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79화>
"됐어요, 됐어. 그냥 가져가요."
"할머니. 매번 이러시면 부담스러워서 여기 못 와요. 그러길 바라세요?"
"끄, 끄응…… 어휴. 알았어요. 암튼 고집이 쇠고집이야."
"하하. 그럼 수고하세요."
양손에 과자며 음료수며 한가득 든 채 종혁과 김종두 과장을 힐끔 본 삼십대 중반의 중년인은 다시 차를 타고 멀어졌고, 종혁은 애써 무심함을 가장하며 그런 차를 끝까지 응시했다.
그러다 어색하게 웃으며 할머니를 봤다.
"이 동네 주민이신가 봐요?"
"아니요. 웬걸요. 여기 마을에서 저기 오곡리 가는 길에……."
무심결에 답하던 할머니가 입을 꾹 다문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김종두는 대답을 재촉했다.
"가는 길에?"
"……큼. 교회를 지으러 온 목사님이세요."
"교회요?"
순간 종혁의 눈이 번뜩였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김종두는 말을 이어 갔다가 아차 했다.
"이런 외진 곳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됐어요. 내 곧 구워 줄 테니 그거 먹고 가요."
"아, 아니 할머니!"
"흥!"
할머니는 매정히 몸을 돌려 안으로 사라졌고, 김종두는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던 손을 내렸다.
그의 눈은 어느새 가늘게 떠져 있었다.
"나만 저 반응이 이상하다 느껴지냐?"
"아니요."
절대 그렇지가 않다. 이상할 수밖에 없을 거다.
놈들이니까.
‘하. 그래. 이제야 모든 게 맞아떨어지네.’
처음 철량리에 들렀을 때 간 식당의 새벽지와 장판, 낚시용품 가게에 있던 고가의 물품, 모두 새로 바꾼 지 얼마 안 된 슈퍼.
그리고 각 집마다 서 있던,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던 자동차들과 갑자기 바뀌었다는 김덕술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들까지 모두.
이 이질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마을의 풍경이 이제야 모두 이해가 된다.
‘그래. 여기가 너희의 새로운 먹잇감이구나.’
그리고 그 선두에 김덕술이 있다.
빠드득.
속으로 이를 간 종혁은 두 눈에 푸른 불을 피워 냈다.
‘찾았다, 이 개새끼들아.’
* * *
부우웅.
달리는 검은색 중형차 차 안.
"김 권사."
방금 전 할머니와 웃는 낯으로 대화를 나눴던 중년인의 목소리에 섬뜩한 기운이 담긴다.
그에 운전대를 잡은 이십대 후반의 사내가 백미러로 그를 힐끗 본다.
"예, 부목사님."
"방금 두 놈 봤지?"
"슈퍼 평상에서 술을 마시던 늙고 젊은 두 놈 말입니까?"
"그중 젊은 놈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말이야."
분명 처음 보는데도 낯이 익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사내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김덕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예. 쉬세요, 김 집사님."
전화를 끊은 그는 입을 열었다.
"서울에서 낚시를 하러 온 회사원이랍니다."
"이 겨울에 여기까지? 정신이 나간 놈들이군."
"한두 명이 아니잖습니까."
부목사라 불린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잠시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신경을 끈 그는 다시 성경책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그게 읽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곱씹고 곱씹어도 새로운 거야. 정말 어떻게 너처럼 신실하지 않은 놈이 이 중요한 일에 합류한 거지?"
"저도 교회 다니니까요. 다만 여자 꼬시러 갈 뿐이죠."
"빌어먹을 인사과 새끼들."
"설마 지금 본사 욕을?"
"닥쳐."
피식 웃은 사내는 이내 낯빛을 굳혔다. 공사가 중간 정도 진행된 거대한 부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족히 만 평은 될 법한 거대한 부지와 그 가운데 우뚝 솟은 커다란 교회 건물.
스르륵!
차를 세우고 내린 둘은 쿵딱쿵딱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고, 그런 그들을 향해 안전모를 쓴 소장이 달려왔다.
"아이고. 또 오셨습니까, 부목사님!"
"하나님과 예수님이 거하실 곳인데 당연히 시간 날 때마다 찾아와야죠. 거기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실 신도님들을 위한 곳이기도 한데요."
"정말 신실하십니다. 대단하세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덕분이죠. 아멘."
"아멘."
