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70화 (77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70화>

“이야. 영화네, 영화!”

“그러게. 이걸로 영화를 찍어도 되겠는데? 이봐, 최 서장. 내 사촌 동생이 충무로에 있거든? 이거 이야기해도 될까?”

한 편의 장구한 스토리에 서장들이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엉덩이를 들썩인다.

“아하하.”

“하느님이 이놈의 새끼들을 징치하기 위해 최 서장님을 평창으로 보냈나 봅니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다니…… 정말 훌륭합니다, 최 서장님.”

목포서장의 말에 종혁이 고개를 젓는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크으. 내가 전에 말했던가? 최 서장은 참 겸손해서 좋다고!”

“하핫! 아이쿠. 잔들이 비셨군요. 가장 막내가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앞날이 창창한, 그리고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종혁이 스르로를 낮추며 술병을 기울이자 기존의 서장들도, 그리고 새로 부임한 서장들도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평창의 그 축제는 어떻게 됐는데? 그놈들에게 당할 뻔한 사람들은 어떻게 됐고?”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운영진들 중 몇 명이 옷을 벗었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우빈 등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모든 걸 맡긴 채 강남범동방파의 수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관리직들 대다수가 옷을 벗었다고 한다.

“축제 예산을 착복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하더라고요.”

하마터면 깡패들에게 뺏길 뻔했던 평창송어축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정작 축제 현장에 관리직들 대다수가 보이지 않으니 평창군청은 추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부여된 예산의 일부를 착복해 개인적으로 썼음이 밝혀졌다.

그 결과, 평창 청년회는 그 권한이 대폭 축소됨은 물론이고, 청년 회장 및 간부들은 대다수 고소를 당하게 됐다.

그러며 평창군청은 관리직이 부재중임에도 축제를 무사히 이어 간 우빈 등 아르바이트생들을 관리하던 이들을 대거 채용하여 평창송어축제 현장 관리를 맡기기로 했다.

예산이나 인적 관리는 평창군청에서 맡기로 했다.

모두가 잘된 일이었다.

“크으으! 그렇지! 이런 게 바로 정의 구현이지!”

“암, 암. 어딜 가나 이놈의 청년회들이 문제라니까. 썩을 것들이 말이야. 나이 젊은 게 벼슬이라고, 어?”

“에이. 안 그런 데도 많습니다.”

“허어. 그나저나 이래서 이태흥이 이놈이 분탕을 치는 거구만?”

“어이쿠. 이젠 이 회장님이라고 불러야 해.”

“이 회장은 무슨. 콱 그냥 지금 따 버려?”

“갑자기 커진 덩치를 수습하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그렇지! 여기저기 약점을 다 드러내고 있을 테니까!”

역시 경찰이라서 그런지 곧바로 범죄자 이야기로 넘어간다.

종혁은 싱긋 웃으며 잔을 들었다.

“자, 자.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한잔들 하시죠!”

“재미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마셔야지!”

“어이쿠. 우리가 이 좋은 방어를 앞두고 제사 지내고 있었네. 목포서장님, 건배사 하시겠습니까? 다음은 우리 해남서장님이 해 주시고!”

“그럴까요? 제가 모두 만나서 하고 선창하면 반갑습니다라고 후창하시는 겁니다.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드아!”

채재쟁!

“크아!”

“좋다!”

내일은 토요일. 그들은 벨트를 풀며 목구멍을 열어젖혔다.

* * *

“3차 가야지, 3차! 웨에엑!”

“야, 괜찮아?”

취객들이 돌아다니는 늦은 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나온 종혁이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아직까진 별다른 게 없긴 한데…….’

올해 총경이 되어 서장 부임을 받은 사람도 있고, 서장으로서 10년 넘게 살아온 사람도 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사건에 관한 것들. 현재로선 모두 그저 경찰일 뿐이었다.

“혹시 믿으시는 종교가 있습니까?”

종혁의 옆으로 목포서장 함필성이 선다.

종혁은 그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뇨, 무교입니다.”

“저런. 하나님의 은총을 이렇게 듬뿍 받으시는 분께서…… 나중에 교회 한번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최 서장의 앞날을 더욱 밝혀 주실 겁니다.”

“지금보다 더요?”

“예. 이태흥 회장도 하나님을 믿기에 그런 성공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쿵!

종혁이 마음속으로 입술을 비튼다.

‘들켰네.’

확실히 들킬 만했다. 은연중에 이태흥에 대한 언급을 꺼려 했으니 말이다.

아니면 이태흥이 함필성과 만난 것일 수도 있다.

“이태흥 회장이 기독교였습니까?”

“모르셨습니까?”

“알아야 합니까? 아, 말 편히 하시죠.”

“그럴까?”

종혁과 함필성이 서로를 바라본다.

“경필이에게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

“역시 전남청장님과 인척 관계셨네요.”

