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몰락귀족-4화 (4/60)

위선의 시대(3)

고고한 푸른 달 아래의 고요한, 파문 하나 없는 연못에, 한 방울의 물방울이 떨어져 청량한 달빛 아래 파문을 일으켰다.

그 파문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서 연못 전체로 번져나간다.

하지만, 도리어 그 폭심지에 있기에 그것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는 알 길이 없었다.

***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소일렌트 그린>은 출판되자마자 어마어마한 충격을 몰고 왔다.

이것이 단순히 무명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모를까, 이미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작가가 신작을 냈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사보았고, 충격을 받은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멜서스 트랩을 신봉하는 고위층들이 상당수인 시대, <소일랜트 그린>은 이들의 행보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적어도 출산은 제한해야 합니다! 출산을 줄여야만 정해진 미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절대 불가! 출산은 여성의 신성한 권리요!”

“교리상 낙태의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 자동파문에 이르는 대죄요. 신께서는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

“아니 그러니까 번성을 너무 해서 다 같이 죽을 지경이잖아! 역사가 증명한다고!”

하지만 한 가지 예상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소일렌트 그린이 <마지막 사건>의 충격파를 줄여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일렌트 그린 자체가 대박을 친 게 아니라서였다.

물론 제법 많이 팔리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아성을 넘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셜록 홈즈의 주 독자들은 상류층부터 하류층까지 다양했다. 애초에 잡지 연재 소설이었으니 당연했다.

즉, 마지막 사건의 후폭풍은 후폭풍대로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

“아이고 골이야.”

머리를 감싸쥔 내가 드러눕자, 라일라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몇 시간 있었지?”

“3시간이요.”

“세 시간 동안 안 쉬고 화내시는 것도 재주야.”

나는 한숨을 쉬고 라일라가 가져다준 수프를 입에 넣었다.

“아니, 근데 이게 죄야?”

“...... 소설을 쓴 게 죄라고 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피임행위가 가톨릭 기준으로는 죄가 맞기는 하지. 근데 내가 피임을 하라고 했냐?”

피임행위는 현 시점에서는 완전한 대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피임법은 대죄고, 배란주기관찰법조차 바오로 6세가 ‘정당한 부부 관계’라는 전제 하에 허용하기 이전에는 대죄였다. 근데 바오로 6세가 교황이 되려면 아직 한 세기는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게 문제지.

“.... 뭐 소설에다 대고 그런 주장을 하진 않았죠.”

“후, 근데 뭘 그걸 가지고 고해성사를 보라느니 어쩌느니 난리를 치는지.”

“그렇게 치면 결투도 대죄인데 말이죠.”

“결투뿐이냐.”

나는 피식 웃고는 가톨릭에서 금지하는 별별 내용들을 생각했다.

“애초에 사람들이 종교 교리를 어머니가 원하는 것만큼 깐깐하게 지켰으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갔겠냐.”

“그러지는 않았겠죠...?”

“하아, 아무튼.......”

“그나저나 셜록 홈즈 신작은 언제쯤 쓰실 거에요? 지금 외출도 함부로 못하겠어요.....”

“그 정도야?”

“시내 분위기 흉흉해요, 진짜로요, 도련님이 집 위치 등은 숨겨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폭동이 일어나서 여기로 몰려왔을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내가 쓴 신작보다는 셜록 홈즈 시리즈에 더 관심이 있구만.”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닐까요.”

물론, 각국의 최상층부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양이기는 한데...... 뭐 원 역사에서도 있었던 일이니...... 일이겠지?

아무튼 별일 없을 거다.

아니면..... 말고.

“그래서 할 일이 많아. 소일렌트 그린의 후속작도 준비해야 하고, 다음 셜록 홈즈도 준비해야 하고.”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소일렌트 그린이 더 급하다. 셜록 홈즈는 몇 년쯤 더 뭉게고 있어도 된다.

“항상 말하지만, 제목 짓는 게 제일 어려워.”

작품의 주제의식을 함축해야 하니까.

