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02화 (102/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02화>

서울의 한 일식당.

정숙이 강요되는 듯한 분위기.

경찰대학교 학장 취임 이후 오랜만에 정장을 입은 최기룡 학장이 붉은 회 한 점을 집어 든다.

"교편 생활은 좀 어때?"

맞은편에 앉은 50대 남성이 말을 툭 던진다.

금테 안경알 속 푸근히 웃는 눈이 비틀려 있다.

"여긴 마구로가 맛있어. 많이 들어."

"벌써부터 귀가 먹은 거야?"

"아, 좋지. 용인이라 조용하지, 공기 좋지, 애들 활발하지. 젊어지는 기분이야. 본청은 좀 어때? 난리도 아니라며?"

80년도 후반 전국을 뒤집은 대구의 햇빛복지원 사건.

현재 한국은 제2, 제3의 햇빛복지원 사건 때문에 난리가 난 상태였다.

뻐꾹새 마을, 대전 장애인 학교, 성화 마을 등.

검찰이 전국의 후원 단체들을 뒤집으며 줄줄이 끌려 나오기 시작했고,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악마의 소굴이었다며 분개하고 있었다.

이에 관련 인사들의 목이 줄줄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중엔 본청 생활안전국장과 정보국장도 있었다.

범죄예방정책과와 생활질서과가 있는 생활안전국.

그리고 종교 단체나 보육 시설의 정보도 모으는 정보국.

눈앞의 장년인이 거쳤던 부서고, 지금도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종혁이 쏘아 올린 공이 이런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아차. 지금은 강남서장이지?"

장년인은 청장 도전을 위해 강남경찰서를 택했다.

부들부들.

"……오도로가 맛있군."

"진짜 별미는 배꼽살이야. 여기 주방장이 기가 막히게 떠."

최기룡 학장은 지그시 내려다봤다.

지이잉. 지이잉.

"대화 중인데 핸드폰도 안 꺼 놓는 건 무슨 예의야?"

말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미안, 미안. 잠시만."

"그냥 받아. 혹시 알아? 뭔 사고가 터졌을지?"

‘사고가 터지길 바라는 거겠지.’ 코웃음을 친 최기룡은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뭐? ……그-래?"

최기룡의 얼굴이 활짝 편다.

장년인은 불안해졌다.

"종혁이랑 어. 임 교수가 FBI를 도왔다고? 그래서 FBI가 감사패를 줬다고?!"

‘뭣? FBI?!’ 뜬금없는 FBI.

하지만 아직 최기룡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 유명 대학 범죄학 권위자들이 어, 교류 신청서를 넣었다고? 우리 경찰대에? 어, 그래. 그래, 알았어. 지금은 일 보는 중이니까 복귀하면 이야기하자고."

전화를 끊은 최기룡은 손을 저었다.

"미안. 우리 최씨의 자랑이 또 사고를 쳤다네. 어휴, 이놈. 포럼 참가하라고 미국에 보내 놨더니만 그새를 못 참고 또 사건을 해결하네."

"사건?"

"뭐라더라? 억울하게 휘말려 사살당할 뻔한 사람을 구했다던가? 그래서 FBI에서 쪽팔리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고 감사패를 줬다네."

"……그래?"

장년인은 별일 아닌 듯 대꾸했지만, 쥐고 있는 젓가락이 떨린다.

그러다 결국 내려놨다.

"쯧. 여기 별로군."

"오도로 맛있다며?"

장년인의 눈이 완전히 일그러진다.

"오도로 말곤 먹을 게 없어. 아, 맞아. 내 정신 좀 봐. 약속이 있는데 깜빡했군."

최기룡은 피식 웃었다.

"그래. 바쁠 텐데 어쩔 수 없지. 연예인들 때문이야?"

연예인은 언제나 경찰의 골칫거리인데, 그들이 몰려 사는 곳도, 출몰하는 곳도 강남이다.

"미안. 다음엔 내가 초대할게."

