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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2)화 (13/133)

12화

나는 단지 틸라가 보고 싶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케나스는 자신의 요리가 맛이 없는 거라고 완전히 굳게 믿는 상태였다.

아빠를 밀착 관찰하기도 바쁜데 자꾸만 죽여 달라는 케나스를 상대하기가 귀찮아졌다.

나는 곧장 케나스를 쫓아내려다가 멈칫했다. 눈앞에 케나스의 상태창이 떴기 때문이다.

[이름 : 케나스

직위 : 수석 요리사(E)

레벨 : 6

특성 : 환상적인 손맛(E)]

‘호오.’

케나스에게는 제법 괜찮은 요리 관련 특성이 붙어 있었다.

즉 요리 실력은 확실한데, 멘탈이 약하고 자신감을 잃은 상태일 뿐인 거다.

촉이 왔다. 이대로 귀찮다고 쫓아내면 케나스는 자신의 요리가 맛이 없다고 굳게 믿을 테고, 결국 왕성 요리사 자리를 때려치울 가능성도 있다.

아빠를 흑막으로 만들 방법을 생각하기만도 바쁜데, 왕성 고용인의 멘탈 케어까지 해 줄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실력 있는 요리사라면 이야기는 별개지.

케나스는 아무리 음식이 맛있다고 말해도 믿지 않을 기색이다. 그러면 이 방법밖에 없나.

“그런데 있잖아. 배가 좀 고프네.”

“역시 열매 한 줌만으로는 부족하시죠?”

사라가 눈치 빠르게 맞장구를 쳤다.

“케나스, 식사를 준비해 줘. 뭐든 케나스가 자신 있는 걸로.”

“아, 네! 네, 얼른 준비해 오겠습니다.”

잠시 뒤, 케나스가 음식을 가져와서 테이블 위에 차려 주었다. 부드러운 빵에 크림을 넣어 부드럽게 끓인 스튜, 민트소스가 향긋한 고기 요리 등……. 전부 다 맛있어 보인다.

그래, 먹자.

내게는 아빠를 흑막으로 만든 뒤 왕국을 SSS급으로 발전시킨다는 중대한 목표가 있다. 목표를 이루는 그날까지 건강해야 하는데, 상심해서 식사량을 줄이는 것은 답이 아니다.

거기다 환상적인 손맛을 갖춘 인재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요리사를 그만두기라도 하면 어떡해. 이런 인재는 보호해야 한다.

옆에서 케나스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스튜를 한 숟갈 떠먹었다.

“맛있어……!”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 스튜는 정말 맛있었다. 특히 부드러운 크림과 안에 든 재료의 조화가 아주 끝내줬다.

“진짜, 엄청나게 맛있어. 이제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서 이 스튜가 제일 맛있어.”

나는 순도 100%의 진심을 담아서 스튜가 맛있다고 감탄했다. 케나스는 겨우 안도한 기색이었다.

“다행…… 다행입니다. 으허엉,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음식 남기지 않을 테니까, 죽여 달라느니 그런 말 하지 말고 또 만들어 줘.”

“물론입니다.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휴, 한 건 해결했군.

이렇게 실컷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 다음,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가 식사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던 사라가 물었다.

“안젤리카 님, 크로셀 님께 가시나요?”

“아니, 그 전에 가 볼 곳이 있어.”

“제가 모시겠습니다.”

“응, 그럼 식료품 창고로 가자.”

좋은 생각이 났다.

* * *

내 예상대로였다. 식료품 창고에는 꽃과 열매를 사용하고 잎과 뿌리만 남은 틸라가 잔뜩 쌓여 있었다. 아직 버려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 눈에는 저 틸라 뿌리가 이렇게 보였다.

‘무제한 돈 복사 버그!’

<마.왕.꾸> 내의 설정에 따르면 틸라 뿌리는 구우면 단맛이 강해진다. 어린애 주먹만 한 크기에 살짝 단단한 식감, 고소한 향에 진한 단맛……. 인기 없을 리가 없다. 틸라를 키워서 팔면 엄청나게 돈이 될 테다.

저주받은 땅 틸라리아 지역에서 나는 작물이라고 ‘틸라’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 틸라는 다른 지역에서도 기를 수 있다.

틸라는 마기에 오염된 땅에서 잘 자란다. 다만 틸라리아 지역이 엄청나게 오염되었기 때문에 주로 틸라리아에서 날 뿐이었다.

그리고 마기에 오염된 땅이라면 이곳 데네브 왕국에도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데네브 왕국에서라면 아무 데나 심어도 잘 자랄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틸라 뿌리를 먹기 꺼리면 어떡하냐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낯선 작물을 유행시키는 방법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다. 틸라 뿌리는 한 번만 먹어 보면 벗어나기 힘든 맛이니까, 시간은 걸리더라도 반드시 유행시킬 수 있다.

“……헉!”

“안젤리카 님, 왜 그러세요?”

“으,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머릿속으로 틸라 뿌리를 키워 마구 팔아 치울 계획을 세우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니, 이건 아니다. 허튼 생각 말자. 하마터면 건실한 계획을 세울 뻔했네.

