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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73)화 (74/133)

73화

아직 화폐의 가치를 잘 모르는 샐리가 ‘언니, 3 골드면 빵 사 먹을 수 있어?’라고 물었지만 대답할 정신도 없어 보였다.

나는 마거릿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했다.

“충분히 받을 만한 가격이야. 어때? 생각 있어?”

“그, 그야 받아만 주시면…….”

“그럼 정해졌네.”

나는 짝짝 소리 나게 박수를 쳤다. 로디가 종이에 뭐라고 메모를 하며 물었다.

“그러면…… 대금은 어떻게 드릴까요?”

“응? 돈을 나한테 왜 줘? 내가 만든 인형도 아닌데, 쟤들한테 줘야지!”

“아항…….”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나는 얼른 조건을 덧붙였다.

“로디, 대금을 아이들에게 주되 금화로 주지 마.”

한 상자분의 인형 대금이면 꽤 큰 금액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한 번에 너무 많은 돈이 생겼다가는 하겐티 상회의 악당 같은 놈들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기금을 하나 만들어.”

“네……?”

“대금을 은행에 넣어 두고, 교육비로만 인출 가능하게 해 줘. 내가 알기로 말파스 은행에서 그런 조건을 건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던 거 같은데.”

“…….”

로디가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꽤나 날카롭다.

“왜, 왜 그렇게 봐?”

내가 이상한 말을 했나? 아닌데? <마.왕.꾸>에 분명 ‘말파스 은행의 장학 기금’이 있었는데? 돈세탁하기 정말 좋은 시스템인데 내가 착각할 리가 없다.

“왕녀님은 정말 신기한 걸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뭘 새삼스럽게.”

“말파스 은행의 장학 기금은 소문뿐,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는데요…….”

아차, 아직 생기기 전이었구나.

나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대답했다.

“그…… 그래? 내가 착각했나 봐.”

그런데 오늘따라 캐묻는 로디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나는 괜스레 찜찜한 마음에 로디의 시선을 피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냥 신기하단 생각이 들어서요. 오랫동안 ……던 왕녀님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알고 계신지가요.”

“……응?”

로디가 워낙 작게 중얼거린 탓에 중간 부분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뭐라고 말했는지 재차 묻는 것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사…… 상태창!’

[특성 ‘내 말을 들어!(E)’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나는 얼른 상태창을 열어 특성 ‘내 말을 들어!(E)’를 켰다. 이 특성은 뻔뻔하고 자신감 있게 말해야 효과가 크다. 그래서 최대한 뻔뻔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로디가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 아냐? 내가 열 살치고는 좀 똑똑하기는 하지만?”

“그렇군요…….”

휴, 통했다.

이 특성 ‘내 말을 들어!(E)’를 얻어 두길 잘했다.

1000 포인트짜리 바이럴 마케팅 특성이라고 투덜거려서 미안해. 고작 1000 포인트로 이런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니 <마.왕.꾸> 최고의 가성비! 결코 얻어 둬서 후회하지 않는 필수 특성!

내게 지금 <마.왕.꾸> 공략을 쓰라고 한다면 왕국 포인트를 모으자마자 이 특성을 사라고 쓸 것이다.

“우선 대금은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죠……. 서류는 준비되는 대로 이곳 원장님과 다시 이야기하고요.”

“응, 잘 부탁해. 아, 아아, 로디, 잠깐만.”

“네에……?”

“돈 가진 거 좀 있어?”

“안젤리카, 삥 뜯는 거야?”

옆에서 세이르가 기막혀하며 끼어들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한담. 완벽한 흑막의 외동딸은 그런 쪼잔한 짓을 하지 않는다.

나는 대답 대신 나무 상자 안에서 인형 하나를 꺼내 로디에게 내밀었다.

“이거만. 이거 하나만 금화로 계산해 줘.”

조금이나마 직접 손에 돈을 쥐어야 돈을 벌었다는 실감이 나는 법이다. 아직 어린애들이니 이리저리 돈 필요한 일도 생길 테니까. 당장 손에 돈이 한 푼도 없으면 서러울 때도 있겠지.

이런 생각을 시시콜콜 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로디는 내 뜻을 짐작한 듯했다. 두말없이 금화 세 닢을 꺼내어 내게 건넸다.

‘어차피 이걸 주려고 했었는데, 마침 잘됐네.’

저 이상한 마왕 인형 재단이며, 나와 세이르가 무슨 관계인지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에 정신을 빼앗겨 본 목적을 깜빡할 뻔했다.

나는 가방 안에서 작은 천 주머니 세 개를 꺼냈다. 끈을 당겨서 입구를 조이는 형태로, 어린애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겉보기는 수수하지만 이건 평범한 주머니가 아니다.

[<소형 마법 주머니>

20 x 20 x 20 cm 이하의 물건을 최대 열 개까지 중량에 구애받지 않고 보관할 수 있습니다. (0/10)]

마법 도구 제작 퀘스트를 클리어할 겸해서 만들었다. 아직은 소형밖에 만들 수 없어서 아쉽다. 하지만 소형도 충분히 쓸모가 많을 것이다.