드륵, 쾅!

문을 거칠게 연 장년인은 구두를 구겨 신으며 사라졌고, 최기룡은 문 옆에 선 채 당황하는 여종업원을 향해 손을 저었다.

"됐으니까 다른 방에 있는 애들 보고 넘어오라고 해 줘요. 아, 이거 새로 세팅해 주시고. 부탁합니다."

"네, 사장님."

여종업원이 정중히 문을 닫고 물러난 후 약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문이 열렸다.

웅성웅성.

언제나 정숙한 일식당에 맞지 않는 소음을 일으키며 4명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경무인사기획관과 광수대 대장, 마약범죄수사대 대장, 그리고 특수범죄수사과 과장 김종두다.

광수대 대장이 힐끔 테이블을 본다.

"손님은 가셨습니까?"

"손님은 무슨."

주제도 모르고 청장에 도전하는 놈이다.

그래도 세력이 제법 커서 골치가 아플 뻔했는데, 종혁 덕분에 시원한 게 한 방, 아니, 두 방 먹였다.

"그리고 손님과 만난다 한들 자네들보다 우선일까. 아, 김 과장은 나랑 처음이지?"

"김종두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아, 알아. 체포의 스페셜 리스트를 모를 리 있나."

‘종혁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지?’ 그것만으로도 합격이다.

"뭐 해. 앉아, 앉아."

곧 화려한 한 상이 들어왔다.

방금 전 그들이 먹었던 점심 특선과는 차원이 다른 요리들.

최기룡은 그들에게 술을 따라 줬다.

"내가 자네들을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대선 때문이야. 내년이면 대선 레이스 시작인 거 알지?"

대선 레이스와 함께 최기룡의 청장 레이스도 시작된다.

경쟁자는 없다시피 하지만, 어떤 이가 끼어들지 모른다.

사자는 사냥을 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최기룡도 이번 청장 자리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일단 내년 첫 사건으로 스포츠 협회 비리면 어떨까 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때?"

‘종혁이 은사가 유도협회 임원이라지?’ 그뿐만이 아니라 국가대표들을 신경 쓰는 종혁이다.

종혁에게 진 빚도 약간이나마 갚을 겸 싹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술을 받는 넷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한편, 일식집을 나선 장년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경찰대에 최종혁이란 놈이 있을 거야. 어, 유도 국대. 철수야 놀자 사건의 그놈. 그놈에 대해 알아봐."

전화를 끊은 장년인은 핸드폰을 높이 쳐들었다가 이내 내려놨다.

"빌어먹을."

*  *  *

험프리 부부의 초대는 마치 ‘미국 가정식은 이런 거다’라는 기준을 세울 만큼 훌륭했다.

‘박영란법이 없어서 다행이지.’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데이지 험프리는 FBI가 탄원서를 쓰기로 해서 양형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었다.

"흐음-!"

인천공항을 빠져나온 임성원 교수가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고향 공기가 최고야. 종혁아, 어떡할래? 사우나에 몸 푹 지지고 김치찌개에 한잔?"

본래는 경찰대학교로 바로 복귀해야 하지만, FBI에게 감사패를 받은 공로로 특별 휴가를 받게 되었다.

오늘이 목요일이니 일요일 저녁까지 복귀하면 됐다.

미국에 있는 동안 느끼해졌던 목구멍을 씻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비록 지금이 새벽이라도 문을 여는 곳은 많았다.

하지만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일이 있어서요. 대신 토요일 어떠세요? 등산하고 파전에 막걸리 한잔."

"좋-지! 약속한 거다!"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너도 푹 쉬고."

임성원 교수가 떠나는 걸 본 종혁은 도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택시!"

고정숙은 왜인지 아침부터 우울했다.

의아해하던 그녀는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이 벌써 그날이구나.’

갑자기 덩치가 컸던 곰 한 마리가 떠오른다.

그렇게 맹수 같으면서도 자신에겐 언제나 강아지였던 곰.

