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5화>
최기룡이 말없이 넘긴 공문을 받아 든 종혁은 피식 웃었다.
‘이거였구먼.’
나탈리아가 말한 일본 유도협회의 수작.
"아, 죄송합니다."
최기룡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알고 있는 일인가 보군."
"아마 설욕전을 하자고 부르는 걸 겁니다."
"설욕전? 유도? ……아."
2학년 간부후보생도인 종혁을 지칭하는 단어는 따로 있다.
유도 영웅.
초살 괴물.
지상 최강의 사나이.
"아니, 잠깐. 뭐?"
최기룡은 화들짝 놀랐다.
일본의 경찰대학교는 한국과 같이 경찰 간부를 양성하는 경찰대학교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속장 임용 예정자, 간부 승진 예정자, 국가 공무원 채용 시험에 의해 경부보(경위급) 등 간부로 채용된 신임 경찰관 등 각각의 분야에서 필요한 지식, 기능 등의 실무 능력 및 지도 관리 능력을 습득시키기 위한 고도의 교양 기관이다.
즉 그들 중엔 현장 경험이 많은 베테랑 형사도 있단 소리고, 그들로 하여금 종혁을 짓밟겠다는 뜻이다.
순간 열이 머리끝까지 뻗었다.
"아무리 일본 유도협회의 파워가 세다지만,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일본 국기인 유도.
그렇다 보니 유도협회의 파워는 상상 이상이다.
그런 그들이 고작 몇 번 진 것 가지고 애들 싸움을 어른 싸움으로, 아니, 애와 어른을 싸움 붙이려 하고 있다.
"이 쪽바리 새끼들이 진짜!"
최기룡은 공문을 찢기 위해 잡았다.
"됐어! 미국으로 가면 돼!"
종혁이 망가지는 걸 지켜보는 것보다는 미국에 가는 게 훨씬 낫다.
‘워우. 화끈하시네.’?
종혁은 최기룡을 말렸다.
"왜?"
"뒷장을 보시면 아십니다."
"……."
미간을 좁히며 뒷장을 넘긴 최기룡은 결국 공문을 던졌다.
아니, 그러다 못해 쾅쾅 밟았다.
"이 쌍놈의 새끼들이-!"
‘한일 양국 간의 수사 공조가 더 돈독해지기 위해 교류를 요청합니다.’ 즉 종혁을 내놓지 않으면 더 이상의 수사 공조는 없단 소리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도망치는 범죄자보다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은 게 양국의 범죄자 도주 현황이라서 굉장히 치명적이다.
정말 치사한 짓거리였다.
종혁은 방방 뛰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스타일이셨나? 마음에 드는데?’
수사 방법이 훌륭하다 말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최기룡이다.
종혁은 싱긋 웃었다.
"가겠습니다."
"……아니, 됐어. 가지마."
최기룡은 단호히 말했다.
종혁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학장님, 제가 이깁니다."
"뭐?"
"매트 위에서 저보다 강한 놈은 없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 내가 걱정하는 건 놈들이 반칙을 했을 때야."
정식 경기가 아니고, 상대는 온갖 잡수에 능한 베테랑일 게 뻔했다. 종혁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이놈이 다쳐서는 안 돼.’
앞으로 그가 그릴 그림에 큰 역할을 하게 될 종혁이다.
일본의 잔수에 작은 흠집도 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청장은 다음에 해도 되지만 이런 놈은 쉽게 안 나와!’
이번 정권이 이어지면 언제든 노릴 수 있는 게 청장 자리이다.
이런 심정을 모르는 종혁은 그의 걱정에 머리를 긁었다.
같은 최씨에, 같은 파라는 건 의미 없다.
최기룡은 경찰 총장을 노리는 인물이고, 미래에 그 자리에 앉는 인물이다.
오늘 일이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보호를 하려고 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음. 반칙은 제가 더 잘하는데……."
베테랑 형사가 상대다?
이쪽도 베테랑이다.
그것도 형사 생활만 26년 한.
"뭐?"
종혁은 짓궂게 웃었다.