참고로 잔뜩 만들어서 왕성 사람들에게 하나씩 돌리는 것이 목표다. 이 주머니, 하나 만들 때마다 경험치가 꽤 들어오거든. 레벨 업에 최적화된 아이템이랄까.

나는 세 개의 주머니에 금화를 한 닢씩 넣은 다음,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아이들이 주머니를 받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 진짜 샐리 거예요?”

“우와아……. 고마워요, 왕녀님!”

“……감사합니다. 평생 간직할게요.”

“아니, 그 돈 쓰라고 준 건데? 간식도 사 먹고 가끔 잡화점도 구경하고 그래. 잡화점에 제랄드 아저씨 친절하거든.”

[<이벤트> 마거릿, 넬리, 샐리가 선물에 감사를 표합니다.

1000 왕국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런 상태창이 떴지만 내용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울먹거리며 내게 달려드는 아이들을 안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 * *

보육원의 아이들과 더 놀아 주다 보니 어느덧 노을이 질 시각이었다. 나는 로디와 헤어진 다음 세이르와 함께 왕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도 재미있었지?”

“……응.”

다른 왕성 사람들은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갔고 우리만 늦었다. 그래서 서두르려고 했는데 세이르의 걸음이 자꾸 늦어졌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세이르는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왜 그래? 무슨 할 말 있어?”

“안젤리카가 저 보육원 아이들을 유난히 신경 쓴다 싶어서.”

“세이르, 질투해? 그럼 못써.”

“……아니야.”

세이르의 표정이 조금 부루퉁해진다. 농담이었는데. 나는 헤헤 웃고는 말을 이었다.

“보육원 환경이 좋아지면 마을의 치안 수준이 좋아져. 왕국을 더 좋게 가꾸려면 치안 유지도 중요하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세이르는 내 대답을 불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해도 좋을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하하, 역시 변명처럼 들리나.

내가 나답지 않게 보육원의 세 자매에게 신경을 쓴다는 자각은 있었다.

시나리오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에 치안 레벨 올리기가 있는 만큼, 치안 점수를 얻으려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점수 올리기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오늘 또 보육원을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나는 특히 마거릿이 신경 쓰였다. 왜냐하면…….

“……나랑 비슷해서인가 봐.”

“어?”

정확히는 과거에 나였던 사람. <마.왕.꾸>의 안젤리카 데네브.

워낙 비중이 없었던 탓에 원작의 안젤리카 데네브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환경 때문에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마거릿을 볼 때마다 어쩐지 그녀가 떠올랐다.

“마거릿이 어린데도 의젓하고 어른스럽잖아. 그래서 신경 쓰였나 봐.”

말을 하다가 문득 세이르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노을에 붉게 물든 금발이 저녁의 느린 바람에 나부끼고, 초록빛 눈이 나를 담았다.

그러고 보니 얘도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편이지.

나야 정신 연령은 열 살이 아니니까 그렇다 치고, 세이르는 열세 살밖에 안 되었는데. 어디를 가든 뭘 시키든 알겠다고 하고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세이르를 납치해서 부하 1호로 삼은 거지만. 여기저기 끌고 다닌 사람도 나지만!

“세이르도 너무 어른스럽게만 굴 필요 없어.”

세이르는 황당한 듯 눈만 끔뻑였다.

“나보다 꼬맹이인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에이, 나는 별개지!”

나는 다시 천천히 왕성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어 말했다.

“반찬 투정해도 돼. 먹기 싫은 거 있으면 남겨.”

“……안 해.”

“그래? 그럼 전부 다 먹는 착한 어린이 해. 아유, 착하다.”

“하하…….”

띠링!

[세이르 뮨 엘레인의 상태 이상 ‘염세주의’의 레벨이 73 → 68로 하락합니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세상에. 사흘 내도록 세이르를 끌고 다녀도 도통 내려가지 않던 염세주의 레벨이 갑자기 5나 내려갔다!

역시 칭찬인가? 오직 칭찬만이 이 염세주의 꼬맹이의 반려 상태 이상을 낫게 하는 건가?!

“세이르, 멋져! 훌륭해! 세계 최고의 착한 어린이!”

“제발……. 그 이상한 칭찬 좀 그만해…….”

세이르가 얼굴을 찌푸리고 성큼 앞서 걸었다.

“어, 세이르, 같이 가!”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하다 보니 금방 왕성의 커다란 정문이 보이는 데까지 왔다.

앞에 은빛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

타다다닷!

나는 아빠를 향해 달려갔다. 그에 맞춰 아빠가 팔을 벌리고 무릎을 굽혔다. 그 품으로 폴짝 뛰어들자 아빠가 나를 안아 올렸다.

“왜 여기 계세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란다. 안젤리카가 슬슬 올 것 같아서 마중 나왔지.”

“헤헤헤…….”

“안젤리카, 그리고 세이르 군도, 왕성으로 돌아가자꾸나.”

“……네.”

아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매달리면서, 나는 아까 한 생각을 떠올렸다.

안젤리카의 약혼식 날 안젤리카와 세이르를 죽인 사람이 크로셀 데네브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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