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오브 런던
“대공 전하.”
아서 웰즐리, 나폴레옹 전쟁의 영웅이자 현직 총리를 앞에 둔 윌리엄 왕자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를 어쩌시렵니까?”
“내게 뭘 바라는 건가?”
“수습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왕 폐하께서...... 형님의 의지가 그리 확고하신데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전하께서는 1순위 계승자이십니다.”
“그렇지.”
윌리엄 왕자는 차를 홀짝였다.
“왕실 주치의의 말로는, 형님의 건강은 좋지 않다고 들었네, 사실 당장 내일 흉보가 들려와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지.”
“하원이든 상원이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법안, 결코 통과되지 않을 겁니다.”
국왕이 개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국 국왕의 권한은 막대하다.
국왕이 이 법을 통과시키고 싶어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의회 내의 여론이 흔들릴 수 있다.
웰즐리가 우려하는 건 그것뿐이었다.
“법안의 통과를 최대한 지연시키게, 아니, 의회를 마비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몇 달만 시간을 끌어보게. 형님의 상태는 좋지 않아.”
백내장의 심화로 시력을 거의 상실해 며칠 전 수술을 받았고, 문서에 서명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오른팔 통풍에 몸무게 130kg에 달하는 고도비만으로 인한 동맥경화 등등.
“며칠 전에도 호흡곤란을 호소하셨다더군. 할포드 경이 아편 사용량을 늘릴 것을 지시했다고 했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은, 왕은 여전히 자기가 혈기왕성한 것마냥 행동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로 비둘기 파이와 쇠고기 스테이크, 샴페인과 브랜디, 와인 몇 잔씩을 퍼먹는 걸 보면 정말 진지하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람이 맞는가 궁금해질 정도였기에.
“할포드 경은 권력을 탐하는 것과 진통제 처방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간 아닙니까.”
웰링턴은 경멸적인 어조로 말했지만, 그게 일을 쉽게 만들어줬다는 건 사실이었다.
왕이 방광염의 고통을 줄이겠답시고 아편에 빠져 골골대고 있으니 얼마 못 갈 테니까.
괜히 일 키우고 싶지 않은 것은 동서고금 공통이었다.
조지 4세가 쓰러지고 윌리엄 왕자가 즉위하면 이 논란은 고작해야 찾산 속의 태풍으로 끝나리라.
“의회를 지연시키게, 길어야 내년이야.”
“아니면 뭔가 다른 문제를 수면 위에 올릴 수도 있겠죠. 이건 의원들과 조금 이야기를 해 봐야겠습니다.”
“내가 즉위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무마하겠네, 그러니 지금은 시간을 끄는 걸 우선시하게나.”
“예, 전하.”
***
<시내에서 난투극... 2명 부상, 10명 체포>
<미가야의 경고를 들으라! 세 번째 기사, 흑기사가 다가온다!>
“다들 미쳤냐고.......”
나는 한숨을 쉬면서 비스킷을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묻으려고 터트렸는데, 묻히기는커녕 두 개가 사이좋게 같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주인님?”
라일라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도 안 돌리고 답했다.
“편집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뭐?”
아니, 이 양반은 연락도 없이 웬일이래?
***
“연락도 없이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집까지 찾아오셨습니까?”
“...... 저희 출판사에 방화 시도가 있었습니다.”
“.........”
“다행히도 경관들이 제때 체포했지만, 아무래도 일이 저희들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커진 모양입니다. 심지어 의회에서도.......”
“제가 의회에 출석해서 연설이라도 해야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작가님은 본인의 입장을 이미 충분히 명확하게 밝히시지 않으셨습니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돈 되는 거라면 뭐든 쓰는 기자들이지요. 자신이 한 말도 보도하고, 하지 않은 말도 보도하는 작자들 말입니다.”
“....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다.”
이거 한 말이 허스트였던가. 근데 허스트가 몇 년 생이지? 아니, 허스트 맞나? 아직 안 태어났으려나?
뭐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거 아니지.
“다만, 뭔가 움직임을 보이셔야 할 겁니다.”
“언론을 통해 성명을 발표한 걸로는 모자랍니까?”
“새 작품을 써주셔야겠습니다.”
작가는 글로 말하는 법.
그렇기에, 결론은 신작이었다.
“시간이 걸릴 겁니다.”
“재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혜량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입니다.”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로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안 된다는 말씀은.......”
“예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고, 신작으로도 이미 퍼져나간 여론을 주워담을 수 없다면 말입니다.”
인간은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을 소비한다.
맥락을 무시한 인용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가.
없던 일도 지어내는 인간들이 한가득한 건 19세기나 21세기나 한가득이지 않은가.
“그건 정치인들이 생각할 일이겠죠,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셈이니 말입니다.”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원한 적은 없지만 아무튼 간에 이번 논쟁에 불을 붙인, 멜서스 트랩의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입장에서 도의적인 의무는 다 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에서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이거 때문에 역사가 크게 틀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영국에 적기가 내걸린다거나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별별 상상이 다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일이 참 머리아프게도 꼬였다.
난 그저 미래 지식으로 꿀 좀 빨고, 아서 코난 도일이 원 역사에서 마지막 사건을 발표하고 몇 년 동안 전 유럽에서 탈탈 털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소일렌트 그린이 논란이 될 걸 알면서 묻으려고 터트린 것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 소설을 수습하려고 소설을 한 권 더 낼 참이고.
내가 알기로 원 역사에서 홈즈를 죽인 뒤 코난 도일이 당한 꼴은 어마어마했다.