은은히 웃은 부목사는 다시 공사 현장을 둘러봤고, 소장은 딱 파산하기 직전에 찾아온 이 하나님의 은혜에 흐뭇이 웃었다.
눈에 젖은 흙먼지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 * *
‘아니야. 그냥 먹잇감이 아니었어.’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도 큰 공사였다.
‘여기가 놈들의 새로운 연수원이었던 거야! 그리고……!’
"조, 종혁아! 이거 봐라. 이거 지금 나만 이상한 거 아니지? 그렇지?"
월요일, 잠시 도시로 나와 PC방을 찾은 김종두 과장은 서울에서 보내 준 철량리 주민들의 입출금 거래 내역을 보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철량리 마을 주민 전부에게 매달 몇 십, 몇 백만 원의 돈이 입금되고 있다.
특히 김덕술은 주민들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이의 2배에 가까운 돈을 받고 있다. 마치 넌 특별하다는 듯.
종혁은 이를 아드득 깨물었다.
‘다단계 투자 사기!’
그 끔찍한 놈이, 시뮬레이션을 끝낸 그 악마가 철량리 마을 주민들을 잡아삼키고 있었다.
그들이 PC방을 나온 건 해가 거의 저문 뒤였다.
"후우. 일단 정리해 보자."
차에 타 담배를 문 김종두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일단 이 종교법인 하느님의 은혜라는 놈들이 철량리 마을 주민들에게 돈을 주고 있어. 헌금 반환이란 명목으로. 왜……?"
정리를 하려고 했지만 처음부터 막힌다.
종교 단체가 신도들의 헌금을 반환한다?
이것부터 말이 안 된다.
"방금 거래 내역 못 보셨어요? 이자를 지불하는 겁니다."
"넌 씨발 천만 원 맡기고 매달 20만 원씩 지불받는다는 게 말이 되냐?!"
매달 20만 원, 일 년이면 240만 원이다.
이자율이 24퍼센트인 거다.
경제 성장이 급상승 하던 80년대에나 가능하던 이자율.
"그분들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는 호구들이야? 이게 사기가 아니고서 말이 안 되잖…… 사기?"
"예, 사기죠. 사기 맞습니다."
"그래. 이건 사기가……."
말을 하다 입을 다문 김종두가 묘한 눈으로 종혁을 봤다.
"불어."
"일본과 러시아를 흔들었던 사기 수법입니다. 일명 다단계 투자 사기."
"……씨부럴. 이름만 들어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네. 설계도는?"
"이 사기는 이렇게 이자 형식으로 매달 막대한 이자를 지불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걸로 마을 사람들이 김덕술을 다르게 대하기 시작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아마 놈들은 김덕술을 내세워 사람들을 모아들인 것일 터였다. 마을 사람들은 김덕술 덕분에 돈을 벌게 됐으니 그를 다르게 대하게 된 것이고.
"그렇게 환심을 얻어서 더 많은 투자금을 끌어낸다?"
"돈을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사람을 끌어들이면 끌어들일수록 이자를 많이 가져가는 구조니까요."
"그래. 이자를 더……? 잠깐, 잠깐만! 그렇게 되면?!"
"예. 그렇기에 결국 있는 돈, 없는 돈뿐만 아니라 지불받던 이자까지 모두 꼬라박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돈이란 악마에 홀려 늪에 잠기는 거다.
"그러다 펑 사라지는 거죠. 모든 돈을 들고."
"그러면 말이 안 되잖아! 이 새끼들은 공사를 하고 있다고! 그 넓은 부지를!"
화륵!
종혁의 눈에 불이 붙었다.
"돈이 아니라 철량리를 삼키려는 게 목적이라면요?"
이곳 강원도에서 종혁이 나탈리아의 도움을 받아 부숴 버렸던 한빛 비즈니스 수련원, 아니 회사라 불리는 조직의 연수원.
진입로에만 CCTV를 설치했다가 대처가 늦어져 털렸던 놈들이 똑같은 짓을 반복할 리는 없었다.
‘철량리 주민 전체를 CCTV로 만들려는 거야.’
외부에서 그 교회 부지로 진입할 수 있는 진입로는 오직 하나, 철량리를 거치는 것뿐이다.
워낙 외진 곳이라 외지인이 들어오면 무조건 들킬 수밖에 없는 시골 마을.
이보다 완벽한 감시의 눈은 없을 터였다.
"왜 일을 굳이 그렇게…… 사이비? 사이비!"
김종두 과장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이 새끼들 지금 자기들만의 마을을 만들려는 거지? 그렇지?"
