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14)화 (115/133)

114화

* * *

“속았어…….”

다행히 오늘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 소풍을 가기에 좋은 날이었다.

나란히 말을 타고 소풍 장소로 향하던 중, 세이르가 엷은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속았다고. 나는 생긋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왜애?”

“어쩐지 갑자기 소풍을 가자고 하더라니. 꿍꿍이가 있었을 줄이야.”

“꿍꿍이라니!”

말도 안 되는 모함이다. 나는 복슬이가 너무 빨리 달리지 않도록 고삐를 붙잡고서 결백을 주장했다.

“그냥 좋은 소풍 장소를 고르다 보니까 우연히! 정말 우연히 거기로 정하게 된 것뿐이야.”

“하필이면 전에 이상한 땅굴을 찾은 파와리스 폭포로? 우연히 말이지.”

세이르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해 봐? 아늑한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시원한 폭포수! 전통적인 소풍 장소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그야 세이르는 그렇겠지.”

에휴, 여태껏 소풍이라곤 안 가 봤을 것 같은 염세주의 꼬맹이가 좋은 소풍 장소를 어떻게 알겠어.

나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루카를 쳐다보았다.

“루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 뭐가?”

세이르와 내가 하는 이야기를 거의 듣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루카가 살짝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소풍 장소는 어떤 곳이 좋은지 이야기하고 있었어.”

“어, 글쎄. 나는 소풍 같은 거…… 오늘이 처음이라.”

아. 이쪽도 만만찮게 과거가 매운맛이었지.

나는 ‘좋은 소풍 장소란 어떤 곳인가’에 대해 설파하려던 생각을 그만두고 승마에 집중했다.

물론 오늘 소풍 장소를 파와리스 폭포로 정한 데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 세이르가 제대로 봤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엄마와 내가 타고 있던 마차는 파와리스 폭포 앞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나는 파와리스 폭포 앞의 땅굴에서 무지갯빛 돌과 로켓을 발견했다.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파와리스 폭포 앞의 땅굴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어쩌면 전에는 놓친 단서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결국 우리끼리만 오는 건 불가능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사라와 시종 한 명이 우리를 따라오는 중이었다. 이는 아빠가 소풍을 허락해 주면서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사라와 함께 가는 것, 두 번째는 다음 주쯤 아빠랑도 같이 소풍을 갈 것.

어느 쪽이든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다.

‘폭포 앞 땅굴에 들어가는 일이 문제긴 한데…….’

뭐, 거기 들어가는 법은 쉬우니까. 소풍을 즐기다가 살짝 틈을 봐서 들어갔다 오자.

오래지 않아 우리는 숲을 지나 파와리스 폭포 앞에 도착했다.

“날씨 진짜 좋다. 나오길 잘했지?”

우리는 폭포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말을 매어 놓았다.

[<서브 퀘스트> ‘복슬이는 사랑을 싣고’를 완료했습니다.

(1) 경험치 300exp를 획득했습니다.

(2) 특성­낙마 방지(C)를 획득했습니다.

(3) 아이템­고급 맞춤 안장을 획득했습니다.]

‘오, 됐다.’

때마침 조건을 달성해 퀘스트 완료 알림이 떴다. 나는 기분 좋게 상태창을 훑어보았다. 퀘스트 내용이 내용이라 그런지 보상이 모두 승마 관련이었는데, 모처럼 마음에 들었다.

그사이에 사라가 폭포가 잘 보이는 곳에 피크닉 매트를 펼쳐 두었다.

아침부터 서두른 통에 슬슬 출출했다. 나는 피크닉 매트 위에 앉아 도시락 상자를 열어 보았다.

“와아……!”

어쩐지 무겁더라니. 도시락은 내용물이 아주 알찼다.

메인 메뉴는 구운 식빵에 크림치즈와 꿀, 견과류를 넣은 샌드위치였다. 구운 틸라와 과일을 넣은 샐러드를 곁들여 상큼함을 더했다. 디저트는 우유푸딩이었고, 레몬즙과 얼음을 넣어 차갑게 식힌 차는 내 입맛에 딱 맞았다.

