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96화 (19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96화>

58. 싸장님, 우리 싸장님

부우웅.

봄날의 꽃가루를 뚫으며 도로를 빠르게 달리던 차량이 인적이 드문 외곽지에 멈춰 선다.

"끄으으으으!"

"으아!"

기지개를 펴며 오랜 주행에 쌓인 피로를 떨쳐 내던 종혁과 오택수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수고했어."

"뭘요. 저야 도중에 바꾼 것뿐인데요. 오 경위님도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던 둘은 짜증을 담아 최재수를 봤다.

도중에 교체를 하기는커녕 자기 바빴던 최재수.

"이 새끼가 봉오리 하나 더 달았다고 아주 빠져…… 응?"

오택수와 종혁은 서로를 봤다.

‘저거 왜 저래?’

‘글쎄요?’

왜인지 최재수의 낯빛이 어둡다. 그동안 몇 번 보지 못한 모습이라서 그런지 슬그머니 불길해진다.

"오 경위님, 최 경위님."

"어? 왜, 왜?"

갑자기 부르니 더 불길해진다.

"저희 정말 괜찮을까요?"

"뭐, 뭐가?"

"아니요. 아까 출발하기 전에 과장님이 그러셨잖아요."

"너흰 만날 밖으로 나돌아 댕기냐, 이 썩을 새끼들아! 밖이 그렇게 좋으면 돌아오지 마-!"

재떨이까지 던지며 화를 냈던 김종두 과장.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 이러다 정말 저희 복귀……."

"에라이, 난 또 뭐라고. 라이터 있으세요?"

"어, 여기. 나도 담배 좀."

"에이, 좀 사서 피시라니까."

최재수는 눈을 부릅떴다.

"저 정말 심각하거든요?!"

"어이구, 그러세요. 그럼 네 옷이나 어떻게 해 보세요, 이 심각한 옷차림을 한 새끼야. 꼴이 그게 뭐냐?"

특진 이후 갑자기 입지도 않던 정장을 입기 시작한 최재수.

그런데 대체 어디서 산건지 어깨는 넓고, 바지통도 넓어서 꼭 90년대 아버지들이 입던 정장 같다.

아니, 그런 아버지 정장을 입은 십대 꼬마 같다.

키도 190에 가까운 멀대 멸치가 말이다.

"아, 아니 그, 그게……."

송환 작전 때 공항에서 정장을 입고 중국 공안과 이야기를 나누던 종혁과 김종두의 모습이 뭔가 있어 보여서 거금 주고 맞췄단 소리를 어떻게 할까.

최재수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채 벌게진 얼굴로 더듬거렸다.

하지만 이미 그를 무시한 둘은 관할서에게 인계받은 사건의 파일을 열어 보고 있었다.

"여기가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라고?"

정확히는 버스정류장에 달린 CCTV에 목격됐다.

저녁 11시, 야자를 마치고 이곳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 피해자 김가을은 다음 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강간 후 살해.

타액은 검출됐지만, 범인의 정액은 검출되지 않았다. 살해 무기만 바로 옆에서 발견되었다.

둘은 동시에 똑같은 보폭으로 피해자 김가을이 향한 방향으로 걸어 살해 현장에 도착했다.

재작년에 일어난 사건이라서 현장 보존은커녕 우거진 수풀만 가득한 공간.

오택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7분 21초. 키 163센티미터 여고생 보폭이라면 오차가 생겨 봐야 1, 2분 차이."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야심한 밤이기에 걸음을 재촉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럼 약 3분에서 4분. 이런 외곽지에다가 그 시간대엔 사람의 통행조차 없을 테고……."

일단 너무 야심한 시간대라 목격자가 없었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승객도 없습니다."

목격자가 있다면 버스정류장 10미터 뒤에 있는 작은 편의점의 관계자가 전부일 텐데 피해자 김가을을 보진 못했다고 한다.

"그럼 저쪽에서 온 거네."

김가을을 내려 주고 떠난 버스가 향하는 방향엔 거의 논과 밭뿐이다. 저녁 11시에 저쪽에서 사람이 왔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예. 마침 저쪽이 김가을 씨가 사는 마을입니다."

"면식범?"

그들이 방금 전 지나쳐 온 약 100여 채의 집만 있는 작은 마을. 저렇게 작은 마을이라면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죠."

실제로 이 사건을 담당한 형사도 그 부분을 의심했다고 한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하고 행방을 알 수가 없어서 당시 같은 팀에 있었던 형사가 증언해 줬다.

"야, 최재수!"

"예, 옙!"