런던 시민들은 검은 리본을 하고 돌아다녔으며, 공공연하게 코난 도일을 원망했다. 집 앞에서 홈즈의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했고, 집의 창문이 돌이 날아들어서 남아나지를 않았다. 협박 편지가 무수히 날아온 건 애들 장난일 정도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 어느 노부인이 양산으로 묻지마 폭행을 하는가 하면 소송을 준비하고, 심지어 후일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왕세자까지 개입해 홈즈가 여기서 죽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고 압박을 넣고, 심지어 어머니에게 ‘내가 사람을 죽였더라도 이렇게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겁니다. 홈즈 때문에 죽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더니 믿었던 어머니마저 ‘고생이 많구나 아들아, 그런데 홈즈는 왜 죽였니?’라는 답장을 보내서 확인사살을 시키는 등.
그야말로 7년 동안 전 세계적인 조리돌림을 당하고, 결국 바스커빌 가문의 개, 그 다음으로 빈집의 모험을 써낸 게 코난 도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조리돌림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일렌트 그린을 썼다. 쉽게 말해서 묻으려고 터트렸다.
그런데 조리돌림은 조리돌림대로 당하고 논란은 논란대로 터졌다..... 대체 왜?
***
“독자층이 다르잖아요.”
원시 때문에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숙식은 어차피 여기서 다 해결되기에 돈을 쓸 일은 거의 없다, 어머니가 제법 후하게 주기도 하시고-돋보기안경을 구해 쓴 라일리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입술을 삐죽였다.
“소일렌트 그린은 좀 어려운 소설이에요, 그런데 셜록 홈즈는 대중친화적이죠, 당연히 소일렌트 그린은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부르주아나 귀족들이 많이 읽었고, 셜록 홈즈는 귀족(Royalty)부터 하류층(Lower Class)까지 글 안다는 사람은 다 읽었단 말이에요. 당연히 소일렌트 그린으로 관심을 끌 상대는 상류층(Upper Class) 정도지...”
“그래, 내가 봐도 재미있게 쓴 소설은 아니긴 했다.”
“즉 나머지 계층은 소일렌트 그린이고 뭐고 홈즈부터 내놓으라고 난리를 칠 수밖에요.”
“설명해 줘서 아~주 고맙다. 그러면 지금 내가 뭘 해야겠냐?”
“...... 새 홈즈를 써야겠죠?”
“못해도 내년에서 내후년까지는 진짜 안 돼. 일단 이건 마무리지어야지.”
아니 그래도 내 소설 하나로 역사가 틀어지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그리고, 마님께서 슬슬 혼처를 알아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셨어요, 이제는 마님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셨다던데요.”
“뭐?”
“마님께서, 도련님 혼처를 알아보신다고요, 이미 일이 제법 진행됐을걸요.”
“........”
아니, 적어도 나한테 이야기는 하고 찾아보실 것이지......
“하아......”
이마를 감싼 나는 슬그머니 물었다.
“그래서, 넌 뭐 들은 거 있어?”
“마님의 말씀으로는 귀족 가문과 혼인하면 최고겠지만, 젠티안 가가 조금..... 이방인 출신이잖아요.”
“영국 귀족의 명부에 오른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
“그래서 약간 그쪽에서 꺼리는 눈치라고 하시더라고요.”
“뭐 그거야 알겠는데, 그러면 부르주아 쪽인가?”
“예, 마님이 연세가 적지 않으시기도 하고, 마님이 돌아가시면 도련님께서는 귀족원에 들어가셔야 할 텐데 좀 도움이 될 만한 집안 쪽으로 알아보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같은 쓸데없는 소리는 할 필요도 없었다.
내 도움을 받아 글을 익힌 라일라는 회계를 비롯해서 별별 일을 다 하고 다니고 있었고, 거기에는 어머니 비서 일도 포함되니까. 아마 제법 많은 편지를 대필했으리라 짐작된다.
“후우.”
한숨이 또 나온다.
“라일라.”
“네?”
“마차 좀 준비시켜 줘.”
“어디로 가시게요?”
“시티 오브 런던, 사업 문제 때문에.”
물론 내가 직접 사업을 하는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투자다.
물론 어머니-내 전생의 어머니와 현생의 어머니 모두-께서는 언제나 말씀하셨다.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니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차라리 열심히 저축하는 게 낫지 함부로 주식 건드리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 많으니 차라리 목돈이 있으면 그걸로 땅을 사라나?
하지만, 과거로 돌아왔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이 미친 수익률을 역사에 의해 보장받는 주식이라면? 144000% 떡상하는 걸 장막을 뚫고 미래에서 보고 온 유망주라면 어떨까?
아니, 다른 건 몰라도 말이지, 위인전 나온 양반의 회사가 망할 리가 없잖아.
뭐, 내 덕분에 조금, 조금 바뀌었을지는 몰라도 회사에 자본금 좀 늘어난 거 가지고 될 회사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뭐 과욕을 부리다가 망한다거나 그런 것도 생각 안 한 건 아니기는 한데...... 설마.
잠깐 생각하는 사이, 라일라가 마차가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마부를 불렀다.
“예, 나리, 어디로 모실까요?”
“시티 오브 런던, 시티 오브 런던의 그레이트 웨스턴 기선회사로 가지.”
시티 오브 런던. 대영제국의 금융중심지.
그리고 초대형 면세특구.
그리고 내 돈줄이 될 회사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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