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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49)화 (50/133)

49화

어?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현실감이 없었다.

왜 세이르가?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세, 세이르……. 왜…… 왜 그래?”

눈앞이 새하얘지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얼른 비틀거리는 세이르를 부축했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계속해서 기침했고, 그럴 때마다 피가 후드득 쏟아졌다.

아플 것이 분명한데도 세이르는 묘하게 침착한 태도였다. 그는 차분한…… 아니, 꼭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일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 마.”

“이게…….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야……!”

“……그냥, 독 내성 반응일 뿐이야. 윽……. 조금 있으면 진정될 거야.”

“뭐……?”

세이르가 멀쩡한 상태였으면 등짝이라도 후려갈기고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말이었다.

그게 그렇게 ‘그냥’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 일이야? 이렇게 아파하면서!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테이블 위의 케이크를 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방금 세이르가 먹은 케이크에 독이 들어 있었나?

하지만…….

이 레몬케이크는 전부 내가 호텔에서 챙겨 온 것들이다. 나도, 호텔에 머물고 있는 아빠와 왕성 식구들도 모두 같은 음식을 먹었다. 그러니 음식에 문제가 있을 리는 없을 텐데.

“이거.”

세이르는 방금 레몬케이크를 먹는 데 사용한 포크를 가리켰다. 음식이 아니라 식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 같았다.

과연 포크에는 보일 듯 말 듯 하게 검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저께 나는 시종이 가져온 독이 든 수프를 엎어 버렸다. 어제는 세이르에게 호텔에서 따로 챙겨 온 음식을 먹였다.

즉, 세이르는 이틀간 독을 먹지 않았다. 시종은 수프 접시를 치우러 왔을 때 세이르가 독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테다.

‘그러면, 설마…….’

세이르가 독이 든 수프를 먹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식기에 독을 발라 둔 거야? 왜?

세이르에게 독 내성이 있으니 죽일 의도는 아닐 테다.

그렇다면, 오직 세이르를 괴롭히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른단 거야?

나는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끼며 거칠게 말했다.

“도, 독이 묻은 걸 알았으면 먹지 말았어야지!”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울컥. 목구멍 안쪽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지금 그런 말이나 할 때야? 독을 먹었는데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되잖아. 내가 어린애라서 못 미더우면 믿을 만한 어른을 불러와 달라고 해도 되잖아.

어떻게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할 수 있어?

나는 이번에야말로 세이르의 등짝을 후려갈기고 싶다는 충동에 몸을 맡기려다가 흠칫 놀랐다.

“큭, 쿨럭, 쿨럭!”

잠시 진정하는 것 같던 세이르가 다시 기침과 함께 왈칵 피를 토해 냈기 때문이다. 세이르는 무척 괴로워 보였다.

단순한 독 내성 반응이라기에는 너무 거셌다.

‘독을 너무 많이 먹은 거야.’

이제껏 몸에 쌓인 독 때문에 몸이 약해졌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해도 그저 그뿐,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윽……!”

나는 쓰러지는 세이르의 몸을 힘겹게 받쳤다. 열이 오른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세이르! 정신 차려! 세이르!”

“윽, 쿨럭!”

“물……! 세이르, 물이라도 마셔 봐. 응?”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을 집어 들려다 멈칫했다.

이 물병도 원래 이 방에 있던 거잖아. 만약 이 물병에도 독이 발려 있으면 어떡하지? 젠장, 이 방에 있는 무엇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이르는 계속 이런 환경에 놓여 있었던 거야? 방 안에 있는 물건조차 믿을 수 없는 곳에?

그건 너무…… 끔찍하다.

“누, 누가 좀…….”

아. 안 된다. 시종이 식기에 독을 바른 것이라면, 밖에서 사람을 부를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어제 꾼 꿈의 내용이 머리를 스쳤다.

꿈이 지금 이 상황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러면 꿈에서 나온 해독제도 정말 있을까?

‘한번 찾아보자.’

나는 벽장을 열고 성검을 낑낑거리며 끌어당겼다. 그리고 머리에서 머리핀을 떼어 냈다.

‘분명 여기 어디를 눌렀었는데.’

머리핀의 뾰족한 부분으로 성검의 보석 장식 아래쪽 틈을 찌르자 달칵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안에, 꿈이랑 똑같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병이 있었다.

[<해독제>

독을 해독합니다. 독 내성 반응의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있다! 해독제야!’

