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94화>
뿌연 담배 연기가 뿜어지는 작은 사무실.
“으드드드드!”
그 한구석에 앉아 있던 종혁이 기지개를 켠다.
“후우. 죽갔네.”
라비 일병이 다시 차이나타운에 들어온 게 확인됐기에 그때부터 대기 중이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니 사람 미쳐 버릴 것 같다. 그건 멍하니 CCTV를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옛날엔 어떻게 일주일, 한 달씩 잠복했는지 몰라.’
좁은 차 안에 구겨 타서 범인이나 조폭들의 범죄 행각을 기다리던 나날들.
제대로 씻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쉰내 풀풀 풍기던 회귀 전의 일들을 떠올린 종혁은 역시 돈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자신 대신 CCTV를 봐 주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종혁은 범죄학에 관련된 책을 덮으며 몸을 일으켰다.
“야식이나 먹읍시다!”
“오오오!”
순간 달아오르는 사무실.
사람들은 먹고 싶은 걸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고, 그걸 모두 시킨 종혁은 모니터 앞에 앉은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특이 사항 있어요?”
“아뇨. 아직 없습니다.”
마치 기계처럼 맨날 CCTV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 그렇기에 맨날 보는 똑같은 풍경.
그러나 그 속에 숨어 있는 의외의 모습들.
누군가는 오늘 기분이 좋아 술을 마신 것 같았고, 또 누군가는 오늘 너무 힘들었던 것 같고, 누군가는 연인과 헤어진 것 같다.
지루하지만 꽤 재밌었다.
이런 그의 말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특이하시네.”
마치 CCTV 감시 요원이 천직인 것 같다.
“하하. 응?”
종혁도 모니터를 보며 눈을 살짝 크게 뜬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 아니 간절하게 무언가를 찾는 듯 뛰어다니는 여성.
‘저 여성은?’
낯이 익은 얼굴이다.
‘분명 헨리 씨랑 같이 갔던 식당의…….’
마치 서빙 일이 처음이었는지 꽤 어수룩했던 여종업원.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 비 오는 날 저렇게?”
바닥을 살피지 않는 것을 보아,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것으로 보아 물건을 찾는 건 아닌 듯했다.
“흐음. 일단 이 여성분 좀 계속 잡아 주세요.”
“예!”
곧 주안의 동선을 따라 CCTV 화면이 차례로 비춰진다.
정말 간절히 외치며 달리는 주안.
숨이 찰 땐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곧바로 다시 뛴다.
그런 그녀가 들어간 곳은 한 폐건물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낙담한 얼굴로 나와 다시 뛰기 시작하는 주안.
‘사람이다. 사람을 찾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빨리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자식. 그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 종혁은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예, 최종혁입니다.”
-3번 관리실입니다. 저희 구역 내에 있는 폐건물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꽤 오래전에 버려진 건물로 소문이 좋지 않아 질이 나쁜 아이들도 밤에는 절대 가지 않는 곳입니다!
낮에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말에 순간 번뜩이는 종혁의 눈.
‘라비 일병일까?’
그럴 확률이 높다.
“알겠습니다. 곧 가죠.”
혹시 아닐 수도 있기에 가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애써 진정시킨 종혁은 잠시 움직임이 발견된 폐건물과 간절한 주안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결정을 내렸다.
“저분 동선은 계속 파악해서 알려 주세요. 폐건물만 확인하고 바로 찾아갈 테니까.”
어쩌면 폐건물에 숨어 있을지 모를 라비 일병.
폐건물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예, 드롭. 지금 어디예요?”
종혁은 이어폰을 끼며 비가 쏟아지는 거리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종혁과 벤, 드롭이 빗소리를 뚫고 폐건물 안쪽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얼굴을 쓸어내린다.
“주안 씨, 핸드폰이 있으면 제게 줘 보시겠습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미 왔으니까.”
우산을 내려놓은 종혁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라비 일병에게 다가갔다.
‘이제야 보네. 참 보고 싶었다, 인마.’
“FBI입니다. 라비 에드거 리 씨,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아…….”
종혁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몸에 힘을 푸는 라비 일병.
종혁은 순순히 양손을 내미는 라비 일병을 어깨를 감쌌다.
“가실까요? 부모님을 뵈러?”
“예?!”
종혁은 놀라는 그를 향해 싱긋 웃어 줬다.
* * *
“라비!”
“아들! 이 무심한 놈아! 아이구, 밥은 먹고 다닌 거야? 얼굴은 왜 반쪽이 됐어!”
