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69화>
라이트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실 안.
솜 따위가 가득 든 가죽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린다.
퍼억! 퍽!
땀을 뻘뻘 흘리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잡고 있는 샌드백을 두드리는 중년인.
나이가 나이임에도 웬만한 여성 허벅지만 한 팔뚝이 인상적이다.
거기다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시 주먹질을 멈춘 중년인은 한 사내가 넘기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쥐색 정장을 입은 삼십대 중반의 사내가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사내.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퍼억!
샌드백을 후려친 중년인은 이를 갈았다.
“거지 같게 됐구만. 원래 계획이 뭐였지?”
“그 노숙자 년과 어울리는 노숙자 새끼들에게 강간살인으로 누명을 씌우는 거였습니다.”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을 시각,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해치울 계획이었다.
그 누구도, 경찰과 검찰도 노숙자의 말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완벽했던 계획이다.
“어제 세운 계획은?”
“그 가출팸 새끼들을 폭행치사로 엮는 거였습니다.”
혈기 넘치는 놈들을 한 방에 모아 뒀는데 의견 다툼 하나 없을까.
거기다 가출한 놈들일 게 뻔하니 경찰과 검찰은 이놈들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다.
모두 깔끔하고 완벽한 계획이었다.
“후우…….”
하지만 포주가 붙었다면 다시 계획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 그 어떤 포주가 상품을 죽일까.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납치를 하든 섬에 팔아 버리든 빨리 세상에서 지워 버릴 걸 그랬다.
너무 조심을 했던 것 같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그 포주 새끼는 어디 놈인데?”
“죄송합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뭐?”
“이게, 애들 말로는 그놈이 본청 불도저를 닮았다고 합니다.”
제대로 확인조차 되지 않은 정보라 말하기 싫었지만, 만약 말하지 않았다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일이 커질 수도 있었다.
“누구? ……아, 그 어린 새끼?”
“예. 최종혁 팀장 말입니다.”
최종혁. 들어 본 이름이다.
미친개 김종두가 키운 불도저.
경찰 상부가 예뻐해 아무나 밀어 버리는 상또라이.
그놈 때문에 해체된 조직이 몇 개던가. 밀수 조직부터 마약 조직까지, 자연재해와 다름이 없는 놈이었다.
이번엔 종혁과 연관 된 정용진 과장 때문에 전국 조직이, 고등학생들을 스카우트하던 조직들이 쓸려 가고 있었다.
‘상부가 좀 예뻐한다고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는 망아지 새끼.’
이렇게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 곧 칼을 맞아도 맞을 애새끼다.
“그래, 기억나네. 태릉 피트니스와 연관되어 있는 놈이었지?”
당시 어디의 어떤 조직이 헬스클럽 프렌차이즈화를 시도하며 양지로 나오려다가 박살이 났고, 경찰과 검찰이 전국 모든 조직을 예의 주시했다. 그 때문에 사장도 헬스클럽을 관두고 이 엔터테인먼트를 차려야 했다.
“확실한 거야?”
“사진이 너무 흐릿해서…… 죄송합니다. 내일 감시하는 직원에게 딸려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확실해질 때까지 그 노숙자 년에게 손 떼.”
정말 종혁이라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일을 치르기 전이라는 것.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만약 정말로 이놈이 그 어린 새끼면 어떡합니까?”
“……손 털어야지.”
종혁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상황이 상황이라서다.
전국의 조직들이 쓸려 가고 있는데, 경찰이 죽는다?
그땐 청소년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조폭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그런 귀찮은 상황은 피해야 했다.
“알았어. 나가 봐.”
“예.”
다시 허리를 숙인 사내가 나가자 사장은 샌드백을 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핸드폰이 울렸기 때문이다.
“전화 왔습니다, 사장님.”
“줘 봐. 아이고, 배우님.”
-그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움찔!
그 일, 방금까지 대화를 나눴던 일이다.
‘쯧.’
“걱정 마세요. 잘 처리되고 있으니까. 그보다 날 잡아야죠? 곧 한 식구가 될 텐데 식사 정도는 괜찮잖아요.”
-……명심하세요. 그 일이 처리되지 않는 이상 절대 계약서에 사인 못합니다. 끊습니다.
뚝!
끊긴 핸드폰을 본 중년인은 피식 웃었다.
“시대가 좋아지긴 많이 좋아졌구만. 이런 딴따라 새끼가 감히 먼저 전화를 끊고.”
옛날 같았으면 어림도 없던 일.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작 상품이라도 100억, 200억을 벌어다 줄 놈이라면 허리를 정도는 굽혀 줘야 했다. 그게 설사 목격자인 노숙자를 죽이는 거라고 말이다.
일단 계약서에 사인만 하게 하면 끝.
그때부턴 이쪽의 입맛대로 굴릴 수 있었다.
‘한류. 참 멋진 말이지. 어떻게 굴려야 할까…….’
