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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99)화 (100/133)

99화

우아한 동작으로 알레사 백작에게 손을 내밀며, 다프네 왕비가 차갑게 웃었다.

“멋진 전시회군. 그대가 신경을 많이 썼겠어.”

“감사합니다.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예술은 언제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지. 그대에게는 기대하고 있어.”

이토록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리어 왕국 최고의 마법사. 허수아비 왕을 제치고 이 나라의 실권을 쥔 자.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왕을 병에 걸리게 한 자.

다프네 왕비 앞에만 서면 알레사 백작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모시겠습니다, 왕비님.”

알레사 백작은 왕비에게 예술품을 소개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아무도 없는 회랑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그때, 시종 한 명이 왕비에게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은 나를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저, 그것이…….”

시종이 알레사 백작의 눈치를 보았다. 왕비는 상관없다며 시종을 재촉했다. 시종이 조심조심 용건을 전했다.

“이므시 백작이 사망했습니다.”

“……!”

알레사 백작은 깜짝 놀랐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변방 귀족의 사망 소식이 충격적이어서는 아니었다. 왜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다프네 왕비의 표정이 너무나도 싸늘했다. 얼음장 같은 얼굴 속, 적의만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그래……. ‘씨앗’으로 만든 스태프를 들고도 실패하다니, 무능하기 짝이 없군. 제물은 어떻게 되었지?”

“망실되었습니다만,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다고? 마족의 영혼석이 있는데, 어떻게?”

“죄송합니다. 경계가 심하여 자세한 상황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크로셀 데네브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겠군. 그리고?”

시종은 다시 한번 알레사 백작의 눈치를 본 뒤, 조심스럽게 고했다.

“안젤리카 데네브가 손을 쓴 듯합니다.”

무표정하던 왕비의 얼굴에 흥미가 비쳤으나 찰나였다.

시종이 물러났고, 고요가 찾아들었다.

알레사 백작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왕비가 일부러 자신에게 시종의 말을 듣게 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일부러 기밀을 알게 했다.

그것은 즉, 왕비는 알레사 백작이 발을 빼게 둘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녀가 무엇을 명하건, 따르지 않으면 끝은 죽음뿐이리라.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알레사 백작, 우리의 우정이 참으로 깊지 않나? 그대가 나에게 호의를 보여 주었으면 좋겠군.”

우정을 말한다기에는 너무 차가운 어조였다. 알레사 백작은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왕비님의 충실한 종이자 벗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명하시지요, 왕비님.”

“늙은 왕은 이제 왕관이 무거우신 모양이야.”

아.

알레사 백작은 숨을 들이켰다.

왕비는 지금, 자신의 남편이자 허울뿐인 왕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 * *

루카의 방을 나와 내 방으로 돌아온 다음, 나는 곧장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동안 확인하지 않고 쌓아 둔 알림이 우르르 눈앞에 나타났다.

[<서브 퀘스트> 어둠에 물든 기사를 완료했습니다.

희귀 아이템­검은 열쇠를 획득했습니다.]

[<시나리오 퀘스트> 암흑화를 완료했습니다.

(1) 무사히 생존했습니다.

(2) 경험치 800exp를 획득하여, 플레이어 ‘안젤리카 데네브’의 레벨이 12 → 13으로 올랐습니다.

(3) 특성­기초 튼튼 마법(E)을 획득했습니다.

(4) 희귀 아이템­간편 포션 세트(10개들이)를 획득했습니다.]

[<특성 : 기초 튼튼 마법(E)>

분류 : 마법

마법을 사용할 때 MP 소모량이 10% 감소합니다.]

[<간편 포션 세트(10개들이)>

초급 HP 포션, 초급 MP 포션, 소화제, 진통제가 든 간편 포션 세트입니다.

여행 시에도 안심.]

퀘스트의 보상 내용을 보자마자 솔직히 맨 처음 든 생각은…….

“애매한데?”

……였다.

검은 열쇠는 일단 그렇다 치자.

열쇠를 얻으면 반드시 잠긴 보물 상자가 나타나는 것이 게임의 법칙.

당장 용도는 알 수 없지만 척 보기에도 의미심장하게 생긴 열쇠다. 나중에 보물 상자라도 하나 생기나 보지.

문제는 특성 ‘기초 튼튼 마법(E)’과 ‘간편 포션 세트(10개들이)’ 쪽이다. 양쪽 다 있어서 나쁠 건 없긴 한데, 썩 좋지도 않다고 해야 하나.

루카를 치료하기 위해 그 고생을 한 것치고는 어째 보상이 영…….

‘이번 시나리오 퀘스트는 결과가 그냥 그렇군.’

띠링!

그때 갑자기 새로운 상태창이 나타났다.

[오류 발생! 오류 발생!]

“……응?”

[오류 발생!

플레이어의 행동에 기반하여 보상이 변경됩니다. 안내에 오류가 있었던 점 양해 바랍니다. 변경된 보상을 수령하세요.]

“으, 응……?”

오류라고? 이미 준 보상이 바뀌는 경우도 있나?

황당해하는 내 앞에 변경된 보상을 알리는 상태창이 떴다.

[<오류 수정 내역>

(1) 희귀 아이템­간편 포션 세트(10개 들이) → 위저 보드

(2) 특성­기초 튼튼 마법(E) → 패스파인더(B)]

[<위저 보드>

무언가와 소통할 수 있는 게임판입니다.]

