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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27)화 (28/133)

27화

“죄송합니다! 폐장을 멈춰 주세요. 워낙 희귀한 물건이라 심사에 시간이 걸려서 늦었습니다.”

막 단상에서 내려가려던 진행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톰슨 씨, 무슨 일입니까?”

“오늘 추가로 출품된 물건입니다.”

“네? 그런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 들었는데? 예정에 없던 경매는 곤란합니다.”

“보시면 마음이 달라지실 겁니다. 자, 출품자 님, 단상 위로 올라가세요.”

“네……. 친절하시군요……. 감사합니다…….”

이 기운 빠지는 목소리는, 설마.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작은 상자를 품에 안고 나타난 로디가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경매의 진행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로디를 훑어보고는, 살짝 심기가 상한 투로 말했다.

“흐음, 얼마나 놀라운 물건을 준비했길래 마지막에 경매장에 난입했는지 궁금하군요.”

“난입하려던 건…… 아닌데요…….”

“자, 됐으니까 얼른 보여 주세요. 이렇게 나타나셨으니 어지간한 물건이 아니면 손님들이 실망할 겁니다.”

“네, 뭐……. 그럼 공개하겠습니다…….”

어마어마한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기운 빠지는 목소리였다.

로디는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상자를 열었다. 더욱더 참가자들의 주의를 끄는 훌륭한 쇼맨십이었다. 그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상자 안에는 어째 허접한 느낌의 고슴도치 조각이 들어 있었다. 돌을 깎아 만들었는지 잿빛이었고, 뾰족한 가시 부분은 몇 개가 부러져 있었다.

솔직히 외견만 봐서는 ‘애걔?’ 싶은 물건이다. 그러나 진행자의 반응은 무척 격렬했다.

“서, 서, 서, 설마, 이건?!”

“네……. 생각하시는 물건이 맞습니다. 진품인지 검증에 시간이 걸려서 늦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진행자가 감격하며 외쳤다.

“나…… 나왔습니다. 3년 만에 드디어 사달멜리크 경매장에 고대 유물이, 유물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성스럽고 위대한 고슴도치 신상입니다!”

“와아아!”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한 열기가 경매장 안을 꽉 채웠다.

이러한 반응은 당연하다.

고대 유물은 모두 귀하고 비싼데, 그중에서도 특히 상급이 바로 이 A급 성스럽고 위대한 고슴도치 신상이었으니까.

<마.왕.꾸> 세계관에서 고대 왕국은 고슴도치 신을 숭배했다고 전해진다. 고대 왕국은 오래전에 멸망했지만, 이 신앙의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고슴도치 신을 본떠 만든 신상은 성스러운 힘이 깃들어 있다고 하여 아주 가치가 높은 유물이었다.

왜 하필 고슴도치인지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제작사 취향이었나?’

“잘되었구나, 안젤리카.”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기뻐요!”

흥분으로 달아오른 경매장. 진행자가 들뜬 목소리로 선언했다.

“입찰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고슴도치 조각은 엄청난 입찰 경쟁 끝에 어마어마한 고액으로 낙찰되었다. 곧바로 시상한 이 달의 우수상도 당연히 로디 몫이었다.

“우와아아!”

희귀한 신상 덕분에 잔뜩 흥분한 관중들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아, 정확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딱 한 명만 빼고.

“이이익, 말도 안 돼!”

“네에……?”

“로디, 네 녀석이 어떻게 그런 귀한 물건을!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삼류 악당이 삼류 악당 같은 말을 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그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패트릭은 계속 난동을 피우다가 직원에게 붙잡혀 질질 끌려 나갔다.

“으아아악! 이거 놔!”

로디가 소원권을 사용하면 그대로 조사를 받게 되겠지.

‘이 달의 우수상’ 상패를 든 로디는 끌려 나가는 패트릭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아빠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정리하고 찾아뵐게요…….”

삼류 악당 따위는 며칠이면 정리할 수 있다는, 힘없는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만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기분은, 한 마디로…….

고강도 탄산이 입 안에서 터지는 듯한 짜릿함이었다.

* * *

“자, 한 줄로 서. 한 사람당 한 자루씩이야.”

오늘 나는, 왕국민들에게 틸라를 나누어 주기 위해 왕성 앞의 마을에 나와 있었다.

멋진 SSS급 흑막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왕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 또한 무척 중요했다.

틸라는 마기에 물든 땅이라면 어디에서든 잘 자란다. 그러니 나는 왕국민들에게 틸라 모종을 배포해 재배하게 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니키가 엄청난 속도로 틸라를 키워 낸 덕에, 이제 한 사람당 한 자루씩 나누어 주고도 충분한 양이 있었다.

“으악, 아뜨뜨뜨! 흐, 흐아!”

“니키,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라니깐.”

“그치만 맛있잖아. 안젤리카 님도 먹어!”

“아, 이제 다 구워졌습니다. 이쪽 건 드셔도 됩니다.”

“……고마워.”

옆에는 케나스와 니키가 함께였다.

내 이 ‘틸라 배포 계획’은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틸라에 독이 있다고 알려진 탓에, 왕국민들이 받아 가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대뜸 독이 있는 풀을 나눠 주는데 당황스럽긴 하겠지.

그래서 케나스와 니키를 동원해서 틸라 먹는 법을 시연하기로 했다.

시연이라고 해도 대단한 일은 아니고, 케나스가 틸라를 굽고, 니키가 틸라를 맛있게 먹고, 내가 틸라를 나누어 주는 것이 전부다.

‘가만, 이러면 결국 니키만 좋은 거 아냐?’

