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522화>
종혁은 연신 식은땀을 흘리는 중국인, 상하이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하청 회사의 사장을 보며 속으로 재밌다는 듯 웃었다.
‘중국인이 러시아에 약점이 잡혔다라…….’
그것도 마약이다.
중국에서 마약은 소지만 해도 사형. 제아무리 상하이방 소속의 정치인과 의형제 관계라고 해도 사형은 피할 수 없다.
모스크바에서 마약을 하다 SVR에게 검거된 눈앞의 중국인은, 그 일을 눈감아 주는 조건으로 상하이방의 정보를 알게 되는 대로 러시아에 넘겨주고 있었다.
“담배 한 대 태우시겠습니까?”
“허흠. 감사합니다.”
그에게 불까지 붙여 준 종혁은 다리를 꽜다.
“윗쪽에게 말은 들었을 겁니다.”
“켈룩! 켁! 켁! 예, 예. 들었습니다, 대인.”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전 이게 편하니 괘념치 마십시오.”
“흠…… 알겠습니다. 아무튼 미리 전달받으셨듯이 오늘 하루만 자리를 비워 주시면 됩니다.”
-칙! 비둘기가 둥지로 들어온다.
놈이 공장에 들어오고 있다는 암호.
“수신. 사장님은 이만 몸을 숨기세요.”
“크흠. 그럼.”
사장은 사장실 안쪽 공간으로 몸을 숨겼고, 종혁은 소파를 끌고 와 문 앞에 세우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인터폴에게 쉬로우 첸을 넘겨줘야 한다라…….’
접선을 하는 방법도 참 복잡했던 쉬로우 첸. 인터폴이 아니었다면 접선 방법을 알아내지도 못했을 거다.
“뭐 상관없지.”
종혁이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쉬로우 첸이 아닌 서대우. 서대우만 검거할 수 있으면 됐다.
종혁은 문을 보며 눈을 빛냈다.
한편 공장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에 들어서던 쉬로우 첸이 눈을 가늘게 뜬다.
왜인지 불길함이 느껴지는 복도.
그의 눈이 주변에 지나는 사람들을 훑는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 거야?”
“글쎄? 탕면이나 먹을까?”
“뭐야. 너 왜 벌써 나와?”
“전무님 골프 치러 가셨어.”
“아.”
‘아니군.’
꾸밈이 없는 날것의 자연스러운 모습. 혹여 공안이나 인터폴이 와 있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혹시 모르기에 쉬로우 첸이 근처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았다.
“혹시 사장실이 어딘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오늘 약속이 잡혀 있는데 말입니다.”
“아, 사장실이요? 저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셔서 맨 위층으로 가신 후에 좌측으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사장님께 무슨 일은 없으신가요?”
“사장님이요? 글쎄요?”
“제가 큰 은혜를 입을 예정이라 건강 같은 게 안 좋으시면 선물이라도 사 갈까 해서 말입니다.”
“건강하신데…… 아마 좋은 술을 사 가시면 좋아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쉬로우 첸은 완전히 안심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히자 그의 입가가 비죽인다.
“5천만 위안이라…….”
무려 5천만 위안짜리 일감.
“2차 하청, 아니 1차 하청으로 올라서려는 건가.”
띵! 스르릉!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좌측 복도를 걸어 사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몸을 일으키는 멀대 같은 청년.
정장이 익숙하지 않은 듯 꽤 어색하다.
“오늘 약속을 잡은 쉬로우 첸입니다.”
“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흠?’
혀가 긴 듯 뭉개지는 발음. 그렇다 보니 꽤 어색하게 느껴졌다.
“들어가시죠.”
똑똑!
“사장님?”
“들어와.”
멀대 청년은 문을 열어 주며 한 발 비켜섰고, 쉬로우 첸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대인! 쉬로우…….”
움찔!
쉬로우 첸은 다리를 꼰 채 자신을 거만하게 쳐다보는 젊은 청년, 종혁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니다!’
상하이방 소속 정치인과 의형제를 맺었다기엔 너무 어린 나이. 문과 소파 사이의 거리도 너무 짧다.
거기다…….
“왔어? 들어와.”
오싹!
귀를 때리는 한국어.
“미친!”
그는 기겁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퍼어억!
“으악!”
그의 뒤에 서 있던 멀대처럼 큰 비서, 아니 최재수에 배를 걷어차여 구른 쉬로우 첸.
그의 머리에 종혁의 발이 올려진다.
“거참. 들어오라니까.”
꾸우욱!
“끄으윽?!”