"제가 왜 초살인 줄 아십니까?"
"……아니 설마? 허?"
"그게 아니라 반칙엔 반칙으로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 선수들이 반칙을 많이 하더군요. 주먹으로 치고, 쇄골을 누르고, 팔을 꺾고, 발목을 차고."
"뭐야?!"
"똑같이 갚아 줬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종혁과 상대한 일본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면 엄살을 떨었던 게 생각이 난 최기룡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종혁은 그런 그를 향해 쐐기를 박았다.
"학장님, 별거 아닌 놈들에게 꼬리를 말았단 소리를 듣고 싶진 않습니다."
최기룡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정말 자신 있어?"
"정신 승리조차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정신 승리? ……아. 으하하하핫! 그렇지. 그놈들이 그런 걸 좀 잘하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최기룡은 사납게 웃었다.
"누를 거면 확실히 눌러 버려. 뒤는 내가 봐줄 테니까."
혹여 생길지도 모를 걸림돌을 치워 준다?
더 예뻐할 자신이 있었다.
오늘 이 상황이 비록 종혁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건 시비를 건 일본 유도협회가 잘못이었다.
‘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저만 보면 치를 떨게 할 테니."
종혁도 사납게 웃었다.
* * *
생도 연수 프로그램은 보통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 된 3학년과 4학년 중에서 뽑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이제 막 2학년이 된 종혁이 참가한다.
이에 3, 4학년은 불만을 드러냈지만, 최기룡이 나서서 설명하자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뭐?! 공조 수사를 걸고넘어져? 이 자식들이!’
최기룡은 뒤를 봐주겠다는 말을 지켰다.
"종혁아, 뭐해! 쉬어, 쉬어!"
"그래. 무거운 걸 왜 들어!"
"아니 이런 건 제가 해야……."
이 시기, 후배가 선배 짐을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허! 큰일 해야 될 사람이 이런 작은 일 하는 거 아니야. 뭐 해? 각자 짐은 각자 들어!"
"예!"
순식간에 짐들을 뺏긴다.
종혁 본인의 짐도 뺏겼다.
졸지에 맨몸이 된 종혁은 입맛을 다시며 김포공항의 전경을 훑었다.
지난 5년 동안 국제 대회까지 합하여 수십 번 와 본 김포공항.
이젠 낯설지도 않았다.
"뭐야. 너희 때부터 선후배 수발 문화 타파하기로 한 거야?"
임성원 의원, 아니, 임성원 교수가 다가온다.
이번 프로그램의 인솔자이다.
그는 각자 본인의 짐을 드는 생도들을 흐뭇하게 보았다.
"그래, 이제 타파할 때가 되긴 했지."
아니었지만, 교수가 칭찬하니 모두 입을 다물었다.
임성원 교수는 종혁을 봤다.
그도 최기룡에게 사정을 들었다.
‘이 개놈의 쉬키들!’
애를 어른과 싸움 붙이려는 일본의 작태에 그도 열이 받았다.
"자, 모두 주목. 옷매무새 정리하고."
경찰 간부후보생도는 어디서나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교칙이다.
"긴 말 안 하겠다. 너흰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경찰 간부후보생이다.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도 이걸 잊지 말도록."
"예!"
"그래, 가자."
그렇게 그들은 일본으로 향했다.
* * *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생도들로 뽑았기에 입국은 순조롭게 끝났다.
"어서 오십시오. 일본 최고의 경찰 간부 양성기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경시청 간부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죠!"
제복을 입은 사십대 사내가 양팔 벌려 맞이한다.
경시청.
일본에선 권위와 영향력이 따를 곳이 없다는 수사기관이다.
연쇄살인 정도는 돼야 모습을 드러내는 수사기관.
‘저 청년이 최종혁?’
일본 유도계의 적.
하지만 이젠 덫에 걸린 사냥감에 불과하다.
21살 어린 청년을 만신창이로 만들어야 하는 게 미안하지만.
‘우리를 위해 희생해라!’
일본 유도의 명예 회복을 위해.
‘얼씨구? 숨길 생각을 안 하네?’
