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521화 (52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21화>

인천 남구 숭의동 6층 빌딩의 꼭대기 층.

회장실이란 편액이 붙은 사무실 안에서 오택수와 최재수가 커피를 마시다 미간을 구긴다.

“에이. 돈 좀 벌었으면 좋은 원두를 쓰지.”

“그러게요. 탄 맛이 너무 나는데요?”

“……그거 에티오피아 최상급 원두입니다, 형사님들.”

“이게? ……아닐걸?”

“쯧. 형사님들이 어디 가서 이런 걸 드셔 보셨겠습니까. 이게 진짜 커피입니다, 형사님들.”

웅성웅성.

바깥이 시끄러워지자 오택수는 피식 웃었다.

“왔나 보네.”

벌컥!

“비켜, 이 씨.”

종혁의 지시로 서대우를 쫓던 깡패, 창식은 애써 화를 참는 조직원들에게 손을 저었고, 종혁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와 창식의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어우씨, 목말…… 푸웁! 뭐야, 이 그지 같은 건? 야, 돈 벌었으면 원두 좀 좋은 거 써라. 입이 싸구려라 분간이 안 가면 그냥 근처 카페에서 원두 좀 팔아 달라고 하든가.”

“이 개새끼…… 아, 대장님에게 한 말 아닙니다.”

“에라이. 조폭이란 놈이 사기나 당하고 잘하는 짓이다.”

종혁은 이를 가는 창식을 무시하며 빈자리에 앉았고, 오택수가 입을 열었다.

“상황은? 어떻게 됐어?”

최재수도 눈을 빛낸다.

종혁은 상황을 설명했고, 둘의 표정은 오묘해졌다.

“……일본 대기업이 얽혀 있는 일인가 보네. 경시청이 이렇게 빨리 데려간 걸 보니.”

“기술이 유출된 곳이 삼전인데 그쪽도 그 정도 사이즈는 돼야죠. 뭐, 아무튼 브로커는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무로이 코헤이가 키를 잡았으니 늦어도 일주일 안에 검거가 될 테고, 일을 시킨 일본 대기업은 꼬리를 자르기 위해서라도 브로커를 조질 거다.

“뭐 그 반대의 상황이면…….”

일본 대기업이 브로커의 입을 막기 위해 무죄를 만드는 경우.

“그땐 그 새끼가 한국에 넘어오길 간절히 빌어야겠지.”

“빙고.”

오늘 이 순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국제항과 국제공항에 수배령을 내릴 거다.

놈은 한국에 발을 딛는 순간 끝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식 매입에 들어가야겠네.’

애써 놈을 잡아도 다시 일본이 채갈 가능성이 있다. 놈의 뒤를 봐줄 대기업부터 입을 다물게 해야 됐다.

더욱이 지금은 온 세계가 패닉에 빠진 상황.

주식이 시장에 넘쳐흐르고 있어서 그냥 주워 담기만 하면 됐다.

비릿하게 웃은 종혁은 이쪽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창식을 어이없다는 듯 봤다.

“그래서 서대우의 행방에 대해 안다는 인간은?”

“……들어오라고 해!”

문을 열고 들어온 오십대 후반의 사내가 창식에게 허리를 굽힌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그래. 구 사장도 오랜만.”

창식의 사업장 중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정확히는 서로 지분을 나눠 가지며 공동으로 운영하는 구 사장.

“제게 용무가 있으신 분들이 이쪽분들이십니까?”

종혁은 구 사장의 눈에 서린 작은 귀찮음에 한숨을 내쉬며 사진을 내밀었다.

“이 얼굴 기억하지?”

“예, 기억하죠. 그게 아마 6월쯤이었을 겁니다.”

하우스에 갑자기 나타난 서대우. 연변 말투를 쓰는 웬 사내들과 함께 온 서대우는 그냥 호구였다.

“잠깐, 연변?”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계속해.”

구 사장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렇게 거의 6일 동안 매일 출근하며 4천만 원 가까이를 잃은 서대우는 그다음 날부터 찾아오지 않았다.

“이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지랄하네. 하우스에 연변 말투를 쓰는 불순분자들이 왔는데, 조사도 안 해 봤다고? 니들이?”