나는 니키를 쳐다보았다. 왕성의 농사 담당자가 된 이후로 잘 먹어서 피부는 반질반질했고 당근색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흘렀다.

니키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틸라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누구라도 저 모습을 보면 이 틸라라는 것이 엄청나게 맛있나 보다 하고 생각할 터였다.

뭐, 그러면 어쩔 수 없나.

내가 부른다는 말에 일단 나와서 줄을 선 왕국민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느닷없는 캠핑에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곧 틸라의 달콤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고, 뜨겁다며 비명을 지르면서도 맛있게 먹는 니키의 모습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저게 대체 뭐지?”

“왕녀님이 나눠 주는 풀이 저거 아냐?”

“왕녀님, 이 풀을 키우면 저 애가 먹는 저 음식을 먹을 수 있나요?”

“맞아. 틸라는 마기에 오염된 땅에서 잘 자라. 뿌리를 먹을 때는 윗동을 자르고 10분 이상 불에 구워야 해!”

효과는 확실했다. 왕국민들은 서둘러 내 앞으로 길게 줄을 섰다. 준비한 틸라가 동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벤트> 데네브 왕국 ‘왕국민’들의 지지율이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500 왕국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후후, 틸라를 배포한 김에 포인트까지 얻어서 좋구나.

‘그나저나 슬슬 올 때가 됐는데…….’

[※ 원 포인트 레슨 : 왕국이 찢어지게 가난합니다. 이 상태가 지속될 시, 12일 뒤에 파산합니다.]

나는 상태창의 남은 숫자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사달멜리크 경매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벌써 시간이 제법 흘렀다.

로디는 삼류 악당을 처리하고 상회를 정상화한 뒤에 계약을 맺으러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도통 소식이 없었다.

‘튄 건 아니겠지?’

경매 우승 특전으로 소원권을 얻었다고 하나 상황을 완전히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치만 슬슬 연락이 오면 좋겠는데. 나만 초조하고 아빠는 여유로워 보인단 말이지.

그때 길 저편에서 나타난 마차가 마을을 지나 왕성 쪽을 향해 달려갔다. 찰나였지만 마차의 창문으로 갈색 꽁지머리가 보인 것 같았다.

왔구나!

“케나스, 니키, 나 먼저 돌아갈게.”

“어, 안젤리카 님?!”

“창고에 빼 놓은 틸라 다 나눠 주고 와!”

나는 케나스, 니키와 헤어져 얼른 왕성으로 돌아갔다.

“안젤리카 님, 일찍 돌아오셨군요. 잘 다녀오셨나요?”

“응, 나 왔어.”

사라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를 실내용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외출을 다녀오셨으니 피곤하시겠어요. 간식을 준비해 드릴까요?”

“으음……. 아니야. 나중에 먹을래. 그보다 아빠는 어디 계셔?”

“크로셀 님은 손님이 찾아와서 대화 중이세요.”

“그렇구나. 누구인데?”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가 문을 열고 나가더니 잠시 뒤 돌아와서 말했다.

“안젤리카 님, 오늘 왕성에 방문한 로디라는 상인이 안젤리카 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역시 아까 그 마차는 로디 실로프가 탄 것이 맞았구나. 나는 로디를 내 방에 딸린 응접실로 안내해 달라고 말했다.

잠시 뒤, 로디가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응접실 안으로 들어오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왕녀님, 오랜만이군요…….”

“오랜만이야. 너무 안 와서 튄 줄 알았어.”

“저를 어떻게 보시는 건가요…….”

나는 제일 먼저 로디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이름 : 로디 실로프

직위 : 실로프 상회의 주인(B)

소속 : 실로프 상회

특성 : 반짝이는 상재(A)]

‘상태 이상 : 의욕 없음’ 항목이 사라지고 ‘반짝이는 상재(A)’ 특성이 제대로 떴다.

나는 상태 이상이 낫고 나면 로디가 좀 더 상인다워질 줄 알았다. 유들유들하고 입담 좋은 그런 성격 있잖아. 그런데 상회도 재건했고 상태 이상이 나았는데도 힘없는 말투와 나른한 모습은 변함이 없다.

‘원래 성격이 이런가 보다…….’

로디는 자리에 앉기 전,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실한 복숭아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약소하지만 선물로 가져왔어요. 필리아 과수원의 복숭아인데, 새로 딴 것이니 맛있을 거예요…….”

“어머, 정말 맛있어 보이는 복숭아네요. 안젤리카 님, 바로 깎아서 내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응, 고마워, 사라.”

달칵.

복숭아를 들고 사라가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사라의 발소리가 점차 멀어지더니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로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늦은 건 미안해요……. 패트릭 일을 수사하면서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헤에, 그랬구나. 그거 큰일이었겠네.”

나는 말없이 차를 마시는 로디에게 물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무슨 일이야? 상회와 계약 문제라면 아빠랑 이야기했을 거 아니야?”

“아쉬운데요. 우리 사이에…….”

로디가 정말 아쉽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방금 크로셀 님과 계약 절차를 마무리했답니다……. 그런데 틸라의 구입 가격에 대해서는, 왕녀님의 의견을 들어 보라고 하셔서요.”

[왕국 종합 평가 ‘소박한 왕국(E)’ 달성 조건 중 ‘상회와 계약하기’를 달성했습니다.]

조금 전 이런 상태창이 떴기 때문에 로디의 상회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럼 가격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찾아온 거야?”

“그와 별개로 나는 왕녀님에게 흥미가 있어요.”

“나? 왜?”

로디는 여전히 특유의 나른한 표정을 하고, 건조한 눈빛으로 물었다.

“왕녀님은 대체 누구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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