지금 누가 화를 내야 하는데.
종혁은 뜨거운 시선에 어이없어했다.
임성원은 불쾌해지는 마음을 숨기며 손을 내밀었다.
"한국 경찰대학교의 교수 임성원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사이토 하지메입니다."
인사를 나누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뗀 종혁은 주위를 둘러봤다.
‘흠.’
깨끗한 건물들이 눈에 띈다.
회귀 전에는 와 보지 못한 곳이라 눈길이 절로 갔다.
"일단 숙소부터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머지 안내는 짐을 푸신 후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숙사로 안내한 안내자는 방문을 활짝 열며 환하게 웃었다.
"여기가 앞으로 여러분이 숙박할 공간입니다. 올해 지어진 신식 건물이지만,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을 위해 특별히 제공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신식이라는 태가 났다.
벽에는 파스텔 톤 벽지가 발려 있고, 장판 대신 마룻바닥이다.
개인 화장실까지 딸려 있어서 돈을 쓴 티가 팍팍 났다.
‘음,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개인 화장실이 있는 것까지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안에 있는 가구들이 좀 작지 않나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종혁과 생도들의 생각을 눈치채지 못한 안내자는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귀한 손님인 여러분들을 위해 이 층 전체를 빌렸으니 편히 쉬십시오. 그럼 두 시간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뚜벅뚜벅!
임성원 교수는 멀어지는 안내자를 일견하며 생도들을 봤다.
"들었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짝지어서 들어가."
"옙!"
크게 대답한 그들은 동시에 한 사람을 봤다.
종혁이다.
"자, 일단 종혁이가 방 하나 골라잡아! 어차피 이 층 전체를 빌려 준다잖아!"
"예? 제가 말입니까?!"
"아, 저 방이 좋겠네. 자자, 들어가시고."
4학년 대표가 등을 떠밀자 종혁은 ‘어? 어?’ 하다가 방에 들어갔고,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쿵!
남겨진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이거 진짜 이겨야겠네."
안 그래도 이기려 했지만, 이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피식 웃은 종혁은 짐을 풀곤 침대에 누웠다.
"……작네."
정강이 반절이 침대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일본 평균 신장에 맞춰 제작된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며 일어난 종혁은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을 했다.
좁은 이코노미를 타고 왔더니 몸이 찌뿌둥했다.
* * *
"후후. 벌써 시간이 됐군. 이제 그놈도 정신을 차리겠지?"
"저희 형사들이 제대로 가르쳐 줄 겁니다."
경찰이 되어 치열한 현장을 거친 엘리트 유도 선수들 가운데, 소수만 가는 곳이 경찰대학이다.
거기다 오늘을 위해 강력반 형사들도 고르고 골랐다.
"어쩌면 무서워서 다음 올림픽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죠!"
"으하하핫! 그래 주면 좋지!"
일본 유도협회 임원들은 지금 그곳에서 어떤 참극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웃음을 터트렸다.
* * *
두 시간이 흐르자 안내자 사이토 하지메가 도착했고, 그들은 건물 투어를 시작했다. 깔끔하고 대학 교정 같은 시설에 종혁은 눈을 빛냈다.
특히 서양 대학처럼 반원형의 강의실이 종혁의 눈길을 잡았다.
‘이런 데서 공부하면 공부할 맛이 나겠는데. ……강의실도 하나 지어?’
종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곳이 저희 경찰대학교의 자랑 무도관입니다! 이곳에서 저희 일본의 경찰 간부후보들이 무도에 관한 함양을 기르죠!"
"핫!"
"흐아앗!"
안에서 터져 나오는 기합 소리가 우렁차다.
안내자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맺혔다.
"오. 벌써 오후 운동 시간인가 보군요. 한번 들어가 보실까요?"
임성원 교수와 3, 4학년들이 종혁을 본다.
너무 눈에 띄는 수작이라 모두 눈치를 챘다.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왜 날 봐요. 들어가 보자고 하잖아요. 와, 일본 형사들이 얼마나 절도 있을지 기대되는데요?!"
