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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0)화 (11/133)

10화

종이를 받아 들고 첫 줄을 읽은 크로셀이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우리 안젤리카가 고민이 많았구나.”

크로셀은 슬픈 표정이다. 어린 나까지 왕국의 재정을 고민하게 해서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 겉모습은 열 살이지만 빙의 전의 나는 어엿한 성인이었는걸. 이렇게 아이 취급을 받으니 새삼 기분이 어색했다.

“이므시 백작과 시종장에게 돈을 지출한 일 때문에 그러는구나. 걱정하지 말렴. 다 이유가 있어서 지출한 것이니.”

그게 진짜일까? 크로셀이 너무도 선량한 표정이라 그다지 신뢰 가는 말은 아니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종이 뭉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 다음 장을 읽어 보세요.”

“그래, 알겠다.”

잠시 정적.

“안젤리카, 이건……. 일단 한 방 날린다니……?”

“네! 빈 땅에 마법 폭탄을 한 방 터뜨린 뒤, 겁먹은 인간들에게 공물을 받는 거예요!”

“그런 일을 하면 공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지잖니.”

첫 번째 방법은 바로 기각되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 장을 넘겼다.

“그럼 이웃 나라의 후계자를 인질로 잡아서 몸값을 뜯죠.”

“후계자가 붙잡혀 가면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니. 나라면 견디지 못할 것 같구나.”

두 번째 방법도 가차 없이 기각.

“드래곤의 환영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

“그랬다간 어린아이들이 진짜인 줄 알고 무서워할걸.”

이상하다. 원작에서는 다 해 본 방법이었는데? 왜 싫어하지?

역시 버그 때문에 아빠가 착해졌기 때문인가?

‘으윽, 이 버그 망겜.’

하지만 나는 이미 빙의해 버렸는데 아빠의 버그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 거지?

아빠는 고민에 빠진 나를 껴안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속삭였다.

“안젤리카, 아빠는 늘 안젤리카가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바란단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아빠……!”

감동적이지만, 너무나도 감동적이지만……!

‘평화란 압도적인 힘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아빠.’

흑막답게 강하고 냉철하고 잔인한 면모를 보여 왕국민들을 쫄게 만들고 이웃 나라가 감히 개기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마.왕.꾸>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평화다.

그러나 내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아빠가 너무나도 온화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안젤리카, 안젤리카도 마법 폭탄을 터뜨린다는 말은 하지 말렴. 우리 천사가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되는구나.”

“마법 폭탄은 안전장치가 있어서 괜찮아요!”

“안전장치가 고장 날 수도 있잖니? 아빠는 안젤리카가 위험할 일은 하고 싶지 않단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보호 같다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네, 알겠어요.”

나도 모르게 수긍해 버렸다.

아차, 저 얼굴만 보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단 말이지.

‘너무 잘생긴 바람에 그만.’

<마.왕.꾸>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우리 아빠인 기분? 정말 최고다.

“안젤리카, 쿠키가 있는데 먹겠니?”

“네, 먹을래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쿠키를 먹으면서 은근슬쩍 아빠의 책상 위 서류 사이에 제안서를 숨겨 두었다.

그러나…….

“안젤리카, 이거 가져가야지.”

“네…….”

아빠는 서류 사이에서 내가 숨긴 제안서만 찾아서 그대로 돌려주었다.

결국 나는 따뜻한 우유와 쿠키를 먹은 뒤 그냥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빠를 흑막으로 만들기, 쉽지 않구나…….

안 되겠다. 좀 더 하급 수단부터 강구해야겠다.

* * *

상냥하고 다정한 아빠에게 <데네브 왕국 발전을 위한 제안서>를 까인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직 아빠 흑막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예부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즉, 아빠를 흑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아빠에 대해 상세히 알아야 했다.

물론 나는 ‘크로셀 데네브’에 대해 잘 알았다. 레벨, 능력치, 대미지 계산식, 전용 무기, 특기 마법까지 전부 외웠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걸.

그러나 내 지식은 어디까지나 <마.왕.꾸>의 ‘크로셀 데네브’에 한정된다. 버그인지 뭔지 때문에 착해져 버린 아빠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다.

에휴, 레벨이며 능력치를 달달 외워서 뭐 하겠나. 우리 아빠는 그 뛰어난 능력으로 흑막다운 일을 조금도 하지 않는걸.

그러니 우선 아빠를 밀착 체크하는 거다.

