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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37)화 (38/133)

37화

“응?”

“보통 던전에는 같은 종류 몬스터를 여러 마리 넣잖아요. 예를 들어, 고블린 20마리, 골렘 10체, 이런 식으로요…….”

로디의 말이 맞다.

일반적으로 모험가들을 삥 뜯기 위한 던전에는 같은 종류의 몬스터만 배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레벨 10짜리 던전에서는 레벨 10짜리 몬스터만 우르르 나오고, 레벨 20짜리 던전에서는 레벨 20짜리 몬스터만 우르르 나온다.

레벨 20짜리 모험가에게 레벨 10짜리 몬스터를 보내 봐야 ‘나 잡아먹어라.’ 하는 꼴이고.

거기다 몬스터들은 동족 몬스터가 곁에 있을 때 더 강해진다. 그러니 같은 돈이면 몬스터를 한 종류로 통일하는 쪽이 이득이다.

물론 나는 정확한 몬스터 보너스 계수 계산 방법부터 최고 효율 몬스터 조합까지 꿰고 있지만.

이건 주절주절 떠들어 봐야 ‘그게 뭔데, 오덕아.’ 같은 소리나 들을 테니 넘어가자.

나는 레벨 2 슬라임 세 마리, 레벨 6 고블린 두 마리, 레벨 10 하급 픽시 세 마리 등…… 여러 종류를 구입했다.

물론 이렇게 준비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나는 특별한 던전을 만들 예정이거든.”

“흥미롭네요……. 어떤 던전인가요……?”

“그건 아직 비밀! 완성되면 알 수 있을 거야.”

“아항…….”

몬스터의 핵을 전달한 뒤 로디는 금방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응접실에 들어와서 아직 십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서두르는 기색의 로디를 향해 권유했다.

“온 김에 차라도 한잔하고 가지?”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왕녀님이 폭탄을 터뜨리셨잖아요.”

“폭탄? 내가?”

내가 뭘?

오늘도 <데네브 왕국의 발전을 위한 제안서~마법 폭탄 편~>을 아빠한테 까인 나로서는 어리둥절한 말이었다.

“알아보니까 진짜더라고요. 알레사 백작의 이부동생이 있었어요…….”

“……아항.”

“심지어 자치회의 노다지 땅을 알레사 백작에게 넘기려던 게 발각되는 바람에……. 큰일이었어요…….”

“그렇구나.”

자세히 보니 로디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었다. 늘 나른해 보이는 인상이라 바로 눈치 못 챘다.

“에휴우……. 귀찮은 일이 늘어났어요. 이렇게 열심히 일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로디의 말을 들어 보니 ‘알레사 백작의 음모’ 이벤트는 막을 수 있을 듯싶다.

나는 눈 밑이 퀭한 로디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이제 재료는 전부 갖춰졌다. 남은 것은 실천뿐.

나는 시스템에 접속해 [관리]­[고대 던전] 메뉴를 열었다. 곧 눈앞에 새로운 상태창이 나타났다.

[<오싹오싹! 스릴 넘치는 모험이 기다리는 고대 던전(E)>

언제부터 이 땅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으스스한 던전.

던전에 들어오는 모험가들을 물리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호화도 : 100

현재 배치된 몬스터 : 0마리

현재 설치된 함정 : 0개

※ 현재 미개방 상태입니다. 1000 왕국 포인트를 사용하여 개방할 수 있습니다.

※ 다음 등급까지 앞으로 모험가 20명이 더 방문해야 합니다.

▶ 몬스터, 함정 배치 바로 가기]

나는 이 상태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게 뭐야…….”

이 던전 이름 대체 누가 지은 거야?

오싹오싹? 스릴 넘치는 모험이 기다리는 고대 던저언?

전혀 멋진 흑막 왕국답지 않잖아! 무슨 유원지의 핼러윈 콘셉트 놀이 기구도 아니고!

게임 이름이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일 때부터 알아봤다!

아니, 진정하자.

내가 만들려고 하는 던전은 보통의 모험가 삥 뜯는 던전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이름이 더 어울릴 수도 있을 테다.

나는 애써 침착을 되찾고 1000 왕국 포인트를 투자하여 고대 던전을 개방했다. 곧 몬스터와 함정 배치 메뉴가 활성화되었다.

다음으로 로디에게 받은 몬스터의 핵을 시스템에 흡수시켰다.

이제 배치만 하면 되는데……. 그 전에.

나는 상태창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라, 나 잠깐 산책 좀 하고 올게.”

“그러면 저하고 함께 가실까요?”

“응!”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불렀다. 소화도 시킬 겸 걷고 와야겠다.

현재 내 레벨은 3, HP는 30이다. 맨 처음 HP 10일 때보다는 강해졌지만 여전히 비실비실하다.

아빠를 흑막으로 프로듀스하고, 이 왕국을 SSS급 흑막 왕국으로 만들 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니까 운동도 잊지 말아야지.

지난번에 얻은 ‘무언가의 알’이 잘 있는지도 보고 와야겠다.

나는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알을 보러 갔다. 언제쯤 알이 부화할지 기다려졌기 때문이다.

