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9화>
62. 달콤하지만 위험한
해가 졌음에도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득한 여름.
목이 다 늘어진 셔츠를 입은 소년이 어기적 무거운 다리를 끌며 집으로 향한다.
"헤헤. 그래도 며칠 안 남았다."
며칠 후면 살 수가 있다. 작년부터 만들기 위해 애쓰던 걸 말이다.
당분간은 라면일 테지만, 그걸 생각하니 아르바이트로 인해 고된 몸도 날 듯 가벼웠다.
빵!
다급히 옆으로 비켜서던 소년은 스르르 다가와 멈춘 낯익은 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꼬맹이! 이제 하교하냐? 아, 지금 방학인가?"
"정수 형!"
활짝 웃었던 소년은 보조석에 앉은 사람을 발견하곤 어깨를 움츠렸다. 며칠 전부터 몇 번 얼굴을 본 사람이었다.
"아, 종혁아. 인사해. 우리 옆집 꼬맹이."
"그래요? 친해요?"
"쟤 똥기저귀도 내가 갈아 줬어."
눈을 빛낸 종혁이 소년을 보았고, 똥귀저기란 말에 얼굴을 붉히던 소년은 종혁의 우람한 덩치에 몸을 움츠렸다. 분명 되게 잘생겼는데 묘하게 다가가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나 몇 번 본 적 있지?"
"네……."
며칠 전부터 정수의 집 앞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짜식이, 정수 형 아는 동생이면 말을 하지. 이리 와 봐."
"네? 왜, 왜요?"
"씁."
소년은 주춤거리며 다가갔고, 종혁은 지갑에서 집히는 대로 꺼내서 내밀었다. 소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헉?!"
"정수 형 아는 동생이라면 나한테도 동생이네. 다음부터 형 보면 인사해라."
"아, 아뇨. 이건 받을 수……."
"씁. 형이 주는 거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그보다 이름이 뭐냐?"
"여, 영광이요. 고영광."
"그래. 형은 최종혁이다. 뭐해요. 주차나 해요. 배고파."
"넌 진짜 배 속에 거지가 앉았냐? 꼬맹아, 다음에 보자!"
"공부 열심히 해라."
"네, 형. 안녕히 들어가세요."
손을 흔든 박정수는 차를 몰아 집 앞에 주차를 했고, 차에서 내린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잘됐군.’
그동안 몇 번 마주쳤어도 묘하게 꺼려 하기에 말을 붙이지 못했던 상황. 그래서 어떻게 물꼬를 틀까 고민을 했는데, 정수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이제부턴 좀 더 적극적으로 교차점을 만들 수 있었다.
"그나저나 학생이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네요."
"영광이?"
방금 전 영광이 들어간 옆집을 본 박정수는 씁쓸히 웃으며 담배를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후우. 쟤가 저래야 될 얘가 아닌데……."
"음?"
"아니야. 들어가자."
종혁은 박정수의 반응에 눈을 빛냈다.
"뭔데. 말해 봐. 내가 도움이 될지 혹시 알아요? 나 아는 사람 많아요."
"도움? 맞아, 너 경찰이지."
그것도 본청의 경찰이다. 분명 아는 사람이 많을 터. 그중에 영광을 도와줄 공무원이 있을 수도 있었다.
박정수는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뗐다.
"영광이 쟤가 원래 컴퓨터 쪽으로 엄청……."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종혁이 알지 못하는 과거사를 담고 있었다.
"흐음, 그래요……."
종혁은 고영광이 들어간 집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한편 집 안으로 들어온 소년은 손에 들린 지폐 뭉치를 만지작거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무서운 형이었구나."
다가가기가 왜 꺼림칙했나 했더니 조폭이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과 어울리는 거 아니랬는데……."
혹시라도 친한 동네 형인 정수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 만나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박정수가 친한 형이라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려운 형이니까.
아마 어린 자신의 말은 들어 주지도 않을 거다.
"거기다 지금은……."
낯빛이 어두워진 소년은 자신의 집을 주욱 살폈다.
저녁임에도 불이 모두 꺼진, 후덥지근한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반지하. 인기척 하나 없는 집의 적막이 소년의 심장을 후벼 판다.
왈칵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소년은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다녀왔습니다!"
크게 외친 소년은 답이 돌아오길 기다리지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씻고 나온 소년은 냉큼 허름한 컴퓨터 앞에 앉으며 선풍기를 켰다.
달달달 선풍기가 위태로운 소리를 내며 미지근한 바람을 뿜어내지만, 소년은 시원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 시리도록 차가운 물로 샤워해 얼어붙은 몸이 더 시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컴퓨터의 부팅이 완료되자 소년은 냉큼 인터넷을 켜서 어떤 사이트의 채팅방에 접속했다.