오늘도 수첩에 둘의 대화를 빠르게 기록하던 최재수가 얼빵한 얼굴로 고개를 든다.

"살해 흉기에서 지문이 검출됐는데, 범인의 신원이 밝혀지지가 않았다. 이유가 뭐겠냐?"

그에 최재수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가슴을 편다.

"범인이 주민등록증 발급 대상이 아닌 미성년자일 때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만 17세가 되면, 만 18세가 되기 이전까지 반드시 지문 등록과 함께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야만 한다.

즉,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까지는 지문 정보가 등록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

"헤헤."

"좋냐? 그게 끝이야?"

"예?"

오택수는 다시 얼빠진 표정을 짓는 최재수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아오! 정말 이걸 어떡하면 좋지? 외국인, 불법 체류자! 여기가 어디냐, 이 새끼야!"

근처에 공단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나 불법 체류자들은 100퍼센트 있다고 봐야 했다.

"주민등록 말소자도 있죠."

많이 외진 곳이다. 어떠한 이유로 주민등록이 말소당한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도 적당하다고 봐야 했다.

이런 공단의 공장에서는 신원 확인을 제대로 안 하니까 먹고살기에도 불편하진 않을 터.

"아……."

"아? 아아? 이걸 확 진짜! 이 새끼가 왜 경장이 된 거지?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야, 그냥 봉오리 하나 떼는 거 어떠냐?"

깨갱 움츠러든 최재수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가렸고, 고개를 저은 종혁은 마을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살해 현장에서 여기까지 약 130미터. 시간상으로는 약 2분. 야심한 저녁. 그런데도 비명을 들은 사람은 없다. ……왜지?"

낮이라면 모를까 작은 소리도 멀리 퍼지는 밤이다.

11시가 야심한 시각이라고 해도 분명 잠들지 않은 사람은 있었을 터. 그런데도 비명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

현장 사진을 보면 반항한 흔적이 가득했는데도 말이다.

종혁은 재빨리 부검 결과서를 살폈다.

그리고 얼굴을 와락 구겼다.

"씨발, 지랄 났다."

"왜?"

"뭘로든 입을 막은 게 확실한데 나와 있지 않네요."

설상가상 타액도 제대로 검사되지 않았다.

겨우 남자라는 것만 밝혀진 상황.

빠드득!

종혁은 이를 갈았다.

일본에서 DNA 수사 기술 교류를 한 게 2001년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발생한 건 2003년.

그럼에도 이런 부실한 결과서가 만들어졌다.

"뭐?! 그게 말이 돼?"

오택수는 뺏다시피 부검 결과서를 가져와 살폈다.

그냥 살해라면 모르겠는데 강간 후 살해다.

피해자는 공포에, 범인은 흥분에 가득한 상황.

특히 흥분한 범인이라면 손으로 입을 막거나 흉기로 위협한 상태여도 그 행동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입을 다물었다고 치기엔 끝까지 반항한 흔적이 있다.

"아, 씨발. 여기 있네. 피해자 팬티."

피해자 팬티에서 피해자의 타액이 검출됐다.

즉, 팬티가 재갈이 되었단 소리다.

물론 거기서 뭘 발견한다고 해도 지금 상황으로는 범인을 특정 지을 단서를 발견할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국과수에 현장에서 발견된 소지품들 재검사…… 하, 씨발."

사건을 인계받으며 함께 넘겨받은 현장 감식 물품을 떠올린 오택수는 우와 한탄을 하며 하늘을 봤다.

그들이 현장에서 나온 물품이라고 인계받은 것이 잭나이프 하나뿐이었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인계받을 때 왜 이것뿐이냐며 화를 내지 않았던가.

"아니, 대체 왜-!"

종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피해자 아버지를 만나 보면 알겠죠."

‘대체 어떤 미친 새끼길래 제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힐 수도 있는 단서를 유실되도록 뒀는지 면상 좀 보자.’

그렇게 셋은 살의를 애써 누르며 피해자 김가을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아으으. 아녀하세요."

"……씨바알-!"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오택수의 외침.

종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   *   *

달그락!

"제, 제게 주세요, 아버님!"

최재수가 얼른 쟁반을 가져오자 그렇지 않아도 일그러진 얼굴이 더 일그러진다.

"재서하니다. 이거바게 업어여."

때가 껴 흐릿한 글라스에 담긴 보리차 석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옆으로 기운 옛날 형태의 집을 본 종혁은 다시 울컥하고 말았다.

"아이구, 제가 보리차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건 어떻게 아시고! 안 그래도 목이 마르던 차라 정말 간절했습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아버님!"

