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67화 (26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67화>

73. 드러나다

-형님! 이 새끼들 아주 개새끼들입니다! 나도 이렇게는 장사 안 했어! 어?

“시끄럽고. 그래서 정말 상가번영회랑 접촉했다고요? 세 곳 다?”

-헤헤헤. 제가 누굽니까! 종배수 아닙니까. 종! 배! 수! 이런 놈들은 다 이 손바닥 안이라는 겁니다! 예?

“시끄럽다고 했죠? 알았어요. 일단 해 달라는 대로 해 줘요. 하지만 알죠? 거기서 종 사장님이 해야 할 일 잊으면…… 죽는다.”

-거, 걱정 마십시오! 추, 충성!

“충성은 씨발. 안 닥치지?”

-합! 드, 들어가십쇼!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묘한 눈빛을 지으며 턱을 긁었다.

‘비슷한 놈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는 건가?’

아직 리모델링 공사도 끝나지 않았을 시점인데, 상가번영회와 접촉을 했다고 한다. 종혁이 용의 선상에 올린 상가번영회와 말이다.

가격 담합이 그리 쉽게 이뤄지겠는가. 분명 구심점이 있어야 했고, 종혁은 그걸 상가번영회로 봤다.

‘그리고 그렇게 구심점이 있어야 군부대와 원활한 거래를 할 수 있겠지.’

“누구? 종배수?”

“상가번영회와 접촉했다네요. 세 곳 다. 회원으로 등록도 했고요. 굴러온 돌이라고 등록비로 천만 원씩 냈답니다.”

운영회비는 별도였다.

“종배수 능력 좋네…….”

“어? 종배수에 대해 아세요?”

“서울에서 형사밥 먹은 형사치고 뻑치기의 대부를 모르겠냐. 지금도 그놈 전화 한 통이면 수십 명은 족히 몰려들걸?”

“자기 말로는 아리랑치기라던데요?”

“아리랑치기나 뻑치기나.”

한때 구성원만 수십 명인 아리랑치기 조직을 만들어 서울 경찰들을 골치 아프게 했던 종배수.

“명동파 밑으로 들어갔단 소식은 들었는데…… 걔가 네 정보원이 됐을 줄은 몰랐네. 대체 언제 목줄 채운 거야?”

“정보원은 아니고 그냥 뭐…… 흠. 아니, 맞나?”

매일 서울에서 발생하는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 오니 반쯤은 맞다고 볼 수 있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을 맺게 됐어요.”

-다음 소식입니다. 이택문 경찰청장이 인천경찰청의…….

사무실에 있던 형사들 전부가 한쪽 벽에 걸려 있는 TV를 응시한다.

“이야, 주한빈 그 개새끼 하나 때문에 여럿 나가리되는구마잉.”

주한빈의 뒷배였던 인천경찰청장.

주한빈이 박 사장, 박호섭에게 받은 뇌물이 그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이 발견된 순간 인천경찰청장은 결국 자리에서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박호섭의 뇌물 장부를 확보하면서 인천경찰청과 인천지방 경찰서 형사들도 줄줄이 목이 날아가는 중이다.

심지어 시의원, 구의원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현재 경찰 내부에서 TO가 많이 난 인천으로 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중이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용산구 아동 성폭력 사건 피의자 박 모 씨의 항소심을 법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원심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소식입니다. 이에 국회에서는…….

“에이, 저 개새끼.”

“씨발 새끼. 뭔 낯짝으로 항소를 해?”

종혁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 늙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몰래 손을 써서 악질 동성 성폭행범이 수감된 방에 집어 처넣었으니, 혹여 그 안에서 늙어 죽지 않더라도 성에 대한 가치관이 아주 변해서 나오게 될 거다.

“어뗘, 소감이? 저놈 최 팀장이 잡은 놈이자너.”

“정의는 승리한다?”