[<특성 : 패스파인더(B)>

분류 : 지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변의 지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위저 보드는 글자가 적힌 게임판과 화살표 모양으로 깎은 나무 포인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거, 그거지……?”

“피이이……?”

나한테 더 익숙한 표현을 쓰자면 분신사바용 게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유령을 불러내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주술 말이다.

‘학교에서 많이 해 봤었지.’

오컬트나 유령 따위에는 흥미가 없지만, 어쨌건 새로운 아이템이 생겼으니 한번 써 보고 싶었다.

이럴 때 제일 부르기 좋은 상대는 역시 세이르지.

나는 위저 보드를 챙긴 뒤 로코를 데리고 세이르의 방으로 갔다.

“세이르, 있어?”

“피이잇!”

“…….”

“…….”

잠시 기다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뭐야, 없잖아. 어딜 갔나?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겠다.

나는 위저 보드를 함께 써 볼 상대를 찾찾을 겸, 공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왕성 뒤뜰로 나오자마자 세이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이르는 뒤뜰의 빈 공간에서 검술 연습을 하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성검을 쥐고 여러 동작을 수행한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세이르의 연습을 구경했다. 일찍 끝나면 같이 위저 보드를 써 보자고 권할 심산이었다.

“흐음……?”

“피이잇……?”

세이르가 성검으로 검술 연습을 하는 모습은 이제까지도 몇 번 봤다. 그런데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피이, 피이잇!”

어쩐지 절박함마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아니, 잠깐. 그 전에 이므시 백작 일로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저렇게 몸을 혹사시킬 일이야?

“세이르! 그만, 그만해!”

“……어? 안젤리카, 어쩐 일이야?”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 세이르가 동작을 멈추었다.

“벌써 그렇게 몸을 막 쓰면 어떡해!”

“괜찮아, 아픈 데 없어.”

“지금은 그렇겠지. 계속 그러다간 곧 아프게 될걸. 오늘은 그만해. 대신 나랑 같이 가자.”

“……알았어.”

세이르는 어째 묘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거절하지 않고 나를 따라 공방으로 왔다.

나는 세이르가 충분히 숨을 돌렸을 때쯤 위저 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안젤리카, 이건 뭐야?”

“위저 보드. 유령을 부르기 위해 쓰는 물건이야.”

“유령……?”

“응.”

검을 휘두르며 몸을 혹사시키느니 유령 부르기 게임이나 하는 게 낫겠다.

나는 간단하게 위저 보드의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사용법에 따라 세이르와 마주 앉아 각각 한 손을 포인터에 올렸다.

조용한 공방 안, 나직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유령님, 여기에 와 계신가요?”

“…….”

“…….”

“피이잇……?”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한 번만, 한 번만 다시 해 보자. 유령님, 와 계시면 대답해 주세요.”

“…….”

“피잇…….”

몇 번 더 시도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포인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시스템이 보상으로 준 물건이니까 무슨 쓸모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럼 그렇지. 유령은 무슨. 이 위저 보드, 딱히 쓸모없구나.

[<특성 : 패스파인더(B)>

분류 : 지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변의 지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특성은 꽤 좋은 거다. 유사시에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

‘유사시가 안 생기면 제일 좋겠지만, 분명 생기겠지…….’

<마.왕.꾸> 게임만 해도 그렇잖아. 무탈하게 게임이 진행된다 싶으면 돌발 이벤트니 뭐니 터진다니까.

[이름 : 안젤리카 데네브 (플레이어)

직위 :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왕국의 왕녀(D)

소속 : 데네브 왕국

나이 : 10세

레벨 : 13

특성 : 우리 아빠 딸(A), 호미질의 강자(E), 내 말을 들어!(E), 왕국 꾸미기 중급자(D), 패스파인더(B)

종합 능력치 : D

HP : 80/80   MP : 800/800

공격 : 13   방어 : 13   마법 : 80]

참고로 현재 내 스테이터스는 이렇다. 처음에 비하면 많이 강해졌다.

그리고 이제까지 모은 아이템이 뭐뭐 있더라…….

나는 손가방을 열어 안에 든 물건을 와르르 쏟아 내었다. 이제껏 내가 모은 모든 물건이 들어 있었다.

“안젤리카, 뭘 하는 거야?”

“물건 좀 정리하려고. 어디 보자, 마법 폭탄은 지난번에 다 써서 새로 만들어야 하고…….”

마거릿에게 받은 두 개의 인형은 마력 순환 작업대 옆 잘 보이는 곳에 장식해 두었다.

나머지는 로디에게 받은 성녀의 거울, 태양 두 개가 그려진 카드, 검은 열쇠, 위저 보드…….

어찌 된 일인지 당장 쓸 일이 없거나 용도 불명인 아이템밖에 없었다.

‘나중에 엄청난 복선이 밝혀지면서 쓸모가 생기거나, 아니면 그냥 잡동사니……. 극과 극이네.’

잡다한 물건과 상태창을 번갈아 보며 얼굴을 찌푸리는데, 세이르가 아이템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뭐야?”

“응? ……아.”

세이르가 가리킨 것은 전에 아빠에게 받은 금화 목걸이였다. 평소에 늘 하고 다니는데, 아까 옷을 갈아입으면서 잠시 빼 놨었다.

“목걸이야. 전에 아빠한테 받았어.”

“예쁘네.”

“그렇지?”

세이르가 목걸이를 집어 들더니 금화 펜던트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의아한 듯 물었다.

“여기, 각인이 좀 특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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