“아, 아버지……. 엄마…….”
라비 일병이 고개를 푹 숙인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의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
리자춘 부부는 그런 아들을 꼭 끌어안으며 아니라고, 몸 성히 살아 있으니 됐다고 토닥이며 안도하고 또 감사해했다.
종혁은 리자춘 부부가 차려 준 밥을 먹고 나오는 라비 일병의 어깨를 두드리며 리자춘 부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원님!”
연락을 받고 달려온 라비 일병의 친구들까지도 허리를 숙인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라비 일병을 데리고 FBI 뉴욕지국으로 향했다.
FBI 뉴욕지국의 취조실.
종혁은 한결 낯빛이 가벼워진 라비 일병을 향해 푸근히 웃어 줬고, 라비 일병은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요원님.”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리고 그분의 딸에 관한 일도 곧 처리될 겁니다.”
불법 체류자 주안.
그래서 신고를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던 그녀.
“그녀가 추방되는 일은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더 감사하지.”
주안 때문에 결국 자수를 하려고 했던 라비 일병.
생각대로 라비 일병은 악인이 아니었다.
그동안 기울인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
“라비 씨.”
“예.”
“앞으로 길어야 세 시간입니다.”
지금쯤 소식을 들은 윌리엄 소위가 라비 일병을 낚아채기 위해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거다.
세 시간이 FBI가 막을 수 있는 한계.
NCIS의 삽질로 인해 FBI가 공조를 관뒀기에 가능한 시간이다.
“그렇…… 군요.”
“그러니 그 전에 이 사건에 얽힌 진실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억울한 이야기를요.”
움찔!
종혁은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거냐는 듯한 라비 일병의 모습에 푸근히 웃었다.
그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고개를 숙인 라비 일병의 입이 힘들게 열린다.
“그, 그들은 악마였습니다.”
그러며 시작된 그날의 진실.
그건 종혁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잔혹한 이야기였다.
종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악마, 아니 그 이상의 선임들.
그날도 그랬다.
오랜만에 나온 휴가.
단 며칠이라도 선임들을 보지 않을 수 있단 것이 좋았던 라비는 부모님과 친구들께 연락을 하고, 자유를 만끽하다 미리 잡아 놓은 숙소에 들어가기 전 맥주 한 잔을 걸치기 위해 펍을 찾았다.
혹여 같이 나온 선임들을 만날 수 있기에, 그랬다간 부모님께서 찾아와 같이 있을 수 없다는 변명이 들통날 수 있기에 구석진 곳의 펍을 찾았다.
아무런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은 너무도 달콤했다.
그런데…….
“그들이 제가 있는 펍을 찾아왔습니다.”
하늘은 자신을 싫어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은 영원히 이들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단숨에 선임들에게 둘러싸인 라비는 화장실로 끌려가게 됐다.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는 죄로 맞았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만큼 맞았다.
이미 거나하게 취해 찾아온 그들. 주먹과 발에 자비가 없었다.
그런데 진짜 지옥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큭큭. 오늘은 내 차례지? 빨아.
싫었다.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 이상의 희망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용기 내어 반항했다.
더 이상은 싫다고.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해. 난 네 부모님을 찾아 가면 되니까.
당신의 아들이 부대 내에서 어떤 꼴을 당하는지 다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관계를 허락받을 거야. 몇 번 했으니 연인 사이 맞잖아?
-와, 그럼 나도 허락을 받아야 하나?
-큭큭. 푸하하하하!
그 순간 이성의 끈이 끊겼다.
고개를 숙인 채 굳어 버린 라비 일병을 어떻게 오해한 것인지 다른 선임들은 오늘 차례의 순번인 선임을 놔두고 화장실을 나갔고, 그렇게 둘만 남겨졌다.
“그, 그러자 전…… 저는…….”
종혁은 라비 일병의 손을 잡았다.
“괜찮습니다. 더 이상 말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악마의 손에 들려 있던 맥주병을 빼앗아 찔렀습니다! 죽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부모님을 지키기 위해서! 으아아아악!”
종혁은 다급히 달려가 몸을 미친 듯 긁는 라비 일병을 꽉 끌어안았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괜찮아.”
“흐으윽! 그, 그렇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빠드득!
“후…… 아, 씨발.”
대체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하는 걸까.
그 참담하고 끔찍한 지옥을 겪으며 죽지 못해 살아온 사람에게 무슨 위로를 건네야 하는 걸까.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컥!