이쪽 바닥에서 연변이라는 단어가 이미지는 두 가지다.

못살고, 위험하고.

단돈 30만 원에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기에 자신들 구역에 이놈들이나 중국인이 떴다 하면 조폭들은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특히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은 그런 경향이 심하다.

“……중국에서 넘어온 놈들입니다.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걸로 나왔습니다.”

창식은 힘들게 알아낸 여권 정보를 제공했고, 종혁은 그 얼굴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연변 놈인가?”

“왜?”

“중국 본토인과 외모가 좀 달라서요. 뭐, 이건 인터폴에 문의해 보면 알겠고.”

이놈이 정말 브로커라면 인터폴이나 중국 공안 쪽에 자료가 있을 거다.

“6일이라…….”

종혁은 창식을 봤다.

“그때 인천항에서 중국행 밀항선 한 대가 떴습니다.”

“쯧. 결국 그렇게 됐나.”

오택수와 최재수도 한숨을 내쉰다.

종혁이 박종명 경찰청장에게 사건 파일을 받자마자 왜 외사국의 함경필 국장을 찾아갔겠는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대우가 중국으로 도주한 정황이 발견된 이상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그 넓은 중국을 다 뒤져야 한다고?’

콧대 높은 중국 공안이 협조해 줄 리는 만무한 상황.

눈앞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됐다.

서대우가 탈취한 기술을 모두 풀어 버리기 전에 말이다. 아니, 이미 다 넘겼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서린 노력의 결정체를.

하루라도 빨리 놈을 잡아야 했다.

“하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최 대장님! 호텔 같은 곳에서 쉬고 계시면 제가 밀항선 선주를 찾아 대령…….”

피식!

“왜? 이참에 밀항 조직까지 집어삼키면서 나한테 줄이라도 대려고? 창식아, 선 넘을래?”

“……제 순순한 호의를 그렇게 받아들이시니 좀 당황스럽군요.”

“얘가 끝까지 이러네? 야, 내가 널 가만두는 이유는 하나야. 그래도 네가 정도를 지키고 있다는 거.”

미성년자를 쓰거나 억지로 사람을 납치해 오거나 조직의 사업장에서 일하게 만들기 위해 빚 따위로 묶어 두거나 장기를 팔아 해치우는 등의 선을 넘는 행위.

그리고 창식 같은 거물 조폭을 검거하는 순간 어떤 미친놈들이 창식의 구역을 차지할지 모른다.

만약 다른 지역이었다면 그냥 따 버렸을 테지만, 인천은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조폭 새끼한테 이 이상 선한 모습을 기대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형사를 이용하려 들면 안 되지.”

“알아서 하시겠다면 더 이상 말하진 않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내일 아침까지 세 놈 정도 추려서 네 뒤 봐주는 견찰 명단과 함께 본청 광수대로 출근시켜. 이왕이면 다른 조직 뒤 봐주는 놈 명단까지.”

“허, 참. 대장님, 순순히 협조를 했는데 애들까지 내놓으라는 겁니까? 이건 상도의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니들이 지금 작업하고 있는 재개발 수주 건까지 건드려 줄까? 노조에 파고든 니들 쁘락지 한번 추려 줘?”

굳이 조사할 필요까지도 없다. 회귀 전 창식은 이 재개발 건으로 조직의 규모를 키우며 기업형 조폭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

“적당히 하자, 진짜. 아, 그리고 거기 구 씨.”

“예, 예!”

“그 연변 말투 쓰는 놈에 대해 싹 다 기억하지?”

신체적 특징이나 목소리 등 모든 걸.

“예. 그렇습니다만…….”

“넌 내일 아침까지 도박장 수익 일부하고 너 대신 빵에 들어갈 놈이랑 같이 본청 특별범죄수사대로 와서 몽타주 작성해. CCTV 있으면 그 영상까지도 제출하고.”

“예…….”

“그럼 난 이만 간다. 밀항선 선주 놈이 누군지 문자로 넣어 주시고. 부탁해.”

몸을 일으킨 종혁은 오택수 최재수와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남겨진 창식은 이를 갈았다.

