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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13)화 (114/133)

113화

플로라는 덜덜 떨며 머리를 조아렸다. 등에 업은 아기가 깊이 잠든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스카트 마을이라는 곳에서 일할 약초꾼을 모집한다고 했다.

약초꾼의 일은 고되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숲을 돌아다녀도 손에 쥐는 돈은 적다. 고용주가 약초 값을 후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로라는 약초꾼을 하겠다고 지원했다.

플로라에게는 갓난아이가 있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겨우 삯일을 구해도 아이가 운다는 이유로 잘린 적도 많았다.

그러니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구할 수만 있다면 할 수밖에.

약초꾼을 모집하던 인자한 인상의 노인은 그녀를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어느 숲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곧 작은 소녀가 도착했다. 플로라는 직감적으로 소녀가 높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귀족이나 왕족일 테지.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탓에 플로라가 볼 수 있던 것은 소녀가 신은 앞코가 동그란 구두뿐이었다.

인자한 인상의 노인은 소녀를 왕녀라고 불렀다. 플로라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와, 왕녀님이라고……?’

기분을 거슬렀다가는 무슨 화를 입을지 몰랐다. 플로라는 더욱 몸을 숙였다.

왕녀는 플로라와 다른 지원자들을 훑어보고는 불만족스럽게 물었다.

“듀란, 이게 전부야?”

“……면목 없습니다.”

“아니, 약초꾼이랑 나무꾼을 모집했는데, 왜 이리 죽 한 그릇도 못 먹은 것 같은 사람들만 있는 거야?”

왕녀는 못마땅해하는 반응이었다.

놀랍지는 않았다. 보통 고용주는 힘이 세고 튼튼한 일꾼을 원하지, 몸이 약한 데다 아이까지 딸린 일꾼을 원하지 않을 테니.

“죄송합니다. 스카트 마을에 정착하는 조건으로 구했더니 지원자가 적었습니다. 사람을 다시 모집할까요?”

“아니야, 됐어. 삯일꾼이 아니라 마을에 정착할 주민을 구하려던 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왕녀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앞에 옹송그린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으음…….”

예감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플로라가 가장 먼저 쫓겨난다.

안 된다. 아무리 험한 일이라고 해도 그녀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삯일이 끊긴 지 한참이었다. 이대로라면 아기한테 젖조차 먹일 수 없게 된다.

플로라는 옆에서 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나와 납작 엎드려서 애원했다.

“제…… 제발 한 번만 받아 주세요, 왕녀님. 저는 인내심이 많아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아기가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어요.”

왕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플로라의 등에서 잠든 아기에게 가닿았다.

“……이름이?”

“플로라입니다.”

“등에는 플로라 아기야?”

“네, 네네!”

“으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왕녀의 표정이 한껏 심각해졌다. 플로라는 다시 애타게 빌었다.

“목숨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좀……. 곤란한데.”

떨떠름한 왕녀의 대답에 플로라는 더욱 절망했다. 당장에라도 이곳에서 쫓겨날 것만 같았다.

그때, 왕녀가 심드렁한 얼굴로 듀란에게 지시했다.

“어쩔 수 없지. 전에 말한 대로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왕녀는 떠나고, 듀란은 플로라와 다른 지원자들을 어느 건물로 안내했다. 원래 고용인들이 쓰는 방이라는데, 넓고 깨끗했다.

침구도 두껍고 푹신했기에 여기서라면 아기도 편안히 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넉넉한 식사까지 제공되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플로라는 문을 닫고 나가려는 듀란을 황급히 붙잡고 물었다.

“저, 저어……. 그럼 쪼, 쫓아내시지 않는 건가요……?”

듀란은 인자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오늘은 여기서 쉬시면 됩니다.”

아.

그 왕녀가 자비를 베풀었구나.

높은 사람이 변덕스럽게 자비를 베푸는 일도 가끔 있는 법이다. 아기를 등에 없고 벌벌 떠는 자신이 딱해 보였나.

변덕스러운 하룻밤의 자비라도 지금은 플로라에게 절실한 것이었다.