확실히 돈을 버는 일은 중요하다. 자금력은 흑막의 기본 소양이니까.

아빠를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흑막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왕국의 재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건전한 농업과 성실한 노동으로 돈을 벌면 무슨 의미야. 그럼 그냥 건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잖아. 너무나도 흑막답지 않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흑막 엔딩.

돈을 벌되, 흑막답게 음험하고 어두운 방식으로 벌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한 가지 새로운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잎을 쓰자.’

틸라는 잎에도 독이 있었다. 뿌리와 달리 쉽게 제거할 수 없고, 흔적이 남지 않는 독이다.

틸라의 잎을 빻아서 물에 탄 다음, 아빠의 마력으로 마법적 처치를 하고 성분이 우러나올 때까지 숙성시키면 마비독을 만들 수 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아무리 덩치 큰 인간이라도 단번에 마비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독이다.

‘마비독을 만드는 데는 아빠의 마력이 필요해. 즉, 이 레시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빠 뿐. 암살자 길드에 비싸게 팔 수 있겠어.’

게다가 흔적이 남지 않는 마비독을 생산하는 왕국이라니, 멋지잖아. 엄청나게 흑막 같은 느낌!

‘좋아, 그럼 마비독 레시피부터 정리해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일단 식료품 창고에서 돌아 나오려는 그때였다.

“안젤리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니?”

오늘도 너무나도 다정하고 상냥하며 아름다운 아빠가 나를 보고 다가왔다.

“어, 아빠, 어쩐 일이세요?”

“우리 천사 모습이 보이길래 와 봤지.”

마침 잘됐다. 방금 내가 세운 끝내주는 계획을 말하면 아빠도 만족하겠지.

“실은 우리 왕국의 특산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멋진 왕국이라면 좋은 특산물이 있어야 하니까요!”

“어머, 안젤리카 님도 참…….”

“그런 생각을 다 하고, 정말 기특하구나.”

아빠가 온화하게 웃으면서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래서 제가 뭘 생각했냐면요.”

나는 빙그르르 몸을 돌리고 뿌리와 잎만 남은 틸라 더미로 다가갔다. 그리고 틸라 잎 한 주먹을 뜯어서 돌아왔다.

“이 잎이에요! 틸라 잎을 빻아서 가공하면 마비독을 만들 수 있…….”

휘익­!

그때,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니, 실내인데 무슨 바람이지? 마법인가?

그 바람에 손에 쥔 틸라 잎이 바람에 몽땅 날아가더니 갑자기 일어난 불에 홀라당 타 버렸다.

“안젤리카, 괜찮니?!”

“네? ……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눈만 끔뻑이는 나를 붙잡고 아빠가 진지한 투로 말했다.

“틸라 잎에 독이 있다니, 안젤리카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구나.”

“괜찮아요! 잎은 빻아서 숙성해야만 독성분이 나오거든요. 보세요.”

나는 아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틸라 잎 한 주먹을 뜯었지만.

휘익­!

또 바람에 날려 간 다음 흔적도 남기지 않고 타 버렸다. 뭐야. 아빠가 그런 거야?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빠는 단호한 투로 사라에게 지시했다.

“안 되겠군. 안젤리카가 잎을 만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사라, 시종들에게 잎을 모두 없애라고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아빠, 저는 괜찮은데요……?”

“혹시 뭐가 잘못되어서 안젤리카가 아프면 아빠 마음이 더 아프단다. 이제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빠의 눈빛을 보니, 지금 아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감이 왔다.

‘완전 그거네.’

사랑받기 위해서는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안쓰러운 육아물 주인공! 몸이 다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돌보지 않는 그런 아이 말야.

아니, 진짜 안전하다니깐? 나는 그냥 흑막스러운 아이템을 팔아 흑막 왕국을 만들려는 것뿐인데. 아무리 그래도 과보호 너무 심하지 않나?

‘흥, 밖에 나가서 뜯어 오면 된다, 뭐.’

데네브 왕국의 땅은 온통 마기에 오염되어 있다. 그러니 잘 뒤지면 야생 틸라 한두 뿌리는 찾을 수 있겠지.

그러나…….

“아, 사라, 하나 더. 병사들에게 전하게. 오늘 바깥을 살피면서 야생 틸라의 잎을 전부 없애라고.”

“네, 알겠습니다.”

“…….”

내 계획을 완벽하게 저지한 아빠가 나를 꼭 안았다 놓으며 말했다.

“안젤리카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구나. 앞으로도 틸라 잎은 만지지 말렴. 응?”

“그게…….”

이럴 수가. 아빠가 서글프게 눈물짓는 표정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그 앞에서 내가 고개를 젓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절대 안 만질게요.”

“그래, 착하다.”

다시금 틸라 잎이 완전히 없어졌는지 확인한 뒤에야 아빠는 자리를 떴다.

나는 잎이 모두 뜯긴 채 덩그러니 남아 있는 틸라 뿌리를 바라보았다.

‘에휴, 결국 이 방법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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