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13화 (81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13화>

“억?!”

우당탕!

햇빛이 얼굴을 밝힘에 기겁하며 일어나 방을 빠져나간 종혁이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거실의 풍경에 멈춰 선다.

“아니…… 하아.”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자신의 모습. 아무래도 오랜만에 집에 왔다고 너무 풀어진 것 같다.

“나도 일 중독이야, 일 중독.”

머리를 긁적인 종혁이 기지개를 켜며 화장실로 향했다.

딸랑!

“어머, 최 서장!”

씩 웃은 종혁이 뷔페 안을 바라본다.

9시가 넘었음에도 사람들이 제법 들어차 있는 뷔페. 가만 보면 절반 이상이 정혁빌딩의 세입자다.

‘어제도 무쟈게들 달렸나 보구만……?’

뷔페에 있는 세입자 대부분이 대학생들인데 하나같이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일단 비빔밥 그릇에 국부터 듬뿍 펐다. 그도 어제 꽤 달렸기 때문이다.

“오, 황태국.”

역시 어머니는 센스가 넘쳤다.

지이잉! 지이잉!

“예, 최종혁입니다.”

-서장님-!

“아, 강력계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언제 오십니까!

“하하. 미안하지만 신안으로 내려가는 건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저도 휴가는 즐겨야죠. 그리고…….”

종혁의 표정이 가라앉는다.

“전에도 말했듯 군민들 숨통을 좀 더 틔워 줘야 하고요.”

신안 전체를 뒤집었고, 신안 군민들 전원이 관련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제외한 전원이.

당연히 자신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건 이후 계속 엉덩이를 뭉개고 있었으면 모르되, 이렇게 자리를 오래 비운 이상 좀 더 풀어 줘야 했다.

‘이왕이면 인사이동 전까지 계속 자리를 비우는 게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때가 되면 돌아갈 테니까 결재 서류는 계속 제 메일로 보내 주세요. 그보다 사건 진행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후우. 어제부로 마지막 피의자에 대한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형량이 가장 낮았지만, 그래도 징역 18년.

경찰을 준비한다고 했던 20세의 청년이었는데, 앞으로 경찰은커녕 노가다도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좋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수고해 주시고, 군민들과도 계속 어울려 주세요. 돈은 계속 보내 드리겠습니다.”

꽉 닫힌 군민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돈.

-……알겠습니다.

“예,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수고하세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빈자리에 앉았고, 그런 그의 앞에 믹스커피를 든 고정숙이 앉는다.

“안 내려가 봐도 돼?”

“괜찮아요.”

“정말? 벌써 2주째잖아.”

“에헤이. 괜찮다니까. 밀린 휴가 쓰는 건데 누가 뭐라 해.”

솔직히 괜찮지 않다. 벌써 2주 동안 아침 운동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근에 일이 많았다지만…….’

정말 내일부터는 긴장을 다시 끌어올려야 할 것 같다.

“그보다 이번 주말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벌써 5월이다. 4월에 벚꽃 구경을 가지 못했으니 다른 구경이라도 가야 했다.

“알았어. 안 그래도 시간 빼놨어.”

“오케이. 그럼 아들은 밥 먹겠습니다.”

종혁은 재빨리 퍼 온 밥을 국에 말았고, 고정숙은 오랜만에 집에 붙어 있는 아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벌써 2주째, 이제 아들의 얼굴은 볼 만큼 봤다.

* * *

웅성웅성. 와글와글.

“후우우.”

서울역 인근의 카페 앞, 종혁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오랜만에 사우나에서 땀을 쭉 빼고, 때도 밀며 광을 낸 그.

다 피운 담배를 꺼 근처 쓰레기통에 버린 종혁이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카라멜 마끼아또 한잔이요.”

“네. 결제 도와 드리겠습니다.”

진동벨을 들고 빈자리에 앉은 그가 메고 온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들다 멈춘다.

“하아. 진짜 일하기 싫네.”

봄비조차 내리지 않는 화창한 봄날.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난 건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일을 손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이 우울할 뿐이다.

“그래도 해야지.”

어쩔 수 없이 해야 된다.

결재는 심장이다. 결재가 막히는 순간 경찰서 업무도 마비되는 것이었다.

투덜거리던 종혁은 곧 어젯밤 사이 있었던 일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후우. 끝났…… 억?”

종혁이 어느새 앞에 앉아 있는 미인에 깜짝 놀란다.

“왔으면 말을 하시지.”

“저도 사회인인데 그럴 수 있나요.”

“미안해요, 시연 씨.”

