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18)화 (119/133)

118화

10장. 베나토르 아카데미로

데네브 왕국의 경계 지역, 도로 공사 현장. 인부들이 기중기로 커다란 바위를 옮기고 있었다.

“어, 어어어! 그만, 그만!”

토마스는 황급히 달려가 기중기를 멈췄다. 넘어갈 듯 말 듯 움찔거리던 바위가 도로 제자리에 놓였다. 인부 한 명이 물었다.

“왜 그러심까?”

“허어, 이 바위는 건드리면 안 돼. 그분이 확인하실 때까지 그대로 둬.”

바위는 뿌리 부분이 거대한 마석 덩어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기중기로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폭발할 위험이 있었다.

경계 지역에 숨어 살던 유랑민들이 데네브 왕국의 왕국민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다.

도둑질, 암살, 장물 거래 등을 일삼는 유랑민들은 경계 지역의 골칫거리였다.

더군다나 가파르게 성장 중인 데네브 왕국은 항시 일손이 부족했으니,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이게 다 그분 덕분이지…….’

오래전에 멸망한 스카트 마을을 훌륭하게 되살렸을 때부터 나는 그분을 믿고 있었다고.

토마스는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안목을 자화자찬했다.

다만 현재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저 바위다.

마석 덩어리와 연결된 바위가 도로를 가로막아, 유랑민들이 왕국으로 들어오지를 못하는 중이었다.

우회하는 길은 있지만 멀고 험하다.

유랑민들은 데네브 왕국으로 이주하는 조건으로 저 바위를 치워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걸 어쩐다.’

“토마스 씨는 그분 직접 뵌 적 있으심까?”

그때, 인부 한 명이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토마스는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대답했다.

“그럼, 물론이지! 얼마나 자주 뵈었는데. 그분이 요렇게 작을 때가 떠오르는구만. 얼마나 귀여우셨는지 몰라.”

“이야, 부럽슴다. 저도 한 번만 가까이에서 뵙고 싶슴다.”

아차, 그만 허세를 부려 버렸다. 사실은 몇 달 전에 왕성에 불려 갔다가 잠깐 뵌 것이 전부인데.

그러나 이미 인부들은 토마스를 그분의 최측근쯤으로 생각하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저런 반응도 이해되기는 하지만…….’

토마스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거리는 그때.

“이건 안 되겠네. 바위 치우는 일은 일단 멈추자.”

“어, 어어어어?”

토마스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사이엔가 ‘그분’이 옆에 서 있었다.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

“와, 와, 왕녀님?!”

“……토마스, 그렇게 귀신 보듯 놀랄 일이야?”

“제, 제, 제 이름을 어떻게…….”

“으응? 그야 알지? 전에 만났잖아?”

왕성에서 멀리 떨어진 도로 건설 현장에 왕녀 안젤리카가 불쑥 등장하자 주위는 난리가 났다. 인부들이 먼발치에서라도 왕녀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안젤리카는 그 소란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도로를 가로막은 바위를 노려볼 따름이다.

토마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많이 자라셨어…….’

데네브 왕국의 왕녀 안젤리카 데네브는 현재 열네 살. 곧 열다섯 살 생일을 앞두고 있다.

열 살 무렵에 비하면 키가 한 뼘이 조금 넘게 컸다. 특유의 의기양양한 미소도 이제 사춘기 소녀티가 났다.

분홍빛 머리카락은 더욱 탐스러워졌으며, 푸른 눈은 아버지인 크로셀을 꼭 닮았다.

품에 늘 데리고 다니는 박쥐를 꼭 껴안은 소녀가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아래쪽 마석을 폭발시키지 않고 바위를 치우려면 초대형 골렘이 있어야겠어.”

“초대형 골렘이라고요……?”

토마스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골렘은 무척 희귀하다. 그래서 토마스는 이제껏 골렘에 대해 말로만 들어 봤지,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군다나 초대형 골렘이라니? 골렘은 크기가 아주 조금만 커져도 가격이 수 배, 수십 배로 뛰었다. 그런데 그런 초대형 골렘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그런데 안젤리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있어 봐. 골렘을 만들면 다시 올 테니까.”

데네브 왕국은 변방에 위치한 데다가 본디 척박한 곳이었다. 돈 나올 데가 없으니 자연히 인구가 적었고 조용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왕국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고, 새로운 길과 설비가 생겼으며, 마을이 커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부터인가.’