“안젤리카 님, 그것만 드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응, 괜찮아.”

나는 평소처럼 접시에서 붉은 열매 한 움큼만 집어 든 뒤 음식을 물렸다. 그리고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열매나 한 알씩 먹으면서 아빠를 관찰할 생각이었다.

들키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금살금…….

“안젤리카, 거기서 뭐 하니?”

어째서인지 10분 만에 들켰다.

이상하다. 완벽하게 숨어 있었는데!

“어, 아빠, 안녕하세요. 그게…… 산책을 하려고요.”

“그럼 아빠랑 같이 산책하겠니?”

“그러고 싶지만……. 정말 그러고 싶지만, 저 급한 볼일이 생각나서요!”

“……안젤리카?”

감시 대상과는 안전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아빠에게 들키지 않고 관찰하는 노력 끝에 알아낸 아빠의 일과는 대체로 이랬다.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에 기상 및 조식.

내가 일어났을 때쯤에 내 방에 와서 예쁘게 머리카락을 묶어 준다.

이후 오전 내도록 일.

점심 식사 후에는 왕성을 한 바퀴 돌면서 고용인들의 사정을 살핀다.

“무슨 어려운 점은 없는가?”

“헉, 크로셀 님, 아닙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건의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게.”

“네, 네넵!”

이렇게 왕성 고용인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기도 했다. 이럴 수가, 정말 착해 보인다.

오후에도 대체로 일을 한다.

내게 간식을 주거나 나랑 놀아 줄 때도 있었다. 또는 왕성에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거나 바깥 시찰을 하기도 했다.

어쨌건 중요한 것은 아빠는 모두에게 상냥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저녁 식사를 한 다음, 내 방에 찾아와서 잘 자라고 인사한다. 그리고 방에서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쓴 뒤 밤늦게 취침한다.

“…….”

나는 정리한 결과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틈이 없어. 어떻게 이렇게 조금도 틈이 없을 수가 있지?!’

칼같이 흘러가는 일상은 물론이고, 외모도 그렇다.

내가 하루 중 언제 아빠를 밀착 감시하건 아빠는 한 점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이었다.

결 좋은 은빛 머리카락은 항시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아빠는 주로 하얀 옷을 입었는데, 몸에 꼭 맞게 차려입은 모습이 무척 잘 어울렸다.

“으음…….”

사람이 NPC도 아닌데 이럴 수가 있나?

사람은 다면적이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고 해도 한가할 때는 서류 귀퉁이에 낙서를 하고,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감정이 흐트러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아빠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었다.

‘아니야, 좌절하지 말자.’

조금 더 조사하면 분명 내가 놓치고 있던 아빠를 흑막으로 만들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다.

틈을 찾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아빠를 감시하려는데, 문득 아빠가 나를 불렀다. 왕성의 뒤뜰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였다.

“……안젤리카.”

“아빠, 안녕하세요!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그러나 결국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빠가 무척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으윽, 차마 저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쭈뼛거리며 아빠 옆으로 다가갔다. 아빠는 테라스에 놓인 의자에 나를 앉히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안젤리카, 요즘 표정이 어둡더구나.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네, 있어요. 아빠가 고민이에요, 아빠가!

이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얼른 감시하러 돌아가기로 했다.

“고민은 무슨, 그런 거 없어요! 그럼 저는 이만…….”

“그래……. 아빠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나 보구나.”

시무룩.

그 순간, 아빠는 마치 허구의 강아지 귀가 축 쳐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외면하기란 내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고민…… 고민이라.

으으, 빨리 생각해 내지 않으면, 내가 아빠를 싫어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오해를 살 것이 틀림없다.

아빠를 흑막으로 만드는 것 외의 고민이라면…….

아, 그거다!

“세…… 세계 평화요! 세계가 어떻게 하면 평화로워질까가 고민이에요!”

내가 고민을 말하자 아빠가 생긋 웃었다. 그러곤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우리 천사, 어려운 말도 잘 아는구나.”

“그래서요, 아빠, 세계가 평화로워지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생각해 봤는데요.”

“세계가 평화로워지려면, 이라.”

아빠와 나는 서로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퀴즈의 답을 맞히듯이 동시에 답을 말했다.

“다른 놈들이 개기지 못할 만큼 큰 힘이 있어야 해요!”

“진심으로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면 누구든 결국 마음을 열어 주겠지.”

“……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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