홍시연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솔직히 집중하는 종혁의 모습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어디든 말해요.”

“어디든요? 비행기 타고 먹으러 가자고 해도요?”

“홍콩 갈래요?”

“……방금 건 진짜 아저씨 같았어요.”

“아니, 방금 건 진심인데……. 이 아가씨가 무슨 음흉한 생각을 한 거지?”

“이, 일어나죠!”

얼굴이 빨개져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따라나선 종혁이 카페를 나서자 그녀를 불러 세운다.

“잠깐 서울역 좀 들르고 가요. 가방 좀 넣어 놓고 가게요.”

오랜만에 데이트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싶었다.

“오늘은 차 안 가져오신 거예요?”

“날이 너무 좋잖아요.”

이런 날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면 좀 아쉽지 않을까.

“그래서 운동화를 신고 오라고…….”

“숭례문 거쳐서 덕수궁까지. 오케이?”

“연인끼리 덕수궁 돌담길 걸으면 안 좋다던데…….”

“돌담길만 안 걸으면 되죠.”

“그런가?”

아무래도 좋다. 종혁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둘은 손을 꼭 잡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아, 여기 잠시만 있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네, 알았어요. 얼른 갔다 와요.”

고개를 끄덕인 종혁이 서울역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퍼어엉!

서울역 역사 안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발음.

눈을 부릅뜬 종혁이 재빨리 홍시연을 본다. 많이 놀란 것인지 몸을 움츠린 채 흔들리는 눈으로 종혁을 보는 그녀.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이내 입술을 깨문 그녀가 애써 가슴을 펴며 종혁을 또렷이 응시한다.

“다녀오세요. 전 아까 그 카페에 있을게요.”

“……미안해요.”

종혁은 얼굴을 구기며 서울역 안으로 몸을 날렸다.

‘씨발! 어째서!’

* * *

“뭐야. 뭔데?”

“워씨, 깜짝이야. 뭐가 터진 거야?”

“이야. 뭐가 터졌는데, 저 스프링클러는 작동도 안 하네.”

‘하, 진짜.’

진짜 이놈의 안전불감증은 사라지질 않았다.

종혁이 한 군데 둥글게 모여 있는 사람들에 뒷목을 잡는다.

“잠시만요. 비키세요.”

“아, 뭐…… 흡?!”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간 종혁은 박살이 나고 그을린 소지품 보관함을 발견하곤 망연자실해한다.

폭탄이 작았는지 하나만 박살 난 보관함.

다행히 폭발에 의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없지만, 발끝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른다.

“어째서…… 왜?”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졌다.

“대체 왜?”

혼란해하던 종혁은 이내 이를 악물며 핸드폰을 들었다.

“수고하십니다. 신안경찰서장 최종혁 총경입니다. 지금 서울역인데 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테러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폭발물 해체반과 수습할 인원들 파견해 주세요.”

-헉! 거, 거기도요?!

“……이 개새끼들이 진짜!”

종혁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물러나세요!”

소지품 보관함을 중심으로 널찍하게 쳐진 폴리스라인.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폭탄 해제반이 박스에 담긴 폭발 잔해들을 옮기고, 엑스레이 같은 것으로 다른 보관함들을 투시한다.

그리고 이내 보관함들을 전부 강제로 뜯어내며 모든 물품들을 확인하는 그들.

폴리스라인 바깥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종혁에게 한 사람이 다가선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 대장님.”

서울경찰청 소속 대테러부대 SWAT의 대장을 본 종혁이 눈을 가늘게 뜬다.

“최 총경이 첫 신고자라면서?”

“예고 같은 건 안 왔습니까?”

“예고? 그런 건 안 왔는데?”

‘그럴 리가…….’

말도 안 된다.

회귀 전, 서울역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

오늘이 그 폭발 사건이 벌어졌던 날이기에 종혁은 미리 대테러부대에 폭탄 예고를 보내 놨었다.

그래서 상황이 어떻게 되나 확인도 할 겸 홍시연과의 만날 장소를 이곳으로 잡았던 그.

뒷목이 다시 뻣뻣해지는 순간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얜 또 왜 전화하는 거야? 왜?”

-대, 대장님-! 지, 지금 우편물들 사이에……!

“우편물들 사이에 뭐?”

-테, 테러 예고장이……!

쿵!

“……야, 이 개새끼야-! 그걸 지금 발견하면 어떡해! 아오, 씨발! 알았어! 끊어!”

종혁이 한숨을 내쉰다.

“예고장이 왔답니까?”

“어. 왔단다. 하아으아아! 씨발, 진짜. 인력 좀 보충해 달라니까-!”