"아마도요."
그렇게 만들 수법은 다양하다. 김종두의 머릿속에서도 벌써 몇 가지가 떠오른다.
사이비가 제일 잘하는 일이 뭐던가.
바로 사람을 세뇌해 열성적인 신도로 만드는 거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모여들었던 마을 사람들이지만, 세뇌를 당한 이후에는 오히려 돈을 뱉어 내기 시작할 터였다.
그럼 철량리 전체가 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거다.
"그래, 씨발! 이래야 말이 되지! 와, 씨발!"
신세계다. 김종두는 세상에 이런 사기가 존재하고, 이런 사기를 이런 방식으로 쓸 수 있다는 것에 환멸을 넘어 경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기도 이 정도면 예술이었다.
"그런데 잠깐만. 그런데 어째서 김덕술을 앞세운 거지?"
김덕술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들을 도왔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모종의 거래가 오간 것은 분명할 터.
중요한 건 어째서 그들이 김덕술을 택했느냐다.
김덕술은 마을 사람들과도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으며, 쉽게 통제가 될 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즉, 거래의 대상으로는 결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한 김종두의 의문에 종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협박을 받았을지도 모르죠."
"협박?"
"……김덕술이 저지른 범행을 놈들이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 협박을 했다면 김덕술은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혹여 정말 도망친 건 아닐까 작은 희망을 품었던 종혁은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김종두도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네."
이 악의 사슬을 끊어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종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유경순 씨를 찾아야합니다. 무조건."
그래서 그녀를 살해한 범인이 김덕술임을 밝혀야 한다.
* * *
처음 의심했던 김덕술과 낚시용품 사장 사이에 있던 비밀.
혹여 사장이 김덕술의 범행에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던 의심은, 그 조직의 놈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힘을 잃었다.
이젠 산과 들, 바다뿐만 아니라 간이 화장터와 가축들에게 줄 사료를 만드는 분쇄기까지 모두 뒤져야 하는 거다.
단둘이서.
아직은 공개 수사로 돌릴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
"뭐? 산?"
-예! 김덕술 오촌 당숙모 명의로 된 산이 있습니다! 유산으로 넘겨진 건데…… 세금이 이 새끼 통장에서 나가네요? 이 할머니는 자식도 없고요.
종혁과 김종두는 서로를 쳐다봤다.
"주, 주소는! 주소는!"
-입 아프게 뭘 물어요. 그 근처지.
"주소 날려!"
둘은 다급히 차키를 챙겨 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다 어떤 생각이 떠오른 종혁이 다급하게 김종두를 잡았다.
"잠시만요!"
"왜!"
"우리 이거 흘리죠."
"흘리다니…… 히야, 이 대가리 좋은 놈. 넌 뭐 아이디어가 초 단위로 생겨나냐?"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이다, 짜샤."
씩 웃은 종혁은 김종두의 손에 203호 키를 맡겼다.
"좀 이따가 내려오세요."
종혁은 차키를 챙겨 들며 아래로 내려가 김덕술을 찾았다.
김덕술은 웬일로 펜션 뒤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니, 웬일로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씻지 않은 건지 고약한 냄새가 나는 김덕술. 몸을 명품으로 치장해 봤자 몸이 쓰레기니 쓰레기 냄새밖에 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뭐요?"
"죄송하지만, 뭐 좀 여쭙고 싶어서요."
"아, 더럽게 귀찮네. 뭔데?"
"혹시 근처에 오를 만한 산이 있을까요?"
움찔!
역시나 예상한 그곳인 것 같다.
대번에 입질이 오고 있었다.
"제가 산을 좋아해서요."
종혁은 최대한 선량하게 웃었다.
그러자.
"산은 무슨 산! 너 미쳤어? 죽고 싶어?!"
왜일까. 죽고 싶어? 이 말이 내가 널 죽일 수도 있다는 협박처럼 들리는 건.
"예? 아, 아니 왜 화를……."
순간 아차 한 김덕술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 이 겨울에, 눈조차 녹지 않은 산을 오른다는데 큰소리가 안 나올 수 있겠어? 그러다 죽으면! 어? 그 시체는 누가 치우고!"
"제가 왜 죽습니까! 거 듣자 하니까 말 이상하게 하시네!"
"뭐 이 새끼야?!"
"새끼? 하……! 야, 이 씨발 놈아. 내가 어리다고 만만하게 보이냐? 어?"