“저 개새끼……. 야, 커피 원두 사 오는 새끼 누구야! 데려와!”

창식은 오랜만에 야구배트를 들었다.

한편 건물을 나선 최재수가 의아한 눈으로 종혁을 본다.

“재개발 공사요? 노조 쁘락지?”

종혁과 오택수가 눈을 껌뻑인다.

“얘 저거 몰라요?”

“아, 맞네. 아직 얘는 모르겠네.”

“아, 뭔데요?”

“어떻게 건설사들의 하청을 저놈들이 딸 수 있는지, 기술이라곤 쥐뿔도 없는 깡패 새끼들이 쉽게 건설업에 진출하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거다.”

철거 용역부터 노조 임금 협의까지 모두 저놈들이 손을 쓰기 때문이다. 하청을 주는 입장에선 참 편할 수밖에 없다.

“와, 씨. 대한민국 조폭들 멍청하다고 까면 안 되겠네요. 저 새끼 가만 놔두실 거예요?”

“그럴 리가.”

지금도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해 손쓰기 힘든 상황인데, 기업형 조폭으로 거듭나는 창식이다. 그 전에 쓸어버려야 했다.

다만 자신이 쓸어버렸다가는 앞으로 협조를 안 해 줄 놈들이 나올 것이기에 다른 칼을 이용해야 될 것 같다.

“그래도 여기가 인천이니까 조심해서 접근해 보자.”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지이잉!

창식이 보낸 문자를 확인한 종혁은 피식 웃었다.

아주 친절하게 쉬는 날 어디서 쉬는지, 아지트는 어딘지 상세하게 적힌 문자.

“그럼 우린 밀항 조직이나 털러 갑시다. 방검복들 챙기세요.”

종혁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차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   *   *

“아오, 씨발놈.”

쾅!

최재수가 특별범죄수사대 사무실 안 유치장의 철창을 걷어차자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노인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그건 함께 잡혀 온 다른 조직원 4명도 마찬가지다.

주로 인천에서 중국 밀항을 돕는 밀항 조직 중 하나.

아지트에서 술을 먹고 잠을 자던 걸 덮쳐 끌고 왔다.

씩씩거린 최재수가 부어오른 볼을 만지며 스크린 앞으로 향한다. 그와 동시에 달칵 하고 꺼지는 불.

순철이 스크린 앞에 선다.

“이름 쉬로우 첸. 나이 49세. 연변 출신으로서 6살 때 홍콩에서 자랐습네다. 인터폴에도 수배가 오른 브로커로, 어떤 기업에 소속된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걸로 파악되고 있습네다.”

마치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정도로 신출귀몰해서 검거가 어려운 쉬로우 첸.

“또한 헤드 헌팅이나 기술 빼돌리기 정도만 하는 게 아니라 로비까지 직접 하는 걸로 나옵네다.”

“별걸 다 하네, 개새끼. 지금 위치 파악은 돼?”

“중국 쪽 폐쇄회로에 접근을 할 수 있다면 찾아낼 수 있겠지만…….”

“중국이 쉽게 허락해 줄 리 없지.”

아니, 중국이 아니라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야, 거기 밀항!”

“끄응. 공해에서 만나 확실한 건 모르지만, 상해 쪽 배였습니다.”

“상해라……. 흠, 계속해.”

“이 쉬로우 첸의 주 타깃은 한국과 일본의 기술자들로, 건설 쪽 설계자부터 전자, 카드까지 닥치는 대로 인재를 알선하는 걸로 파악되고 있습네다.”

인터폴이 파악하길 현재 그를 통해 중국 기업들에 취직 한 인재의 숫자가 무려 100여 명.

이런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

“2003년부터 현재까지 그가 알선한 인재가 무려 40명. 그 가운데 한국인은 30여 명에 이를 정도고, 인터폴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딱히 분야나 특정 기업을 가리지 않는다고 합네다.”

‘2003년?’

종혁은 눈을 꿈틀거린다.

묘하게 싸늘해지는 뒷목.

“철아, 현 중국 주석이 주석에 임명된 시기가 언제지?”

“……2003년입네다.”

쿵!