[Dark Dragon Arm님이 접속했습니다.]
[세이렌]님의 채팅- 다암이, 할룽할룽.
[Crow Wing]님의 채팅- 하이루.
"하이루. 형들."
빠르게 올라오는 인사말들에 소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힌다.
안 지가 벌써 3년이나 된 지인들이다. 비록 컴퓨터 밖에선 만날 수 없지만,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모른다.
[rabbit Foot]님의 채팅- 왔냐? 그거 준비는 잘되어 가?
"그럼요. 잘되어 가죠."
소년은 방 한구석에 고이 모셔진 본체 케이스를 봤다.
이제 하나의 부품이 장착되기만을 기다리는 본체.
지난 1년 동안 매일 알바를, 방학에는 두 개씩 알바를 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원래 그 일 때문에 준비하던 건 아니지만……."
이게 완전히 조립이 되면 준비는 더 완벽해질 거다.
이젠 정말 며칠밖에 안 남았다.
[세이렌]님의 채팅- 그거? 그게 뭔데?
[Crow Wing]님의 채팅- 아, 그거? 나 그거 느낌 별로던데.
[North captain]님의 채팅- 다시 생각해 보라. 알아보니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사이트에 나타난 탈북자 컨셉의 아저씨, 노스 캡틴.
영광은 얼른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Dark Dragon Arm]님의 채팅- 아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하는 일이라서 그래요, 북에서 온 선장님.
[North captain]님의 채팅- 그러네? 그래도 조심하라. 그런 거는 함부로 하는 거이 아니다.
[Dark Dragon Arm]님의 채팅- 네! 감사합니다!
[세이렌]님의 채팅-그래서 그게 뭐냐고, 이 찐따들아!
"킥킥."
영광은 이 순간 잠시 외로움을 잊었다.
* * *
주요 예능에 모두 출연하면서 경찰 홍보단의 일은 거의 마무리됐고, 덕분에 종혁도 경찰 이미지 마케팅과 본연의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됐다.
"오늘 치 미니홈피 업데이트는 끝났어?"
"예, 끝났습니다!"
경찰청 홈페이지 외 홍보 수단으로 미니홈피를 택한 종혁. 그는 미니홈피 관리 직원의 어깨를 잡으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반응은 좀 어때?"
"아직은 긴가민가하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홍보단의 홍보 덕분에 방문자 수가 꽤 늘어난 상태입니다."
아직은 정식으로 홍보가 된 게 아니라서 하루 방문자 수가 천 단위에 불과한 미니홈피.
모두가 미남인 경찰 홍보단 덕분에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면서 여성들의 유입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상태다.
"선행 게시물 쌓이면 대대적으로 홍보를 할 테니까 홍보단이 함부로 글 싸지르게 하지 말고, 선행 게시물도 잘 쓰도록 해. 괜히 나는 눈물을 흘린다 뭐 그런 요즘 감성으로 쓰지 말고. 그리고 성폭행범들도 잘 나온 사진으로 올리고."
"하하, 옙!"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미디어 관리팀으로 향했다.
제작 가능성이 높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경찰의 이미지를 관리할 미디어 관리팀. 그들의 보고까지 모두 받은 종혁은 시간을 확인하곤 박수를 쳤다.
"점심까지 앞으로 30분! 대충 마무리하고 밥 먹자!"
"이야아아아아!"
고작 30분 일찍 밥을 먹는 거지만, 이걸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오늘도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몸을 돌린 종혁은 오택수를 봤다.
"그럼 전 잠시 나갔다 올게요."
"또?"
요 2주일 사이 계속 점심때마다 사라져서 2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종혁.
점심 시간뿐만 아니다. 저녁에도 정시가 되면 칼같이 퇴근을 해 버린다.
오택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야, 너 나 몰래 사건 맡았지?"
흠칫.
속으로 놀란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이 예리한 양반 같으니.’
"사건은 무슨. 제발 사건 좀 맡으면 좋겠네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손을 흔든 종혁은 사무실을 나섰고, 오택수는 그런 그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거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눈을 더 가늘게 뜨는 오택수의 촉이 비상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 *
"다녀오겠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집을 뒤로한 영광은 근처의 주유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왔니? 밥은?"
안에서 돈 계산을 하던 오십대의 남자가 영광을 반긴다.
"먹었어요!"
컵라면도 밥은 밥. 영광은 당당했다.
눈을 가늘게 뜨던 사장은 이내 혀를 차며 손을 저었고, 히죽 웃은 영광은 얼른 안쪽의 탈의실로 달려갔다.