순간 사무실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이렇게 범죄자가 제 죗값을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형사인 그들로서는 이 땅에 아직도 정의가 살아 있음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흠. 투견 도박꾼들에 대한 결심이 모레였던가?’

도박을 주최한 주최 측이나 개장수들은 이미 진즉에 법정 최고형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주목도가 적은 도박꾼들은 이제야 형이 집행될 예정이다.

그사이 별일이 없다면 이들도 최고형을 받게 될 거다. 일단 러시아와 미국이 얽혀 있는 사건이기도 하거니와 상습 도박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면서 집행 유예도 없을 예정이었다.

“그런디 요새 위수 지역 건드린다고 하지 않았어? 이렇게 엉덩이 뭉개고 있어도 돼?”

은근한 눈으로 물어 오는 김판호의 모습에 종혁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고, 김판호는 입맛을 다셨다.

띠리링!

“예,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 1팀장 최종혁 경정입니다. 무엇을……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충성. 전 과장님이 부르셔서 잠시 다녀올게요.”

“뭔 일로?”

“글쎄요?”

용무는 밝히지 않았지만 대충 예상이 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서랍을 열어 어떤 서류를 챙겨 든 종혁은 정용진 과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달그락!

“차향 어때요? 얼마 전에 선물 받은 건데.”

“그윽하니 좋네요.”

제법 세심하게 차를 볶은 티가 물씬 풍기는 녹차다.

종혁은 사무실 한구석에서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덕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윗분들께서 마케팅팀을 다시 맡아 볼 생각 없냐고 하던가요?”

움찔!

“……이런.”

“청장님은 아닌 것 같으니 기획조정관님이나 차장님이시겠군요.”

종혁이 쫓기듯 부서 이동을 했을 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전적이 있으니 정용진 과장을 통한 것이리라.

“최 팀장을 속일 수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전해 주세요.”

거대한 똥이 뿌려진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이다. 이택문의 원래 계획처럼 해체시키는 게 답이었다.

“그냥 홍보 쪽에서 흡수하는 게 가장 모양새가 좋을 겁니다.”

종혁은 그러며 들고 온 서류를 내밀었다.

[경찰 이미지 마케팅 방안.]

“대충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놨습니다.”

“……놓지 않고 있었군요.”

“끝이 어쨌든 제가 처음으로 맡은 팀이었는걸요.”

종혁의 담담한 눈을 빤히 응시하던 정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최 팀장 이름으로 윗분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후우. 이것도 끝났나.’

어이없이 부서 이동을 하면서 컴퓨터에 처박아 둬야 했던 경찰 이미지 마케팅 방안들과 이번 티엔쉔 사건을 통해 수정한 방안들.

‘이 정도면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도 어필할 수 있겠지.’

그럴수록 고위 간부들은 종혁 본인을 욕심낼 터.

그렇다고 공으로 넘기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포장되어 그 누군가의 업적이 된다 한들, 안건의 기안자로는 ‘최종혁’ 석 자가 새겨질 테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더 용무가 없으시다면 전 이만…….”

“종배수. 믿을 만합니까?”

이번엔 종혁의 몸이 굳었다.

“……예. 믿을 만합니다. 자기 주제를 아주 잘 아는 놈이거든요.”

그래서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눈치가 비상하게 발달되다 못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알아서 하는 놈이었다.

“곧 좋은 결과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거수경례를 한 종혁은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정용진은 턱을 긁었다.

“왜지?”

종혁이 좋은 결과라고 말하니 기대심이 차오르는 것보다 덜컥 겁부터 들었다.

“흐으음.”

정용진은 하품을 하며 깨어나는 덕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편 사무실을 나선 종혁은 혀를 내둘렀다.

“대체 정보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 거야?”

설마하니 종배수를 알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 경악했던 종혁.

‘흠. 이 정도라면 내가 겉으로 드러낸 일은 거의 다 알고 있는 셈이란 건데…….’