단숨에 반쯤 비우며 캬 탄성을 터트리는 셋의 모습에 피해자 김가을의 아버지 김복수 씨는 다시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아니, 웃음꽃을 피운다.

"혀사니이라거여?"

"예. 형사입니다. 김가을 씨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왔습니다."

"으리 가으리……."

딸의 이름을 입에 담자마자 김복수 씨의 두 눈에 눈물이 왈칵 솟는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종혁은 죄책감과 함께 치솟는 물기를 보이지 않고자 입을 다물며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때마다 언제나 미쳐 버릴 것 같다. 이런 류의 사건을 참 많이 겪었는데도 결코 나아질 생각을 안 한다.

피해자 유족에게 종혁은 언제나 죄인이었다.

"후. 힘드시겠지만 그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짓는 그.

김복수 씨도 눈물을 훔치며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애써 떠올렸다.

"바메 무자가 아서여."

"문자요?"

종혁은 당황했다. 사건 파일에 그런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복수 씨는 두 모녀가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 액자가 놓인 TV 옆 충전기에 꽂혀진, 2000년에 출시된 핸드폰을 빼내 종혁에게 내밀었다.

-아바. 미안. 나 오느ㄹ 친구 집에서 자고 가.

오타가 있지만, 평범한 문자였다.

"그러데 도라사서 새가하니가 머가 이사해서여."

"왜요? 돌아서서 생각하니 어떤 부분이 이상하던가요?"

"그에……."

딸은 언제나 문자 끝에 하트를 붙였다.

그리고 자신을 칭할 때 ‘나’가 아니라 언제나 ‘사랑하는 아빠 딸 가을이’라고 말했다. 발신자 서비스라는 헛돈을 쓰기 싫다며 그렇게 했다.

어차피 전화가 와 봐야 부산에 계시는 아버지나 딸 가을이 전부였기에 그도 그러라고 했다. 어차피 마을 사람들이야 집 전화로 하기에.

아무튼 딸이 너무 오지 않아서 안절부절못하던 차에 날아온 문자에 뭔가 좀 이상했지만 그땐 별일 없구나 하며 무심코 넘겼다.

왠지 잠을 설치긴 했어도 그랬다.

다음 날, 자주 신세를 지던 마을 입구 슈퍼 아주머니가 그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달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마중을 나가실 생각은 안 하셨나요?"

정말 잔인한 물음이다.

피해자 유족에게 왜 상황이 이상하다 느꼈으면서도 대처를 안 했냐는 물음.

그러나 중요한 물음이다. 형사는 피해자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느끼지 못한 건지 김복수 씨의 눈이 아련해진다.

"가으리가 시러해서여. 다치다거."

설상가상 야맹증까지 있는 김복수 씨. 마중을 나올 때마다 이러면 나 집에 안 들어올 거라고 엄포를 놨고, 실제로 몇 번 친구 집에서 자고 온 적이 있다.

그래서 차마 나가 볼 생각을 못했다.

종혁은 문자가 도착한 시간을 살폈다.

‘12시 26분……. 이 개새끼!’

피해자 김가을의 사망 추정 시각 10시 20분부터 12시 10분 사이. 누가 봐도 김가을을 죽인 범인이 문자를 보내 위장을 한 거다.

이제 더 이상 이 사건은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게 됐다.

그런데 이걸 형사가 무시한 거다.

마지막 발신 위치만 확인됐어도 범인을 특정 지을 확률이 높아졌을 텐데도 말이다.

"하지마아 나가알 걸…… 내가……."

"아버님!"

화들짝 놀란 김복수 씨가 종혁을 본다.

종혁은 다 마신 컵을 내밀었다.

"물 한 잔 더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이 참 맛있네요. 아버님 음식 솜씨가 이거십니다."

"죄송하지만, 저도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저도요!"

"……니에."

허허허 웃음을 흘리며 일어선 김복수 씨는 부엌으로 향했고, 오택수가 종혁을 봤다.

"그런데 김복수 씨는 왜 여기에 계신 거야? 저런 몸이신데."

강철선에게 부탁한 김복수의 아버지 김영임. 피해자 김가을의 할아버지는 부산에 위치한 중학교의 선생님이었다.

"저렇게 장애를 안고 태어나셔서 김영임 씨에게 많이 미안하셨대요. 그래서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가출해서 서울로 상경해 노가다를 하다가 지금은 타계하신 부인을 만나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4남 4녀 중 유일하게 장애를 안고 태어난 김복수 씨. 장애를 고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쓰면서 안 그래도 풍족하지 못했던 가세가 점점 기울어 가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어휴……. 왜 울려고 해, 이 새끼야. 눈물 보이지 마. 보이면 죽여 버린다."

