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 *
나는 케나스에게 틸라 뿌리의 윗동을 자른 뒤 구워 달라고 요청했다.
10분 정도만 구우면 충분하다. 그래서 굽는 시간보다, 죽여 달라고 말하는 케나스를 진정시키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런데 안젤리카 님, 이 틸라 뿌리 설마 드실 건 아니시죠……?”
내 닦달에 못 이겨 접시에 틸라를 멋지게 플레이팅까지 해서 가져온 케나스가 내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응? 당연히 먹을 건데?”
“아, 아, 안 됩니다……!”
황급히 케나스가 접시를 뒤로 물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더 빨랐다. 같은 수법에 두 번이나 당할 수는 없지.
나는 케나스를 피하며 잘 구워진 틸라를 집어 반으로 갈랐다. 고소한 냄새가 확 풍겨 나온다. 속이 샛노란 것이 잘 익어 있었다.
그리고 틸라를 입에 넣으려 했는데.
“차라리 제가 먹겠습니다!”
케나스가 졸도하기 직전의 표정으로 읍소했다.
“안젤리카 님, 저한테 주세요.”
사라 역시 자신이 틸라를 먹겠다고 말했다.
“그럼 그럴래?”
나는 두 사람에게 반으로 가른 틸라를 한 쪽씩 건넸다. 두 사람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잘 익은 틸라를 입에 넣었다.
“……이럴 수가.”
“어머…….”
의심과 긴장이 감탄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틸라의 맛을 음미했다.
두 사람의 반응을 확인한 뒤, 나 역시 새로운 틸라를 집어 입에 넣었다.
살짝 단단한 속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허물어졌다. 달콤하고 풍미가 있어서 몇 개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금방 하나를 다 먹은 다음 케나스와 사라를 보았다.
“하나 더 먹을래?”
그럼 그렇지.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할 만큼 틸라를 맛본 다음, 나는 틸라의 조리법을 알려 주었다.
“여기서 여기까지. 윗동을 자르고 불에 10분 이상 구우면 독이 없어져.”
내 이야기를 들은 케나스와 사라는 깜짝 놀랐다. 내가 말한 방법이 너무나도 간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케나스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간단한 방법을 왜 아무도 몰랐을까요.”
“어차피 주로 틸라리아에서만 나니까 그렇겠지. 모험가가 아니면 구하기 힘드니까.”
“아하, 그렇죠. 저희 왕성도 예전에 어느 모험가에게 구입한 물량뿐입니다.”
그때 사라가 살짝 웃으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크로셀 님이 지시하셔서 안젤리카 님 식탁에만 장식으로 사용했답니다.”
사라는 그만큼 아빠가 내게 신경 썼다는 뜻으로 말한 것 같지만, 아니, 잠깐.
모험가한테서 틸라를 샀다고?
겨우 내가 밥 먹을 때 장식으로 쓰기 위해?
나야 틸라 뿌리의 용도를 알고 있지만, 이제까지 그냥 창고에 짐짝처럼 쌓여 있었잖아. 왕국이 어려운데 무슨 테이블 장식 따윌 사?
‘……그래, 그렇구나.’
그러니까 우리 왕국 현재 잔고가 3 골드구나…….
아이고, 골치야.
나는 애써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을 지워 내고 본론을 꺼냈다.
“왕성에 여기 있는 틸라 뿌리를 심어서 틸라를 키우면 좋겠어.”
“어머,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주식(主食)으로 쓸 수도 있고, 왕국의 특산물이 될 수도 있겠어요. 어쩜 이렇게 영특하신지.”
사라는 박수를 짝 치며 감탄하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틸라는 틸라리아 지역에서만 나지 않나요? 왕성에 심는다고 뿌리를 내릴지…….”
“응? 그건 괜찮아. 틸라는 마기에 오염된 땅이면 잘 자라거든.”
“아아…….”
사라가 살짝 어두워진 얼굴로 수긍했다. 데네브 왕국이 오염으로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럼 제가 재배 방법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케나스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나는 그를 뜯어말렸다. 이 일은 내가 직접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니야. 남은 틸라 뿌리는 내가 가져갈 테니까 절대 참견하지 말도록 해.”
“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는 법. 나는 준비를 마치고 곧장 왕성 뒤뜰로 향했다.
왕성 뒤뜰에 밭을 만들고 싶다고 하자, 아빠는 뜻밖에 쉬이 허락해 주었다. 어차피 뒤뜰이 텅 비었으니 상관없다나.
‘뭐, 조건이 하나 붙긴 했지만.’
아빠의 말대로 뒤뜰은 정원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휑한 공터였다. 마기에 오염된 흙은 검다. 그 삭막한 풍경을 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진짜 이 방법밖에 없나……?”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이 될 예정인) 크로셀 데네브를 바로 곁에 두고 흙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다니,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흑막이 되기만 하면 이렇게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나 정성 들여 쓴 <데네브 왕국 발전을 위한 제안서>는 전부 까였고, 지금 당장 틸라 잎으로 마비독을 만들 수도 없으니 도리가 없다.
“에잇!”