“재밌네.”

불쾌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감추기만 해서는 결국 의심과 경계를 받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선 위로 올라가는 데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뭔가를 감추고 있는 놈을 위로 올릴 만큼 경찰 조직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아마 정용진도 그런 의미로 굳이 종배수를 언급한 것일 터.

“정말 재밌어.”

정용진이 현재 어떤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지 몰라도 이러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 될 듯했다.

“어, 종 사장님. 스텝 좀 빨리 밟읍시다. 어떻게 하자는 거냐면…….”

*   *   *

토요일 오후, 군복을 입은 일단의 무리가 위병소를 넘는다.

“후우.”

“왜 그렇게 울상이야?”

“일병 김호일. 이렇게 외박을 나와도 결국 위수 지역이라서 말입니다.”

또 위수 지역.

함께 나온 8명 모두의 낯빛이 굳는다.

그들이라고 위수 지역이 좋을까.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부대 안은 더 미쳐 버릴 것 같으니 말이다.

“정말 그때 재우 지인한테 확 불어 버릴 걸 그랬습니다.”

움찔!

“씁!”

“음? 종혁이 형 말입니까? 무슨 일 있었습니까?”

이번에 며칠 타 부대로 지원을 나갔다 온 수고를 인정받아 오늘 외박을 인정받은 김재우. 그가 멀뚱멀뚱 쳐다보는 모습에 그들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사회에서 사고 치고 입대한 범죄자? 뭐 그 새끼 찾으러 부대에 오셨더라고.”

“아, 그렇습니까?”

‘하긴 종혁이 형은 대한민국 여기저기 다니니까.’

어쩔 때 보면 가수인 그들보다 더 전국을 누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재우가 별생각 없이 넘어가자 그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김 일병을 노려봤다.

“우 상병, 그럼 난 내 새끼들이랑 먼저 갈 테니까 복귀하면서 보자.”

“나도.”

“예. 충성. 열심히 빡세게 노시지 말입니다.”

“그럴 돈 있으면! 간다!”

그들이 멀어지자 우 상병은 김 일병과 재우를 툭 치며 부대 담벼락 근처로 갔다.

“넌 여기서 담배 안 피워 봤지?”

“이병 김재우. 그렇지 말입니다.”

“피워 봐. 죽인다.”

온갖 규제가 넘쳐 나고 흡연장 담배꽁초조차 깨끗하게 관리해야 하는 숨 막히는 부대를 더럽히는 그 배덕감은 해 본 사람만 안다.

그리고 위수 지역에서도 담배를 함부로 필 수 없으니 여기서 피고 가는 게 낫다.

“그것도 첫 외출이나 그렇지 말입니다. 재우 두 번째지 말입니다.”

“……아, 그래?”

“아닙니다. 피워 보겠습니다!”

재우는 얼른 담배를 물었고, 이내 우 상병이 하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흐흐. 어때, 죽이지?”

“이병 김재우. 그렇지 말입니다.”

“얼른 피우고 가자. 헌병한테 걸리면 좆된다.”

그 말에 급하게 담배를 편 그들은 담배 연기를 풀풀 풍기며 위수 지역으로 향했다.

우글우글!

군인과 민간인들로 가득한 위수 지역.

부대 밖에 나와서도 군복을 보자, 매섭게 눈을 빛내며 돌아다니는 헌병들을 보자 김 일병은 가슴을 콱 틀어막히는 것 같았다.

부대 밖임에도 부대 안인 것 같은 답답함.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환기를 시키지만 딱 거기까지다. 일병 월급으로는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야, 저번 외출을 다녀온 동기가 말하길 여기에 새로운 곳들이 생겼다고 하거든? 거기 가자.”

“거기라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일단 신식일 거 아냐!”

“……그건 맞지 말입니다.”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일 테지만 말이다.

김 일병은 기대심을 버리며 우 상병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어?”

