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11화>
사건 현장에 도착한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랄 났네, 씨발.”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시끄럽고 잔혹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난잡하고 번잡한 현장. 그런데 방바닥에 구둣발 자국과 뭔가를 차고 짓이긴 자국들이 가득하다.
족적의 길이만 다를 뿐 족흔이 똑같은 걸 보니 답은 하나다.
보안원들이 현장 보존이고 뭐고 그냥 구둣발로 돌아다닌 거다.
“와, 이젠 놀랍지도 않네.”
고작 몇 시간 안 됐는데, 북한 경찰에 포기하게 된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대문과 현관문 주변을 둘러봤다.
“일단은 면식범.”
“어. 대문부터 현관문 안쪽까지 반항한 흔적이 없고, 문을 억지로 딴 흔적도 없어. 그렇다고 저걸 넘어왔다고 보기는 힘들고.”
깨진 유리 조각들이 담벼락 위에 박혀 있다.
흠칫 놀라 종혁과 오택수를 본 북한 측 사람들의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고, 고작 잠깐 본 것만으로 그런 걸 알 수 있단 말이네?’
‘뭐 이런?’
오준철도 이건 몰랐다는 듯 흠칫 놀란다.
“오 경감님은 재수 데리고 피해자 방부터 확인해 주세요.”
“피해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걸 찾으라는 거지?”
평소 성향은 어떤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혹여 일기장이라도 발견하면 대박이다.
“그럼 넌?”
“주변 탐문부터 해야죠. 어디의 누가 믿음직스럽지 못하잖아요.”
온갖 나쁜 소문이 자자했다지만,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하다. 직접 보고 듣고 판단해야 했다.
이웃들이 망상으로 악의적인 소문을 만든 건지, 착각을 한 건지, 진짜 목격한 건지에 대해.
“빠득!”
이를 악무는 오준철을 힐끔 본 오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야, 수고. 최재수 따라오고. 거기 류명호 씨, 잠시 협조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사건 현장의 첫 목격자, 막냇동생 류명호.
그렇지 않아도 그의 증언이 필요한데, 현장이 오염된 이상 더 절실해졌다.
“뭐하냐, 새끼야! 왜 신발을 신고 들어와! 여기서 더 현장 오염시킬래!”
“죄송합니다!”
“어휴, 씨발. 이 새끼 언제 형사 만들지?”
투덜거리는 둘을 일견한 종혁은 오준철을 봤다.
“당신은 날 따라와요.”
이번 사건은 결국 이들의 사건이다.
초동 수사를 좆같이 한 이유도 있지만, 담당 형사로서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었다.
“끄응. 아새끼래 사람 귀찮…….”
번뜩!
순간 눈이 뒤집어진 종혁은 오준철의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켁! 케엑!”
“종혁 동무!”
“하, 이 씨발. 사건을 이따위로 진행한 새끼가 뭐 잘났다고 아가리를 씨불이지? 야, 나 지금 엄청 참고 있거든?”
당장이라도 목을 꺾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신경 건드리지 말자. 진짜 살인 난다.”
“……크으.”
“그래. 그렇게 눈 깔고 잘 봐.”
오준철을 던져 버린 종혁은 집 앞에 몰려 있는 동네 주민들을 봤다.
“여기 인민반장이라는 분이 누구세요?”
“저, 접네다.”
무려 소좌 두 명과 보안원들이 우르르 나타나자 겁에 질린 주민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사십대 여성.
종혁은 푸근히 웃으며 다가섰다.
“잠깐 뭐 좀 여쭈려는 것뿐이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아, 일단 우리 배 좀 채우면서 이야기할까요?”
그러며 꺼낸 달러들에, 배 좀 채우자는 말에 낯빛이 어두워졌던 인민반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무, 무엇이든 물어보시라요.”
마을에 작은 잔치가 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사위가 어두워진 밤.
놀랍게도 동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순영이 다급히 불을 들어오게 만든 그곳에서 오준철이 코웃음을 친다.
“하, 내가 뭐라 그랬네?”
종혁은 그런 그를 어이없다는 듯 봤다.
오준철이 말한 것과 하나 다를 게 없는 주민들의 증언. 심지어 동네 중앙에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하는 자아비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가족을 위해서라고 외치던 류명옥. 그런 그녀가 반성하지 않는다며 몰매를 놨던 주민들.
거짓말엔 매가 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섬뜩하기까지 했다.
‘됐다. 됐어. 흠, 이러면 오빠가 범인으로 유력해지는데…….’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더러운 일이지만, 엄연히 현실에서도 겪은 적 있는 종혁은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몸을 헤프게 다룬 동생과 그것이 못마땅한 오빠. 기묘한 성벽.