“우리 참 할 말이 많아. 그렇지?”
종혁은 그의 머리를 누르는 발에 힘을 더 주며 상큼하게 웃었다.
* * *
“그러니까…… 후우.”
스크린만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어두운 회의실, 한참 열변을 토하던 서대우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는다.
손바닥을 흥건히 적실 만큼 가득 흐른 땀.
미간을 좁힌 서대우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연구원들을 지친 얼굴로 쳐다본다.
“누가 히터 좀 줄여 봐.”
“히터는 안 틀어져 있습니다, 수석님.”
울컥!
“뭐야?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너 나가!”
“예, 예?”
“나가라고…….”
서대우는 당황하는 연구원들의 시선에 아차 했다.
“아니, 잠깐 쉬기로 하지.”
당황한 표정을 지은 서대우는 다급히 회의실을 빠져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쾅!
“뭐지? 내가 왜…….”
서대우 본인도 본인의 성격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감정이 요동칠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다 묘하게 기력이 없는 몸에, 계속 감기려는 눈.
머릿속에 누가 담배 연기를 뿜은 듯 뿌옇기 그지없다.
“……감기가 오려는 건가.”
환절기인 데다가 요새 부쩍 서늘해진다 싶더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혀가 뭔가를 계속 갈구하고 있다는 거다. 감기에 걸리면 입맛이 없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쯧.”
곧바로 외투를 챙겨 든 서대우는 사무실을 나섰다.
“난 이만 퇴근하지.”
삼전에 있을 땐 상상도 하지 못할 행위. 비서에게 통보하듯 말한 그는 연구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무시한 채 건물을 빠져나와 곧장 집으로 향했다.
마치 궁궐처럼 새하얀 대리석과 샹들리에로 꾸며진 넓은 평수의 집.
“어머, 자기! 왜 이렇게 일찍…… 뭐예요! 땀이 왜 이렇게 흘러요? 얼굴은 왜 이렇게 하얗고요!”
“다가오지 마!”
“자, 자기?”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 커다랗게 뜨는 이십대 초반의 미녀의 모습에 서대우는 왠지 모르게 울컥 치미는 화를 겨우 눌렀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아서 그래. 옮을 수 있으니까 오늘은 따로 자도록 해.”
“괜찮아요?”
“다가오지 마.”
거칠게 손을 저은 그는 곧바로 샤워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씻고는 약을 먹고 침대 위에 누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정신이 미약하게 맑아지고, 기분 탓인지 울컥울컥 치솟던 짜증도 미묘하게 가라앉는다.
“쯧. 이놈의 내성.”
원래부터 운동과 별 인연이 없어 감기 따위의 잔병을 달고 살았던 그. 그런데 아무래도 그동안 감기약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약을 좀 과하게 복용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부족했던 것 같다. 그는 약을 더 복용하기 위해 이불을 빠져나왔다.
똑똑!
“들어갈게요.”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내가 당신의 여자친구인데 어떻게 그래요. 이것만 마시고 자요.”
“이건?”
“파뿌리차예요. 옛날에 제가 감기에 걸렸을 때 저희 할머니가 끓여 주시던 거예요.”
“……고마워.”
왜 그딴 민간요법 따위를 들이미냐는 말이 목젖까지 치솟았다가 애써 가라앉힌 서대우는 적당하게 미지근한 파뿌리차를 단숨에 들이켰다가 얼굴을 구겼다.
미묘하게 쓰면서도 느끼하고, 또 더러운 맛.
“후후. 원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래요. 여기 사탕 드세요.”
로션 냄새를 풍기는 보드라운 손과 함께 입술 안으로 들어오는 달짝지근한 사탕.
쩝쩝 빨던 서대우의 표정이 묘해진다.
‘민간요법이 효과가 있는 건가.’
정신이 빠르게 맑아지고, 짜증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생각지도 못하는 효능에 놀라서인지 서대우는 보지 못했다. 여자친구의 입가에 날카롭게 피어난 칼날 같은 미소를.
지이잉!
“누구야?”
“친구예요. 전 잠시 전화 좀 받을 테니까 쉬고 계세요.”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침대에 누운 서대우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방을 나가는 여자친구를, 인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기적을 가만히 응시했다.
톈진에 도착한 지 4일째 되던 날, 비가 억수처럼 내리던 날, 갑작스런 차량 고장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우산을 사기 위해 마침 눈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렀다. 집이 근처였기에 그냥 우산을 사서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때 운명처럼 여자친구를 만나게 됐다.
