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36화>
아침 8시 반.
사우나 스킨으로 얼굴을 두드린 과장이 거울을 본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초췌한 얼굴.
"쯧."
땀 냄새를 풍기는 와이셔츠 단추를 잠근 그는 사우나를 빠져나와 회사로 향했다.
"과장님!"
회사 입구에서 뻐끔뻐끔 담배를 펴던 팀원들이 굳은 얼굴로 과장을 맞이했다. 그들도 김 대리가 어떻게 됐는지 알기 때문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과장은 평소처럼 농담으로 다독이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그는 팀원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들어가자."
5층짜리의 큰 건물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사무실로 향했다.
3층부터 5층까지 쓰는 빅 인터내셔널 무역 상사.
총 사원수 35명에, 부서라곤 영업부와 지원부, 자재부만 있는 이상한 회사.
"어? 정 과장님 다시 출근하셨습니까?"
"오오! 그러면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를 성공하신……! 축하…… 흡?"
"하하. 죄송합니다. 그럼."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이들을 무시한 그들은 기이하게 고요한 사무실을 가로질러 그들의 자리로 향했다.
사무실 맨 끝.
천장에 달린 영업 4팀이란 팻말이 그들을 반긴다.
털썩!
먼지 하나 없는 책상에 통장 몇 개를 던진 과장은 사무실을 둘러보다 혀를 찼다.
한 명 빠진 자리가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지.
띠리링! 띠리링!
"영업 4팀 정지만 과장입니다."
-출근했으면 넘어와.
"예. 통장 챙겨서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통장을 챙긴 그는 사원들을 봤다.
"부장님 뵙고 올 테니까 보고서 준비해."
"……다녀오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그는 4층 가장 안쪽 영업부 부장 사무실로 향했다.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니 50대 후반의 단단한 몸을 가진 부장이 정장 재킷을 입다가 고개를 돌렸다.
"……잠은 잤냐?"
울컥!
"괜찮…… 습니다."
"괜찮긴. 곧 뒈지겠구만. 보고서 올리고 반차 써. 아니, 이번 주는 나오지 마."
"……예."
"그래. 그럼 가자."
그들은 5층의 지부장실로 향했다.
똑똑똑!
"지부장님, 영업부 박 부장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니 60대의 노인이 난의 잎을 닦다가 쳐다본다.
과장에게 통장을 넘겨받은 부장이 그 통장을 지부장에게 내밀었다.
투르르.
통장들의 맨 끝장만 살핀 지부장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만큼 엄청난 숫자였다. 올해뿐만 아니라 조직의 역사를 통틀어도 최고 수익이었다.
서울 3지부가 모든 지부들 가운데 매출 톱을 찍는 거다.
고개를 주억거린 그는 서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통장들과 함께 내밀었다.
"보너스 30억이야. 팀원들과 나눠."
30억이란 말에 부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과장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김 대리를 자식처럼 생각했다며? 말이 아닐 속을 돈으로 후려치는 것 같지만 어쩌겠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 돈으로 김 대리 가족 챙겨."
이런 거금을 챙겨 줘도 영업 4팀이 벌어들인 수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된다.
"박 부장은 따로 챙겨 줄 테니 욕심내지 말고."
울컥!
과장은 결국 눈물 한 방울을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부장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수고했어. 점심 먹기 전까지 보고서 올리고…… 음?"
지이잉!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 지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노…… 출?"
-막아!
-씨발! 재껴!
-올라가게 두지 마!
순간 밖을 응시한 지부장과 부장이 과장을 죽일 듯 노려봤다.
경찰이다. 영업 4팀이 복귀한 이 시기에.
"너 이 새끼……!"
콰앙!
지부장실 문이 열리며 웬 남성들이 진입했다.
지부장과 부장 과장은 그들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씹새끼들아."
* * *
픽!
전등 하나만 켜진 공간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천장까지 타일이 붙은 공간. 코를 찌르는 락스 냄새 사이에 숨어 있는 꿉꿉한 피 냄새.
침대에 사지와 머리가 결박되어 눕혀진 김 대리는 다시 웃음을 흘렸다.
"좆같네. 씨발."
그는 이 공간을 알고 있다.
고문실.
대리를 달고 연수를 왔을 때 봐서 안다.
이 공간에 들어오기 싫으면 조직에 충성하고, 배신하지 마라.
그런 의미로 보여 주는 곳이다.
‘왜일까?’
삶의 은인이자 아버지였고, 우상이었던 과장이 은퇴를 시키려 했기에 덤덤히 받아들였지만, 이 공간에 누워 있자 의문이 들었다.