다음 날, 당장 쫓겨나리라 생각했는데, 듀란이 찾아와 뜻밖의 말을 했다. 오늘부터 약초꾼의 일을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계속 지내라고요?”

고작 약초꾼이나 나무꾼 따위에게 움막도 아닌 집을 내어 주는 사람은 없다.

이쯤 되면 자신이 어떤 사기극에 동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플로라는 불신을 가득 담아 듀란을 보았지만, 듀란은 그저 인자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듀란은 플로라에게 커다란 천 가방을 하나 내밀었다. 마법이 걸린 가방으로, 약초를 아무리 넣어도 무게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채취한 약초는 전량 데네브 왕국에서 매입했는데, 그 가격이 다른 곳의 세 배에 달했다.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일하면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돈도 모을 수 있을 테다. 아기를 배곯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플로라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 *

띠링!

[<시나리오 퀘스트> ‘비밀 거처를 탐험하기’를 완료했습니다.

(1) 단서 세 개를 획득했습니다.

(2) 경험치 800exp를 획득하여, 플레이어 ‘안젤리카 데네브’의 레벨이 18 → 19로 올랐습니다.

(3) 랜덤 왕성 조경­고급 상자 세트를 획득했습니다.]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 주간 리포트!

(1) 스카트 마을을 건설했습니다.

(2) 왕국의 경제 레벨이 2 → 3으로 올랐습니다.

(3) 왕국의 기술 레벨이 2 → 3으로 올랐습니다.

[<이벤트> 스카트 마을 주민들의 지지율이 상승했습니다.

3000 왕국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 원 포인트 레슨 : 새로운 마을 ‘스카트 마을’을 건설합니다. 약초와 목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을을 발전시키면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후후후.”

나는 눈앞에 뜬 상태창을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스카트 마을을 개발하려는 계획은 잘 진행되는 중이었다.

‘처음에 죽 한 그릇도 못 먹은 것 같은 사람만 모였을 때는 당황했지만…….’

돈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법.

좋은 조건을 내걸자 점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몇 달 안에 마을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채취한 약초와 목재를 그대로 팔고 있지만, 조금 더 마을이 자리 잡으면 방식을 바꿀 생각이다. 약제사와 목수를 구해서 생산물을 가공해야지. 그러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겠지.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마을이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었을 때쯤 루카가 나를 찾아왔다. 무슨 중요한 할 말이 있는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저기, 안젤리카. ……고마워.”

“응?”

“마을 만들어 준 거…….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나도 앞으로…… 안젤리카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진지한 말을 하는 상황이 영 어색한지 안절부절못하기는 했지만, 루카는 또박또박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별로 루카를 위해 스카트 마을을 세운 건 아닌데. 그저 장기적으로 왕국을 발전시켜서 더 큰 힘을 손에 넣으려는 거다.

사적 이익을 위해 움직였을 뿐인데 그런 감격에 겨운 인사를 듣자니 매우 간지러운 기분이었지만,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더 번쩍번쩍하게 마을을 발전시켜야지.

“안젤리카 님, 출발하실 시각이에요.”

한참 상념에 잠겨 있는데, 문 밖에서 사라가 나를 불렀다. 나는 상태창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지금 바로 갈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머릿속으로 황금빛 미래를 그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은 승마 연습을 겸해서 세이르, 루카와 함께 소풍을 가기로 했다.

‘사실은 다른 목적도 있고.’

이므시 백작의 비밀 저택에서 찾은 단서는 분명 귀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배후의 정체나 목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럴 때는 현장 답사지.’

사라가 싸 준 커다란 도시락을 챙겨 마구간으로 가자, 세이르와 루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히힝…….”

나는 여전히 까탈스러운 말, 복슬이의 안장 뒤에 도시락을 잘 실었다. 그리고 가벼운 동작으로 안장 위에 올라탔다. 연습한 보람이 있어, 이제 제법 잘 탈 수 있었다.

“안젤리카, 그런데 오늘 소풍은 어디로 갈 생각이야?”

루카가 내게 물었다.

“어? 내가 말 안 했던가? 가 볼 데가 있어.”

“어딘데?”

어쩐지 불안한 표정이던 세이르는, 내 대답을 듣고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아…….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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