몇 달 전, 아니 듣기론 몇 년 전에도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던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은 이질적인 신축 건물.

M-MOTEL이라는 필기체의 간판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저기 원래 성춘장 아니었습니까?”

물이 나오지 않아서 아침에 샤워조차 할 수 없던 성춘장. 외박, 외출을 나온 장병들이 밀리고 밀리다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었다.

“그, 그러니까?”

일단 방부터 잡아야 하는 그들은 홀린 듯 모텔로 향했다.

다 홀려서 온 건지 카운터에는 군인들로 가득했다.

“어서 오세요. 군인들을 위한 최신식 숙박 시설 밀리터리 모텔입니다! 세 분이신가요?”

“아, 안녕하세요! 네, 세 명입니다!”

“3인이면 온돌방밖에 이용 못하시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네!”

그들은 마치 호텔처럼 유니폼을 입은 아리따운 카운터 아가씨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숙박 요금은 6만 원부터 10만 원까지 있는데 어떤 방을 원하시나요? 10만 원 VIP 온돌룸은 안마의자와 월풀 욕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해외 축구와 야구의 시청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대실하는 방의 종류와 상관없이 1층에서 영화 DVD를 자유롭게 대여하여 감상 가능하다.

“허억!”

다른 곳과 똑같은 요금에 정신을 번뜩 차렸던 그들의 눈은 이어지는 말에 점점 커졌다.

지금 설명한 것의 반만 돼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VIP룸이요! 아…… 그런데 혹시 카드 결제가 되나요?”

뒤늦게 당장 지갑에 현금이 부족하단 사실을 깨달은 우 상병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어진 여직원의 대답은 정말 예상 밖의 것이었다.

“네, 물론입니다.”

“되, 된다고요? 여,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506호입니다. 이 카드키를 도어락에 대면 문이 열리고, 퇴실 시간은 내일 12시입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옙! 감사합니다!”

돌아선 그들은 재빨리 방으로 향했다.

“왁!”

“으악!”

방이다. 진짜 방이다.

3명이서 레슬링을 벌여도 충분히 넓고 깨끗한 화이트 톤의 공간.

눈이 파르르 떨린 김 일병은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

“끅!”

정말이었다. 2명은 충분히 들어갈 커다란 욕조와 비데가 달린 변기.

쏴아아아아!

“무, 물이…… 우, 우 상병님! 여기 좀 와 보시지 말입니다!”

“왜, 왜! 헉!”

폭포처럼 쏟아진다. 뜨거운 물도 펑펑 쏟아진다.

위수 지역 그 어느 모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적 같은 모습에 정신을 번쩍 차린 우 상병은 재빨리 리모컨을 찾아 커다란 TV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와아아아아!

“지, 진짜 나온다. 맨유랑 리버풀 경기 재방송이 나온다고!”

“예에? 꺽?!”

김 일병은 뒷목을 후려치는 충격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씻은 셋은 햇살을 머금은 듯 포근한 이불과 온몸을 노곤하게 녹이는 안마의자에 헤실헤실 웃었다.

“이, 이 정도면 10만 원이 절대 안 아깝지 말입니다.”

“앞으로 외박, 외출은 무조건 여기다. 무조건!”

이런 모텔다운 모텔에서 잘 수 있는데 그깟 두 달 월급이 문제일까.

“고릉! 헉! 안 돼! 자면 안 돼!”

이제 고작 저녁 7시다.

“야, 우리 그냥 시켜 먹을까?”

“깐돌이네 말입니까?”

위수 지역 유일의 치킨 배달집. 비둘기를 튀겨도 그보다 양이 많고 맛있을 것 같은 퀄리티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니다. 나가자. 나 들어오는 길에 새로 오픈한 고깃집 봤어. 그런데 상호가 M고깃간이더라.”

그 건물 3층엔 M차이나라는 간판도 있었다.

“에, 에이.”

아닐 거다. 우연일 거다.