“피이이, 피!”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머니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로코가 음식 냄새를 맡고 깨어났다. 나는 제일 먼저 과일 몇 조각을 접시에 담아 로코 앞에 놓아 주었다.

“피이이…….”

로코가 만족스러워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각자 하나씩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맛을 보았다. 꿀의 단맛과 크림치즈의 새콤함, 견과류의 오독오독한 식감이 잘 어울렸다.

샌드위치를 한 입 삼킨 뒤 차가운 차로 입가심하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렇게 적당히 도시락으로 배를 채웠을 때쯤, 루카가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안젤리카.”

“으응?”

“소풍이라는 거…… 뭘 하는 거야?”

아차. 이 녀석, 소풍이 처음이라고 했지. 나는 경험자로서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주었다.

“딱히 아무것도?”

“응?”

“그냥 날씨 좋으니까 앉아서 쉬는 거야. 가끔은 이럴 때도 있어야지.”

“그렇구나…….”

마침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루카는 조심조심 눈을 감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부드럽게 흐트러지고, 루카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기분 좋다.”

“그렇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사라는 말에게 먹이를 먹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지금이다.’

살금살금…….

루카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나는 슬며시 피크닉 매트 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여서 폭포 쪽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말이랑 행동이 다른데, 안젤리카.”

“흐아악!”

대체 언제부터였는지 세이르가 내 옆에 와 있었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면서 최대한 뻔뻔하게 대답했다.

“나는 소풍 많이 해 봤거든. 너희가 느긋한 소풍을 만끽하는 동안 나는 할 일을 하는 거지.”

“아. 안젤리카가 그 말만 안 했으면 느긋한 소풍이 될 뻔했는데.”

세이르가 피크닉 매트 위에서 일어나면서 루카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루카가 허둥지둥 나와 세이르의 뒤를 따라오며 물었다.

“어디 가는데?”

“……비밀이야.”

그러나 세이르와 루카는 계속해서 뒤를 졸졸 따라왔다. 이런. 얘들을 떼어 놓기는 그른 듯했다. 쏟아지는 폭포수 앞에서 나는 사실을 실토했다.

“전에 갔던 지하를 탐험하려고.”

“그럼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세이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덧붙였다.

“우리 거기서 다칠 뻔하지 않았던가?”

“다쳤다고……?”

루카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바람에, 나는 황급히 오해를 정정하려 했다.

“안 다쳤잖아. 그냥 살짝, 사알짝 위기가 있었지만 슬기롭게 헤쳐 나갔잖아.”

“…….”

“…….”

“무서우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데.”

이상하다. 가끔 세이르 녀석, 나를 무슨 사고뭉치 보듯 쳐다보는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이겠지?

결국 난 계속 따라오는 세이르와 루카까지 데리고 지하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폭포의 암호를 풀려고 여러 노력을 한 덕에, 지하를 여는 스위치가 있던 위치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나는 스위치가 있던 폭포수 너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 어디쯤이었는데…….”

“안젤리카, 소매 젖겠다. 내가 할 테니까…… 이미 늦었군.”

“으으음?”

나는 소매를 대강 걷어붙이고 폭포수 너머를 뒤적거렸다. 분명 여기에 네모나고 매끈한 스위치가 있었을 텐데.

“으음…… 으으으음?”

“왜 그래?”

그런데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소매가 젖을 때까지 한참 안쪽을 더듬거리다가 손을 빼냈다.

“스위치가 없어.”

“내가 해 볼게.”

이번에는 세이르가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세이르 역시 지하를 여는 스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세이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전이랑 같은 방법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모양이야.”

“……응. 다른 방법도 한번 찾아보자.”

우리는 지하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설마 이제 그 지하로 들어가지 못하는 건가? 그곳을 다시 한번 조사해 보고 싶었는데.