나는 얼른 병을 집어 들고 세이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약병의 뚜껑을 열어 세이르의 입가에 댔다.

물에 섞어 마시면 좀 더 마시기 편하겠지만 이 방에 있는 물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세이르, 이거 마셔. 약이야. 도움이 될 거야.”

“읏…….”

세이르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듯했지만, 다행히 해독제를 뱉지 않고 잘 받아 마셨다.

해독제를 먹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점차 세이르의 호흡이 차분해지고 표정이 편안해졌다. 불덩이 같던 체온도 점점 식어 곧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다행이야. 해독제가 효과가 있어……!’

나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다행이라는 마음뿐이었다.

세이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상체를 일으켜 세운 그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나에게 말했다.

“고마워. 네 덕분에 살았어.”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직 다 가라앉지 않은 고통이 스며 있었다.

[세이르 뮨 엘레인의 상태 이상 ‘염세주의’의 레벨이 84 → 74로 하락합니다.]

이런 상태창이 떴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까부터 머릿속을 떠돌던 근본적인 물음을 끄집어냈다.

“누가…….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왜 이런 짓을…….”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사람이 죽는데 상관있고 없고가 어디 있어?”

나는 생각했다. 세이르를 이런 곳에 가둘 만큼 힘이 있으면서 세이르를 미워할 동기가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몇몇 캐릭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하나씩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캐릭터는 단 한 명.

“다프네 왕비야?”

“…….”

리어 왕국의 다프네 왕비. 세이르에게는 외숙모 되는 사람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세이르는 그저 침묵했다. 침묵이 무엇보다도 분명한 대답이었다.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재차 물었다.

“이 ‘벌’이라는 거, 다프네 왕비가 시킨 거야? 고작 가출 좀 했다고 이런 짓을 해?”

“…….”

세이르는 대답 대신 숨을 골랐다.

초록빛 눈동자에 잠시 선명하게 떠올랐던 감정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졌다. 세이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염세주의에 빠졌다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그보다 세이르는 마치 억지로 자신 안의 감정을 잘라 내려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 어떻게 아직 어린 세이르가 저런 표정을 짓지. 나랑 나이 차가 얼마 나지도 않으면서, 왜.

“이제 괜찮아졌어. 안젤리카,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세이르는 말만으로 그치지 않고 내 손을 붙잡아 창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잠깐만, 세이르.”

“빨리. 곧 사람이 올 거야. 네가 밖에서 멋대로 들어온 걸 들키면 일이 복잡해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는 강경했다. 손수 창문을 열고 나를 번쩍 들어 창틀에 앉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내 검이 필요하다고 했지. 닷새 뒤, 여기서 떠나는 날까지 내가 살아 있으면 네게 줄게.”

“…….”

“그러니 다신 오지 마.”

그때, 방문의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에게 침입 사실을 들켜 세이르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창틀에서 뛰어내린 뒤 개구멍을 통해 별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의문뿐이었다.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거야?’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는데, 왜 아무렇지 않은 체를 하는 건데?

닷새 뒤까지 자신이 살아 있으면 성검을 주겠다…… 라.

내 최우선 목적은 어디까지나 성검을 손에 넣는 일이다. 그러니 세이르가 자진해서 성검을 주겠다고 한 건 좋은 일이다.

“그치만……. 그래, 세이르의 말을 어떻게 그대로 믿어?”

“피이이?”

비정한 흑막의 외동딸은 남의 허울뿐인 약속을 믿지 않는 법이다. 세이르의 말만 믿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생각 따위는 당연히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가 있었다.

[<히든 퀘스트> 탈(脫) 염세주의?

현재 세이르는 극심한 염세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염세주의 레벨이 낮아질수록 교섭 성공 확률이 올라갑니다.

루트 1. 세이르의 염세주의 낮추기

루트 2. 돈으로 교섭하기]

[<루트 2. 돈으로 교섭하기>

대화는 무슨. 그럴 시간 없습니다.

그냥 돈으로 목표를 달성합시다.

어쨌건 성검만 얻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보상 : 마법 도구 제작 재료 세트(기초편)]

나는 이 히든 퀘스트의 <루트 2. 돈으로 교섭하기>를 선택해서 보상을 받고 싶다. 재료 세트 저거 좋은 거란 말야.

아직 세이르에게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내일도 와야겠다, 그렇지?”

“피이잇!”

내 말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코가 신나게 날개를 파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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