‘류명옥 씨 친구들 이야기까지 들어 봐야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자꾸 그쪽으로 흘러가는 생각의 흐름에 골치가 아파지던 그 순간이었다.
“야-! 최 팀장-!”
집 안에서 터져 나오는 오택수의 외침에 눈이 번뜩인 종혁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뭐예요? 뭐가 나온 거예요?”
“티, 팀장님, 이거…… 이것 좀 봐 주세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얼굴을 구긴 최재수에, 그 뒤에서 울고 있는 류명호에 낯빛을 굳힌 종혁은 그가 내미는 연습장을 가져왔다.
2004년 3월 20일. 날씨 흐리다.
집에 먹을 게 떨어졌다.
일기였다.
찾았으면 좋겠다 여긴 일기. 어린 소녀 류명옥의 삶.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던 종혁은 한 곳에서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2004년 11월 3일. 눈이 온다.
눈치를 챈 오라바니가 나를 때렸다.
그리고 못나서 미안하다며 울었다.
난 괜찮습네다, 오라바니.
우리 이걸로 감자 구워 먹읍시다.
차락! 차락! 차라락!
2005년 7월. 덥다.
명호도 눈치를 챘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건만.
세 가족이 함께 울었다.
명호가 그만두라 외쳤다.
하지만 명호야.
가족 중 한 명만 희생하면 되는 거 아니갔어?
그러니 너만은 맑게 살아가라.
2006년 6월. 좀 따뜻하다.
오라바니가 그동안 내가 번 돈을 들고 뛰어나갔다.
날 놔주라고 빌러 간단다.
남자친구 경도도 같이 같다.
난 괜찮은데.
몸을 판 게 아닌데.
그냥 맞는 것뿐인데. 멍멍 짖으면 되는데.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타악!
닫히는 일기장과 함께 질끈 감긴 종혁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것이었다.
오빠와 남자친구가 사건이 발생한 시각에 입을 꽉 다문 이유가.
정말 먹고살기 위해, 살기 위해,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돈 있는 자들의 노리개가 된 어린 소녀.
그런 여동생의 치부를 숨겨 주기 위해 저녁마다 난리를 치며 구타를 하는 시늉을 한, 하루 온종일 날품을 파는 오라비.
그럼에도 겨우 세 가족이 한 끼 식사를 할 돈밖에 못 벌어 미안한 오라비.
모든 걸 알아차리고 돈 있는 친구들을 과외하고 숙제를 대신해 주며 그 대가로 먹을 걸 얻는 막냇동생.
그리고 다 알면서도 류명옥을 사랑한 남자친구 강경도.
“진짜 지랄이네, 씨발…….”
어찌 어린 소녀, 소년들의 사랑이 이리도 지독할까.
이래서 가난이 무서운 거다. 사람을 나락 어느 곳까지 처박을지 몰라서.
부모 없는 가난이라면 더.
“이…… 이! 이, 이 간나 새끼들 날래 잡아 오라! 싹 다 총살을 시켜 주갔어-!”
그나마 다행이다. 함께 슬퍼해 줄 사람이 있어서.
울음이 흘러나오는 집 안을 본 종혁은 결국 눈물범벅인 최재수가 내미는 편지 묶음을 보며 의아해했다.
“뭐야, 그건?”
“개새끼가 씨부린 글이요. 류명호에게 물어보니까 류명호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개새끼?”
“이것과 이걸 보세요.”
최재수가 내민 편지 두 장을 살핀 종혁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눈은 살벌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옥아, 오늘도 날씨가 맑구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편지와 다른 토악질 나오는 편지.
지독한 집착이 느껴진다.
스토커. 류명옥의 주위에 스토커가 있었던 거다.
“그래, 너구나?”
유력한 용의자가 말이다.
종혁의 이가 갈리기 시작했다.
일단의 지시를 내리고 다시 인민보안성으로 출발하는 길.
빛 한 점 없는 어둔 도로가 종혁의 심정 같다.
일기에도 언급되지 않는 집착의 주인공.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
‘일단 그 패거리 안에 범인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라면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거다.
‘하. 진짜 과학수사가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지문이나 DNA 검사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이 깜깜한 사건에도 빛이 팍!’
“응?”
차창 밖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종혁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세, 세워요!”
“예?”
“차 세우라고!”
끼이익!
차가 서자 종혁은 다급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종혁 동무, 와 그러십네까!”
순영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짓지만, 종혁은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이봐, 오준철 씨.”
“와 그러네?”
“여기 원래 이렇게 어두워?”
라이트를 끄면 한 치 앞도 분간이 안 될 만큼 어둡다. 마치 어둠에 잠긴 듯.
“아니디. 이번 주는 이 동네. 다음 주는 저 동네디.”
