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19화 (41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19화>

“하하. 반갑습니다. NYPD의 청장, 커트 샘슨스입니다.”

덩치가 후덕한 백인의 노인이 손을 내민다.

뉴욕 경찰국이지만, 청장.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뉴욕 경찰국 안에는 한국의 본청처럼 수많은 국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이곳에서 연수를 받기로 한 대한민국 경찰청의 최종혁입니다.”

“성이 혁?”

“최입니다.”

“아, 최. 맞아. 이쪽은 경찰위원장 레이먼드 켈리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미국 경찰의 독특한 체계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이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각 시의 시장이 임명하여 경찰청장의 독주를 견제하는 5년 임기의 감리위원.

다른 말로 시장의 눈과 귀, 그리고 입안의 혀가 되어 주는 사람으로서 각 부서의 운영뿐만 아니라 부서장, 하위 간부를 포함한 대리인을 임명하는 존재다.

미국 영화를 보다보면 자주 NYPD의 청장이나 국장 등 부서의 장들이 마치 부패한 시장의 안위를 위해 사건을 묵살하는 등 악의 인물처럼 묘사가 되는데, 그건 청장이나 국장 등 부서의 장들이 아니라 바로 이들을 말하는 거다.

번역이 되면서 약간의 오역이 되는 것.

그렇다고 완전히 청장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게, 이들의 계급이 진짜 경찰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찰이 아닌 민간인 행정관이며, 이들과 이들이 임명하는 대리인들은 경찰의 맹세가 아니라 취임선서를 하는 특별직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경찰청장에게 인사 권한이 없는 건 아니다.

경찰청장 역시 부국장 등 이 감리 위원이 임명한 부서의 장을 견제하는 인물들을 인사할 수 있다.

미국 영화나 수사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인 captain, 경위 혹은 경감 계급 이상 계급들 인사는 모두 경찰청장의 재량이기 때문이다.

‘독주를 막는다는 부분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글쎄.’

이들은 철저히 시장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에 시장이 부패한 인물라면 꽤 골치 아픈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거대한 배 안에 있는 두 명의 선장이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서로 성향이 맞으면 시너지가 폭발할 테지만, 아니라면…….’

행동 하나하나가 제동이 걸릴 테고, 그렇게 되면 모든 상황이 지진부진해질 수밖에 없었다.

“최종혁입니다.”

“자존감이 강한 분이군요. 그러니 첫 출근부터 그런 사고를 친 거겠죠. 부디 선진국인 미국에서 많은 걸 배워 가길 바라겠습니다.”

성을 앞에다가 붙이니 왜 미국식 이름 표기를 따르지 않냐, 넌 미국 경찰도 아닌데 왜 범죄자를 함부로 잡았냐, 너희는 후진국이니 고개 숙여 배우라고 비꼬는 말.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미국 우월주의가 깔려 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양반이네.’

그러나 이런 걸로 발끈할 나이가 지났기에 종혁은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하하. 덕담 감사합니다.”

“드와이트 국장?”

“아, 예. 폴슨?”

감리위원이 형사국 국장 드와이트를 보자 드와이트가 형사국 수사계 계장인 폴슨을 본다.

“예. 가지, 최.”

백인 장년인인 폴슨은 종혁을 데리고 다시 수사계로 향했다.

“일단 최는 두 달간 우리 수사계에서 일을 하게 될 거야. 혹시 오기 전에 있던 부서가 어디지?”

마치 덩치만 큰 애를 보는 듯 걱정과 우려가 섞인 시선에 종혁은 일그러지는 얼굴을 억지로 펴야 했다.

‘하, 씨발. 진짜…….’

“현재는 외사국의 외사수사과 소속입니다. 그 전에는 특별수사팀과 특수범죄수사과에 있었습니다. 간부다 보니 여러 부서를 이동하게 되더군요.”

“오! 현장에 익숙한 형사였군! 내가 무례했다면 사과하지. 가끔…….”

“현장을 겪지 않은 채 연수를 오는 엘리트 간부들이 있긴 하죠.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일본이 좀 그러더군.”

“그거 인종 차별입니다.”

“……으하핫! 방금 농담 좋았어.”

‘농담 아니다, 이 양반아.’

이놈의 미국 우월주의는 적응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그래도 폴슨 계장의 우려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여차하면 총이 난사되는 미국.

소변이 급해 뒷골목에 들어갔다가 다음 날 몸에 구멍이 뚫린 변사체로 발견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각 나라에서 날고 긴다는 베테랑들이라고 해도 총기에 익숙하지 않다면 쭈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일단 임시 파트너를 정해야 할 텐데…….”

종혁이 요란한 첫 등장 신을 찍은 수사반을 둘러보던 폴슨은 모두가 시선을 피하는 와중 자신을 또렷이 노려보는 젊은 형사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쟤밖에 없냐는 좌절 섞인 한숨.

“끄응. 존!”

“예!”

후다닥 달려온 이십대 후반의 젊은 경찰.