실은 벌써 이름 후보도 열 개쯤 생각해 뒀다. 가장 흑막다운 이름으로 붙여 줘야지.

나는 사라와 함께 정원을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무언가의 알’을 보관해 둔 둥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안젤리카 님, 왜 그러세요?”

“알이 없어졌어.”

“네? 안젤리카 님이 아끼시던 그 몬스터의 알이요?”

가장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만들어 둔 둥지가 텅 비어 있었다. 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누가 알을 건드렸나?’

그럴 가능성은 낮다. 둥지 앞에 커다랗게 ‘안젤리카의 드래곤 알. 손대면 죽음뿐!’이라고 적어 놨단 말야.

‘그럼 둥지에서 굴러떨어졌나?’

허둥지둥하며 주위를 살피려던 그때였다.

파삭!

“……파삭?”

무언가가 가볍게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깨진 알 껍질이껍데기가 발에 닿았다.

이거, 그 몬스터의 알 껍데기잖아?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알 껍데기를 들여다보았다. 알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깨어난 건가? 어딜 간 거지?

바스락!

그때 수풀 너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꿀꺽.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새끼 드래곤을 보면 처음에 무슨 말을 하지? SSS급 흑막 왕국(예정)에 어서 오라고 할까?

곧 바스락 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수풀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뜻밖에 덩치가 작았다. 꼭 박쥐를 닮은 드래곤, 아니, 드래곤을 닮은 박쥐, 아니, 박쥐형 드래곤…….

현실 도피 하지 말고 인정하자.

박쥐였다.

정확히는 박쥐형 몬스터.

‘드래곤이 아니라 박쥐였다니…….’

털썩!

무슨 박쥐 몬스터 알이 드래곤 알이랑 그렇게 비슷해? 일부러 헷갈리게 디자인한 거 아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드래곤을 아까워하며 슬퍼하다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이 박쥐, 낯이 익다.

저 짙은 흑갈색 털에 새빨간 눈, 목 주위를 감싼 곱슬곱슬한 털까지 어디서 본 것 같다.

“피이, 피, 피이잇.”

무엇보다 이 독특한 울음소리.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너, 설마…… 로코야?”

“피이잇, 피!”

그렇게 울어도 박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은 없다. 하지만 이 박쥐는 로코가 분명했다.

로코는 <마.왕.꾸>에 등장하는 박쥐형 몬스터다. 아주 낮은 확률로 뜨는 이벤트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을 하나 꼽자면, 로코는 가격이 5000 골드가 넘을 정도로 비싸지만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HP 1에 공격력 1, 방어력 1.

그렇다고 특수한 스킬이나 다른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게임상에서 하는 일이라곤, 세이브 화면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춤을 추는 것뿐이다.

이른바 <마.왕.꾸>의 마스코트. 그냥 귀여움 담당이랄까.

[이름 : 로코 (몬스터)

종족 : 박쥐형 몬스터

레벨 : 1 (최대 레벨)

HP : 1/1   MP : 1/1

공격 : 1   방어 : 1   마법 : 0]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이 내 추측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피이!”

로코가 귀여운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꼭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것 같기도 했다.

“로코, 너……! 그렇게 귀엽게 운다고 내가 냉큼 데려갈 거 같아? 세상은 차가운 곳이야. 모두가 너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버려!”

“피이, 피…….”

그러나 나는 매정하게 로코를 무시했다.

왜냐하면 나는 박쥐를, 정확히는 로코를 싫어했으니까.

이유는 터무니없다.

바로 로코가 <마.왕.꾸> 커뮤니티 제1회 인기투표에서 크로셀 데네브를 제치고 1위를 했기 때문이다.

‘후후후……. 그 깊은 원한, 잊을 수 없지.’

<마.왕.꾸> 커뮤니티에서 대대적으로 열린 첫 인기투표.

그 인기투표에 최강이자 최악의 흑막이자 내 최애캐인 크로셀 데네브를 이기게 하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했다.

잘 나온 캡처 이미지를 커뮤니티에 올리거나, 스토리의 재미있는 부분을 어필하는 등.

심지어 지갑을 털어 상품을 걸고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투표 마감일 하루 전.

터무니없이 비싸고, 무능력하고, 귀여운 로코가 커뮤니티상에서 밈화가 된 것이 문제였다.

어느 게임 스트리머가 모든 골드를 털어서 로코를 구입하고 망한, 이른바 예능 플레이를 한 것이 시발점이었다나.

짧은 시간 동안 로코는 엄청나게 유명해졌고, 그 결과 아슬아슬한 차이로 1위.

“피이, 핏……?”

확실히 귀엽긴 하지만! 아무런 능력치도 없고 그저 귀여울 뿐인데!

그 깊고 어두운 원한을 잊을까 보냐!

애초에 내가 원한 건 드래곤이었다고!

그때, 사라가 내가 있는 쪽을 보며 물었다.

“안젤리카 님, 알은 찾으셨나요?”

“응? 아니, 없어. 어디로 가 버렸나 봐.”

홱!

나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고 사라와 함께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저어……. 안젤리카 님.”

“응?”

“박쥐가 계속 안젤리카 님을 따라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나는 슬쩍 뒤를 보았다. 로코가 짧은 다리로 쫑쫑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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