전력을 아끼기 위한 일시 정전. 평양이라고 다를 게 없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이번엔 이 동네인가 보구나. 흠, 날짜를 보니 이틀 전부터 이랬겠어. 와 그라네?”
“이틀 전?”
사건이 발생한 그 시각.
종혁은 오준철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그럼 그 목격자는 어떻게 강경도를 발견한 거지?”
“……어?”
“흡!”
사람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 * *
우박처럼 쏟아진 빗물에 짓밟힌 한 떨기 하얀 꽃의 아름다움이 이럴까. 흙탕물에 젖은 꽃의 향기가 이럴까.
“커헉! 와 이랍네까……. 오라바니, 살려…….”
배신과 절망으로 물들어 가는 눈.
금방이라도 만개할 듯 새빨갛게 물든 짓밟힌 얼굴.
지독한 시련에도 꺾이지 않았던 강인한 꽃이 꺾여 간다.
정절이란 꽃을 꺾는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날만을 기다리며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피지 못하고 시들면 안 되기에, 더 강인해져야 하기에.
그러한 결과를 보라.
“꺼흐윽! 꺼흑!”
쏴아아!
눈과 가슴에 내리는 비에 망가지는 꽃의 아름다움.
그래. 조금만 더…….
꺾이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이 힘찬 몸부림을 더 보여라.
순순히 꺾이는 꽃이 어찌 아름다울까.
쉽게 물드는 꽃이 어찌 아름다울까.
발버둥 치고 발버둥 쳐라.
더, 더, 더.
네 모든 아름다움을 내게 보여라.
“끅!”
투욱!
힘없이 떨어지는 꽃잎.
“끄흐읏! 하아하아. 푸흐흐…….”
드디어 꺾였다. 이 추악하고 더러운 진흙 밭에서 피어난 꽃이 시들기 전에 또다시 꺾었다.
하지만 아직이다.
그는 짓이겨지고 찢긴 옷을, 잎사귀를 벗겨 예쁘고 화사한 빨간 옷이란 포장지를 입혔다.
그래, 이것이다.
이게 진정한 꺾인 꽃의 아름다움이다.
찰칵!
“푸흐흐.”
이게 작품이었다.
“훅!”
벌떡!
몸을 일으킨 19세 청년은 불룩하고 축축한 사타구니를 발견하곤 낯빛이 흐려졌다가 입술을 비틀었다.
며칠 전 일을 생각하니 다시 힘이 들어가는 사타구니.
몸을 일으킨 그는 책장에 꽂힌 두꺼운 사진을 꺼내 활짝 펼쳤다. 거기엔 꽃들이 있었다.
비를 맞았음에도 예쁘게 포장된 한 송이 꽃이.
“흐!”
다시 사전을 책장에 넣은 그는 어기적 화장실로 향했다.
“다녀오갔습네다.”
“그래, 잘 다녀오라!”
그는 오마니의 배웅에 안경을 추켜세우며 집을 나섰다.
그때였다.
“조남명 씨?”
흠칫!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벽, 아니 종혁에 조남명이 질겁한다.
“뭐, 뭡네까?”
“경찰입니다.”
순간 조남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경찰이 뭡네까?”
“아.”
달칵! 치이익!
그의 집 근처 풀밭.
근처에 변변한 카페조차 없기에 북한에서 단물이라 말하는 음료를 종혁이 넘긴다.
“마셔요.”
“가, 감사합네다.”
근처를 둘러싼 보안원들에게서 시선을 뗀 조남명은 기이하다는 듯 종혁을 봤다. 방금 전에는 너무 놀라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다시 들으니 이질감이 확 느껴지는 말투.
“혹시 남조선 사람입네까?”
“예. 한국에서 경찰, 그러니까 북한으로 치면 인민보안성이나 보위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인데, 저도 적국인 나라에서 이게 뭔 짓거리인지 모르겠네요.”
조남명의 낯빛이 살짝 굳었다가 펴졌고, 종혁은 그런 조남명을 유심히 살핀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인 고급중학교를 졸업하면 죄다 군대에 가야 하는 북한임에도 입대하지 않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한 수재 조남명.
그런데 공교롭게도 류명옥과 같은 고급중학교, 한국으로 치면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여기에 류명옥을 괴롭히던 패거리도 같은 고급중학교.
‘참 공교롭게도 말이지.’
종혁의 머릿속에 어떤 사건에서 범인을 찾을 수 없다면 첫 목격자가 범인일 확률이 높다는 형사의 오랜 격언이 떠오른다.
“에휴. 뭐 조남명 씨도 얼른 학교 가셔야 할 테니 후딱 해치우고 끝냅시다.”
조남명은 귀찮음으로 가득한 종혁의 모습에 눈을 빛냈다.