“그리고 보고 싶게 만들어야지.”

“도련님 이름값이면 그냥 도련님 작품이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요는 있을 텐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펜을 끄적이며 말했다.

“그리고 소일렌트 그린의 시퀼이기도 하니, 유명해지긴 할 거야, 그러니 설득력이 있어야지. 당연하지만 재미는 없으면 안 되고.”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건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내 생각을 사방에 알리는 것.

당연히 순수히 내 실력으로 써야 한다. 소일렌트 그린에는 후속작 따위 존재하지 않으니까.

물론, 어느 정도 내 머릿속에 있는 소설들의 표절이 가능하고, 나 스스로도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지만, 그리고 어느 정도 스토리를 정리해 놓기는 했지만, 언제나 소설은 첫 시작이 가장 문제다.

내 이름이 역사에 멜서스의 지지자 따위로 남으면 상당히 내 평판에 치명타를 입을 뿐 아니라, 어머니 등쌀을 견딜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안락한 삶을 위해서는 상류 사회에서의 평판을 조져버리면 절대, 절대 안 된다.

즉, 그간 만들어놓은 잔재주들을 총동원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골치 아파....... 정말로.”

모래시계에 남아 있는 모래가 쏟아지고 있는 기분인데 글은 안 나오고 미치겠다.

아니, 일단 제목부터 정해야 하나?

“라일라, 신작에서, 너 뭐 좋은 생각 있어? 제목 뭘로 할지를 정해야겠는데.”

“으음..... 주인공의 상징이 그 늑대였죠?”

“주인공과 그 동료들 다 해서 늑대지.”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늑대는 달을 보고 울지 않는다.>!”

“달 보고 안 울면 어딜 보고 우는데?”

“그건 딱히 생각 안 했는데요? 그래도 뭔가 그럴듯하지 않나요?”

“으음.”

제법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딱히 더 좋은 생각도 없는 것 같으니 일단 그걸로 가제를 해놓고, 더 좋은 거 생각나면 바꾸든가 하지 뭐.”

나는 원고 뭉치의 표지에 제목을 적어넣었다.

***

버킹엄 궁전, 런던,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 연합왕국.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 연합왕국과 하노버 왕국의 군주, 조지 4세는 얼굴을 찌푸렸다.

“의회가 시끄럽다고 들었네, 언론도 그렇고.”

“송구합니다.”

“식량을 늘리기보다는 입을 줄이는 게 훨씬 합리적인 대책이 아닌가? 훨씬 쉽고 말이네. 당장 저 빈민가들을 치워버린다면 일이 쉽겠네만.”

조지 4세의 말에 곁에 있던 총리, 아서 웰즐리 공작과 클래런스와 세인트앤드루스 공작 윌리엄 왕자가 굳어졌다.

윌리엄 왕자는 현재 영국 왕위에서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조지 4세의 외동딸 샬럿이 난산 끝에 죽어버렸고 아이도 사산된 탓에 조지 4세의 후손은 아예 없고, 둘째형인 프레더릭 왕자는 3년 전에 사망, 윌리엄 왕자는 셋째였다.

물론 지금 윌리엄 왕자도 자기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없었다. 적자녀를 5명이나 낳았음에도 죄다 요절했고, 차순위 왕위계승자는 10년 전에 폐렴으로 죽은 죽은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의 11살짜리 외동딸,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공주였다.

아무튼, 차기 국왕과 총리를 기겁하게 한 조지 4세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멜서스 박사의 말이 맞아, 전쟁을 해서라도 인구는 줄여야 하네, 이러다가는 온 세상에 송곳 꽃을 틈이나 남겠나?”

“크흠, 그건.......”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건 좀 그러니까 더 태어나지라도 못하게 하겠다는데 그것도 결사반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가? 총리?”

웰즐리는 헛기침을 했다.

“상당수의 의원들이 여전히 빈민증가방지법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피임 수단은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그러니 아예 불임이 되는 대가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인구 증산을 줄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빈민증가방지법의 요체였다. 쉽게 말해 돈을 주고, 불임수술을 시키는 것.

