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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36)화 (37/133)

36화

“어, 어어, 이게 어…… 어떻게 된 일이죠. 제, 제가 무슨 짓을.”

“사라, 한 번만 더 시험해 보자.”

“네. 트리스탄 씨, 눈을 감으세요.”

사라가 다시 메이크업 도구로 트리스탄의 얼굴에 안료를 발랐다.

“으하핫! 이런, 이제 정문을 경비하러 갈 시간이군요. 크로셀 님, 안젤리카 님, 저만 믿으십쇼!”

나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트리스탄을 붙잡았다. 그리고 ‘진실된 내면의 메이크업 도구’를 그에게 내밀었다.

“트리스탄, 이거 가질래? 나한테는 이제 필요 없거든…….”

“오오옷! 이렇게 귀한 물건을 제게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간직하겠슴다!”

소심한 성격과 존재감 없는 모습이 고민이라고 했었는데, 해결됐으니 다행이지만…….

무슨 오해를 한 건지, 아빠는 살짝 감동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안젤리카는 참 다정하구나. 간식 먹겠니? 레몬케이크가 있단다.”

“네, 좋아요…….”

정작 우리 아빠한테는 효과가 없다니.

결국 이 계획은 실패다, 흑.

* * *

“……실패했잖아!”

나는 왕성 로비로 들어오는 로디를 발견하자마자 후다닥 달려갔다.

마음 같아서는 목이라도 붙잡고 짤짤 흔들고 싶었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대신 나는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된다며! 내면의 어둠을 일깨울 수 있다며!”

한 박자 늦게 내 말뜻을 알아들은 로디가 느리게 눈을 깜빡거렸다.

“아. 그 메이크업 도구 말씀이시군요…….”

“그래! 전혀 효과가 없었어. 거기다 아빠한테 안 어울렸다고.”

로디는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설명을 하는 도중에 먼저 가 버리셨잖아요…….”

“아무튼! 왜 아빠한테는 효과가 없는 거야?”

“그 아이템의 효과는 내면에 잠재된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에요……. 없는 것을 일깨울 수는 없답니다.”

“그럴 수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럼 우리 아빠의 내면에는 어둠이 0%라는 뜻?

앞으로 뭘 하건 아빠가 흑막이 될 가능성은 제로?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마.왕.꾸>의 크로셀 데네브를 생각해. 이미 나는 끝내주는 흑막 플레이를 해 봤어. <마.왕.꾸>의 슈퍼 플레이어인 내가 실패할 리가 없다고.’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차가운 현실을 외면했다.

“안젤리카 님, 그 메이크업 도구 때문에 오신 건가요……?”

로디의 그 말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충격이 너무 큰 바람에 중요한 용건을 깜빡할 뻔했군.

“아. 그건 아니고. 로디한테 주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주문이요?”

“응.”

나는 로디와 함께 응접실로 갔다. 그리고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데네브 왕국 종합 정보>

자금 : 4200 골드

왕국 포인트 : 2500

호화도 : 10

종합 평가 : 소박한 왕국(E)

설비 : 낡고 좁은 왕성(F), 조그마한 텃밭(F)

칭호 : 없음]

다음 퀘스트는 왕국의 호화도를 200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다.

호화도는 새로운 설비를 짓거나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면 올릴 수 있었다.

퀘스트 달성만이 목표라면 금방 끝낼 수 있다. 그동안 틸라를 판 돈과 왕국 포인트가 꽤 쌓였다. 그러니 모아 둔 골드와 포인트를 투자해서 설비를 지으면 된다.

그러나 한정된 재화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 슈퍼 플레이어의 방식.

마구잡이로 퀘스트만 달성했다가, 멋진 흑막 왕국이 될 예정인 데네브 왕국을 노잼 왕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할 수는 없다.

(1) 왕국에 방문하고 불만족하는 모험가들.

(2) 여전히 흑막력 0%인 다정하고 상냥한 아빠.

(3) 평화롭고 한적한 데네브 왕국.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는 좋은 방법을 찾으려 퀘스트 달성을 미루고 있었다.

‘역시 고대 던전을 여는 수밖에 없나.’

내가 생각한 이 방법대로면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그래, 해 보자.

나는 품에서 곱게 접은 종이를 꺼내 로디에게 내밀었다.

“기밀문서야. 로디한테만 특별히 보여 줄게.”

“영광인데요……. 어디 보자, 이건…… 데네브 왕국 발전을 위한 제안서 고대 던전 편……?”

“응. 거기 리스트에 적힌 것들을 주문하고 싶어.”

“음……. 이 정도면 어렵지 않은데요. 일주일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종이에는 꽤 구하기 힘든 물건도 적혀 있을 텐데.

역시 로디는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수완이 상당했다. 그러니 비밀 상점을 운영하는 거겠지만.

“고마워. 대금은…….”

“실은 제가 데네브 왕국의 틸라 독점 거래 덕분에 요즘 돈을 많이 벌어서요…….”

그랬다.

여전히 우리 왕국산 틸라는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요즘 로디가 하루가 멀다 하고 왕성을 들락거리는 것도 틸라 거래 때문이었으니까. 덕분에 우리 왕국도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응, 알아. 갑자기 돈 자랑 하는 거야?”

로디는 안경 너머의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서 대금은…… 골드보다는 정보로 받고 싶은데, 어떨까요.”