종혁에 대해 잊어버린 채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 중년인의 얼굴이 더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거리에서 만나면 무조건 시선을 피할 것 같은 미소.
“꽉 잡아.”
“예, 사장님.”
쉬익! 퍼어억!
다시 샌드백에 꽂히는 주먹.
“으으으.”
샌드백 안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야, 거기 건물주 누군지 나왔거든? 근데 이거 좀 골치 아파졌다?
형사 일에 잔뼈가 굵은, 아무나 물어뜯어 도사견이라 불렸던 오택수가 난처해하고 있다.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군데요?”
-너 혹시 삼겹살이라고 아냐?
“……누구요? 삼겹살? 내가 아는 그 삼겹살이요? 만득이 새끼 똘마니? 빛가람파?”
불곰 김만득.
전국구 조폭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3대 조폭 중 만득이파 두목으로 현재 수감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빛가람파는 그런 만득이파의 산하 조직으로, 정확히는 만득이파를 구성하는 조직들 가운데 하나로 두목 이름이 김가람이라서 그렇게 지었다.
즉, 삼겹살의 본명이 김가람이란 소리였다.
-어? 아네?
“나도 형산데 이 새끼들을 모를 리 없잖습니까.”
‘씨발, 그래서 라이트였냐?’
종혁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갑자기 사이즈가 뻥튀기 되었다.
찰칵! 치이익!
“지랄 맞게 됐네.”
조직명부터 두목 이름까지 죄다 순수하지만, 하는 짓은 결코 순수하지 않은 빛가람파의 삼겹살.
무려 만득이파의 최고 간부 중 하나다. 두목 김만득이 교도소에 갔음에도 아직 한국의 밤을 꽉 쥐고 있는 만득이파의.
-어떡할까? 여기 관두고 합류해?
순간 혹했던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곧 외사국으로 넘어갈 텐데, 재수에게 최대한 경험을 쌓게 해야죠.”
이제 외사국으로의 인사이동에 대해 마음을 굳히다 못해 인사이동 신청까지 한 종혁.
해외로 튀는 놈들을 잡는 외사국.
기껏해야 칼이나 몽둥이를 휘두르는 게 전부인 한국이 아니라, 여차하면 총알이 날아올 수 있는 동네도 가야 하기에 최재수가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는 최재수가 경험을 쌓기에 딱 알맞은 장소였다.
-그럼 어쩌려고? 이 새끼는 아무리 너라고 해도 감당 못한다. 아니, 일개 경찰 한 명이 덤벼 볼 사이즈가 아니야.
“그건 오 경감님과 재수가 합류해도 마찬가지죠.”
-……맞는 말이니 할 말이 없네.
“알았어요. 아무튼 끊어요.”
-왜? 뭐 어쩌려고?
‘어쩌긴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사이즈가 감당될지 안 될지는 견적부터 내 봐야 아는 거죠.’
“예, 과장님. 잘 계셨죠?”
-……방금까진 잘 있었던 것 같아. 방금 밥 먹었거든? 소화제 먹어, 말아?
“속이 불편하면 드셔야죠. 그보다 만득이네 삼겹살에 대해서 좀 아세요?”
-……지랄 났네, 씨발. 어디야?
* * *
치이이익!
노릇하게 구워지는 삼겹살 위로 술잔이 부딪친다.
“자, 건배!”
채앵!
경쾌하게 부딪쳐 영롱한 소리를 내는 두 개의 술잔.
그러나 한 개의 술잔이 호응을 하지 않는다.
종혁은 이 술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서울청 소속 광수대 대장을 응시했다.
본청 광역수사대의 수사 범위가 전국이라면, 서울 및 수도권으로 수사 영역이 한정된 서울청 광역수사대.
김종두가 데려온 사람이다.
종혁은 뚱한 그의 모습에 결국 술잔을 내려놓았고, 김종두는 얼른 입을 열었다.
“자자,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 이쪽은…….”
“꼬미는 얼마나 서셨습니까?”
꼬미. 잠복을 뜻하는 형사들의 은어다.
김종두가 갑자기 이 사람을 왜 데려왔겠는가. 서울청 광수대가 빛가람파를 조사하고 있단 소리다.
‘그리고 소득도 별로 없단 소리겠지.’
소득이 있다면, 빛가람파의 두목 삼겹살을 검거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면 이렇게 따라왔을까.
움찔!
김종두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종혁의 말에 광수대 대장이 종혁을 노려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치 이쪽의 사정은 다 알고 있다는 듯 흔들리지 않는 종혁의 눈을 본 광수대 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가 귀신같다더니…….”
들켰다. 지금 한참 조사하고 있는 빛가람파에 대해 소득이 별로 없다는 걸 말이다.
여기로 오는 길, 속일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라는 김종두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씨벌. 진짜 몇 살입니까?”
종혁은 활짝 웃었다.
“하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종혁 경정입니다, 선배님.”
“그쪽 이름은 들어 봤수다. 최철호요.”