능글맞은 종혁의 말에 안도한 그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안내자를 따랐다.
"흐아압!"
콰앙! 터엉!
유도복을 입은 이들에게서 뿜어지는 열기가 그들을 강타한다.
"오."
종혁에겐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 그에게 오십대 초반의 인물이 다가왔다.
팔뚝이 통나무처럼 단단해 보였다.
"오랜만이군."
"어…… 나카무라 감독님?"
올림픽에서 만난 일본 유도 감독이다.
중년인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건방진!’
"기타무라 류이치다."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죄송합니다. 타국 일엔 관심이 없어서. 그래도 이야, 반갑습니다. 감독님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종혁은 당신이 왜 여기 있냐는 눈빛을 보냈다.
"이곳에서 유도를 가르치지."
"오오. 역시 국대 감독님은 달라도 다르구나."
"내가 가르쳐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수준이 높지?"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수작에 어울려 주려는 게 아니라 기술들이 하나같이 날카롭고, 살기가 등등하다.
"일본 유도의 정수는 모두 이곳에 키워지지."
"그래 보이네요."
"어때? 한번 어울려 보는 게."
"제가요? 에이. 제가 그럴 깜냥이 되나요."
"한국 유도 영웅이?"
"어휴. 그런 말 마세요. 운이 좋은 거죠."
종혁은 일단 사양했다.
하지만 감독은 종혁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다들 주목-!"
쩌렁쩌렁한 외침에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중한다.
"한국 경찰대에서 연수를 받으러 왔다! 한국 경찰들의 무술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다들 알지? 이번 기회에 교류를 나눠 보는 건 어떤가!"
"좋습니다!"
"오오!"
미리 이야기된 듯 대다수가 환호한다.
"아니?!"
임성원 교수가 다급히 나섰다.
이미 각오한 일이지만, 일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쪽의 의사도 무시한다.
이건 항의해야 했다.
하지만 종혁이 그런 그를 막았다.
"괜찮습니다, 교수님. 전 괜찮아요."
"최종혁 생도!"
"정말…… 괜찮다니까요."
푸근히 웃는 종혁의 눈알이 사납게 번들거린다.
‘이 새끼들 봐라?’
개수작도 이 정도면 일품이다.
‘몸을 풀길 잘했군.’
심장을 찌르는 살의에 임성원 교수는 화들짝 놀랐다.
‘선수 최종혁은 이런 인물이었나?’
왜 18세부터 국가대표 주장이 되고, 수석 코치라 불렸는지 이젠 알 것 같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다치지 마라."
"제가요?"
코웃음 친 종혁은 류이치 감독에게 다가갔다.
"어이구. 이렇게 반겨 주시니 발을 뺄 수도 없네요. 어쩔 수 없죠. 도복 좀 빌려 주실래요?"
"오! 역시 한국 유도 영웅답게 호탕하군!"
"하하."
감독이 손짓하자 한 사람이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비닐 백에 든 유도복을 들고 왔다.
"탈의실은……."
종혁은 무시하며 그 자리에서 옷을 벗었다.
훌렁!
"헛?"
"음."
신장 194cm, 체중 132kg, 체지방율 8퍼센트 이하.
스테로이드가 단 1mg도 들어가지 않은 내추럴의 극한.
수십 번 꼰 와이어로만 빚은 것 같은 근육은 공포가 들 만큼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몸이 더 커졌어!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류이치 감독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무도관에 모인 경찰 간부후보들도 당황한다.
느릿하게 유도복을 입은 종혁은 매트에 올라가 양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이제부터 박살 날 저들을 향해.
짧은 묵념을 마친 종혁이 류이치 감독을 봤다.
"시작하시죠."
"오, 선봉으로 나서려고?"
‘그럼?’?
뒤에서 지켜봤다가는 선배들이 모두 박살 난다.
경찰 조직의 기둥이 될 그들이 다치는 꼴을 볼 순 없었다.
"몸이 달아서요."
"허헛. 우리 경찰대 유도는 실전을 지향하는데 괜찮겠나?"
대놓고 반칙을 하겠다는 말이다.