‘회사는 대체 왜 날 은퇴시키려는 걸까?’
아니, 정확히는 왜 고문을 시키려는지 이해가 안 됐다.
덜컹! 끼이익!
딱! 따악!?
‘김 원장?’
이 연수원에서 나무 따위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내며 나타나는 인물은 김길상 원장 한 명뿐이다.
"호. 침착하군. 특이한데?"
보통 저 자리에 누워 있으면 백이면 백 잘못했다고 살려 달라고 다 말하겠다고 발버둥 친다. 처음엔 이 악물고 버티던 놈들도 36시간 안에 그렇게 변한다.
결단코 지금처럼 이렇게 침착한 배신자를 본 적이 없었다.
김 대리는 냉소를 지었다.
"회사의 결정이잖습니까. 뭐든 말할 테니 얼른 은퇴시켜 주시죠. 아, 그 전에 담배 한 대만 좀 주시겠습니까?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대는 괜찮잖아요."
김길상은 미친놈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포기했다면 줘도 상관없을 듯했다.
"그러지. 솔 괜찮은가?"
"그게 아직도 나옵니까?"
김길상은 대답 대신 솔을 김 대리의 입에 물려 줬다.
찰칵! 치이익!
"후우."
생애 마지막 담배라 생각하니 맛이 참 엿 같았다.
김 대리는 킬킬 웃었고, 허공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본 김길상은 구석에 세워진 의자를 끌고 왔다.
그리고 김 대리가 퉤 담배를 뱉자 입을 열었다.
"왜 그랬나?"
"뭘요?"
"왜 회사의 돈을 횡령한 거야?"
"……예?"
미간이 좁혀졌던 김 대리의 몸이 펄떡였다.
"잠깐 내가 횡령을 했단 말입니까? 왜요?"
"……쯧. 자네도 결국 여길 스쳐 간 놈들과 똑같았구만."
이젠 단종되어 아껴 피는 솔 담배가 너무 아까웠다.
"아니, 씨발! 내가 왜 횡령을 하냐고!"
차라리 일이 커질 수 있으니 꼬리를 자르겠다는 거라면 얼마든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어차피 거리를 떠돌다 굶어 죽든, 아니면 깡패 나부랭이가 되든 둘 중 하나가 됐을 삶을 과장이 구해 준 거니까.
회사 덕분에 곰같이 귀여운 아내와 여우같이 잔망스런 자식들도 얻었으니까.
그 은혜를 갚는다 셈 치면 얼마든지 죽어 줄 수 있다. 물론 억울하고 미련이 남을 테지만 은퇴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횡령이라니?
이건 아니다.
이건 억울했다.
"설령 내가 나조차도 모르게 횡령을 했다 쳐도 사실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의 속마음은 어느새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배신이다. 이건 회사가 배신한 거다.
"충성한 대가가 고작 이런 누명이라고?!"
"그래. 그럼 시작하지."
몸을 일으킨 김길상은 고문실 입구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두두두두!
"음? 왜 이렇게 급하게……."
끼아악!
거칠게 철문을 열며 등장한 비닐 앞치마를 걸친 사내가 김길상에게 귓속말을 했다.
"뭣?! 서울 3지부가 노출됐다고?"
그것도 러시아 일을 마친 김 대리를 은퇴시키기 위해 데려온 이때에.
김길상은 다급히 김 대리를 봤다.
"너 이 새끼! 대체 뭔 꼬리를 달고 온……."
일그러지던 김길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막아!
-죽여!
-자료부터 소각해!
시끄러워진 바깥.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리는 게 있다.
터엉! 터터터텅!
귀를 터트리는 게 아니라 묵직하게 두드리는 소리.
총이다. 소음기를 단 총이 발사되는 소리다.
"무, 무슨……!"
말이 안 된다. 작전에서 총을 이렇게 쏠 수 있는 단체가 이곳에 왔다면 벌써 노출됐다고 연락이 왔어야 한다.
그러나 당황도 잠시였다.
"당장 모든 자료 소각시켜! 움직여!"
"예!"
김길상은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내 눌렀다.
꽈아앙! 쿠르릉!
건물을 뒤흔드는 충격.
이내 그는 안심했다. 가장 중요한 자료가 있는 원장실은 날려 버렸으니 말이다.
김길상은 김 대리를 노려보며 갈등하다 빠져나갔다.
그 순간.
퍼엉! 퍼퍼퍼퍼펑!
"컥?!"
앞서 나갔던 직원이 허공에 피를 뿌리며 나자빠졌다.
허공에 까만 빛줄기 같은 것들이 그려진다.