종혁은 마치 간식 소리를 들은 강아지처럼 폴슨을 보는 존의 모습에 정말 이게 최선이냐는 듯 폴슨을 노려봤다.

그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그.

“크흠. 그래도 나름 5년 차 형사이니까 좋은 파트너가 되어 줄 거야. 아, 혹시 연수생들을 위해 마련된 관사에 입주했나?”

‘에라이.’

화제를 돌리는 그의 모습에 결국 얼굴을 구긴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따로 방을 잡았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존, 오늘부터 두 달간 임시 파트너가 되어 줄 최다. 서로 인사해.”

“반가워, 최! 난 존 셜리번. 편하게 조니라고 불러 줘.”

“최종혁입니다. 최가 성입니다, 조니.”

“여기 최에게 뉴욕 경찰국에 어떤 부서들이 있나 안내해 주고, 비품과 총기를 수령받을 수 있게 해.”

“알겠습니다! 가죠, 최!”

“……후우. 예, 뭐 그럽시다.”

‘시벌. 연수까지 와서 애새끼 뒤치다꺼리나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렇게 존의 안내를 받아 뉴욕 경찰국 내부 부서들을 모두 탐방한 종혁은 눈을 빛냈다.

꽤 독특한 부서가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 교통 시스템 내의 비상 상황에 대응하고 순찰하는 환승국과 뉴욕시에 있는 공공주택의 거주자, 직원 및 손님에게 경찰 서비스의 보안 및 제공을 제공하는 주택국, 부서의 법률 문제와 관련하여 법 집행 요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률국이 바로 그것이다.

수배자만 전담해 쫓는 부서도 있고, 뉴욕시에서 영화나 TV프로그램을 촬영할 때 그 지원을 하여 교통 및 사람을 통제하는 영화 및 TV 유닛, 민간 기업을 위해 경찰을 파견하는 부서도 꽤 독특하다. 놀랍게도 이 부서는 경찰이 근무 시간 외에 돈을 벌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부서다.

‘이건 좀 부럽네.’

왜 그동안 TV나 드라마에서 한국 경찰이 부패의 상징처럼 묘사됐던가.

물론 지금이야 종혁의 개입으로 인해 그런 묘사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모두 뒷돈을 욕심낼 만큼 근무 환경이 열악하고 월급이 쥐꼬리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런 이유로 견찰들이 되는 경찰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물론 다 개소리지.”

돈 때문에 타락할 거라면 차라리 경찰을 관두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게 맞다. 모두 자기 합리화였다.

“뭐?”

“아닙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총기도 등록했고 비품도 수령받았으니 우리 NYPD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치안을 담당하는지에 대해 알려 줘야지. 따라와!”

그 순간 종혁은 존의 성향에 대해 깨달았다.

‘오지랖이 넓은 타입이구나.’

“……에혀. 그래. 가자, 가.”

“What?”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그런데 갈 거라면 제 차로 가시죠.”

“오! 벌써 차까지 렌트했어? 그래! 나야 기름값 아끼고 좋지! 대신 점심은 내가 살게!”

오늘 종혁이 쓰는 유류비보다 더 비싼 밥을 사 주겠다며, 그렇게 뉴욕 경찰의 위엄을 보이겠다고 다짐한 존은 이내 주차장에 주차된 종혁의 차를 보곤 하얗게 질렸다.

“저, 저게 네 차라고?”

포르쉐 카이엔. 거의 10만 달러에 육박하는 명품 차다. 존의 월급으로는 10년을 모아도 살까 말까 한 부의 상징, 포르쉐.

“아, 잘 부서질 것 같아서 걱정입니까? 방탄 처리와 충격 처리도 한 놈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최, 혹시 동양의 왕족이나 그런 거 아니지?”

‘아, 그거였냐?’

“개소리 말고 순찰이나 갑시다.”

“으응.”

“당신이 운전해요.”

“……너 정말 좋은 놈이구나!”

‘넌 단순한 놈이고.’

조금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지만, 왠지 지뢰를 밟은 기분.

종혁은 두 달만 버티자고 다독이며 차에 올랐다.

그렇게 둘은 1 폴리스 플라자를 빠져나와 맨하탄의 도로에 진입했다.

*   *   *

“맨하탄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엔 경찰이 없다시피 하다고요?”

“그 정도는 아니고, 아무래도 좀 부족할 수밖에 없지.”

종혁은 미간을 좁혔다.

회귀 전 들은 이야기긴 하지만, 다시 들으니 여전히 어이가 없다.

“왜 그렇습니까?”

“맨하탄이 뉴욕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니까.”

월 스트리트를 비롯해 중요 기관과 기업들이 산재한 맨하탄. 그렇다 보니 경찰 병력이 밀집될 수밖에 없다는 게 존의 설명이다.

“그럼 다른 곳의 치안은요?”

“그건 뭐…… 하하.”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이래서 뉴욕 경찰의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거다.

맨하탄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경찰 1명당 담당해야 할 범죄자와 지켜야 할 시민의 숫자가 몇 명일까.