함경필 전남경찰청장과 성이 똑같은 함필성 목포서장. 함씨라는 성이 희귀하기에 혹시나 했다.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둘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다음에 둘이서 한잔해.”

“술은 또 제가 빼지 않죠. 연락만 주십쇼. 섬에 들어갈 때 빼고는 언제든 찾아뵙겠습니다. 급하시면 신안으로 오셔도 되고요.”

“그래도 먹을 건 도시가 많지. 교회 다니고 싶으면 말해.”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 함필성 목포서장은 다시 횟집 안으로 들어갔고,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의뭉스런 양반이네.”

피식 웃은 종혁은 다 타들어 간 담배꽁초를 버릴 곳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응?”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고등학생 커플이 종혁의 눈에 들어온다.

다소 어색해 보이는 남학생의 얼굴과 몸짓. 아마 사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좋을 때다.”

종혁이 기억하기로 저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피식 웃은 종혁의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맺히는 순간이었다.

고등학생 커플이 들어간 골목 안으로 뒤따라 들어가는 네 명의 고등학생.

그런데 껄렁거리며 걷는 게 모로 보나 양아치였다.

“에휴, 새끼들아. 커플은 좀 놔둬라.”

종혁은 한숨을 내쉬곤 골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사각사각!

샤프와 볼펜이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한 목포의 명문고인 목포고등학교.

매년 명문대에 수많은 학생들을 진학시키는 명문고답게, 방학임에도 교실에 학생들이 가득하다.

띵동댕동!

드르륵! 드르륵!

“끄아아!”

“아우, 죽겠다. 씨이. 배고파.”

“햄버거 사 먹으러 갈까?”

“고고고!”

화장실을 가거나 매점으로 달려가는 학생들.

굳은 몸을 푸는 학생들 사이 자리에 앉아 기지개를 켠 김선우가 교탁으로 다가가 핸드폰을 가져온다.

다른 학생들은 죄다 스마트폰으로 바꿨지만, 사정이 있어 슬라이드폰을 쓰는 선우.

-공부 잘하고 있니? 밥은 먹었어? 엄마가 준 약은 꼬박꼬박 마시고 있지?

어머니에게 온 문자 말고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핸드폰.

다시 바구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은 선우가 자리로 돌아가 가방에서 보온병 하나를 꺼내 든다.

마개를 연 순간 옅은 한약 냄새가 풍기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 몇 명도 차나 박카스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보온병 마개에 한 컵 가득 따라 마신 선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사탕 하나를 입에 문다.

그리고 다시 문제집을 펼쳐 들고 샤프를 든다.

띵동댕동!

다음 교시가 시작됐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며 기지개를 켠 선우가 주변을 둘러본다.

해가 어스름히 저물어 가는 오후, 교실엔 20퍼센트의 학생이 빠져 있다.

모두 통학을 선택한 학생들이다. 기숙사에서 사는 학생들은 모두 교실에 남아 올해 있을 수험을 준비하고 있다.

‘쟤들은 11시에 퇴실한다고 했지?’

교실이 곧 독서실인 목포고 기숙사생들.

그렇게 퇴실해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최소 새벽 1시까지는 공부를 해야 된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불쌍하진 않다. 통학을 하는 자신도 만만치 않은 스케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 스케줄.

한숨을 폭 내쉰 선우도 목포고를 나선다.

“끄아아!”

교문 밖으로 겨우 한 발짝만 내디뎠을 뿐인데 달라진 공기.

꼬르륵!

선우는 주린 배를 움켜쥐며 근처의 분식집으로 향했다.

학원에 가기 전에 식사부터 해야 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우당탕! 드르륵!

재빨리 가방을 정리한 학생들이 학원을 나선다.

저녁 11시가 넘었음에도 힘이 넘치는 학생들.

어떤 학생은 집으로, 또 어떤 학생은 다른 학원으로.

선우도 가방을 싸며 한 곳을 힐끔거린다.

분홍색 필통을 가방에 집어넣는 긴 생머리의 예쁜 여학생.

‘최수미.’

이 학원의 퀸카이자 선우가 짝사랑하는 여학생이다.

멍하니 여학생이 학원 교실을 나갈 때까지 쳐다보던 선우는 이내 아차 하며 황급히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향긋한 복숭아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자 오늘 하루 처음으로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학원을 빠져나간 학생들을 지나친 선우가 집으로 향한다.

겨울의 늦은 저녁이라서 그런지 유독 고요한 거리.

하얀 입김이 선우의 입가에서 흩어진다.

“하. 이제 정말 고3이구나.”

한 달 뒤 3월이 되면 고등학교 3학년, 정말 수험생이 되는 거다.

그에 작년까지만 해도 학원은 10시까지였는데, 해가 바뀌자마자 학원을 하나 더 등록하게 됐다.