그런 영광을 빤히 응시하던 사장은 천장을 보며 한탄했다.
"어찌 저 어린 것을 두고 눈을 감았을까.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쯧쯧쯧."
재작년, 무엇이 그리 급한지 다른 세상으로 떠나 버린 친구를 떠올린 사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편 옷을 갈아입고 나온 영광은 마침 안으로 들어오는 차를 발견하곤 얼른 허리를 굽혔다.
"어서 오세요, 태성 주유소입니다! 얼마나 넣어 드릴까요?"
그렇게 소년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안녕히 가세요!"
떠나는 자동차를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인 소년은 사무실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손부채질을 했다.
"후아, 덮다."
이제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그늘 아래에서 일을 하는데도 땀에 흠뻑 젖는다.
‘이럴 때 하드 하나 딱 빨았으면…… 아냐, 아냐.’
그 돈도 아껴야 한다.
영광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곤 몸을 움츠렸다.
"넌 얼굴 보고도 인사 안 하니?"
"아,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지?’
오늘도 눈썹이 하늘로 솟은 사모님을 본 영광은 괜히 들어왔다며 자책했다.
"그래서 왜 들어왔는데?"
"물 좀 마시려고요……."
"쯧. 일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게 물은 왜 그리 많이 처먹는지……. 얼른 마시고 나가!"
"네……."
눈치를 보며 정수기로 걸어간 영광은 순간 튀는 찬 물에 울컥해 버렸다.
‘아빠…… 엄마…….’
재작년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두 분이 살아 계셨어도 이런 말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뭐해! 물 넘치잖아!"
"네!"
찬물을 황급히 들이켜며 허겁지겁 사무실을 빠져나온 영광은 습기 가득한 숨을 골랐다.
‘이럴 때 일수록 울면 안 돼. 절대 안 돼.’
이젠 더 이상 운다고 해서 봐주는 어른은 없다.
영광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켜 눌렀다.
"후우. 됐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영광은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일수록 웃어야 덜 아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더 환하게 웃으며 주유소 안으로 진입하는 차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부우웅!
거친 배기음을 내며 들어오는 투스카니 한 대.
영광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빠앙!
"야, 고영광! 어디 가, 이 새끼야!"
눈을 질끈 감았던 영광은 이내 애써 웃으며 돌아섰다.
"오, 오셨어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이십대 청년.
"그래, 오셨다. 넌 손님이 왔는데 인사도 안 하냐?"
"아, 안녕하세요. 태성 주유소입니다. 얼마나 넣어 드릴까요?"
"만땅, 이 새끼야. 만땅."
"네, 가득 주유하겠습니다!"
영광은 얼른 차 뒤로 다가가 주유기를 조작했다.
그런 그의 귀로 커다란 대화 소리가 들린다.
"오빠,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전에 말했잖아. 내 사촌."
"아, 그 고아? 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킥킥. 고아니까 더 일을 해야지."
‘개새끼!’
조심할 생각이 없는 듯한 큰 목소리에 영광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는 참았다. 누구 한 명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참았다.
하지만…….
"6만 원 주유했습니다. 카드로 계산하실래요, 현금으로 계산하실래요?"
"씨발. 누가 요새 가오 빠지게 카드로 계산해? 옛다."
가슴에 부딪치며 허공을 흩날리는 만 원들.
"나머진 너 팁 해."
영광은 바닥에 떨어지는 돈을 멍하니 응시했다.
"뭐하냐? 안 줍고?"
영광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숙여 돈을 주었다.
‘왜지? 난 왜 이런 꼴을 당해야지? 왜?’
부모님 유산을 모두 가져갔음에도 저들은 왜 이러는 걸까.
왜 누구 한 명 도와주지 않아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후두둑 눈물이 쏟아진다.
울지 말아야 하는데, 울게 되어 버린다.
"그럼 열심히 좆뺑이 쳐라! 이 형은 이만 간다!"
그때였다.
과아앙! 쾅!
고개를 든 번쩍 든 영광은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에 눈을 끔뻑였다.
‘교통사고?’
"끄악?! 씨발! 어떤 새끼야!"
터엉!
"악!"
"씨발, 넌 또 왜 거기 있고! 아니, 이게 먼저가 아니지. 이런 씨발! 운전을 대체……."
얼굴을 구기며 몸을 돌리던 영광의 사촌은 말을 다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투스카니의 뒤꽁무니를 박은 게 람보르기니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야, 요새도 투스카니를 타고 다니는 거지새끼가 있네. 이런 거 타고 다니면 쪽팔리지도 않나?"