종혁은 한 손으로 김덕술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고, 반항도 못한 채 들어 올려진 김덕술은 깨갱 할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내기엔 종혁의 얼굴이 너무 흉악하게 구겨져 있었다.
"아, 아니 그러다 다치면 동네에 경찰 오고, 구급차 오고 그러니까……."
"좆까, 씨발 새끼야. 나이 많은 어른이라고 계속 예예 해 줬더니 좆도 아닌 새끼가 지랄을 하네? 아오, 씨발. 이걸 어떻게 씹어 버리지?"
"야! 최 사원-! 너 거기서 뭐해, 이 새끼야! 이 새끼가 먼저 나가더니 시동도 안 켜 놨네?"
"죄송합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너 씨발 앞으로 내 앞에 기웃거리지 마라. 확 창자를 뽑아 버릴 테니까."
던지듯 놓아 버린 종혁은 다급히 김종두에게 뛰어갔고, 바들바들 떨던 김덕술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종혁이 두려운 게 문제가 아니었다.
"씨발-! 절대 가지 마! 알았어? 난 분명히 경고했어!"
종혁은 돌아보지도 않고 중지손가락을 폈고, 입술을 깨문 김덕술은 다리를 달달 떨었다.
"어쩌지? 정말 저러다가 들키면……."
번뜩!
"그럴 순 없지."
두 눈이 위험하게 빛난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빈병들을 걷어차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왔을 때 그의 손엔 위험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 * *
"여기지?"
"예, 여기 맞습니다."
이 시기 네비게이션도 완벽한 게 아닌 데다, 지도에도 길이 나와 있지 않아 헤매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뭐 아니면 이 근처 산을 모두…… 맞는 것 같네요. 이 산."
종혁은 저 앞에 세워진 벤츠를 가리켰고, 김종두는 피식 웃었다.
"올라가시죠."
"그러자."
벤츠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니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둘은 슬렁슬렁 위로 올라가며 혹여 옆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지를 살폈다.
그렇게 산의 절반쯤 올라갔을 때였다.
꽈아앙!
‘흡?!’
"헉!"
둘은 반사적으로 옆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와! 씨발, 얼른 나와!"
총을 챙겼어야 된다며 와락 얼굴을 구긴 종혁과 김종두는 서로를 보며 수신호를 날렸다.
내가 나가겠다, 아니다 내가 나가겠다 둘은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그 싸움은 종혁이 먼저 나가면서 종결이 났다.
‘저 씨발 놈이!’
"쏘, 쏘지 마세요! 나갑니다!"
"……뭐야, 아까 그 새끼네? 난 또 멧돼지인 줄 알았잖아."
그렇게 말한 김덕술의 입이 주욱 찢어졌다.
"그런데 이 산은 어떻게 왔어?"
"도, 동네에 물어보니까 길이 난 산은 몇 개 없다고 해서……."
"아, 그래? 그렇다 말이지."
뭔가 좀 이상했지만, 술에 취하고 종혁에게 감정이 많은 김덕술은 그걸 느끼지 못했다.
부글부글 끓는 화에 머리가 뜨거워질 뿐이었다.
철컥!
"뭐, 뭡니까! 왜 이러세요!"
"왜? 아까처럼 지껄여 보지? 뭐? 창자를 뽑아?"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종혁이 허리를 숙이자 김덕술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걸린다.
"그래. 그렇게 숙이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다음부턴 어른이 앞에 있으면 꼭 그러고 다녀. 그리고 여긴 사유지니까 절대 오지 말고. 거기 다른 양반도 나오쇼!"
"……."
"푸흐흐. 거참 서울 양반이라서 그런지 겁이 많네."
한껏 조소를 흘린 김덕술은 몸을 돌려 다시 위로 올라갔고,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김종두가 걸어 나왔다.
빠아악!
"큽?!"
종혁은 박살 날 것 같은 정강이뼈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반항을 하진 못했다. 김종두가 정말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 좀 이따가 보자."
"……죄송합니다."
"아오. 씨발."
몸을 돌린 둘은 모든 신경을 등 뒤로 돌린 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둘의 표정은 어느새 살벌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정말 이 산이 맞네요."
"어, 그래. 딱 봐도, 아니 그냥 여기다."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은 하나다.
"공개 수사로 돌리자."
"옙!"
고개를 돌린 종혁은 입술을 뒤틀었다.
"내일 보자, 씹새끼야."
"넌 오늘 보고, 개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