1시간 더 늘어난 시각이 선우의 어깨를 짓누른다.

“아니야. 아니야.”

한국대에 가려면 이 정도 스케줄은 충분히 소화해야 된다. 아니, 솔직히 이걸로도 부족하다.

애써 웃으며 영어 단어장을 꺼내 든 선우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웅성웅성. 왁자지껄!

평화광장이 자리하고 있는 유흥가를 바라본 선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부럽네.”

이미 지금 자신이 견디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어른이 되었을 그들.

그 어른들의 자유로운 모습에 괜스레 우울해진다.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렇다.

꼬르륵!

“씨이.”

이놈의 배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을까.

선우가 마침 나타난 편의점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톡톡!

“응?”

몸을 돌린 선우는 눈앞에 있는 여성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수미. 그가 짝사랑하는 최수미였다.

“안녕? 너 나 알지? 우리 같은 학원 다니는데.”

선우는 다시 한번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대화 한 번 해 본 적 없던 수미가 설마 자신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아, 알아. 최수미…….”

“다행이다! 혹시 모르는데 말 건 걸까 봐 걱정했는데. 편의점 가려고?”

”으응. 배고파서 뭐 좀 사 먹으려고.”

“잘됐다! 나도 편의점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가자!”

최수미는 선우의 팔을 잡아 팔짱을 꼈고, 선우는 팔꿈치에 닿는 감촉에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꿈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오직 한국대학교 목표로 공부만 해 오다 보니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결국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아니라면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꿈이라도 좋았다.

결코 깨고 싶지 않았다.

삑! 삑!

“3만 8천 원입니다.”

“여, 여기요.”

“와아! 고마워. 잘 먹을게! 아니다. 우리 같이 먹자. 따라와, 내가 먹을 만한 곳 알아!”

멍하니 최수미의 손에 이끌려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골목 안으로 들어온 선우는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골목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 말고는 아무런 불빛이 없는 골목길.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방금 3만 8천 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3만 8천 원. 일주일 용돈의 80퍼센트가 넘는 돈이다.

기겁하며 최수미를 쳐다본 선우는 입술을 뭉개며 들어오는 김밥의 감촉에 다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자, 먹어!”

‘반칙이잖아…….’

저렇게 예쁘게 웃는데 어떻게 돈을 내놓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휴.’

선우는 모아 놓은 대부분 쓰게 됐지만, 짝사랑녀 수미와 대화를 나눠 볼 수 있게 됐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먹자는 거지?’

그냥 편의점 안에서 먹어도 됐는데 말이다.

그런 의문이 드는 순간 골목 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뒤섞인 희미한 담배 연기가 그의 콧속으로 빨려 든다.

그리고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선우가 본능적으로 최수미의 앞을 막아선다.

그런데…….

“이야. 그림 좋네. 왜? 그놈으로 갈아타게?”

“개솔 노. 왜 이렇게 늦게 와.”

‘뭐?’

“이름이…… 선우구나? 선우야, 이거 잘 먹을게.”

최수미는 선우의 교복에 붙은 명찰을 확인하며 말하고는, 이내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오는 학생들 중 한 명에게 안겼다.

쿵!

심장이 내려앉은 선우가 눈을 끔뻑인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일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일까.

남중을 나와 남고로 진학하며 일평생 공부만 해 온 선우로서는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골목 안으로 들어선 무리 중 키가 거의 2미터에 가까워 보이는 남학생이 다가와 선우의 눈앞에 손을 흔든다.

“친구? 정신 차려야지?”

“어…….”

짜악!

“정신 차리라고, 친구야.”

돌아간 고개와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볼.

선우는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

“왜, 왜 이러세요. 저, 저 돈 없어요.”

“어휴. 우리 호구 친구가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구나? 그럼 내가 다음에 할 말이 뭔지도 알겠네?”

“지, 진짜예요. 저 돈 없어…….”

퍼어억!

“꺽?!”

배를 얻어맞은 선우가 머리채를 잡혀 고개를 든다.

“호구 친구야, 우리 선수끼리 이러지 말자. 왜 쉬운 길을 어렵게 가려고 해? 넌 맞으면 아파서 싫고, 난 때려서 힘들고. 우리 그냥 쉽게쉽게 가자니까?”

“저, 정말이에요!”

지갑에 현금은 없다. 있는 거라곤 카드뿐이다.

“하. 진짜 이 찐따 호구 새끼들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야, 야. 적당히 해. 그러다 오줌 싸겠다.”

“킬킬킬.”

이젠 심장마저 옥죄어진다.

“친구야, 우리 일단 맞고 시작하자. 알았지?”

“시, 싫…….”

들어 올려지는 상대의 손에 선우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는 순간이었다.

“어허이. 애새끼들, 동작 그만.”

쿵!

모두의 시선이 골목 입구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