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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35)화 (36/133)

35화

“왜 그래? 저기, 괜찮아?”

“어흑……. 감사합니다.”

“어, 엉?”

경비병이 소매로 축축한 눈가를 훔치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소심한 데다 존재감이 없어서, 같이 경비를 서는 동료들조차 제가 있단 걸 잊어버릴 때가 많았거든요. 제가 있는데도 눈치 못 채고 문을 잠그기도 하고, 저만 빼고 밥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이상하게 눈에 안 띄는 인상이기는 한데, 그렇게까지?

“동료들한테 먼저 말을 걸어 보는 건?”

“어, 어어, 어떻게 먼저 말을 걸 수가 있겠어요?!”

“……안 돼?”

“먼저 말을 걸려면 사흘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차피 제가 말을 걸어도 못 듣는 사람이 많고…….”

“그렇구나…….”

“그런데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역시 안젤리카 님……!”

경비병도 고민이 많네. 나는 존재감이 없다는 점을 고민하는 경비병을 위로할 겸 물었다.

“여태까지 이름도 몰랐네. 이름이 뭐야?”

“저는 트리스탄이라고 합니다.”

“그래, 트리스탄, 앞으로 꼭 알아볼 테니까 기운 내고…… 아!”

그때, 복도 반대쪽에서 오는 사라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트리스탄에게 손을 흔든 뒤 사라에게 달려갔다.

“사라, 찾고 있었어.”

“어머, 안젤리카 님, 복도를 뛰어다니시면 안 돼요. 넘어지세요.”

“응, 이제 안 뛰어다닐게! 그보다 나 부탁이 있는데.”

사라는 상냥하게 웃으며, 그러나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그 부탁이 개구멍으로 몰래 마을에 나가고 싶으시다는 거면 안 돼요.”

이상하다. 말 안 했는데 개구멍으로 나간 건 어떻게 알았지. 늘 다정하고 상냥한 시녀지만 이럴 때는 조금 무섭다.

그녀의 기세에 눌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젤리카 님, 시키실 일은 무엇인가요?”

“아, 응. 아빠한테 가려고 하는데. 사라, 같이 가 줘.”

예상하지 못한 부탁이었는지 사라가 눈을 접으며 생긋 웃었다.

“후후, 안젤리카 님은 크로셀 님을 참 좋아하시는군요.”

“응. 당연하지, 아빠니까.”

“어머…….”

그리고 곧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이 될 거니까.

이 아이템으로!

“크로셀 님은 집무실에 계실 거예요. 그럼 저랑 같이 가실까요?”

“응!”

사라는 내 손을 잡고 아빠의 집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복도의 중간쯤에서 사라에게 물었다.

“있지. 사라, 화장할 줄 알아?”

“네, 그야 물론이지요.”

유감스럽게도 나는 전생에서 화장을 지지리도 못했다. 하물며 지금은 악력이 약해 붓을 섬세하게 움직이기도 힘들 테다.

아빠의 완벽한 얼굴을 내 서툰 솜씨로 망칠 수는 없다. 그러니 프로 시녀인 사라에게 부탁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사라는 내가 품에 꼭 안고 있는 메이크업 도구를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

“안젤리카 님, 화장이 해 보고 싶으세요? 하지만 색조 화장은 안젤리카 님의 피부에는 너무 자극적이에요. 그 안료 대신 제가 나중에 향기가 좋은 장미수를 발라 드릴게요.”

“으응, 내가 화장하려는 거 아니야. 대신 사라가 누굴 화장해 줬으면 좋겠어.”

“안젤리카 님이 아니면 누구에게 말씀이세요?”

그때 마침 우리는 아빠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 노크를 하자 곧 들어오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저 왔어요.”

“그래, 우리 천사 왔구나. 어서 오렴.”

오늘도 크로셀 데네브는 무척 착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도 지금뿐이다.

“아빠, 지금 시간 있으세요?”

“그럼. 안젤리카가 왔는데 당연히 시간 있지.”

“오늘은 아빠의 외모를 꾸며 드리려 해요!”

내 말을 들은 사라가 크게 당황했다.

“설마, 안젤리카 님, 아까 하신 부탁이란 게, 크로셀 님에게 하는 건가요……?”

“사라, 잘 부탁해!”

그리고 잠시 뒤.

“어…… 어떠세요?”

사라의 눈이 크게 떨렸다.

* * *

내 계획은 완벽했다고 자평한다.

먼저, 아빠에게 이 프로듀싱의 목적과 의의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아빠, 오늘은 아빠의 이미지 체인지 프로듀싱을 했으면 해요.”

“이미지 체인지……? 그게 뭐니?”

나는 팔짱을 끼고 선 채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지금 아빠의 모습엔 문제가…….”

“……응?”

아빠가 엷은 웃음을 띤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은 사르르 흔들렸고, 눈은 보석을 박아 넣은 듯했다.

원래라면 여기서, 아빠의 모습엔 큰 문제가 있으니 이미지 체인지 프로듀싱을 통해 고쳐 보자고 약을 팔아야 하는데.

나도 양심이 있지. 사실과 영 딴판인 말은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살짝 헛기침을 한 뒤 말을 바꿨다.

“문제가…… 없지만! 지금도 너무 멋지지만!”

“하하하. 그렇게 봐 주니 고맙구나, 안젤리카.”

