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81화 (18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81화>

54. 2005년

술을 주욱 들이켠 김종두 과장이 입을 뻐끔거린다.

너무 답답해서 아직 근무 시간임에도 술을 마셨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와! 와아아!"

콰앙!

테이블을 내려 친 김종두는 이를 갈았다.

"이 새끼들은 대체 뭐하는 새끼들이지?"

놈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부지 공사는 중단됐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종교 법인도 폐업했다. 이에 놈들의 법인 주소로 찾아가 보았지만 거긴 그냥 어린이집이었다.

게다가 철량리 마을 주민들이 헌금한 돈도 전부 돌려줬다.

여기까지가 김덕술이 검거되고 단 하루도 안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 막 놈들의 뒤를 쫓으려고 했던 이들로선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종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김덕술을 구하려 들 줄 알았는데…….’

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그 조직. 그래서 꼴아 박은 돈이 많기에 혹여 그러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너무 단호한데…… 나 때문인가?’

이 치밀하고도 단호한 철수와 한빛 비즈니스 연수원 사태가 연관된 것 같은 건 아마 억측이 아닐 거다.

놈들은 더 조심스러워 진 거다.

안 그래도 조심스럽고도 치밀한 놈들이.

"골치 아프네."

"그러게. 이놈들을 어디서부터 찾아야지?"

"일단 그쪽부터 뒤져 봐야죠."

"강원경찰청?"

"정확히는 경조의 말을 무시했던 유경순 씨 실종 사건의 담당 형사요."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이 형사는 용의선상에 오른 거다.

"감찰을 움직여야겠네. 그렇게 해서 뭘 알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이렇게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한 놈들이 단서를 남겼을까.

"작은 희망이라도 걸어 봐야죠."

"부목사나 김 권사라는 놈들 말고 다른 몽타주를 딸 수는 있을지."

종혁이 다시 따라 준 술을 주욱 들이켠 김종두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시게요?"

"김덕술 이 새끼 면상 구기러."

"아하?"

아마도 놈들이 구해 줄 걸 믿고 있을 김덕술.

놈들만 쏙 빠져나갔다는 걸 알면 얼굴이 구겨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거다.

"아, 그런데 이 경우에 그 부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글쎄요. 아마 그대로 남겨지겠죠."

아마 김덕술이 증언을 한다고 해도 수사를 진행할 수는 없을 거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피해자도 나오지 않았고, 김덕술의 증언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으니까.

"그럼 그 부지는 결국 공사가 중단된 그 상태 그대로 남게 된다는 거네."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흉물스러워질 거다.

"자업자득이라고 봐야겠죠."

마을 주민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유경조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줬다면 놈들이 그런 걸 세울 수 있었을까.

아마 어그러졌을 확률이 크다.

결국 돈의 유혹에 넘어간 마을 주민들의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했다.

"아무튼 저도 얼른 먹고 갈 테니까 먼저 재미 보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라. 나 그렇게 의리 없는 놈 아니다."

김종두가 먼저 식당을 떠나자 종혁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차에 들어가 특수한 핸드폰을 꺼내 나탈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예요. 어떻게 됐어요?"

종혁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종혁은 부목사라는 놈을 발견한 즉시 나탈리아에게 연락했었다.

*   *   *

이틀 뒤, 놈들의 거짓 아지트 주소인 어린이집 근처.

"……."

며칠 전 크게 화재가 나서 전소가 된 화재 현장, 교회가 있던 자리에 선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이곳이다.

놈들을 추적한 나탈리아가 말한 곳이자, 김 권사란 놈의 마지막 발신자 위치가.

‘웃긴 새끼들.’

교회를 세운다고 진짜 기독교인으로 변장을 했다.

폐허를 응시하던 종혁은 이 동네 주민에게 사진을 보여 줬다.

"이분들이 여기에 계셨다는 게 맞다는 거죠?"

"네, 그럼요! 어휴, 진짜 어쩐데?!"

"아프리카로 선교 활동을 하러 가셨고요? 교회 직원들까지 모두?"

마을 주민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불이 났는데도 연락이 안 된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주민을 일견한 종혁은 소방공무원을 봤다.

"화재의 원인은 나왔습니까?"

"일단 합선에 의한 화재로 보이는데…… 발화점이 여러 곳이라서 좀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종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협조 감사합니다. 더 나오는 게 있으면 이곳으로 연락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충성."

"충성."