고개를 돌린 김길상은 소총의 총구를 이쪽을 향해 겨눈 채 다가오는 검은색 옷을 입은 무리를 보며 경악했다.
‘특공대? 아니, 아니야.’
하얀색 정장과 선글라스, 마스크를 낀 채 느긋이 다가오는 덩치 큰 사내와 붉은 코트를 입은 서양 여성.
‘……러시아! KGB!’
김 대리가 갔다 온 러시아. 거기서 러시아 정보국을 건드린 거다. 어떻게 찾아왔냐는 의문은 이 상황에서 사치였다.
김길상은 다급히 지팡이를 비틀었다.
차앙!
지팡이 끝에서 치솟는 칼날.
그 순간!
덩치 큰 사내가 권총을 한 손으로 들며 방아쇠를 당겼다.
텅텅텅!
"켁?!"
총포음과 함께 오함마로 두드려 맞은 것 같은 가슴과 머리.
김길상은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충격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뚜벅뚜벅!
김길상을 지나친 그는 고문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결박된 채 어떻게든 이쪽을 보려 노력하는 김 대리의 턱을 잡으며 본인의 마스크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사납게 웃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씹새끼야."
"……아, 아이반?!"
아니, 종혁이다.
김 대리는 경악했다.
"네, 네가 여길 어떻게?!"
* * *
한빛 비즈니스 수련원으로 향하는 길목.
어젯밤 멈춰 섰던 그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선 종혁은 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해가 떠 환한 아침.
저 멀리 산으로 향하는 길이 희미하게 보였다.
또각또각!
"정말 몸통을 쫓지 않아도 되겠어요?"
종혁이 놈들을 얼마나 잡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는 그녀이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산골 깊숙이 숨겨져 있는 아지트이니 무언가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부장을 쫓아 몸통을 확보하는 쪽이 더 확실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김 대리를 발견한 꾀어내기 바빠서, 그리고 만들어진 모형정원에서 김 대리가 춤추는 꼴이 재밌어서 한구석으로 밀어 뒀던 물음.
이후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 물음이 다시 떠올랐다.
"놈들은 왜 돈에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대체 왜일까.
이걸 알지 못하는 이상 몸통을 때려잡는다고 한들 가슴을 태우는 이 불꽃을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쪽을 택한 것이었다.
"아, 그래서……!"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비밀은 믿었던 대상에게 배신당한 놈이 가장 잘 부는 법이죠."
"후후. 그래서 이렇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거군요?"
마치 러시아 마피아처럼 하얀 정장을 입은 종혁.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까지 가린 상태다.
저기 수십명 국정원 요원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김 대리라는 놈이 약간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마더 러시아의 친구답게 영특했다.
만족스럽게 웃은 나탈리아가 글록 권총을 내밀었다.
"탄은 고무탄이에요.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 하잖아요."
싸늘한 쇳덩이가 손아귀에 잡히자 정신이 번쩍 든다.
고무탄이라지만 가까이에서 쏘면 살상도 가능한 무기.
탄창을 확인한 종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권총을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복수의 불꽃에 휘발유를 쏟아 넣었다.
퍼엉! 화르르륵!
까드드드득!
-칙! CCTV 해킹 완료됐습니다.
때마침 들리는 무전.
"후우. 출발하죠."
"후후후."
더 만족스럽게 웃은 나탈리아는 러시아 요원들과 한국에서 작전을 펼치려면 어쩔 수 없이 공조해야 하기에 부른 국정원 요원들을 보며 허공 위로 원을 그렸다.
부르릉!
그들을 태운 차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 * *
-감시 초소 무력화 완료.
치밀한 조직답게 CCTV뿐만 아니라 감시 초소까지 숨겨 두었다.
"후욱! 훅!"
점점 가까워지는 목적지에 머리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제 아주 잠시다.
몇 초, 아니 몇 분 뒤면 모든 게 끝난다.
‘정말 끝이다.’
종혁은 앞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저 멀리 위, 자그맣던 문이 점점 커져갈수록 악물어지는 힘이 강해졌다.
하지만 그들을 태운 차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콰앙! 콰자작!
쇠문과 함께 정문 감시 초소를 박살 내며 돌입한 차가 건물을 향해 달려간다. 건물에서 몽둥이나 칼 따위를 든 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인다.
보통 경찰들은 여기서 멈춰 선다.
하지만…….
"밀어 버려."
싸늘한 나탈리아의 명령에 그들을 태운 승합차가 놈들을 덮친다.
"씨, 씨발!"
"피해!"
쾅! 텅텅!