“자, 잠깐. 최 대장, 지금 그거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은 무슨 말이에요. 저 새끼가 중국 정부의 비호 아래 움직이는 새끼일 수도 있다는 거죠.”

“뭐라고-?!”

“현 중국 주석은 과학 발전관과 붉은 자본가 등의 단어를 부르짖을 만큼 중국의 근본적인 발전에, 정확히는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와 부르주아 양성에 힘을 쓰는 인물입니다.”

현 주석의 나이는 66세.

농업주의 사회가 얼마나 힘이 없고 배고픈지 겪은 세대다.

“기술의 발전을 위해 그에 맞는 인재를 영입한다. 얼추 들어맞지 않아요?”

“…….”

“분야나 특정 기업의 일을 도맡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그래도 중국 내 기업의 일만 맡아서 하는 거 맞지?”

“그렇습네다.”

“그 기업들과 현 주석, 아니 공청단과 상관관계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라요!”

다급히 컴퓨터로 달려가 키보드를 두드린 순철의 얼굴이 20여 분 뒤 하얗게 질린다.

“상관이 있는 것 같습네다…….”

“하나 더. 영입한 인재들 가운데 5년 이상 버틴 인재는?”

타다다다다닥!

“……30퍼센트 미만인 것 같습네다.”

쉬로우 첸에 의해 알선 된 한국의 인재들, 현재 파악 된 30여 명의 인재 중 20여 명이 한국으로 돌아와 있다.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이직을 한 사람들도 있고, 이직 제한이 걸려 있음에도 중국으로 넘어갔던 이들도 있다.

“맞네.”

고액의 연봉으로 꼬드겨 기술 전수나 코칭을 받은 후 팽을 한다. 회귀 전 중국의 모습이지 않은가.

아니, 이건 후발주자나 기술력이 떨어지는 회사들이 자주 하는 짓이다. 딱히 중국만 하는 짓은 아니었다.

다만 단물이 다 빨린 인재를 얼마나 데리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

“이러니 씨발 인터폴에서 잡질 못하지.”

협조를 해 줘야 할 공안이, 중국이 모른 척하니 인터폴도 잡지를 못하는 거다.

“뭐야. 그럼 이 자식을 잡을 수 없다는 말이야? 그럼 서대우는?”

쉬로우 첸을 검거해야 서대우가 현재 어느 기업에 있는지 확인을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의호식하며 왕처럼 살고 있을 서대우를 말이다.

“뭐…… 중국의 핸드폰 제조업체나 통신업체들을 싹 다 뒤져 봐야죠. 벤처, 스타트업, 소규모 업체까지 전부.”

“지랄 났네.”

수백, 어쩌면 수천. 그 회사들을 조사하다 새해가 밝을 판이다.

‘하, 이럴 때 중국 기업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은 정산 전이라서 돈이 없는 것도 있지만, 중국은 외국인이 단독으로 회사를 세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잘해 봐야 합작 회사. 절반의 지분은 중국인이 소유해야만 했다.

“흠? 잠깐. 흐으음.”

눈을 가늘게 뜬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네, 나탈리아. 중국에 산업체 같은 거 가지고 있으면 하나만 팔아 줄래요? 후불로.”

-……?!

*   *   *

중국 톈진의 한 전자 기업.

높다란 16층 고층 빌딩 안으로 서대우가 들어선다.

어젯밤 날을 샌 건지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아 있지만, 어깨와 가슴은 활짝 펴져 있는 그.

오늘 아침, 이십대 미녀의 여자친구에게 받은 진한 키스를 떠올리는 그의 눈이 몽롱하게 물든다. 날을 새고 왔음에도 잔소리보다 몸은 괜찮냐고 물어 오는 헌신적인 여자친구.

그렇게 뒷짐을 진 채 걷는 서대우를 향해 로비를 지나는 인물들이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쉬 수석님.”

“좋은 아침입니다, 수석님!”

나긋나긋한 사람들의 인사에 서대우가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꾀꼬리의 노랫소리가 저보다 더 아름다울까.

그의 미소는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였다.

“어흠. 좋은 아침입니다.”

고개를 까딱이며 느긋이 걸어 전용 엘리베이터에 탄 서대우는 문이 닫히자 입술을 꿈틀거렸다.