몇 년 전, 안젤리카가 갑자기 마을 주민들에게 틸라를 나누어 준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대체 무슨 작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결국 왕국민들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되었다.

‘저분이 말하면 꼭 그대로 된단 말이지.’

애초에 이 길 너머에 숨어 사는 유랑민들이 있으며, 그들을 왕국에 받아들이겠다고 한 사람도 안젤리카가 아닌가.

그러니 이번에도 잘 해결될 것이다. 토마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맵 한번 엉망으로 만들었네. 김×× 두고 보자…….”

가끔 저렇게 잘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할 때가 있기는 했지만.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왕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안젤리카가 생각에 푹 잠긴 채 몸을 돌렸다. 토마스는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배웅했다.

* * *

나는 도로 공사 현장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생각했다.

‘그럭저럭 분위기는 나쁘지 않네.’

그리고 상태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데네브 왕국 도로 공사 현장(F)>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중입니다.

도로를 완성할 시, 이동 시간이 줄어듭니다.

호화도 : 10

배치 : ‘도로 관리자’ 토마스

인부들의 사기 : 96% (매우 양호함)

공사 진척도 : 78%

※ 현재 공사가 중지된 상태입니다.]

[※ 원 포인트 레슨 : 도로가 바위로 막혀 있습니다. 허투루 건드렸다가는 폭발합니다. 안전하게 바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초대형 골렘이 필요합니다.

▶ 초대형 골렘 재료 확인하기]

도로 공사 현장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와 봤더니,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고 있었다. 그것도 초대형 골렘이 있어야 부술 수 있는 바위가.

‘이제 골렘까지 만들어야 한다니…….’

골렘 제조법은 왕성으로 돌아가서 확인하기로 하고, 다음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데네브 왕국 종합 정보>

자금 : 101000 골드

왕국 포인트 : 10500

호화도 : 9800

종합 평가 : 번화한 마법 왕국(B)

(B), 멋진 마법 도구 공방(B)… (더보기)]

칭호 : 꿈과 희망의 왕국(D), 목가적인 왕국(D), 아이가 살기 좋은 왕국(D), 플로럴한 왕국(C), 번화한 마을(B)]

세이르가 데네브 왕국을 떠난 뒤로 어느덧 3년이 흘렀고, 나는 열네 살이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정신없이 왕국을 발전시킨 보람이 느껴지는 상태창이었다.

‘드디어 B 등급 왕국……!’

언제 봐도 아름다운 상태창이다.

이건 봐도 봐도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지. 그래서 따로 확인할 내용이 없어도 하루에 한 번씩 꼭 열어 보고 있다. 뿌듯하니까.

“우후후후…….”

“……피이잇?”

“크흠, 흠! 아무것도 아니야.”

데네브 왕국이 발전한 만큼, 이웃인 리어 왕국의 성장세도 엄청났다.

리어 왕국의 현재 국왕은 다프네 왕비의 아들, 에드윈 리어. 그러나 실권은 여전히 섭정인 다프네 왕비가 가지고 있다.

지금은 서로 견제하면서 본거지를 키우는 단계라고 할까.

무력 면에서는 최고인 아빠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는 아직 없지만…….

어차피 시간문제다.

‘유랑민들을 우리 쪽으로 받아들여야 해.’

데네브 왕국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유랑민들 중에 마석 제련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유랑민들을 받아들이면 고등급의 마석 제련 대장간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리어 왕국보다 먼저 유랑민들을 데려와야 하는데…….

나는 상태창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으음……?”

나와 눈이 마주친 인부들이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내 쪽을 신경 쓰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런. 내가 계속 여기 있다가는 공사가 진행이 안 될 것 같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딜 가든 왕국민들이 나를 너무 의식한다니까.

‘루카랑 같이 올 걸 그랬나.’

왕국이 발전한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불편한 점도 있달까.

어, 벌써 이런 시간이네.

“로코, 슬슬 돌아갈까?”

“피이잇!”

3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경쾌한 울음소리로 로코가 대답했다.

나는 복슬이 위에 올라탄 뒤 왕성으로 돌아갔다.

“안젤리카 님, 돌아오셨군요!”

“응, 별일 없었지?”

