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80)화 (81/133)

80화

마족의 붉은 눈이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아.”

계속 흐려 보이던 마족의 얼굴 부분이 일순 선명하게 보였다. 마족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려 하는 순간.

“으윽!”

갑자기 지독한 두통이 느껴졌다. 나는 머리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아파. 너무 아파. 그냥 꿈일 뿐인데 왜 이렇게 아픈 거지?

꼭 내 몸이 이 꿈을 거부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쾅! 콰앙!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 같은 것이 들리더니,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꿈은 거기서 끝이었다.

…….

…….

“으으윽…….”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늘 보던 내 방의 천장에 눈에 들어왔다. 아침이구나.

‘뭔데, 이 중2병 꿈.’

그야 나도 한창때엔 그런 거 좋아하긴 했어. 마족, 타천사, 매드 사이언티스트 뭐 이런 거.

하지만 전생의 나는 성인이라 중2병은 한참 전의 과거고, 지금은 열 살이니 중2병이 오기에는 이른 나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마족 운운하는 꿈을 꾼 거람.

나는 어제 본 마기에 뒤덮인 소년의 검은 몸을 떠올렸다.

충격적인 장면이기는 했지……. 그 광경이 꿈에 영향이라도 끼친 건가.

“피이잇! 피!”

“로코, 설마 또 너니?”

내 베개 옆에 누워서 자고 있던 로코가 깨어나 날개를 파닥거렸다. 역시 이 박쥐가 내 곁에서 자면 꼭 이상한 꿈을 꾸는 느낌인데.

“피이이……?”

로코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나는 머리맡에 놓인 접시에서 말린 과일 조각을 꺼내 로코에게 먹여 준 뒤 몸을 일으켰다.

‘지금쯤이면 걔도 정신을 차렸으려나.’

나는 준비를 마친 뒤, 로코를 주머니에 넣고 어제 소년을 데려다 둔 방으로 향했다.

* * *

“얘가 안젤리카가 말한 아이야?”

“응.”

소년을 보러 가는 길에는 세이르가 함께였다. 세이르에게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이야기했더니 함께 오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의사가 소년을 진찰하고 돌아간 다음이었다. 뜻밖에도 의사는 소년의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나는 소년의 이마에 살짝 손을 대어 보았다. 열은 내린 것 같지만…….

“으……. 헉, 허억!”

그때, 갑자기 소년이 눈을 떴다. 소년은 잠시 누운 채 눈만 끔뻑이더니 곧 상황을 파악했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 내가 왜 여기……!”

찰그랑.

어제 채운 구속구가 소년의 팔을 잡아당겼다.

“크윽, 이거 당장 풀어!”

“미안해. 지금은 못 풀어 줘. 그걸 풀면 사라가 너를 감옥으로 보낼 거라고 했거든.”

“뭐? 감옥이라고? 왜지?”

“왕성에 무단 침입 했잖니.”

완전히 정신을 차린 소년은 뜻밖에 새침하고 퉁명스러운 성격이었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뗐다.

이 소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가져온 접시를 쟁반에 담아 소년의 앞에 놓아 주었다. 접시에는 따뜻한 수프가 담겨 있었다.

“일단 진정하고 이거나 먹어. 먹고 이야기하자.”

“누…… 누가 네가 주는 걸 먹을 줄 알고!”

“어라, 그래? 누가 먹여 줘야 먹는 타입?”

“뭐, 뭣…….”

당황한 소년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에휴, 귀찮지만 어린 동생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누나가 먹여 줄 테니까 아- 해.”

“그게 아니라……. 잠깐, 누가 누나야!”

“얘 끈질기니까 이쯤에서 먹는 게 좋을 걸.”

옆에서 세이르가 웃음을 참으면서 한 마디 거들었다. 거든 거 맞나? 그냥 재미있어 하는 건가?

“자, 아- 해.”

“저리 치우리니깐……!”

소년은 내가 내미는 숟가락을 피하며 이리저리 팔을 휘둘렀고, 그 바람에 수프가 담긴 접시가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파열음 다음으로 정적이 깔렸다. 당황한 소년이 손을 내저으며 버럭 화를 냈다.

“머, 머, 멋대로 그런 걸 갖고 오니까! 누가 달래?”

이런, 그렇게 말하다니 어쩔 수 없네.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

나는 케나스와 니키를 방으로 불렀다.

“안젤리카 님, 불렀어?”

“무슨 일이십니까?”

오래 지나지 않아 케나스와 니키가 도착했다. 나는 둘이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엎어진 수프 접시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말했다.

“케나스, 얘가 수프가 맛이 없다고 엎어 버렸어.”

“네?!”

털썩!

케나스는 접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허탈해하며 중얼거렸다.

“그럴 수가……. 어젯밤부터 끓인 고기 육수인데……. 열두 시간 동안 끓이면서 국자로 기름을 걷어 냈는데…….”