종혁은 활짝 웃었다.
"저도 그런 거 좋아합니다. 솔직히 그냥 대련은 밍밍하죠."
류이치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한마디도 지지 않다니! 정말 건방지구나!’
"……이하라!"
"옛!"
족히 140kg은 되어 보이는 거구가 걸어 나온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 거친 피부와 볼에 길게 그어진 흉터는 그가 어떤 수라장 같은 현장을 거쳤는지 말해 준다.
나머지 사람들이 매트 귀퉁이로 물러서서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링을 만들었다.
이하라는 살벌하게 웃었다.
"좋은 경기를 부탁하지."
적의를 숨기지 않는 그의 모습에 종혁은 해맑게 웃었다.
"저 역시."
"시작!"
하앗!
기합을 넣은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퍼퍽! 퍼억!
깃 싸움 중 옷깃을 낚아챈 주먹이 가슴에 꽂힌다.
"음."
‘공수도?’ 짧은 거리에서 타격했지만, 가슴뼈를 부러트릴 듯 힘이 실렸다.
이런 주먹질은 종혁이 알기로 공수도밖에 없다.
"애송이. 사심은 없어."
뻐드렁니가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진짜로 해보겠다는 건데…… 그럼 나도 진짜로 해 주지.’
종혁의 눈에 살의의 불꽃이 튀었다.
"어. 나도."
빠악!
종혁의 발이 상대의 발목을 부숴 버릴 듯 후려쳤다.
유도의 기술이라기보단 킥복싱의 그것.
‘그런 건 너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야!’
"크악?!"
상대는 옆으로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믿지 못할 광경에 모두 벌떡 일어났다.
"유, 유효!"
"큭!"
"뭐 해? 일어나."
"이 새끼가?!"
맞을 거라 생각 못 했는지 선불 맞은 맷돼지처럼 달려든다.
팔을 끌어당긴 종혁은 그대로 꺾으며 매쳤다.
뿌득!
팔꿈치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와 순간 보이는 천장에 이하라는 입을 떡 벌렸다.
콰앙!
"……하, 한판!"
정적이 무도관에 내려앉는다.
"우와악! 최종혁!"
"10초! 초사알-!"
"끄으윽!"
"이하라!"
류이치 감독이 다급히 이하라의 팔꿈치를 살폈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인대가 살짝 놀랐을 뿐이다.
류이치 감독이 찌릿 노려봤다.
‘뭐? 어쩌라고?’
목을 꺾은 종혁은 눈을 부릅뜨는 일본인들을 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 너무 쉽게 끝났는데, 더 상대해 줄 분 없나요?"
일본의 경찰 간부후보들은 팔꿈치를 붙잡은 채 떨고 있는 이하라의 모습에 분노를 터트렸다.
"내가 나가지!"
"아니. 내가!"
종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 다 들어와.’
* * *
콰앙! 터어엉! 뿌득!
업어쳐지고, 메쳐지고, 관절이 꺾이고, 목이 졸린다.
나가떨어진 사람들 전부 저마다 신체 한 부위를 붙잡은 채 끙끙거린다.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풍경에 일본 경찰들의 낯빛이 어두워지고, 임성원 교수와 한국 생도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이야. 역시 실전을 겪은 분들은 다르네요. 많이 배웁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종혁을 손봐 줄 생각으로 가득 찼던 류이치 감독은 연신 식은땀을 훔쳤다.
고르고 고른 100kg 이상이 모두 나가떨어졌다.
그 숫자만 무려 20명.
이제 남은 건 그 이하 체급뿐이다.
"조, 조금 쉬었다 하는 게 어떻겠나. 응? 자네도 지쳤을 텐데!"
류이치 감독은 다급했다.
일단 이 자리부터 해산시켜야 했다.
‘싫은데?’
"에이. 이제야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은데, 뭘요. 전 더 할 수 있습니다!"
종혁은 크게 외쳤다.
"다으음-!"
일본 경찰 간부후보들과 형사들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종혁은 그걸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것들이 어디서 까불어?’
참 교육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