피하지 못하고 차에 부딪쳐 날아가는 몇 명. 그와 동시에 차가 멈춰 서며 드르륵 문이 열렸다.
그에 놈들은 다시 달려들었다.
"씨발! 죽여 버려…… 어?"
종혁은 달려드는 놈을 향해 겨눈 총을 겨눴다.
용서가 필요 없는 놈들.
자비가 사치인 놈들.
종혁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죽어서도 반성하지 마라, 이 개새끼들아."
퍼엉!
귀를 울리는 총포음.
소음기를 달았어도 소리가 귀를 꿰뚫는다.
‘역시 영화는 다 구라…….’
퍼퍼퍼퍼퍼퍼펑!
"크악! 아아악!"
"초, 총? 씨발! 뭐야, 저 새끼들!"
"몰라! 막아!"
"들여보내면 안 돼!"
"자료부터 소각해!"
누군가는 건물 안으로 도망치고, 누군가는 달려든다.
솨악!
"최!"
느려진 시간 속, 종혁은 이쪽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오는 쇠파이프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퍼-퍼-엉!
고무탄을 맞은 쇠파이프가 튕겨져 나간다.
퍼퍼펑!
"크아악!"
전술 사격. 모잠비크 드릴(Mozambique Drill).
쇠파이프를 던진 놈, 달려든 놈에게 사이좋게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씩 박아 넣은 종혁은 새 탄창을 꼈다.
"왜요?"
"……아니에요. 가요. 일단 이것부터 쓰고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방탄 헬멧을 받아 든 종혁은 머리에 눌러썼다.
뚜벅뚜벅! 또각또각!
사위가 총소리와 고함 비명으로 가득한데 그들이 걷는 소리는 또렷했다.
그렇게 로비에 진입한 그들은 서로를 봤다.
"위? 아래?"
"아래에서부터 훑고 올라가죠."
그저 촉이 그렇게 가리켰다. 지하부터 훑자고.
보통 고문실 따위의 공간은 지하나 외진 곳에 있는 법이니까.
"국정원이랑 위에서부터 훑고 내려와. 자료 꼭 챙기고."
"러시아에 영광을!"
빅터가 국정원 요원들과 함께 계단으로 향하자, 나탈리아는 종혁을 보며 싱긋 웃었다.
"같이 가요."
"그러죠, 뭐."
둘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향했다.
러시아 요원들이 앞장서서 총구를 들었다.
뚜벅 뚜벅!
그렇게 계단을 모두 내려온 종혁은 싱긋 웃었다.
"그렇지."
한 놈이 달려 나온다.
"이러언 씨바알……."
그 순간.
오싸악!
뭔가를 감지한 종혁이 다급히 나탈리아를 덮치며 주저앉았다.
이건 본능이었다.
그와 동시에.
꽈아아아앙!
하늘을 찢는 굉음과 건물을 뒤흔드는 충격!
종혁과 나탈리아는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이상 없어?!"
-이상 없습니다!
-크! 살아 있습니다! 피해 없음!
짧은 순간. 고작 1, 2초.
그사이 정신을 차린 지하에 진입한 사람들 전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다.
퍼엉!
한 요원의 총에서 발사된 고무탄이 달려오다 멈췄던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죽어, 이 새끼야!"
하마터면 동료가 죽을 뻔했다.
종혁은 그가 달려 나왔던 공간에서 걸어 나오는 노인을, 지팡이를 비틀며 송곳 같은 걸 튀어나오게 만드는 노인을 향해 가슴에 두 방, 머리에 한 방 고무총탄을 꽂아 넣었다.
"그냥 뒈져."
이는 놈들이 날붙이 따위만 들고 있기에 폭발물을 예상 못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며 화풀이다.
그렇게 김길상을 침묵시킨 종혁은 그가 걸어 나온 문을 통해 들어갔다.
그리고 씩 웃었다.
‘빙고.’
사지가 결박되어 침대에 묶여 있는 김 대리.
역시나 아직 살아 있었다.
뚜벅뚜벅 걸어간 종혁은 그 턱을 억세게 잡으며 본인의 마스크를 잡았다.
‘진짜. 정말. 진짜 이렇게 보고 싶었다.’
정말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누가 복수는 허망하다 했던가.
이렇게 짜릿하고 만족스러운데.
종혁은 흥분으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생각조차 안하며 마스크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경악에 굳어 가는 그 눈을 보며 사납게 웃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씹새끼야."
"……아, 아이반?! 네, 네가 여길 어떻게?!"
"내가 내 돈 떼먹고 튀면 가만 안 둔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