뉴욕 시민의 숫자가 2천만 명에 육박하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기 그지없다. 거기다 이렇게 인력이 부족할수록 범죄 발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총기 문제도 있으니 미국 경찰의 공권력이 강력한 것이긴 하지만…….’

“아, 저긴 되도록 들어가지 않는 게 좋아. 경찰에게도 총을 쏘는 개새끼들이 있는 곳이거든.”

종혁은 존이 가리키는 뉴욕의 할렘, 빈민가의 입구를 보며 혀를 찼다. 뉴욕의 치안을 어지럽히는 주범 중 하나.

“물론 저기가 아니라도 어느 뒷골목이건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되지만.”

“총 맞으니까요?”

“힘들게 배우러 왔는데 시체로 돌아가면 안 되잖아.”

담담한 말투에서 풍기는 베테랑의 냄새.

열악하고 험한 근무 환경이 이렇게 어린 형사를 베테랑으로 만든 것 같다.

‘재수를 데려왔으면 좋았겠네.’

여기서 1년만 굴러도 웬만한 조폭쯤은 찜 쪄 먹는 베테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별 의미 없는 생각이 종혁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공권력이 높은 만큼 순직할 확률도 높은 곳이 바로 미국이니 말이다.

“음. 최, 저기가 내 단골 식당이긴 한데…… 저런 곳도 괜찮아?”

존이 가리킨 식당을 본 종혁은 피식 웃었다.

한국의 24시간 기사식당이나 김밥천국과 비슷한 개념의 식당인 다이너.

‘그래. 공무원 월급이 쥐꼬리인 건 한국이나 여기나 마찬가지지.’

단순히 금액만 놓고 보면 뉴욕 경찰 쪽이 2배 넘게 많지만, 물가를 생각하면 그 금액도 쥐꼬리에 불과하다.

더욱이 현재는 부동산 폭락으로 인해 안 그래도 끔찍한 뉴욕의 물가가 더 끔찍해진 상황.

이 어린 형사에겐 이게 최선일 것이다.

“뭐 양만 많으면 됩니다.”

“그, 그건 걱정 마! 양이 진짜 많은 곳이니까!”

차가 제대로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존은 다이너 안으로 종혁을 안내했고, 종혁은 오랜만에 보는 붉은색 소파들의 향연에 순간 추억에 젖어 들었다.

‘나도 옛날엔 이런 곳에서 밥을 먹었는데…….’

박봉에 밥 사 먹을 돈은 없고, 죽지 않으려면 밥은 먹어야겠고.

그래서 싼값에 고열량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런 곳을 애용할 수밖에 없었다.

바 테이블에 앉은 종혁은 메뉴를 받아 들자마자 입을 열었다.

“최, 여기는…….”

“럼버잭이 블랙퍼스트 세트 맞죠? 이거 곱빼기랑 치즈버거, 뉴욕 스테이크 하나, 페페로니 피자 반 판이요. 음료는 커피와 콜라 한 잔씩, 계란은 스크램블로, 베이컨은 바싹. 아, 코울슬로도. 응? 왜요?”

“아, 아니야. 마, 많이 먹네?”

종혁의 주문을 받은 직원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 덩치 유지하려면 이 정도는 먹어야죠. 일단 커피부터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커피는 커피메이커에서 내리는 걸 따르기만 하면 되기에 금방 나왔고, 종혁은 씁쓸한 커피 맛을 음미하며 다이너 안을 둘러봤다.

손자의 입에 오믈렛을 물려 주는 할아버지, 손을 맞잡은 채 사랑을 속삭이는 대학생 커플, 후드를 푹 눌러쓴 채 묵묵히 음식을 씹는 꾀죄죄한 여성, 얼른 먹고 쉬려는 듯 음식을 입안에 욱여넣다가 콜록거리는 노동자.

참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다이너라는 공간에 모여 점심시간이라는 짧은 행복을 즐기고 있다.

‘이것만 보면 뉴욕도 다른 곳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 사는 곳인데…….’

그런데 치안이 개판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이 복 받은 나라지.”

새벽에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잠을 자도 죽을 위험이 없는 나라, 한국.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천국이었다. 이를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는 한국 경찰들을 떠올리니 눈에 습기가 서렸다.

“그런데 좀 답답하네.”

이곳에 어떤 범죄자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데, 그게 누군지 모르니 답답하다. 경찰로서 직무 유기를 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그의 몸을 감싼다.

“최, 제발 영어로 말해 줘.”

‘에라이.’

“돌아가면 수배자 명단부터 주세…….”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린 종혁의 눈살이 순간 꿈틀거린다.

이제 막 8살이나 됐을 법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오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삼십대의 여성과 남성.

누가 봐도 단란한 한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멍?’

아직 패딩을 입을 날씨가 아님에도 지퍼를 끝까지 채운 아이의 드러난 목, 아니 목과 어깨 승모근의 경계에 난 희미한 멍 자국과 흉터.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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