이젠 그 얼굴조차 흐릿해져 사진을 보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다는 게 더 서글프다.

"그러면 안 돼지."

다른 사람은 다 기억 못 해도 그녀 자신만은 기억해야 한다.

그 눈 내리는 겨울날 귤이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몸이 꽁꽁 얼어 가면서도 귤을 사 온 남편을.

그러면서도 이것밖에 구하지 못했다 미안해하던 남편을.

오늘은 그런 남편과의 결혼기념일이다.

고정숙은 고무장갑을 벗었다.

"철수 엄마."

"네, 사장님!"

"나 오늘 일이 있는 걸 깜빡했네. 나 없어도 잘할 수 있지?"

"……그럼요! 걱정 말고 일 보세요."

"고마워. 이 은혜는 갚을게."

"은혜는요! 그런 말 마세요!"

고맙다며 웃은 고정숙은 근처 슈퍼로 향했다.

오늘은 일 년에 딱 두 번 취하는 날 중 하루이다.

부스럭.

소주가 담긴 봉지를 흔들며 집에 들어온 그녀는 흠칫 놀랐다.

신발장에 종혁의 신발이 있다.

"아들? 아들 왔어?!"

얼른 신발을 벗은 그녀는 넓은 거실을 가로지르다 부엌에 다다랐을 때 피식 웃었다.

전기밥솥째 계란과 간장을 한가득 비벼 먹고 있는 아들.

배추김치에, 파김치에, 반찬도 한가득이다.

종혁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어머니를 향해 손을 들었다.

"자랑스러운 아들 왔습니다!"

고정숙의 입가가 꿈틀거린다.

"어쩐 일이야. 미국 다녀오면 바로 학교에 가야 한다지 않았어? 미국에선 별일 없었고?"

"숨 넘어가시겠어. 엄마는 어쩐 일이세요? 뭐 놓고 가신 거 있으세요?"

"……으응. 오늘은 몸 상태가 좀 안 좋아서 쉬려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슬그머니 봉지를 뒤로 숨겼다.

‘왜 하필 오늘 왔을까.’

언제나 강한 모습만 보여 주고 싶은 아들.

이젠 주말밖에 못 보는 아들.

이번엔 미국에 가느라 주말에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 반가웠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남편과의 사랑의 결실이기에 더.

"아파?! 어디? 병원 갈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만 그래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종혁이었다

"아냐. 그냥 소주 한잔 마시고 누워 있으면 돼. 언제까지 쉬는데? 내일 돌아가?"

"일요일까지 복귀하면 돼요. 정말 병원 안 가도 되겠어요?"

"그래? 그럼 내일 갈비찜 해 줄까?"

"……설마 식당에 내려와서 먹으라는?"

"두 번 하기 귀찮아."

"여사님, 저 여사님 아들입니다."

"시끄러워. 먹고 치우기나 해. 엄만 쉰다."

"네, 푹 쉬세요. 좀 있다가 안마해 드릴게요."

종혁은 끝까지 봉지를 숨기며 안방으로 들어가는 어머니를 가만히 응시했다.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한편, 안방 문을 닫은 고정숙은 봉지를 내려놓곤 연애와 신혼 때 남편과 찍은 사진이 담긴 앨범과 보석함을 찾았다.

남편이 준 실가락지부터 경주에 놀러 갔다가 산 기념품 등 원래라면 결혼 예물까지 담겼어야 할 그녀의 보석함. 아니, 보물 상자.

매년 이날이면 꺼내던 것을 찾아 손을 뻗었던 그녀는 당황했다.

"어? 어디 갔지?"

달그락! 달그락!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분명 여기다 넣어 놨는데……."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는 설마 작년에 보고 창고에 놔뒀나 싶어 다시 안방 문을 열고 나갔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으응. 아냐. 찾을 게 있어서. 먹어."

"찾을 거? 이거?"

창고로 향하던 걸음을 멈춘 그녀의 눈에 붉은색 반지 케이스가 들어온다.