왕성의 정문을 지키는 트리스탄이 나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왕성 또한 3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먼저 규모부터 커졌다. 그리고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덕에 꽤 화려한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번쩍번쩍한 정문 앞에서 잠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과연 넓고 편안한 왕성(B)……!’

이 호화로운 정문을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끝내준단 말이지. 열심히 돈을 번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잠시 돈의 힘을 만끽한 뒤, 마구간에 복슬이를 넣어 두자 딱 알맞은 시각이 되었다.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내가 향한 곳은 재작년에 만든 왕성의 공부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루카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늦었어.”

“정각에 왔잖아. 엄청 서둘렀다고.”

그런데 공부방에는 있어야 할 사람이 한 명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니키는? 어디 갔어?”

“늦는대. 아직 숙제 다 못했대.”

“아항…….”

내가 자리에 앉고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공부방의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바로 로디의 어머니이자 엘나스 호텔의 주인, 알렉산드라 실로프였다.

베나토르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는 최소 나이는 일반적으로 열두 살이다.

세이르가 데네브 왕국을 떠나고 약 1년 뒤, 내가 막 열두 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빠는 내게 원한다면 베나토르 아카데미에 가도 좋다고 말했다.

“아카데미에요?”

“그래. 물론 우리 천사랑 떨어지면 아빠 마음이 무척 쓸쓸하겠지만…….”

“……나도 쓸쓸할 거예요, 아빠!”

“안젤리카……!”

“하지만 아카데미는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물론 단순히 아빠랑 떨어지면 쓸쓸하다는 이유로 아카데미에 가지 않으려 한 것은 아니다.

당장 내게 필요한 부분이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을 따름이다.

흑막 엔딩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지금 왕국을 떠나 있을 수는 없지.

‘세이르가 아카데미에서 어쩌고 있는지 신경 쓰이기는 하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세이르 때문에 필요하지도 않은 아카데미에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세이르가 걱정되는 한편으로, 이상한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멀리서 세이르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으리라는 확신이다.

‘편지 답장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답장 좀 하라고!’

다만 나 역시 공부를 할 필요는 있었다.

물론 나는 <마.왕.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만, 나보다 이 세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지만!

이 세계에서 더욱더 잘살기 위해서는, 게임 공략 정보를 넘어서는 지식을 쌓아야 했다.

나는 곧장 아빠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 아카데미는 가지 않더라도 공부는 하고 싶어요.”

“안젤리카는 아직 밖에서 뛰어놀 나이인데.”

“아니요, 밝은 앞날을 위해서는 많이 공부해야죠!”

“우리 천사는 뭐랄까, 참…… 의젓하구나.”

아빠는 조금 떨떠름해하기는 했지만, 결국 내 말을 들어주었다.

“알겠다. 그럼 아빠가 괜찮은 선생님을 알아보마.”

그렇게 해서 나를 가르치게 된 사람이 바로 알렉산드라다.

일개 왕녀의 교사로서는 너무 거물이 아닌가 싶었지만, 어쨌거나 알렉산드라는 굉장히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혼자서만 수업을 들으면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 나는 니키와 루카에게 함께 수업을 듣자고 권했다.

“에엑, 공부?! 나는 별로……. 그럴 시간에 밭이나 손보고 싶은걸.”

“너만 들으면 되잖아. 노예에게 공부를 시키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니키와 루카는 이렇게 거부했지만, 알 바냐.

나는 둘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열심히 설득했다.

“지식은 광명이야! 게임을 해도 공략을 숙지해야 하는 법이라고!”

“그게 무슨 소린데?!”

통하지 않았지만.

“칼질을 적게 하고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눠 먹을 수 있게 된다고!”

“그냥 안젤리카 님이 더 많이 먹어.”

“찢어진 달력의 날짜와 마차의 속도도 구할 수 있어!”

“찢어졌으면 달력 새로 사자.”

“양이 늑대한테 잡아먹히지 않게 강을 건너게 해 줄 수 있다고! 너희들, 불쌍한 양이 늑대한테 잡아먹히게 둘 셈이야?!”

“어, 어어?”

“그건 안 되지……?”

그렇게 설득력 있는 말로 둘을 결국 책상 앞에 앉힐 수 있었다.

“자, 지난주에 숙제를 내 드렸었죠? 숙제는 잘하셨을까요?”

아차. 너무 지난 기억에 빠져 있었다. 둘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다 보니.

나는 숙제를 한 노트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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