“예. 물어보시라요.”
“하하. 협조 감사합니다. 전날 밤, 그러니까 나흘 전 밤 11시쯤에 어딘가로 헐레벌떡 달려가는 사람을 목격하셨다는 증언을 하셨죠?”
“예, 그랬습네다. 보안원들이 그 동네 근처에서 큰일이 벌어졌다며 검문을 하고 다니기에 본 걸 말한 적이 있습네다. 그런데 남조선 사람이 공화국의 말을 듣는 겁네까?”
호기심이 가득한 그의 모습에 종혁은 손을 저었다.
“뭐 그런 일이 있어요. 그게 이 사람이었던가요?”
툭 던지는 류명옥의 남자친구 강경도의 사진에 조남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네다. 그런데 귀화했습네까?”
“아직은 아니네요. 흠. 그런데 혹시 그때 이 사람 옆에 누군가 있는 건 보지 못했습니까?”
움찔!
“사람 말입네까?”
“이렇게 생긴 사람인데…… 그 어두운 저녁에 류명옥 씨의 남자친구를 목격할 정도로 눈이 좋다면 분명 이 사람도 보셨을 겁니다. 잘 기억해 보세요.”
종혁이 꺼낸 류명진의 사진에 순간 눈빛이 흔들렸던 조남명은 고개를 저었다.
“보지 못했습네다. 기런데 대체 무슨 일입네까?”
종혁은 작은 호기심을 드러내는 조남명을 빤히 응시했다.
“살인 사건입니다.”
“……예에?!”
“고작 16살 소녀가 끔찍한 일을 당한 사건인데…… 아, 혹시 이 학생을 아십니까?”
종혁은 슬그머니 류명옥의 시체 사진을 내밀었고, 조남명은 파리하게 굳은 그녀를 보곤 살짝 낯빛을 굳혔다.
역시 아름답지가 않다. 이렇게 파랗게 생기가 사라진 꽃은.
그와 동시에 종혁의 눈치를 본 조남명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후우. 압네다.”
종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세요?!”
‘어라?’
종혁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같은 고급중학교 출신의 후배입네다. 저와 같은 학년이었던 동무들이 최근까지 괴롭히던 아이였디요. 아마 동창들 중 이 에미나이를 모르는 동무는 없을 겁네다.”
마치 미리 준비했다는 듯, 정말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조남명의 음성에 안타까움이 서린다.
“그래서 안타까워 몇 번 도움을 준 기억이 있습네다. 그런데 간살을 당했다니…….”
움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촉촉이 젖는 목소리에 종혁은 낯빛을 굳혔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럼 그 시각 그 근처에 가신 것도…….”
“아, 아닙네다!”
다급히 손을 저은 조남명은 얼른 말을 이었다.
“그 근처에 사는 후배가 공부를 가르쳐 달라기에 가르쳐 주다 통금 시간이 지나 급히 걸음을 재촉하였던 겁네다!”
“아, 그러셨구나……. 하, 아무튼 이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을 목격한 게 없다는 말이죠?”
“그렇습네다.”
“……감사합니다. 하아, 그럼 이 개새끼를 대체 어디서 잡아야 하는 건지……. 아으, 씨발.”
순간 조남명의 눈이 빛난다.
‘아직 잡지 못했단 말이간?’
그는 속으로 씩 웃었다.
“그러게 말입네다. 그런 어린 꽃을 짓밟은 그 강경도 아새끼는 얼른 잡아다 총살을 시켜야디요.”
“……그렇죠. 에휴. 아무튼 협조 감사합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가 보세요.”
“가, 감사합네다. 기럼…….”
허리를 꾸벅 숙인 조남명은 멀어졌고, 그런 그를 응시하던 종혁은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거보시라요. 저런 인재가 그런 일을 벌일 리 있갔습네까?”
종혁은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말고 범인을 찾자는 듯한 림학철과 오준철을 외면하며,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다가오는 오택수를 봤다.
도깨비보다 더 흉흉하게 구겨진 오택수의 얼굴.
빠드득!
그 살벌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흠칫 놀랐지만 종혁은 아니었다. 그는 욕이 나올 만큼 푸른 하늘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오 경감님, 내가 강경도 씨의 이름을 말했던가요?”
“……아니.”
움찔!
눈을 부릅뜬 사람들이 종혁과 오택수를 바라본다.
종혁은 담배를 물며 이를 악물었다.
“강간살인이라고 말한 적은요?”
범인 외엔 딱 그들만 아는 강간.
“없어.”
……까드득!
종혁과 오택수는 조남명이 사라진 자리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너구나?”
어떤 사건에서 범인을 찾을 수 없다면 첫 목격자가 범인이다. 형사의 오랜 격언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