나는 손에 호미를 움켜쥐고 힘차게 흙바닥을 내리찍었다.
퍽!
어차피 마기에 물들어 아무 데도 못 쓰는 땅이다. 여기에 밭을 만들어 틸라를 재배해야겠다.
시작은 작은 텃밭이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밭에서 틸라가 나면, 그걸 다시 심어서 밭을 넓히는 거다. 수확량이 충분해지면, 왕국민들에게도 나눠 줘서 틸라를 키우게 해야지.
그다음은, ‘그 사람’을 찾아서 전 대륙에 틸라를 유행시킬 생각이다.
후후후, 그렇게만 되면 왕창 한 몫 잡을 수 있겠지.
정말 멋진 계획이야!
‘힘내자, 흙막 생활……!’
그러나 약 10분 뒤.
“헉, 허억……. 힘들어…….”
[HP가 1 감소합니다. 현재 HP : 1/10]
체력의 한계에 패배했다.
[※ 원 포인트 레슨 : 이대로 과격한 활동을 계속할 시 정신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세요.]
상태창이 빨간색으로 빛나며 경고 메시지를 띄웠다. 그러잖아도 손가락 하나 꿈쩍하기 힘들 정도로 지쳤다.
눈앞의 흙은 딱 다섯 발짝 거리만큼 파헤쳐진 상태였다. 나는 지금 열 살짜리라 몸이 작다.
즉, 아주 조금밖에 파헤쳐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바닥에 호미를 내려놓았다.
“후우……. 하아…….”
케나스나 다른 시종에게 텃밭 만들기를 시키지 않고 내가 직접 호미를 쥔 이유는 바로 경험치 때문이었다. 이참에 경험치를 벌어서 레벨 업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10분 만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HP 10짜리 몸으로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이 상태면 밭을 만드는 데만 며칠이 걸리겠다.
‘왕국 포인트라도 있었으면 능력치를 올릴 수 있을 텐데…….’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에서는 골드와 왕국 포인트, 이 두 가지 재화가 사용된다.
골드야 말 그대로 돈이다.
그리고 왕국 포인트는 레벨을 올리거나 특성을 얻는 등, 주로 캐릭터를 강화하는 데 쓰이는 희소한 재화다.
이 왕국 포인트는 얻는 방법이 특이했다. 왕국에 있는 캐릭터가 강렬한 감정을 느끼면, 그 감정이 포인트로 변환되어 저장되는 것이다.
흑막 플레이를 할 때 크로셀이 주위를 공포에 빠뜨린 이유도 바로 포인트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겁에 질리고 흑막을 무서워할수록 포인트가 들어와 더 강해지니까.
흑막다운 사악한 행동을 한다. →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 왕국 포인트를 얻는다. → 캐릭터가 강해진다. → 왕국을 발전시킨다. → 다시 사악한 행동을 한다.
이것이 흑막 플레이의 기본 사이클이다. 즉, 흑막의 사악하고 음산한 행동에는 실리적인 이유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아빠는 너무도 선량하고 상냥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주위를 공포에 떨게 만들어 포인트를 벌기는 불가능하니, 착실하게 경험치를 쌓아 레벨 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계산을 해 보니, 딱 천 번만 호미질을 하면 레벨 2가 될 수 있겠다.
‘에휴…….’
잠시 앉아서 쉬자 HP가 전부 회복되었다는 상태창이 떴다. 나는 다시 호미를 움켜쥐었다.
천 번을 휘둘러야 레벨 2가 된다. 속으로 자기 계발서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호미를 휘두르려는 그때였다.
“……안젤리카 님!”
요리사 케나스가 황급히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대뜸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케나스, 일어나. 누가 보면 내가 맨날 케나스를 무릎 꿇리는 줄 알겠어.”
“죽여 주십시오!”
“아니, 또 왜?!”
진짜 흑막한테도 아니고 나한테 왜 그래? 뭘 자꾸 죽여 달라는 건데?!
“제가 하겠습니다. 제게 그 호미를 주십시오.”
“됐어, 내가 할 테니까 부엌으로 돌아가.”
천 번을 휘둘러야 레벨 2가 된다. 귀중한 레벨 업 타이밍을 남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그 죽여 달라는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돼?”
이런 대화가 몇 번 오갔고, 나는 죽여 달라며 매달리는 케나스를 상대하기 귀찮아졌다.
해가 지기 전까지 HP 10짜리 몸을 회복해 가면서 천 번 호미질을 하려면 바쁘단 말야.
하아, 결국 이 수밖에 없나.
나는 팔짱을 끼고 비딱하게 섰다. 그리고 최강이자 최악인 흑막의 외동딸다운 음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케나스, 너는 내 식사 담당이야. 요리만 잘하면 되지, 호미질을 할 필요는 없어. 이건 이 몸이 직접 할 테니 너는 절대 손대지 마!”
“안젤리카 님……!”
아무리 내가 왕녀라지만 다소 재수 없게 들리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왜인지 케나스는 내 말에 감동한 것 같았다. 이런 알림이 뜬 것을 보면 말이다.
[<이벤트> ‘수석 요리사’ 케나스가 크게 감동합니다.
200 왕국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