이 거지 같은 위수 지역에 이런 모텔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인데, 이 정도 퀼리티의 고깃집이 있다?

“그건 진짜 상상 속에서나 벌어질 일이란 말입니다!”

그들을 착취 대상으로만 보는 위수 지역 상인들.

기대를 버려야 마음이 다치지 않는다. 부대를 나선 것에 의의를 두자.

부대 밖을 나올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다.

어쩔 땐 차라리 나오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못 견뎌서, 정말 견디지 못하기에 사람 취급을 받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난 사람이 아니라 착취 대상인 군인일 뿐이라며 포기를 해 버렸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희망을 가지면 안 된다.

그럼 괜히 마음만 다치기에, 앞으로 1년 넘게 남은 군 생활이 더 힘들어지기에 희망을 가지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 현실이 되었다.

치이이익!

불판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냉동삼겹살.

외박, 외출을 하면 언제나 질리도록 먹던 냉동삼겹살이다.

대량으로 조리하는 짭밥과 달리 굽자마자 먹을 수 있는 요리다운 요리이기에 선택권 없이 먹어야 했던 냉동삼겹살.

가격과 1인분 양도 다른 곳과 똑같다.

그런데…….

“저, 정말 제주 흑돼지 맞는 것 같지 말입니다.”

고기의 때깔이 다르다. 냉동삼겹임에도 마치 생삼겹처럼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영롱한 선홍빛의 자태.

“군인이야?”

“예?”

그들은 어슬렁거리며 다가온 종배수를 보곤 낯빛을 굳혔다. 누가 봐도 곱게 늙은 것 같지 않은 외모 때문이다.

“팍팍 먹어, 인마들아. 다 먹고 나면 저기 오락실이나 PC방 가서 놀고. 니들이 팔아 줄수록 내 주머니가 두둑해지니까. 흐흐흐.”

M-게임센터, M-PC&플레이스테이션.

“예…… 잘 먹겠습니다.”

“그래, 그래. 옳지. 에이, 기분이다. 여기 한 점씩 먹어!”

“아, 아니!”

종배수가 싼 쌈을 억지로 먹게 된 김 일병은 당황했다가 이내 굳어 버렸다.

씁쓸한 상추 속에서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풍부한 육향과 육질. 그 뒤로 아삭 씹히는 알싸한 마늘과 매운 고추의 향이 혀를 농락한다.

부르르!

‘그래! 이게 삼겹살이지!’

이게 사회에서 먹던 진짜 삼겹살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쌈의 마지막으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떠서 입에 가져간 김 일병은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씨발.”

이제야 드디어 착취 대상이 아니라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한편 밖으로 나온 종배수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손님들로 가득 찬 식당을 보았다.

“거참…….”

대체 얼마나 시달린 건지 울지 않는 군인들이 없다.

그리고 그 눈빛들. 일평생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아오다 겨우 사람 취급을 받았을 때서야 나오는 눈빛은 종배수에게 있어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그 자신도, 젊었을 적 거둔 동생들도 다 저랬기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새파랗게 젊은 놈들이……. 아직 고생조차 제대로 못해 본 것들이…….”

어디 배가 고파 라면을 훔치다 소년원에 들어가길 했을까, 풀빵 하나 사 먹겠다고 공장 하수구 청소를 해 봤을까.

고난 없는 시대에 태어나 풍족하게 누릴 것 다 누렸을 텐데도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짐승 같은 눈들이 된 것을 보자니 괜스레 짜증만 솟았다.

“쯧.”

종배수는 씁쓸해진 입에 담배를 물었다.

치이익!

“응?”

종배수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상가번영회 회장의 모습에 올 게 왔구나 혀를 찼다.

‘고새 일러바쳤구만?’

“어흠. 오픈빨을 아주 잘 받습니다, 종 사장님. 그런데…… 이건 좀 말과 다른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좀 애매했다.