소방공무원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도 자리를 뜨자 종혁은 김종두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과장님. 김덕술이 말한 김 권사란 놈의 마지막 발신자 위치에 왔는데, 여기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뭣?!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현재 기술력으로는 핀 포인트 탐색이 아니라 반경 몇십 미터 안 정도로 어림잡아 탐색되는 게 고작인 위치 추적.

"반경 내에 수상한 곳이 여기뿐이고, 주변 탐문 결과 화재가 났던 시각이 김덕술이 검거되고 3시간 이후 라서요. 이놈들 알아본 주민도 많고요."

-……그럼 거기 맞네. 뭐 좀 구할 수는 있겠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구하면 다행일 것 같은데요?"

그래도 목사 등 이 교회에서 일했다는 이들의 몽타주 몇 개는 구할 수 있었다.

-오! 그건 다행이네!

‘글쎄요. 아닐걸요?’

김 대리를 통해 알게 됐다.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어그러지면 그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얼굴과 신분으로 재탄생된다는 걸 말이다.

아마 지금쯤 놈들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조직의 손길이 닿은 성형외과의 수술대 위에 누워 있을 것이다.

-알았어! 곧 과수대 출발시킬 테니까 넌 복귀해!

"예. 충성."

전화를 끊은 종혁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폐허를 가만히 응시하다 차로 향했다.

‘4768, 3348…….’

혹시라도 감시자가 있을까 근처에 세워진 모든 차량과 사람들의 얼굴을 외우며.

차에 오른 종혁은 방금 외운 것들을 모두 기록한 후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놈들은요? 여기서는 아프리카로 튄다고 말해 놨던데요."

차량 번호판이 들통나고, 그 부지에서 머문 시간이 제법 된 순간 놈들은 나탈리아의 손아귀 안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전화기 너머 나탈리아가 피식 웃었다.

-아프리카는 모르겠고, 중국으로 향했어요.

"중국…… 괜찮겠어요?"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나라, 중국. 러시아와 각을 세우는 중국이기에 살짝 걱정이 든다.

-최. 나예요.

"이런, 미안합니다."

-다신 그런 말 하지 마요. 방금 속상할 뻔했어요.

종혁은 나탈리아를 달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러다 겨우 진정시킨 그는 차 시트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이놈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포기할 줄은 몰랐네요."

놈들의 뒤를 바짝 쫓고 있긴 했지만, 놈들이 이 새로운 연수원을 완공했을 때 엮일 다른 조직원들을 생각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저 역시…… 음? 뭐라고? 알았어. 바꿔 봐. 최, 김 대리가 할 말이 있다네요.

"그래요?"

종혁의 눈이 빛났다.

김 대리. 한때는 이 조직의 조직원이었지만, 지금은 적극 협력하는 정보원이다.

현재는 그 부목사란 존재가 나타난 후 복역 중인 러시아 교도소에서 외출을 허가받은 상태다.

곧 김 대리가 전화를 넘겨받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종혁은 상황을 설명했는데, 돌아온 답이 꽤 의미심장했다.

-흠. 역시 그러기로 한 건가…….

종혁은 눈을 빛냈다.

"아는 게 있다면 얼른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그 전에 하나 묻겠습니다. 혹시 당신은 유명한 경찰입니까?

종혁은 아직 자신이 경찰이란 걸 밝히지 않은 상태다.

아니, 김 대리는 아직도 종혁과 아이반이 같은 인물이란 걸 모르는 상태다. 이번 일도 러시아 정보국과 연관이 있는 한국의 경찰로 소개했다.

"아마? 언론에 몇 번 거론됐으니까."

-그래서 철수한 겁니다. 당신을 잘못 건드리면 꽤 많은 이들이 회사를 찾게 될 테니까요.

아무리 연수원이 중요하다고 한들 회사가 들통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게 김 대리의 설명이었다.

‘그런 거였나.’

맥이 풀릴 만큼 단순한 이유였다.

그러다 종혁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렇다면 그 말은 내가 유명하지 않았다면……."

-백 퍼센트 당신은 실종됐을 겁니다. 그리고 김덕술도 손쉽게 빼냈겠죠.

섬뜩!

종혁은 순간 치미는 욕설을 겨우 눌러야 했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경고를 위해 어린아이마저 잔인하게 죽이려 드는 놈들이라면, 쫓아올 경찰 하나둘쯤 묻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결국 회귀 전의 난 유명하지 않았단 소리군.’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에 종혁은 울컥 끓는 화를 애써 누르며 말을 이어 갔다.

"즉, 놈들 입장에선……."