당연히 그 돈을 필요로 할 정도면 빈민일 것이고, 부는 당연히 대물림되는 것이니 빈민의 수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거세를 안 한 것도 아니다. 중세의 이슬람권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당장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만 해도 거세된 소년들 아닌가.

즉 거세 행위는 제법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행위니 그걸 정식으로 정책화하는 게 문제가 되나? 어차피 막 살다가 막 죽을, 소모품에 불과한 빈민들 아닌가.

그들이 후손을 남기지 못해 장래의 식량 부족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면 사소한 고통 정도는 무시해도 좋다.

그게 공리주의 아니던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말이다.

행복, 즉 쾌락의 최대화, 혹은 불행과 고통의 최소화 중 어느 게 우선되어야 하는지는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아무튼 간에 이는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수가 많을 미래의 후손들이 이 행동을 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면, 지금 세대가 조금 불행해지는 것은 감내할 만한 일 아닌가.

즉 빈민증가방지법은 도덕적이다. 이는 당사자에게만 고통을 줄 뿐, 똑같이 불행 속에 살아가게 될 빈민들의 자식들에게도 훨씬 좋은 일이다.

그것이 빈민증가방지법을 주장하는 이들의 요체였다.

당연히 반발하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원 역사에서 1834년 빈민법이 폐지되었을 때 이를 추인한 윌리엄 4세도 이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표출했고, 종교계도 들고 일어났다.

가톨릭은 물론이고 성공회도 반대했다. 캔터베리 대주교마저도 공개 석상에서 이를 비판했을 정도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경을 따르는 이라면, 종교인이라면 종파와 관계없이 이러한 행위에 대해 결코 드러내놓고 찬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휘그당은 전부 반대, 보수당 상당수도 반대였고, 당의 분열을 우려해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총리인 웰즐리 역시 반대 입장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소설, ‘소일렌트 그린’으로 멜서스 트랩 논쟁에 불을 지른 당사자인 셜록 홈즈 시리저의 저자, 젠티안 자작도 주요 신문에 사설을 내어 식량 부족은 불모지의 개척과 기술 발전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이지 사람을 죽이거나 거세해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미친 짓이고, 빈민증가방지법은 분명 빈민을 줄이겠지만, 이는 결코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 못할 것이며 또한 결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아 명백히 빈민증가방지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자신의 소설에 담긴 의도는 사람을 줄이자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버려진 땅을 경작하고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인구 폭발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며 빈민증가방지법을 강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유명인사들이 이를 반대했다.

물론 소수의 지지자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상당수가 비난에 시달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존심을 꺾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선구자로 여기고 있었기에. 그들이 가진 것은 신념이었다. 단순한 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꺾기 어려운 일이었다.

돈이나 이권에 얽힌 문제라면 상황이 바뀐다면 바로 이득을 따라서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겠지만, 가장 설득이 어려운 부류는 그러한 신념에 의거해 움직이는 존재들이었다.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이만큼 설득하기 어려운 존재도 없는 법이니까.

“폐하, 설마 폐하께서도.......”

웰즐리의 눈이 떨렸다. 왕자도 뭔가 쓴 것을 잔뜩 집어삼킨 표정이었지만, 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빈민증가방지법, 시행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세상은 진보해나가는 걸세, 퇴보가 아니야, 우리가 신을 믿는다고 해서 구약의 율법들을 여전히 지키면서 사는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자들이 스테이크를 구울 때 버터를 두르지 않느냐는 말이네.”

구약성서에는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율법이 있다.

즉 율법적으로 유제품을 이용해 소고기를 조리하거나, 염소젖을 이용해 염소고기를 조리하는 등의 요리를 금지한 것이다.

그러나 고기를 구울 때 그런 이유로 버터를 사용하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되느냐는 말은, 곧 과거의 도덕에 얽매여 눈에 뻔히 보이는 진보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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