우산을 고르며 돌아서던 서대우는 여자친구와 부딪쳤고, 여자친구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퍽 하고 박살 나 버린 핸드폰.
울상이 됐던 그녀는 깜짝 놀라 안절부절못하는 그에게 눈을 치켜뜨며 대들었다.
이거 어떡할 거냐고, 물어 내라고.
당황한 서대우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하며 그녀와 함께 핸드폰 가게로 향했고, 그녀에게 최신형 핸드폰을 사 줬다.
그리고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은 내역을 본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때 여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해요. 돌아가신 할머니와 나눈 대화라서……. 아깐 제가 정말 죄송했어요.
-아.
그건 서대우에게 꽤 충격이었다.
그라고 평생 솔로로 산 건 아니다. 학창 시절엔 소개팅도 해 봤고, 나이가 들어선 맞선도 봤다.
그러나 그가 만나는 여자들은 언제나 외모, 아니면 돈을 바랐다.
그렇기에 서대우의 마음 안에선 여자=속물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는데, 그 공식이 산산이 부셔져 내렸다.
거기다…….
-그, 그 제가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이렇게 최신형 핸드폰을 사 주셨으니까…… 제 체면을 세워 주세요!
중국에선 거의 만능 같은 단어인 체면.
실제로 고작 이 체면을 깔아뭉갰다는 이유로 살인이 벌어질 만큼 중국인이 체면에 죽고 산다는 걸 알고 있는 서대우로서는 그녀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도발적인 외모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여자친구와 식사를 했고, 서대우는 그동안 깜짝깜짝 놀라야 했다.
어설프지만 제법이었던 이과 지식에, 올드한 유머 코드.
도발적인 몸이나 외모와 달리 꽤 순수했던 성격.
서대우는 자신이 여자와 이렇게 말을 잘했나 싶을 정도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이대로 헤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서대우는 용기를, 난 엄청난 대우를 받는 수석 연구원이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용기를 내며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물었고, 그녀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어느새 이렇게 동거를 하게 됐지.”
여자 손 한번 제대로 잡아 보지 못했던 그가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동거부터 시작한 거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눴다.
인생 제2막.
서대우란 한 인간의 절정기가 이제야 오는 것 같았다.
그는 흐뭇이 웃으며 눈을 감았다.
기분이 붕 뜨는 게 곧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서대우의 집의 부엌.
서대우의 여자친구가 서대우, 아니 둘의 침실을 보며 미간을 좁힌다.
-마약 사용량을 좀 더 늘려.
“……흐응.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여자친구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마약 사용량을 늘리라는 건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는 뜻.
“이제야 약발이 도는 것 같긴 하던데…….”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와 짜증을 부렸던 서대우. 딱 마약중독자가 금단 증상에 시달릴 때의 모습이다.
아마 곧 자신이 없으면 물 한 잔조차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는 수준이 될 터.
그럴 수밖에 없다.
서대우가 이 집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 극소량의 마약이 들어가니 말이다. 방금 전 서대우에게 먹인 사탕에도 마약이 들어간 상태다.
그녀는 이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 그날부터 미세하게 용량을 늘려 갔었다.
그런데 용량을 확 늘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고 한다.
그건 곧 서대우로 하여금 마약에 의존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재산을 모두 탕진해 돈을 갈구하게 만드는 단계, 숨기고 있는 기술을 모두 토해 내게 만드는 단계다.
“아직 한 1년은 더 끌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서대우를 영입한 회사에서 애가 닳은 것 같다.
그러니 자신의 보스, 아니 의뢰인인 쉬로우 첸이 이번에도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것이다.
“뭐, 나야 일찍 끝나면 좋지.”
어차피 자신은 돈만 받으면 되니 말이다.
“흠. 그럼 재산을 정리해야 되나?”
곧 나락에 빠질 서대우가 이 집 안에 있는 걸 팔아 치우기 전에 자신이 먼저 빼돌려야 할 것 같다.
이 정도의 소소한 보너스는 쉬로우 첸도 용인해 줄 터.
그녀는 집 안에 있는 고가의 물품들을 훑기 시작했다.
지이잉!
-허튼짓은 하지 않을 거라 믿어.
“그럴 리가.”
코웃음을 친 그녀는 싱크대 서랍을 열어 하얀 가루를 꺼내 들었다.
“일단 그 지옥에 끌고 가야겠네.”
그녀는 따뜻한 우유에 꿀과 함께 가루를 타서 다시 침실로 향했다.
“자기, 자요?”
그녀의 눈이 순진무구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