-회사 입장에선 횡액을 당한 셈이죠. 아마 지금쯤 당신을 찢어발기고 싶을 심정일 겁니다.

연수원 재설립이라는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가 어그러졌다. 그것도 막대한 돈이 투자된.

아마 종혁이 국민들에게서 잊힐 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조직은 절대 원한을 잊지 않는다는 게 김 대리의 설명이었다.

‘그건 바라던 봐지.’

그쪽에서 먼저 다가와 주면 오히려 좋다.

아니,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

‘결국 놓치긴 했지만, 엿은 제대로 먹였단 소리군.’

종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꿈틀거리는 입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흠.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의아한 점이 하나 생기는데……."

-김덕술이란 놈의 처남을 말하는 겁니까? 제보자?

"맞아."

이유는 방금 전 생각한 그 이유다.

종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들이 유경조를 살려 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살려 두는 편이 이득이잖습니까.

"……아, 그런 거였군. 오케이, 이해했어."

만약 유경조까지 실종이 되거나 사망했다면, 김덕술은 더 큰 의혹을 받게 됐을 거다.

김덕술이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기 위해선 오히려 유경조가 살아 있어야 했던 거다.

‘확실히 놈들의 조심성을 생각하면 말이 돼.’

여차하면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라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오케이. 협조해 줘서 고마워. 다음에 또 필요하면 연락하지."

-아, 그게 음…….

전화를 끊으려던 종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걸리는 게 있다면 말해 봐. 듣는 건 내가 알아서 들을 테니까."

-후. 이건 정말 제 추측이니까 그냥 흘려들으셔도 됩니다. 아마 회사는 다단계 투자 사기를 포기 안 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아니 사이비 교단도요.

종혁은 허리를 세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유의미한?"

-회사는 결국 실패한 다단계 투자 사기를 재활용해서 이번 일을 성공 직전까지 진행했습니다. 당신만 아니었으면 성공했을지도 모르죠.

그건 맞다.

-이런 아이템을 가만 놔둘 수 있을까요?

"흠……."

-회사는 실패한 데이터라도 재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기꺼이 재활용합니다.

"자세히 말해 봐."

-깔끔하게 포기하기엔 너무 많은 자금이 들어갔습니다. 알잖습니까. 우리 회사가 얼마나 돈에 집착하는지. 어쩌면 그 프로젝트와 별개로 다른 지방에서 더욱 진화 된 다단계 투자 사기가 퍼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이비 교단도 마찬가지고요.

"메인과 별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일 거다?"

-그 프로젝트가 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왜일까.

이 순간 갑자기 희대의 사기꾼 ‘조희구’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이놈, 정말 이놈들 소속인 거 아니야?’

종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냥 날려 버리기엔 다단계 투자 사기의 잠재력이 너무 큽니다.

"네가 진행한 프로젝트라서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고?"

-회사가 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실패에서도 배운다는 거군.’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은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좋은 걸 알게 됐군.’

돈에 대한 놈들의 집착이 예상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

‘그래서 이렇게 깔끔하게 포기한 거였어. 다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니…….’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거군."

확실히 일리 있는 생각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종혁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진심으로 협력하는 거 아니야?"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입니다. 진짜 내 집에서 포근하고 안락한 침대에 누워 가족들과 잠들고 싶은 겁니다. 내가 협력하는 이유는 오직 그 때문입니다.

그 진심 가득한 말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이래서 충신이 배신하면 무서운 거지.’

종혁은 김 대리를 확보한 과거의 자신을 듬뿍 칭찬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더. 그 지원부의 감시자가 아직도 근처에 남아 있을까?"

-아뇨, 없을 겁니다. 한 번 철수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 그게 회사의 철칙이니까요.

‘쯧. 다 외웠는데.’

그건 좀 아쉬웠다.

"알았어. 나탈리아 씨 바꿔 봐."

-나예요.

"방금 들으셨죠?"

종혁은 방금 떠오른 계획에 대해 설명했고, 나탈리아는 그걸 보강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음? 과수대 왔네요. 이만 끊을게요. 그리고……."

-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나탈리아."

-……후훗.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최.

전화를 끊은 종혁은 차를 출발시키며 차창을 열었다.

서늘하다 못해 칼바람 같은 공기가 달궈진 머리를 식힌다.

"이제 2004년도 며칠 안 남았구만."

은은한 미소가 어리던 종혁의 얼굴이 갑자기 굳는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솔로인가?"

종혁은 핸드폰을 보며 다시 전화를 걸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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