"큽! 네."

달그락!

붉어진 눈시울을 연신 훔치던 최재수는 얼른 쟁반을 가져왔다.

진하고 구수해서 더 서글픈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신 종혁은 다시 입을 뗐다.

"혹시 김가을 씨와 친하게 지낸 학생이 있었습니까?"

"이서여. 재으니…… 시인재으니."

초등학교 때부터 만날 같이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 신재은.

"신재은 학생이 이 동네에 사나요?"

김복수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동네에 김가을 씨 또래가 있습니까?"

김복수 씨는 손가락 두 개를 폈고, 종혁은 눈을 빛냈다.

미성년자.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는 인물들이다.

종혁은 그들의 주소와 이 마을에서 친하게 지낸 사람, 평소 피해자 김가을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 등 여러 가지를 물은 후에야 질문을 멈출 수 있었다.

"떠올리기조차 괴로운 일이셨을 텐데 협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잠시 망설였던 종혁은 입을 열었다.

"사건 당시 김가을 씨가 입은 교복이나 소지품은 어떻게 되셨는지 아십니까?"

"자시마안여."

몸을 일으킨 김복수 씨는 다리를 절뚝이며 안방으로 들어가 박스 하나를 들고 왔다.

종혁과 둘의 눈이 흔들렸다.

‘이게 왜 여기서 나오는데!’

박스 안에 다 있다. 변색된 혈흔이 가득한 교복과 옷가지, 신발, 가방.

"혀사니임이 피려 어따고. 태어 버리라거. 하지마안……."

형사는 태워 버리라고 했지만, 어떤 부모가 이걸 버릴 수 있을까.

종혁은 순간 울컥 치솟는 감정에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잡았다.

"후우우. 예, 감사합니다. 그럼 저흰 가 보겠습니다. 아니요! 나오실 필요 없으세요."

만류에도 대문 밖까지 나온 김복수 씨는 허리를 숙였다.

"꼬 자바 즈세여. 부타하니다. 꺼으윽! 제바알! 제바아아아!"

결국 터져 버린 분노와 설움, 그리고 한.

"예. 꼭 그러겠습니다."

이 말밖에 할 수 없어 더 괴로운 종혁은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돌연 오택수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개새끼 만나면 나 절대 말리지 마라."

범인 새끼가 아니라 형사, 아니 견찰 새끼.

자기 정년이라고 사건을 허투루 취급한 게 분명한 씨발 새끼.

절대 경찰이라고 불리면 안 되는 호로 새끼.

"걱정 마세요. 내가 먼저 죽여 버릴 테니까."

까드드득!

셋의 몸에서 살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후. 일단 신재은 씨부터 만나러 가죠."

"그래. 가자."

*   *   *

"큽.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협조 감사했습니다. 혹시라도 더 떠오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형사님! 제발 범인 꼭 잡아 주세요!"

"예."

종혁은 어깨를 늘어트리며 돌아섰다.

"후."

"하아."

"와, 미쳐 버리겠네."

이젠 해가 모두 진 저녁. 다시 피해자 김가을과 김복수 씨 부녀가 함께 산 마을로 돌아온 셋은 담배를 뻑뻑 필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 김가을의 절친 신재은을 만나 많은 걸 묻고, 또 주변 탐문을 했는데도 건진 게 없기 때문이다.

"스토킹도 아니고."

"일진 새끼들이 저지른 범죄도 아니었죠."

셋이 정체를 밝히자마자 눈물을 쏟아 내며 제발 범인을 잡아 달라고 절규하던 신재은.

그녀가 밝힌 피해자 김가을은 너무나 참한 여고생이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랐으면서도 구김살이 없고, 교우 관계가 두루두루 좋았던 피해자 김가을. 수시로 고백을 받았지만, 나쁘게 끝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주변 탐문 결과 그녀의 진술은 진실로 판명됐다.

일진은 쥐 잡듯 잡으며 파 봤지만, 뭔가를 숨기는 기색은 없었다.

"그럼 다시 돌아와 이 동네라는 건데……."

마을에서 겨우 180미터 떨어진 곳에서 범행이 이뤄졌다.

"일단 근처에 숙소를 잡고 내일 다시 탐문을 진행해……."

우글우글!

"……뭐야, 저거."

고개를 돌린 셋의 입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말. 동남아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혁과 오택수는 다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숙소로 쓸 법한 건물은 없는데?"

죄다 주택이다. 그래서 저들 중 범인이 있을 거란 가능성을 뒤로 밀어 놓지 않았던가.

얼굴을 와락 구긴 둘은 재빨리 동남아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저기요!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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