호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기회가 오자마자 재깍 정보를 뜯어내려는 로디의 행동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답해 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나는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 뭐가 좋을까. 벤자민이라는 신인 도예가가 요즘 리어 왕국에 자주 드나들지?”

“그건 저도 아는데요…….”

“그렇구나. 그럼 이건? 벤자민은 리어 왕국의 알레사 백작과 밀회를 나누고 있어.”

로디는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그것도 알아요……. 아직은 소문에 불과하지만, 백작이 벤자민에게 푹 빠졌다고 하죠. 얼마나 좋아하는지, 도예품을 비싼 값에 사 들인다고도…….”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로디의 정보력도 꽤 뛰어나다. 하지만 이건 모르겠지.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그거 거짓말이야.”

“네?”

로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작은 벤자민을 통해 밀수로 벌어들인 돈을 세탁하거든. 꼬리가 밟히지 않으려면 내연 관계인 척하는 게 편하니까.”

“…….”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하면 개연성이 없는 행동도 그러려니 하잖아.”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거죠…….”

“응? 예술품을 통한 돈세탁, 전통적이잖아. 세금도 아낄 겸.”

“흥미롭네요. 하지만 저한테는 별로 필요 없는 정보인데요…….”

다른 나라 귀족이 탈세를 하건 돈세탁을 하건 무슨 상관이냐는 투였다.

그야 그렇겠지. 그러나 이 귀족과 신인 예술가의 염문을 가장한 돈세탁은 로디와도 관련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틈을 봐서 로디에게 살짝 귀띔하려고 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고 할까.

“그렇게 세탁한 돈으로 상업 도시의 자치회장 선거에도 개입하고.”

“……!”

“찾아봐. 후보 중에 한 명, 백작의 이부형제가 있어.”

<마.왕.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제때 손을 쓰지 않으면, 세탁한 자금을 등에 업고 알레사 백작의 이부형제가 자치회장이 된다.

돈이 오면 마음이 가는 법이다.

완전히 알레사 백작의 꼭두각시가 된 자치회장은 백작의 이득을 위해서만 움직이게 된다.

이른바 ‘알레사 백작의 음모’ 이벤트.

이 이벤트가 뜨면 게임이 상당히 귀찮아진다. 상업 도시 사달멜리크의 자치회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니 말이다.

‘<마.왕.꾸>에서 제일 성가신 이벤트 1위를 꼽으면 이거지.’

작성자: 알레사 음모 이벤트 떴어요ㅡㅡ 알레사 어케 막아여

└익명: 리셋ㅊㅊ

└익명: 알레사를 회유하면되는데 확률 개같음 새로시작ㄱㄱ

└익명: 강제 종료하고 새로 시작하는게 빠름

곧장 이런 댓글이 우수수 달릴 정도였으니까.

이 내막까지 전부 말하지는 않았지만 로디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한 모양이었다.

“세상은 더러워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위로의 뜻으로 로디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이만하면 대금으로 충분할까?”

“충분하긴 한데요……. 왕녀님은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아는 거죠……?”

그야 <마.왕.꾸>를 1천 시간 넘게 플레이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는 없다.

대신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영업 비밀! 전부 다 알려 주면 나는 장사 어떻게 해?”

“아항…….”

* * *

닷새 뒤 오후, 로디 실로프가 다시 왕성을 찾아왔다.

표면적으로는 틸라를 추가로 매입하기 위해서였지만, 진짜 용건은 내가 주문한 물건이 전부 갖춰졌기 때문이었다.

“엄청 빨리 왔네? 며칠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왕녀님의 주문이라 신경 좀 썼답니다……. 여기, 말씀하신 몬스터의 핵입니다.”

“응, 고마워.”

나는 로디가 내민 상자 안에 든 몬스터의 핵을 확인해 보았다.

<마.왕.꾸>의 세계에는 다양한 몬스터가 등장한다. 그중에는 흉포하여 인간을 마구 공격하는 야생 몬스터가 있는가 하면, 인간에게 길들여진 몬스터도 있었다.

그런데 인간에게 길들여진 몬스터라고 해도 몬스터를 그대로 데리고 다니기는 힘들다. 대형 몬스터의 경우 공간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주인 외의 사람이 보면 놀라기도 할 테다.

그래서 발명된 물건이 바로 이것, 몬스터의 핵이다.

마석을 특수한 방법으로 가공하여 안에 몬스터를 봉인한다. 이렇게 하면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몬스터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몬스터의 집이랄까.

원래 <마.왕.꾸>의 제작사는 이 몬스터의 핵 시스템에 랜덤 뽑기를 도입하여 한탕 할 계획이었지만…….

‘욕만 엄청 먹고 철회되었지.’

참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몬스터의 핵을 이만큼 모으기 위해서 엄청나게 랜덤 뽑기를 돌려야 했을 테니.

나는 잠시 속으로 <마.왕.꾸> 제작사 사장 김××의 장수를 기원해 주었다.

“어디 보자, 슬라임이 하나, 둘, 셋. 고블린이 하나, 둘. 하급 픽시가 셋……. 응, 전부 있네. 고마워.”

“그런데 왜 몬스터를 여러 종류로 조금씩 구하신 건가요……?”

로디가 몬스터의 핵을 갈무리하는 나를 보며 불쑥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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