고작 27살의 나이에 경정이고, 본청 수사팀 팀장이다.
거기다 해결한 사건이 몇갠가.
종혁은 나이의 범주를 벗어난 괴물이었다.
그래서 혹시 지난 1년간 고생한 사건이 뺏길까 화들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별다른 소득 없는 이 답답한 상황을 해결할 단서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온 최철호 대장.
그의 가슴에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삼겹살에 대해선 내일까지 서류로 정리해 보내 드릴테니, 일단 그쪽 사연부터 들어 봅시다.”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믿어도 되는 거죠?”
“정보 숨겼다가 이 형님한테 맞아 죽으라고? 됐수다. 그런 취미 없수다.”
최철호의 눈을 빤히 응시하던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응? 뭐야, 그러니까 뭐 없단 소리네?”
어떤 범죄에 대한 제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삼겹살을 엮을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심증뿐.
부들부들 떨던 김종두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야, 이씨! 너 오늘 무슨 날인 줄 알아?!”
유부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다.
와이프 생일.
욕먹을 각오를 하고 왔는데, 들은 이야기가 고작 삼겹살이 웬 노숙자 소녀를 노리고 있다는 거다.
열불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너 죽고 나 살…….”
“여기 있습니다!”
종혁은 재빨리 테이블에 종이백을 올려놓았다.
“이게 피부 미용에 아주 그냥…… 예?”
“……썩을 놈. 아직 안 잊었네.”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요. 그보다 우리 과장님 현장 안 뛰시더니 감 많이 죽으셨네요?”
“뭐, 인마?”
“아니면…….”
순간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감이 죽은 척을 하시는 걸까요? 최 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분명 웃고 있음에도 눈은 차갑기 그지없는 살벌한 미소.
흠칫 몸을 굳힌 김종두는 이내 얼굴을 구겼다.
“……썩을 놈의 시키. 다른 부서 갔다고 맞먹지, 그냥?”
“그러게 밥그릇 싸움을 왜 합니까? 사람 서운하게.”
“뭐, 인마?”
“사랑합니다.”
“……어휴. 내가 호랑이를 키웠지. 호랑이를.”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종혁이라 콧방귀를 뀐 김종두는 술을 쭉 들이켰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돌변한다.
“재밌네.”
탁 술잔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차갑게 비틀리는 입술. 과장이라는 관리자급이 되면서 제법 빠졌던 미친개의 독니가 드러난다.
최철호도 비릿하게 웃으며 담배를 문다.
“삼겹살네 식구들이 노숙자 소녀를 감시한다라…….”
왜일까. 대한민국 폭력 조직을 주욱 늘어놨을 때 무조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빛가람파가 왜 노숙자 소녀를 감시할까.
답은 하나다.
미정이라는 노숙자 소녀가 빛가람파에게 치명적인 칼이 될 뭔가를 가지고 있단 소리다.
깔아 놓은 인맥도 많고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기에 눈앞에서 얼쩡거리는데도 치워 버리지 못했던 빛가람파.
사회의 암덩어리를 치워 버릴 기회가 온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종혁은 최철호를 쳐다봤다.
쭈욱!
술잔을 들이켠 최철호는 투덜거렸다.
“씨벌. 다 털리겠네.”
찌릿!
‘됐군.’
이제야 좀 알게 될 것 같다. 미정과 빛가람파의 관계에 대해 말이다.
“우리 이건 하나 짚고 넘어갑시다.”
“걱정 마십시오. 저 식구의 밥그릇 노릴 만큼 배고픈 놈 아닙니다. 그냥 제 이름만 넣어 주십시오.”
최철호의 얼굴이 활짝 폈다.
“이런 아저씨의 술은 안 받으시려나?”
“하하. 안 받긴요!”
다 타 버린 삼겹살 위로 세 개의 술잔이 부딪쳤다.
“크으! 그럼 전 그렇게 알고 먼저 일어납니다.”
“뭐? 벌써?”
아내에게 줄 선물도 생겼으니 아직 한 시간 정도는 더 여유가 있었다. 새벽에 핸드폰이 울려도 그 상대가 종혁이라면 짜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얼른 가라며 등을 떠미는 아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김종두는 최대한 불쌍하게 눈을 초롱초롱 떴지만, 종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이번 일을 진행하기 전에 선결되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러냐…… 쩝. 알았어. 가 봐.”
“옙!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아, 그런데 사모님 생신은 내일 아니었어요?”
“……오늘 아니었냐?”
“내일이요.”
“씨부럴. 어쩐지 아까 통화할 때 아무렇지 않아 하더라니…….”
그래서 이젠 정말 포기해 버렸나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큭큭. 수고하십쇼!”
종혁은 키득키득 웃으며 고깃집을 나섰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자, 그럼 움직여 보실까?”
미정이 숨기고 있는 일을 알기 전에 선결되어야 하는 일.
휘잉!
아직도 서늘한 밤바람이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