가격을 낮춰 받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높여 받는다. PC방은 시간당 1800원에, 오락실은 일반 게임이 5백원이다. 아마 이 위수 지역에서 가장 가격이 비싼 가게가 바로 종배수가 이번에 오픈한 가게들일 것이다.

하지만 속 내용물의 결이 너무 차이가 나니 다른 상인들이 벌써부터 긴장을 하는 것이었다.

“크흠. 아무튼 이렇게 동네 분위기 흐리면 안 좋아요.”

“쯧쯧. 보쇼, 회장님. 장사하는 법 모릅니까? 몰라요? 다 이렇게 퍼 줘서 신뢰부터 얻어야 뭘 하든 할 거 아닙니까. 내가 박혀 있던 돌입니까? 누군 땅 파서 장사하나.”

“아, 그 말은……?”

회장의 얼굴이 펴지자 종배수는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어 쿡 찔러 줬고, 회장의 눈은 흔들렸다.

‘수, 수표?’

분명 수표 몇 장이 끼어 있었다.

“원금 회수부터 합시다, 원금 회수부터. 어차피 이 대한민국이 망할 때까지 위수 지역은 사라지지 않을 텐데, 어?”

종배수는 방금 전 돈을 찔러 넣은 주머니를 툭툭 쳤다.

내가 잘되어야 당신 주머니도 두둑해지지 않겠냐는 뜻.

“으하핫! 역시 우리 종 사장님은 말이 통한다니까!”

“손님이나 팍팍 보내쇼. 우리 회장님 친구분들도 좋고. 내가 풀코스로 쫘악 대접해 줄 테니까.”

“……하하.”

“그보다 여기 대대장 성향은 어떻습니까?”

움찔!

“그건 왜?”

순간 회장의 말투가 날카로워진다.

“당연히 새로 왔으면 물주들 대빵한테 인사를 해야지. 장사하는 사람이 그것도 모릅니까? 상부상조해야 군인들도 더 외박, 외출을 팍팍 어?”

“어흠. 그런 걸 안 좋아하는 분이라서 잘……. 알겠습니다. 손님 문제는 차차 그렇게 합시다. 아무튼 수고해요.”

종배수의 흉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회장은 돌아섰고, 종배수는 멀어지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대장 맞구만? 그리고 네놈이구만?”

뇌물을 받아 처먹는 놈과 군부대로 통하는 창구가 말이다.

“그리고 차차 그렇게 하긴. 내가 2주일 안에 온다에 내 모가지를 걸어, 인마.”

어디 뇌물을 한두 번 줘 볼까. 다물어진 아가리를 찢어 가며 뇌물을 구겨 넣어 여태까지 살아남은 게 종배수 본인이다.

하지만 이번에 뿌릴 건 뇌물이 아니라 독이다. 장막 뒤에 숨어 있는 기생충들을 무대로 끌어낼.

원래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계획은 외박, 외출을 나온 군인들이 찾을 수밖에 없게 해서 매출이 급감한 상인들의 반발을 끌어내는 한편, 상가번영회가 보는 그만큼의 손해를 대신 채워 주며 윗선과 연결되려고 했다.

하지만 눈물을 뽑아내는 아들뻘 군인들을 보자니 속이 터져서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종혁도 계획에 작은 변화를 줬으니 지체할 수도 없었다.

“자, 그럼 뿌려 보실까?”

제대로. 확실하게. 밑바닥 세계의 방식으로.

이번 일에 한해 종혁이 허락한 무한한 실탄.

종배수는 밑바닥 세계의 정수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까짓것 돈 많이 썼다고 화내시면 몇 대 맞지, 뭐.”

그래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촉이 꿈틀거리자 종배수는 핸드폰을 들었다.

“어, 그래. 나다. 지금 하는 일 없으면 나랑 일 좀 하나 하자. ……올라오라면 올라와, 인마! 이놈의 새끼가 말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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