차문을 열고 내리는 사람의 덩치가 너무 크다.
영광의 사촌은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쪽이 이 되다 만 개똥차 차주? 미안해. 내가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
덩치, 아니 종혁은 지갑에서 되는 대로 수표를 집어 흩뿌렸다.
"이거면 됐지? 남은 건 가지셔."
"사, 사과를 먼저……."
"뭐? 돈을 더 달라고? 하여튼 거지새끼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혀를 찬 종혁은 수표 몇 장을 더 꺼내어 흩뿌렸다.
파악!
"자, 됐지?"
"……까득!"
영광의 사촌은 이를 악물었지만, 몸을 숙여 돈을 주웠다.
사과를 바라기엔 너무도 많은 돈.
"그래. 옳지, 잘 줍는다."
‘씨발! 씨발!’
"비켜, 이 새끼야!"
돈을 다 주운 영광의 사촌은 아직 얼어 있는 영광을 걷어차며 차에 올랐고, 종혁은 애매한 배기음을 토해 내며 도망치는 투스카니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정말 저것도 스포츠카라고 타고 다니면 쪽팔리지 않나?"
"풉!"
재빨리 입을 막는 영광을 본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인사 안 하냐?"
"……아, 안녕하세요!"
"오냐. 고급유 가득."
"네!"
쏴아아아아!
영광은 고급유가 슈퍼카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차 안에 앉아 있는 종혁을 힐끔거렸다.
‘무서운데 멋진 형…….’
방금 전,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몰랐다. 그래선지 어제까지처럼 꺼림칙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탁탁!
주유기의 손잡이를 몇 번 튕기고 흔든 영광은 종혁에게 다가갔다.
"10만 원이요! 아는 분이라서 5천 원 더 넣었어요!"
밝게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영광의 모습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야."
"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알바하는 거냐?"
"네, 뭐……."
손 벌리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어서지만 영광은 입을 다물었고, 이미 영광의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종혁은 모른 척 푸근히 웃었다.
"대견하네."
"아하하. 감사합니다."
"그래. 열심히 하고, 힘든 일 있으면 형한테 연락해. 나머진 팁 하고."
"네?"
"간다."
과르릉! 과아아앙!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차를 멍하니 응시하던 영광은 자신의 손을 봤다가 다급히 종혁을 찾았다.
십만 원 수표가 두 장인 것 때문이 아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황금 명함 때문이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힌 황금 명함.
"저 형 진짜 조폭이구나……."
‘그런데 대체 얼마나 잘나가는 사람이기에 저 나이에 람보르기니를 끌고 다니는 걸까.’
아마 영광 자신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벌 거다.
"그만큼 위험할 테지만…… 힘들면……."
순간 몽롱해지던 영광은 이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성인이 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땐 자신도 저렇게 다닐 수 있을 거다.
아니 종혁처럼 불법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돈을 벌면서도 저보다 더 잘살게 될 거다.
"그래. 원래 이쪽 일이 돈을 많이 번다고 했잖아?"
어린 영광은 그날이 부디 빨리 오기를 잠시 기도하며 종혁이 준 명함을 주머니에 넣었다.
한편 길가에 차를 세운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저런 애가 어쩌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 거지?"
지난 이십여 일 동안 계속 지켜봤지만, 결코 범죄를 저지를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소년 고영광.
범죄를 당했으면 당했지, 저지를 만한 유형이 아니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됐는지가…….
"뭐 그건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자신의 눈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고영광이 억울한 피해자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연히 놈들의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인지는 곧 다 밝혀지게 될 거다.
그렇기에 시험을 하고자 그런 명함을 주지 않았던가.
"부디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기를……."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웅성웅성. 시끌시끌.
"이 팀장!"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 사무실을 날카로운 외침이 꿰뚫는다.
그에 컴퓨터를 보며 무언가를 하고 있던 삼십대의 남성이 벌떡 일어난다.
"예, 부장님!"
이 팀장이라 불린 사내는 사십대 중년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재빨리 달려갔다.
"세진은행 건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병사들은 모두 준비됐고, 실행 날짜만 기다리는 중입니다."
"실력들은 확실해?"
"걱정 마십시오. 실력은 있는데 어수룩한 놈들로 골라놨습니다."
"위험 요소는?"
"없습니다. 신중하게 선별했습니다."
"장담하지 마. 철량리 때 어떻게 됐는지 알지?"
겨우 경찰 두 명 때문에 연수원이 날아가 버린 끔찍한 사건.
"……거듭 확인해 보겠습니다."
"가 봐."
이 팀장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 부장은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눈빛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