낙담하는 그때,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데 대체 뭘까. 귀를 기울여 보는데…….

파드닥파드닥!

“어, 로코!”

로코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 버렸다.

설마 주인을 닮아 똑똑한 저 박쥐가 지하로 들어가는 방법을 아는 걸까? 우리는 황급히 로코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로코는 폭포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나무둥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로코의 앞에는 작은 고슴도치가 놓여 있었다.

“에엥?”

웬 고슴도치?

“……끼잉.”

고슴도치가 우리를 보고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로코 녀석, 이 울음소리를 듣고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건가.

‘어쩌다 여기 고슴도치가 있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고슴도치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자세히 보니, 고슴도치는 몸이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그 쇠사슬의 반대쪽이 나무둥치에 걸려 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왜 굳이 이 인적 드문 숲속까지 와서 고슴도치를 묶어 둔 건가. 장난치고는 악질적이다.

“피이잇!”

로코 역시 고슴도치가 안타까운지 세게 울었다.

고슴도치는 무척 겁에 질린 상태였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쌍하니 일단 쇠사슬을 풀어 줘야겠다.

세이르가 검으로 고슴도치의 쇠사슬을 잘라 냈다. 단단한 쇠사슬이 두부처럼 부드럽게 잘렸다.

나는 겁에 질린 고슴도치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구해 주려는 의도를 아는지 가시도 세우지 않고 얌전했다.

숲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당한 곳에 고슴도치를 풀어 준 뒤 말했다.

“자, 이제 괜찮지? 사라가 기다리겠어. 슬슬 돌아가자.”

그렇게 고슴도치와 작별하고 피크닉 매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피이이! 피잇, 피이!”

로코는 내 주머니 안으로 들어오는 대신 고슴도치 옆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크게 울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고슴도치를 꼭 함께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로코, 그렇게 졸라도 안 돼! 난 고슴도치 싫어한단 말야.”

“피이잇, 피!”

“끼이잉…….”

내 거절에 두 동물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로코를 집어 들려고 했지만 로코는 내 손길을 거부하며 계속 항의했다.

뭔데, 너희 방금 만났잖아.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건데?

“저렇게 애원하는데 일단 데려가는 건?”

“……맞아. 여기 혼자 있는데 불쌍하잖아.”

아니, 세이르, 루카. 너희는 왜 저 애원에 넘어간 거야?

그래도 고슴도치는 안 된다.

<두근두근 마법 왕국 꾸미기> 제작사 이름이 바로 <도치도치 소프트>에 로고도 고슴도치 모양이었단 말야!

특히 버그가 일어나서 게임이 꺼질 때마다 화면에 제작사 로고가 나타났다. 정말 좋지 않은 기억이다. 고슴도치를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동물을 또 늘리다니, 데네브 왕국의 왕성이 무슨 동물 농장인 줄 알아?!

“피이잇, 피! 피이이!”

그런데 오늘따라 로코가 심하게 떼를 썼다. 저 고슴도치를 데려가지 않으면 다시는 나랑 놀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리기까지 했다.

“끼이잉…….”

고슴도치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내 눈치를 보았다. 그 모습이 무척 불쌍하게 보였다.

“아…… 알았어. 데려가면 될 거 아냐. 데려가기만 하는 거다?”

주변의 눈빛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일단 고슴도치를 품에 안으려는 그때.

다그닥다그닥!

갑자기 어딘가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멀지 않았고,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뭐지?’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옷을 입은 기사 다섯 명이 말을 타고 숲길을 달리다가 우리를 보고 멈춰 섰다.

그들의 대표 격으로 보이는 기사 한 명이 말에서 내리더니 세이르를 향해 말을 걸었다. 말씨는 정중했지만, 조금의 거부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여기 계셨군요. 찾았습니다, 세이르 소공작님.”

나는 기사들이 입은 검은 옷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 알아차렸다.

상복이다.

그것도 국장(國葬), 그러니까 왕족의 장례를 치를 때 입는 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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