁 생도."
"탈주범 뉴스 말입니까?"
일본 어느 섬에 있는 교도소에서 한 범죄자가 탈주했고, 탈주한 지 벌써 10일째라고 했다. 현재까지 동원된 경찰만 수백 명.
죄목은 납치 강간 후 살해이다.
일본 전역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했다.
"역시 학년 수석. 빈틈이 없어."
학생들도 일본 뉴스까지 챙겨 보냐며 질렸다는 듯 종혁을 쳐다보았다.
그들로서는 매일매일 쏟아지는 과제를 쳐 내는 것 만해도 벅찼기 때문이다.
"하하."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번 기말고사를 이걸로 대체하려고 하기 때문이야."
"……?"
"연습장 한 장만 줘 봐."
"예! 여기 있습니다."
가장 앞에 있는 생도에게 연습장 한 장을 넘겨받은 그는 그걸 12등분 하더니 뭔가를 적어 접었다.
"조장들 나와서 하나씩 골라."
조별 과제 조장들. 처음 정해진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종혁도 몸을 일으켜 하나를 골랐다.
고민해 봤자 뭔지도 모르기에 대충 골랐다.
"그게 이번 기말고사다."
"……?"
의아해하며 쪽지를 펼친 종혁은 너무도 익숙한 이름에 굳어 버렸다.
"거기 쓰인 범죄자에 대한 행동심리, 범죄심리, 언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과연 그는 동정할 인물인지까지 조사해서 레포트 만들어 봐."
"악!"
설명만 들어도 난해하기 짝이 없는 과제.
생도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종혁도 낯빛이 굳었다.
"인터뷰도 꼭 해 오고. 그것을 위한 주말 외출은 허락한다."
‘인터뷰?!’ 종혁은 다급히 임성원을 봤다.
눈이 마주친 임성원은 씩 웃었다.
"낙장불입."
‘……우라질!’ 종혁은 다시 쪽지를 봤다.
거기엔 ‘한상원’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