“어린애 입맛 하나 맞추지 못하다니 실망이야, 케나스. 오늘부로 요리사를 그만둬 줘야겠어.”

내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케나스가 머리를 조아리고 빌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집에서 토끼 같은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쫓겨나면 갈 데가 없어요…….”

참고로 케나스는 독신이다.

그때 옆에서 니키가 배를 움켜쥐고 구슬프게 칭얼거렸다.

“아빠, 나 배고파…….”

“미안하다, 어흐흑! 아빠가 요리사를 잘리는 바람에 이젠 먹을 걸 줄 수가 없단다.”

“어, 바닥에 수프가 있잖아? 저거 핥아 먹어도 돼?!”

얘네들 신났네. 아주 연기에 물이 올랐다.

나는 옆에서 웃음을 참느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세이르를 한번 흘긴 뒤 차갑게 말했다.

“네 사정 따윈 알 바 아니야. 어린애 입맛 하나 맞추지 못하는 무능한 자는 이 왕궁에 남겨 둘 수 없어. 당장 나가!”

“어흐흐흑! 안젤리카 님, 용서해 주세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제 발로 나가지 않는다면 끌어낼 수밖에. 경비병!”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소년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그, 그건 너무하잖아!”

“어머, 내 방침에 토를 다는 거야?”

“머…… 먹으면 될 거 아냐!”

“정말?”

“그래! 내가 음식을 먹으면 요리사를 자를 필요가 없는 거지?”

“얘가 먹겠다는데?”

나는 케나스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케나스가 후다닥 몸을 일으키고는 음식을 가져왔다. 물론 소년에게 보이지 않게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소년에게 쐐기를 박았다.

“남기면 요리사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아, 알았어. 먹는다니까!”

소년이 숟가락을 들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하는 표정이었지만, 한 입 먹은 뒤로는 점점 손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하긴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배가 엄청 고플 테다. 더군다나 케나스가 한 요리는 맛있으니까.

에휴, 애 밥 한번 먹이기 힘들다.

“어흐흑!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아빠, 나도 이제 밥 먹을 수 있어?”

끝까지 폭군에게 핍박받는 요리사와 그의 굶주린 딸 콘셉트를 유지하며 케나스와 니키가 물러났고.

“……으하핫!”

세이르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세이르의 귓가에 속삭였다.

“세이르, 너무 웃는다. 분위기 좀 맞춰 봐.”

“미안, 미안……. 아하핫!”

나는 손끝으로 세이르를 쿡 찌른 다음 묵묵히 음식을 먹고 있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네 이름은 뭐야?”

“네가 알 바 아니야.”

“나는 안젤리카야. 옆에 얘는 세이르.”

“…….”

“말 안 해 주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귀여운 동생이라고 불러야겠다.”

“누, 누가 네 동생이야! ……루카.”

“응?”

“루카! 루카라고 불러.”

“그래, 루카. 잘 부탁해.”

나는 여전히 부루퉁한 루카의 손을 붙잡고 악수까지 나누었다.

띠링!

그 순간, 눈앞에 루카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이름 : 루카 안드라스

직위 : —

소속 : 이므시 백작령

레벨 : 19

특성 : 칠흑의 마검사(A)]

‘칠흑의 마검사(A)’라는 엄청 강해 보이는 특성이 있는 거 외에는 의외로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응?

다시 띠링! 소리가 났다. 나는 곧이어 나타난 상태창을 보고 깜짝 놀랐다.

[※ 주의 : 루카 안드라스는 ‘저주­암흑화’에 걸려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독’을 섭취하여, 영혼이 어둠에 물들었습니다.

저주 상태가 계속될 시, 15일 후에 심장이 완전히 마기에 물들어 자아를 잃게 됩니다.]

‘뭐……?’

상태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나리오 퀘스트> 암흑화

큰일입니다!

루카 안드라스는 현재 정체불명의 저주 ‘암흑화’에 걸려 있습니다.

제한 시간 내에 저주를 풀지 않으면 루카 안드라스의 자아가 마기에 잡아먹힙니다.

루카 안드라스의 저주를 풀고 잘 살아남읍시다.

남은 시간 : 15일

달성 조건 : 루카 안드라스의 저주를 치료하기

보상 : 경험치 800exp, 새로운 특성 1개, 새로운 희귀 아이템

실패 시 : 중상 혹은 사망]

“…….”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문구는 ‘중상 혹은 사망’이었다.

즉, 제때 루카를 치료하지 못하면 루카는 마기에 물들어 자아를 잃게 되고, 나는 크게 다치거나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다고?

“이게 무슨…….”

“……안젤리카? 왜 그래?”

옆에서 세이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기, 있잖아. 안젤리카 사망 플래그 너무 많지 않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