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61)화 (62/133)

61화

6장. 흑막의 외동딸은 피카레스크의 꿈을 꾸는가

“와아……!”

정신없었던 휴가가 끝나고 우리는 데네브 왕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오늘부로 내 부하 1호가 된 세이르도 함께였다.

휴가를 다녀오는 사이에 왕성 업그레이드가 끝나 있었다. 새로 올린 왕성이 아주 호화롭고 번쩍번쩍……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F급 낡고 좁은 왕성이 아니라 E급 그저 그런 왕성이다. 미래의 SSS급 흑막 왕국이 되기 위한 기념비적인 한 걸음이랄까.

“아빠, 왕성이 정말 멋져요! 꼭 진짜 성 같아요.”

아차. 예전의 F급 낡고 좁은 왕성이 가짜 성 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말이다.

“마음에 들어 하니 아빠도 기쁘구나. 자, 왕성을 구경하러 가겠니?”

“으음……. 이따가요.”

새로운 왕성을 구경하고 싶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바로 주인공의 비밀 아지트!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법 도구 공방 말이다.

휴가도 끝났으니 이제 할 일을 해야지. 나는 왕성 주변을 살펴보고 있던 세이르의 어깨를 툭 치면서 손짓했다.

“어이, 부하 1호. 일할 시간이다. 따라와.”

“갑자기 그게 무슨 말투야……. 뭐, 알았어.”

“어머, 안젤리카 님, 친구분과 재미있는 놀이를 하시는군요.”

“재밌게 놀고 오렴, 안젤리카.”

아빠와 사라가 웃으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리하여 긴 여정 끝에 도달한 왕성 구석의 헛간. 아니, 마법 도구 공방 겸 비밀 아지트 설립 예정지는 여전히 낡아 빠진 상태였다.

“캘록, 캘록, 에구구, 먼지 봐.”

“피이이!”

삐걱거리는 헛간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나는 한바탕 기침을 내뱉었다. 로코 역시 소리에 놀라 날개를 파드닥거렸다.

그런데 세이르는 차분한 표정으로 느닷없는 소리를 했다.

“안내해 줘서 고마워. 지내기 좋아 보이는 방이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응? 여기서 먹고 자라고 데려온 거 아니야?”

세이르와 나는 잠시 서로 마주 보고 눈만 끔뻑끔뻑했다. 곧 세이르가 어떤 오해를 했는지 알아차린 나는 기가 막혀서 빽 소리 질렀다.

“왕성에 방 놔두고 여기서 잠을 왜 자?!”

그다지 내 입으로는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엘레인 공작령의 공작 저택이 E급 그저 그런 왕성보다 호화로울 것 같은데. 얘는 무슨 헛간을 자기 방인 줄 아는 거람.

안빈낙도를 추구하나? 자연인 지망생? 힙한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를 즐기는 파?

그런 취향이라면 미안하지만, 나는 폐가보다는 번쩍번쩍 호화로운 건물이 좋다.

“나는 여기서 얹혀사는…… 아니, 인질 신세니까.”

세이르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덧붙였지만, 나는 기가 막혀서 세이르의 말을 잘랐다.

“아이참, 됐으니까 빨리 성검이나 빌려줘.”

“아, 응, 여기.”

세이르에게 성검을 건네받으려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으, 윽……?”

‘뭐야, 이거. 엄청 무겁잖아.’

세이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검을 들고 다니고 휘둘러 대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나는 낑낑대며 검집에서 검을 꺼낸 뒤, 황금빛 마법진에 가까이 다가갔다.

“뭘 하려는 거야?”

“가만 보고 있어. ……윽!”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성검을 들어, 그대로 내리꽂았다.

파지직!

전기가 통하는 느낌에 나는 화들짝 놀라 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파아앗­.

황금빛 마법진이 액체처럼 움직이며 성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윽, 눈부셔…….”

성검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빛의 조각이 마치 반딧불처럼 헛간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면서 안을 새롭게 빚었다. 그리고 빛이 사그라진 순간.

띠링!

[설비 ‘마력 순환 작업대’가 복구되었습니다.]

[<그저 그런 마법 도구 공방(E)>

전용 책상, 의자, 마력 순환 작업대 및 기본 설비 세트가 포함된 자그마한 공방. 이곳에서 여러 가지 마법 도구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호화도 : 300

현재 보유 레시피 : 0개

배치 : ‘부하 1호’ 세이르

※ 다음 등급까지 앞으로 아이템 20개를 더 제작해야 합니다.

▶ 마법 도구 레시피 구입 바로 가기]

공방이 완성되었다!

순식간에 헛간이 멋진 마법 도구 제작 공방으로 변했다.

‘그저 이 공방 한 채가 갖고 싶었습니다…….’

이 마법 도구 공방을 열기까지 겪은 긴 여정을 떠올리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감격에 차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겉은 여전히 낡았지만 안은 아늑하다. 딱 판타지물 주인공의 비밀 아지트답달까.

공방은 작업대 및 제작 설비 세트를 놓고도 공간이 넉넉했다. 저쪽에는 로코의 장난감 세트를 놓으면 되겠다. 그리고 차후에는 벽을 터서 방갈로를 짓는 거다. 그러면 더욱 비밀 아지트다운 분위기가 나겠지.

세이르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물었다.

“안젤리카,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우후후, 듣고 놀라지 마. 비밀 아지트야.”