벌써 거의 넉 달째지만, 언제 보아도 황홀한 대접.

거기다 수석 연구원이다. 이 전자기업의 모바일 기술개발실의 수석 연구원이자 실장.

삼전전자에서는 받던 취급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걸 두고 일할 맛이라고 하는 걸까.

띵! 스르릉!

“엇! 오셨습니까, 쉬 수석님! 얼른 제게 외투 주십시오! 뭐해, 수석님 가방 받아!”

“예!”

“오셨습니까, 수석님! 여기 커피입니다. 수석님께서 오실 줄 알고 커피를 타 왔습니다!”

다급히 달려들며 그의 옷이며 가방을 빼앗듯 가져가는 연구원들.

“가지.”

그의 말에 연구원들이 다급히 서대우의 뒤에 선다.

마치 신하들을 이끌고 걷는 왕의 행차 같은 모습.

매일 겪는 일이지만, 서대우의 온몸에 전율이 내달린다.

더 고무적인 건 이들 전부 중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쓴다는 점이다. 중국어가 세계 중심의 언어인 줄 아는 중국인이 영어를.

‘그래! 나 같은 인재는 이런 대우를 받아야지!’

자신의 화려한 사무실로 들어온 서대우는 넓은 창문을, 저 멀리 있는 점처럼 보이는 삼전전자의 톈진 공장의 모습에 입술을 비틀었다.

후룩!

“달군, 달아.”

삼전전자에 있을 땐 그저 삐걱거리는 두뇌를 돌릴 용도로만 썼던 쓰디쓴 커피가 참으로 달다.

똑똑!

“쉬 수석님, 연구원들이 준비됐습니다.”

“알았어. 나가지.”

하얀색 복도를 가로지른 서대우는 랩에 모여 있는 연구원들을, 저마다 수첩을 든 채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연구원들을 보며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사흘 전 어디까지 했지?”

“박막트랜지스터의 녹는점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 박막트랜지스터는…….”

1969년 창립되어 2008년 현재까지 삼전전자가 수없는 도전 끝에 발명한 기술의 정수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편 며칠 후 중국 상하이의 한 카페.

쉬로우 첸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하하. 제가 말했잖습니까. 조금만 대접해 줘도 술술 다 말할 거라고!”

딴에는 토사구팽이나 제거를 생각한 건지 빼낸 기술을 한꺼번에 넘기지 않는 수를 썼지만, 그래 봤자 기술자의 조악한 생각일 뿐이다.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기술만 연구하느라 사회성이 결여된 잉여.

그동안 대접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연구만 한 연구원.

쉬로우 첸은 이런 부류의 인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흠. 지금보다 더 빠르게 말입니까? 으음. 알겠습니다. 방법을 강구해 보죠. 예.”

통화를 종료한 쉬로우 첸은 방금 전 언제 난처했냐는 듯 코웃음을 친다.

“이놈도 이러는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빠르게 가르려는 작태.

하지만 탓할 마음은 없다.

모든 게 뒤떨어지는 중국.

세계의 패권국이, 저 간악한 미국을 넘어서려면 이렇게 해서라도 기술을 쌓아야 했다.

즉,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도, 자신이 하는 짓도 모두 나라를 위한 일.

쉬로우 첸은 현재 서대우와 함께 사는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나야. 마약 사용량을 좀 더 늘려.”

-흐응. 알았어요.

“그래.”

전화를 끊은 쉬로우 첸은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의 차를 들이켜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 미팅이 있는 곳이 자동차 부품 회사였던가?”

상하이자동차에 납품을 하는 부품 회사. 3차 하청 회사다.

이곳의 주인이 상하이방 소속의 정치인과 꽌시를 맺고 있다.

공청단과 다른 곳이지만, 쉬로우 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법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일을 시킨 사람도 딱히 공청단, 상하이방 등을 가리지 말라고 했다.

한 건당 수백만에서 수천만 위안.

돈 앞에서는 모든 게 평등했다.

그래도 7 대 3정도의 비율로 일을 맡지만 말이다.

“오직 위대한 중화를 위해 힘을 써 달라…… 참 좋은 말이야.”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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