“……설마 SWAT도 많이 털린 겁니까?”

움찔!

종혁의 말이 맞다.

몇 번의 내사로 적잖은 숫자의 대원들이 퇴직을 하게 된 SWAT.

거기다 이번 인신매매 사태로 전국 모든 경찰 부서에 감찰을 받으며 또 몇 명의 대원이 퇴직을 하게 되었고, 더더욱 인력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퇴직하게 된 대원 중에 하필이면 우편물을 담당하는 대원이 있었던 것 같다.

“진짜 내가 최 총경한테는 면목이 없다. 미안하다.”

“……제게 미안할 게 아니라 여기 시민들에게 미안해야죠.”

회귀 전에도 다행히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던 이번 폭발 사건.

그러나 얼마나 놀랐을까.

대한민국이 테러 청정국으로 치부되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줄 뻔했다.

미국이나 아프가니스탄 등 테러에 치를 떠는 나라들이었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그건 당연하고…… 하아. 아무튼 알았어. 지금부터는 우리에게 맡기도록 해.”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종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시고요. 지금 휴가 중이거든요.”

“그래. 알았어.”

종혁은 손을 젓는 SWAT 대장을 뒤로하며 몸을 돌렸다.

‘개입을 하려고 해도…….’

현재로선 명분이 없다.

종혁은 혀를 차며 홍시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미안해요. 걱정 많이 했죠?”

“괜찮아요?”

“네. 별일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부탄가스 같은 게 터졌나 봐요.”

“부탄가스가요? 그게 터지기도 해요?”

세계 제일의 안전성을 가지고 있는 국내의 밀폐 기술.

“중국산이었나 보죠.”

“아.”

“그럼 갈까요?”

“……우리 조금만 더 앉았다 가요.”

“그래요, 그럼.”

많이 놀라고 걱정한 것인지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종혁은 미안해하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 *

-오늘 낮 서울역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뭔가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공간.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불을 밝히는 TV를 보던 안경 쓴 사내가 입술을 비튼다.

“저게 진짜로 터져 주네. 와, 내 옛날 실력 진짜 안 죽었네…….”

비틀린 웃음을 터트린 그는 등 뒤에 놓인 작업대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때였다.

벌컥!

노크도 없이 열린 문에 눈을 감는 그.

“뭐해?! 밥 먹어!”

“아씨, 노크 좀 하라니까. 내가 작업 중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알았으니까 식사하시라고요.”

쾅!

거칠게 닫힌 문에 입술을 이죽거린 그는 이내 몸을 일으켜 방을 빠져나갔다.

“얼마나 빠졌어?”

“아직은……. 일단 테러 청정국이잖아.”

하지만 내일부턴 좀 다를 거다.

“흠. 예고장이라도 보내야 하나?”

“됐으니까 숟가락이나 들어. 아, 국 식는다고!”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앞치마를 입은 사내의 재촉에 입맛을 다시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었다.

* * *

쾅!

서울경찰청에 모인 장희락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소파를 후려치며 이를 악문다.

“테러라니…….”

빠드드드득!

장희락의 얼굴이 도깨비의 그것보다 더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기자들 입은 확실하게 막았습니까?”

“예. 일단 예고장 같은 건 안 왔다고 발뺌을 하긴 했는데…….”

문제는 테러 이후 경찰청과 112의 전화가 마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폭탄을 터트렸다는 장난전화로 말이다.

“잘했습니다. 이놈을 잡을 때까진 어떻게든 테러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막아야 해요.”

그동안 한국은, 그리고 서울은 테러 청정 지역이었다.

그동안 테러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모두 잘 막아 냈다. 그렇기에 이번 일이 테러로 밝혀지게 되면 서울에 혼란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건 무조건 막아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건을 수사할 인력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흠?”

장희락이 눈을 가늘게 뜨며 서울청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서울청장 역시 그런 장희락을 가만히 바라본다. 짧은 순간 눈빛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둘.

“……으음. 일단 본청의 특수대는 일이 많은데 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노조들의 뒤를 파며 정보와 증거를 모으는 데 여유 인력 전부를 쓰고 있는 특수범죄수사대.

“흠. 이거 어쩔 수 없군요.”

“예. 아무래도 특수본을 조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최종혁 총경, 아직 서울에 있습니까?”

“호오?”

의외라는 듯,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듯 서울청장을 바라보던 장희락은 이내 종혁에 대해 떠올리곤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최 서장, 지금 뭐하는 중이지?”

한참 홍시연과 데이트 중이었던 종혁은 갑작스런 장희락의 전화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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