“그, 그래도 이미지 체인지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안젤리카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아빠는 뭐든 좋단다.”

“네, 저만 믿으세요!”

후후후, 좋아. 내 설득력 있는 연설에 아빠가 넘어왔군.

다음으로, 프로 시녀인 사라에게 실행을 맡겼다.

“사라, 부탁할게. 아, 꼭 이 색을 써서 꾸며 줘.”

사라는 당혹스러워 하는 얼굴로 나와 아빠를 번갈아 보았다.

“이 검은색 안료 말씀이세요?”

“응. 사악하고 음산해 보이게! 흑막답게 멋진 모습으로 해 줘. 사라만 믿을게.”

“어머. 안젤리카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최대한 실력을 발휘해 볼게요.”

사라가 붓에 검은색 안료를 바르며 의욕을 불태웠다.

이렇게 완벽한 프로듀싱 과정이었는데.

잠시 뒤.

“어…… 어떠세요?”

손에서 붓을 놓는 사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어떻게 완성됐을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빠의 모습을 보았다.

“……!”

그리고 놀랐다.

“이럴 수가…….”

“죄송해요. 안젤리카 님, 이게 제 한계인가 봐요.”

“아니야! 사라는 잘했어. 정말로. 하지만 이건…….”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밝히자면, 사라의 메이크업은 완벽했다. 그녀는 정말 섬세한 손놀림으로 아빠의 외모를 멋지게 꾸며 주었다.

이마를 덮는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빗어 넘겨 시원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냈다.

그리고 눈두덩이에 검은색 안료를 엷게 발라 깊어 보이게 하고, 섬세한 눈매를 강조했다. 음산함과 퇴폐미를 부각하는 훌륭한 꾸밈이었다.

그런데 안 어울렸다.

흑막다운 음산하고 퇴폐적인 메이크업과 아빠.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요소를 한데 모아 둔 듯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얀 도화지 같은 아빠의 얼굴 위에서 흑막스러움과 선량함이 첨예한 대립을 이루다가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맞이한 것 같달까.

방에서 챙겨 온 흑막의 국룰 복장인 검은색 망토도 걸쳐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까지 안 어울릴 수가 있다니.

“하하……. 이상하니?”

나와 사라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아빠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 표정에서는 일말의 어둠도 느껴지지 않았다.

즉, 효과도 없었다.

내면의 어둠을 이끌어 내 준다며! 어둠 어디 갔어?!

이래서는 그냥 안 어울리게 꾸민 사람이잖아!

“아, 아니요! 안 이상해요. 진짜 안 이상한데, 그냥…….”

“그냥?”

나는 사라에게서 젖은 천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아빠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 주면서 말했다.

“그냥, 아하하……. 아빠, 저는 원래의 아빠 모습이 더 좋아요!”

원래대로 돌아온 아빠의 얼굴을 보자 겨우 안심이 되었다. 그래, 이 모습이 제일 낫다.

역시 이 아이템, 불량품 아닌가? 로디가 악성 재고였다고 말하기도 했고.

‘으음, 다른 사람한테 테스트를 한번 해 보고 싶은데…….’

누구 없나?

“아!”

“안젤리카 님, 어디를 가시나요?”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나는 문을 열고 복도 저편의 경비병을 불렀다.

“트리스탄, 잠깐 이쪽으로 와 볼래?”

“네? 헉, 저를 잊지 않고 불러 주시다니, 어흐흑……. 무슨 일이십니까?”

트리스탄을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빈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빠바바밤! 축하해, 트리스탄.”

나는 짝, 짝, 짝 박수를 쳤다. 트리스탄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트리스탄은 진실된 내면의 메이크업 도구 테스터에 당첨되었습니다! 지금 참가하면 이미지 체인지 프로듀싱이 100% 무료!”

“이, 이미지 체인지요? 그게 뭡니까?”

나와 아빠, 사라에게 둘러싸인 트리스탄이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 불려 와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트리스탄, 만약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어?”

“네? 그건. 저기.”

“후후후, 이건 흔치 않은 기회야. 지금을 놓치면 다음은 없어. 100% 무료 이벤트 남은 시간 5, 4, 3…….”

내가 수를 세자 트리스탄이 급히 외쳤다.

“저, 그, 그럼 소심하지 않고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좋아, 접수했어.”

나는 사라에게 눈짓했다. 내 뜻을 읽은 사라가 붓을 들고 트리스탄에게 다가섰다.

“트리스탄 씨, 눈을 감아 보세요.”

“네, 넵!”

트리스탄이 긴장한 표정으로 눈을 꼭 눌러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다 됐어요. 트리스탄 씨, 눈을 뜨세요.”

“……!”

트리스탄의 외모가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얼굴의 흐릿한 부분을 살짝 강조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선이 간다고 할까.

그리고 트리스탄은…….

“크하하핫! 크로셀 님, 안젤리카 님, 안녕하심까! 저, 철벽의 왕성 경비병 트리스탄 인사 올림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허리에 찬 검을 멋지게 들어 올리며 크게 절을 했다. 아빠는 그의 기세에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트리스탄, 반갑네.”

“음하하! 이 데네브 왕성은 제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너무 효과가 좋았다. 트리스탄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젖은 천으로 트리스탄의 얼굴을 닦아 내 보았다.

“허, 헉?!”

그러자 트리스탄은 자신이 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사시나무처럼 몸을 떠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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