케이크와 꽃다발도 놓여 있지만, 그것만 눈에 들어온다.

"그, 그걸 네가 왜?"

종혁은 당황하는 어머니에게 손짓했다.

그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앉아 봐요."

고정숙은 뭔가에 홀린 듯 종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열어 보세요."

……달칵!

"……!"

종혁이 되찾아 온 이후 여전히 그대로 들어 있는 결혼반지 두 개.

그런데 그 아래 다이아몬드가 두 개 더 있다.

종혁은 놀라 쳐다보는 어머니를 보며 머리를 긁었다.

"내일 금은방 가서 바꾸면 될 거예요. 원랜 내가 바꿀까 했는데, 엄마가 바꾸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비록 지금은 돈이 없어 다이아몬드가 가짜지만, 나중에 꼭 진짜로 해 줄게. 결혼해 줘서 고맙다, 정숙아! 여러분, 나 결혼합니다-!’

‘와아아.’

새하얀 면사포를 썼던 그때로 되돌아간다.

양가 모두 반대했던 결혼이라 지인들만 모아서 했던 결혼식.

"……5캐럿이 뉘 집 애 이름도 아니고."

그날, 이 남자다, 비록 허풍선이지만 이 남자를 믿고 알콩달콩 잘 살아야겠다 생각했었다.

떨리는 눈으로 다이아몬드를 응시하던 고정숙은 눈가를 훔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 엄마?"

종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내.

부스럭!

고정숙은 봉지를 들고 나왔다.

"아들. 엄마랑 한잔할래?"

"……라면 끓일까?"

"케이크에 먹자. 소주 안주로 케이크가 좋아."

"그래?"

그렇게 두 모자의 밤이 시작되었다.

반지를 되찾아 왔던 그날보다 더 훈훈했다.

*  *  *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 다시 파릇한 새싹이 피는 봄이 되었다.

이렇게 2002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주위에 겹경사가 생겼다.

새해 벽두부터 유도협회 임원들이 쓸려 나가면서 신성일 감독이 유도협회 부협회장이 됐고, 강철선 검사는 형사부의 부장이 되었다.

-하, 진짜 죽을 것 같습니더. 고3은 원래 이럽니꺼?

현석이도 어느새 고3이 되었다.

그 조그만 놈이 어느새 자라 고3 지옥을 겪는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행님, 갱찰대도 잔디밭에서 기타 치고 술 마시고 그럽니꺼?

대학생의 로망인 잔디밭 술자리.

"그랬다간 벌점이지."

경찰대에서 그랬다간 대번에 벌점에 외출 금지다.

-그래요? 하, 씨 어쩌지?

"시끄러워.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경찰대 안 올 거야?"

-아부지가 법대 가라 카던데…….

"그것도 나쁘지 않고."

현석이 얼른 경찰대에 와서 뒤를 받쳐 줬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검사나 변호사, 판사가 되어도 좋았다.

"네 미래니까 깊이 생각하고 결정해. 나처럼."

-……알겠슴더. 머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좀 더 고민해 보겠십니더. 하 씨, 다음 달이면 월드컵인데 응원도 못 하겠네.

2002년 한일 월드컵.

다음 달이면, 월드컵 시작이다.

-행님은 가서 응원할 거지예?

"나도 못 가."

-예? 와예?

"아니, 갈 수는 있으려나."

-……?

"종혁아-! 출발해야 돼!"

"끊는다. 다음에 또 통화하자."

-예, 들어가시이소!

전화를 끊은 종혁은 정복을 입은 채 버스들 앞에 서 있는 동기들에게 다가갔다.

잔뜩 들떠 있는 얼굴들.

"크! 드디어 우리도 현장 실습을 하는구나!"

오늘부터 3학년 1학기 정기 커리큘럼인 현장 실습 시작이었다.

오늘부터 약 한 달 반 동안 집에서 출근이다.

‘난 어느 서로 배치되려나.’

종혁은 부디 좋은 곳이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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