살아 줘서 감사하다.
너무도 의외인 말.
하지만 찢기고 뭉개진 영혼을 부드러운 연고처럼 위로해 주는 말.
라비 일병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흑! 흐어엉!”
결국 터져 버린 눈물.
종혁의 눈시울도 뜨거워진다.
둘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또 울었다.
“후우.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들어 줘서 감사했다. 오직 종혁만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해서 감사했다.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했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피해를 당한 시민을 구하는 건 저희 경찰의 의무입니다.”
“요, 요원님…….”
“자, 그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
“곧 NCIS에서 라비 씨를 데리러 올 겁니다. 저 문을 박차고 들어와 라비 씨를 강제로 끌고 갈 겁니다.”
쿵!
라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러나 이내 곧 체념한다.
“그러니 버티셔야 합니다.”
“예?”
“그 개새끼들이 뭐라 협박을 하든 입을 꾹 다물고 버티셔야 합니다. 제가 당신의 변호를 위해 힘을 쓸 테니까요.”
최대한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거다.
그리고 라비 일병을 지옥 속에서 살게 만든 그 악마들은 그동안 저지른 죄에 대한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거다.
그런 종혁의 말에 라비 일병은 옅게 웃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믿지 않는 모습.
할 말은 다 했으니 후련해하는 모습.
그럴 수밖에 없다.
상대는 해병대, 아니 더 넓게는 해군부다.
FBI라 할지라도 일개 요원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종혁은 못 믿는 그의 모습에 싱긋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잠시 녹화를 끊어 달라는 신호를 보내며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버락 던햄 루터입니다.
“예, 루터 씨. 저 최종혁입니다. 늦었지만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라비 일병이 입을 떡 벌린다.
버락 던햄 루터.
과거 영부인이었던 그 스태파니 클린턴 대신 대통령 후보가 된 인물이다.
-오, 최! 오랜만입니다! 왜 이렇게 연락을 하지 않은 겁니까!
“하하. 경찰과 정치인은 서로 멀리하는 게 좋죠.
-이런. 서운한데요? 저희 사이가 그 정도밖에 안 됐던가요?
“이런. 그 정도는 넘으니까 제가 이렇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연락을 드린 겁니다.”
-도움이요? 최가 제게요?
웃던 종혁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지금 제 앞에 너무도 억울한 피해자가 있습니다. 이 나라의 수호와 영광을 위해 영혼과 몸을 바쳤음에도 끔찍한 일을 당한, 나라를 지키라고 있는 군대에서 끔찍한 피해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이름은 라비 에드거 리. 관타나모 해군기지 소속의 해병으로 어렸을 적 중국인 부부에게 입양된 분입니다.”
순간 수화기 너머 버락 루터의 눈이 빛난다.
-……반갑다는 말은 할 수 없겠군요.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버락 루터 던햄입니다, 미스터 리.
“예? 아, 예예……. 라, 라비 에드거 리입니다.”
라비가 얼떨떨해하며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쾅!
문을 거칠게 열며 등장하는 윌리엄 소위.
씩씩거리는 그가 종혁을 죽일 듯 노려봤다.
“어이구. 뭘 이렇게 뛰어오셨어?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
“닥쳐! 지금부터 라비 에드거 리 일병은 우리가 데려간다!”
텅!
테이블 위에 거칠게 내려놓는 사건 이감 서류를 힐끔 본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그러시든가.”
“뭐?”
잠시 움찔했던 윌리엄 소위는 이내 콧방귀를 뀌곤 라비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어차피 일개 요원일 뿐인 종혁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라비 에드거 리 일병, 너를 동소대원 살해 혐의로 체포한다. 끌고 가!”
종혁은 거칠게 끌려가는 라비를 향해, 이쪽을 보는 그를 향해 푸근히 웃어 줬다.
“걱정 마십시오. 모든 게 잘 풀릴 테니.”
“잘 풀리긴 무슨! 너도 기대해! 내가 어떻게든 네 옷을 벗기고 말 테니까!”
“오! 나한테 그런 말 하는 사람 많았는데!”
빠드득!
“흥!”
쾅!
방금 전 열렸을 때처럼 거칠게 닫힌 문을 응시하던 종혁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들어 올려 귀에 가져갔다.
“어떻게, 재밌게 들으셨습니까?”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군요. 오늘 시간 되십니까?
“지금 바로도 됩니다.”
종혁의 눈이 흉흉한 미소를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