“그러니까 그게 뭔데……?”

“네가 가진 성검이 이 공방에 걸린 봉인 마법을 푸는 열쇠였거든.”

정확히는 봉인 마법이 아니라 상태창의 힘이지만 비슷한 거니까 대충 넘어가자.

나는 세이르에게 성검을 돌려주기 위해 바닥에서 뽑으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세이르, 이 검 아까보다 반짝거리는 거 같지 않아?”

“응?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잘못 봤나……?”

조금 전까지 이상하게 반짝거리는 거 같았는데. 다시 성검을 유심히 살폈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잘못 본 모양이다.

그때 눈앞에 새로운 상태창이 나타났다.

[<시나리오 퀘스트> ‘마법 도구 공방을 열어라!’를 완료했습니다.

(1) 마법 도구 공방을 개방했습니다.

(2) 경험치 300exp를 획득했습니다.

(3) 기초 마법 도구 레시피 세트를 획득했습니다. [공방]­[제작]­[레시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랜덤 왕성 조경­소박한 테이블 세트를 획득했습니다.]

좋아, 무사히 퀘스트를 클리어했다.

클리어한 건 좋은데…….

뭐 하나 깜빡하지 않았어? 나한테 하나 더 줄 게 있잖아. ‘<히든 퀘스트> 탈(脫) 염세주의?’의 보상 말이야.

[……]

[……(로딩 중)]

시스템이 갑자기 ‘로딩 중’을 띄우면서 딴청을 피웠다.

물론 그런다고 넘어가 줄 생각은 없다. 나는 멈춰 버린 상태창을 무시하고 퀘스트 창을 열었다. 그리고 남은 퀘스트 항목을 다시 읽어 보았다.

‘자, 여기 이렇게 적혀 있잖아.’

[<루트 2. 돈으로 교섭하기>

대화는 무슨. 그럴 시간 없습니다.

그냥 돈으로 목표를 달성합시다.

어쨌건 성검만 얻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보상 : 마법 도구 제작 재료 세트(기초편)]

돈으로 교섭하라며? 했잖아?

몸값 10억 골드를 내놓지 않으면 세이르를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멋지게 교섭했잖아. 어쨌건 성검만 얻으면 된다며?

어디에도 세이르에게 돈을 주라거나, 돈으로 성검을 사 오라는 이야기는 없다. 세이르의 염세주의 성향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퀘스트 문구는 명확하게 써야지. 이거 요즘 게임이었으면 소비자 문의 폭발했다니까?

[……]

[……(로딩 중)]

‘내가 세이르 살리는 데만 열중하느라 이 퀘스트를 깜빡한 것 같았니?’

나는 단 한시도 이 히든 퀘스트를 잊은 적 없다. 예기치 못한 일로 방향을 수정할지언정 퀘스트는 잊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마.왕.꾸>의 슈퍼 플레이어니까.

[<히든 퀘스트> 탈(脫) 염세주의? 루트 2 클리어 보상으로 ‘마법 도구 제작 재료 세트(기초편)’을 획득했습니다.]

내 닦달을 견디지 못한 시스템이 결국 보상을 내놓았다.

상태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띠링띠링!’ 소리와 함께 새로운 창이 떴다.

[<서브 퀘스트> 마법 도구 공방 꾸미기 (1)

축하합니다. 드디어 마법 도구 공방을 완성했습니다.

멋진 마법 도구를 마구 만들면 호화로운 보상이 팡팡팡!

남은 시간 : 30일

달성 조건 : 마법 도구 공방에서 아이템을 10개 제작하기 (0/10)

보상 : 경험치 500exp, 왕국의 기술 레벨 1 상승, 새로운 마법 도구 레시피

실패 시 : 없음]

[<시나리오 퀘스트> SSS급 흑막 왕국을 향하여!

대륙의 패권은 누가 거머쥘 것인가?

이제 더욱 왕국을 발전시킬 때가 되었습니다.

크로셀 데네브를 잘 프로듀스해 왕국을 발전시켜 나갑시다.

남은 시간 : 100일

달성 조건 : 왕국 종합 평가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왕국(D)’에 도달하기

보상 : 랜덤 특수 칭호, 경험치 500exp, 새로운 설비 해금

실패 시 : 파산 혹은 사망]

[※ 원 포인트 레슨 : 왕국 종합 평가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왕국(D)’ 달성 조건

(1) 자금을 누적 5만 골드 이상 획득하기 (미달성)

(2) C급 이상의 생산 시설을 2개 이상 건설하기 (미달성)

(3) 왕국의 기술 레벨을 2로 만들기 (미달성)

(4) 왕국의 치안 레벨을 2로 만들기 (미달성)]

연달아 퀘스트가 두 개나 떴다. 각각 서브 퀘스트 하나와 시나리오 퀘스트 하나.

시나리오 퀘스트 쪽에는 실패 시 ‘파산 혹은 사망’이라는 살벌한 결말이 적혀 있었지만, 특별히 어려운 내용은 없었다. 마법 도구를 제작하면서 돈과 포인트를 모으다 보면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겠다.

치안 레벨을 올리기가 조금 까다롭기는 한데…….

‘뭐, 그 방법을 쓰면 되겠네.’

예전과 달리, 이제 데네브 왕국에는 돈의 여유가 있다.

‘우후후……. 그리고 돈이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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