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아빠를 프로듀스 (121)화 (122/133)

121화

* * *

성령제 기간의 아카데미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각 연구실은 한 해 동안의 성과를 피로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다양한 동아리에서 전시 부스를 열었다. 자잘한 기념품이며 음식 따위를 파는 상인들도 있어 무척 북적거린다.

폐쇄적이고 엄격한 분위기의 아카데미지만, 축제 기간엔 역시 다들 들뜨는구나 싶었다.

“이쪽입니다.”

그 혼돈의 틈바구니로 스텔라가 다가가자, 학생들이 화들짝 놀라며 길을 비켜 주었다. 그 덕분에 혼잡하기는 했으나 걷는 데 무리가 없었다.

‘왜 다들 저렇게 화들짝 놀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텔라가 함께 와서 다행이다. 아카데미 내부가 생각보다 넓고 복잡해서, 우리끼리 왔으면 길을 헤맸을 테다.

“스텔라, 안내해 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이니까요.”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아카데미의 연금술 연구실 소속 골렘 동아리다. 내가 만나려 하는 미친 골렘 마니아가 소속된 동아리이기도 했다.

‘마침 시간 여유가 생겼으니 미리미리 퀘스트부터 깨 놔야지.’

미친 골렘 마니아를 얼른 우리 왕국으로 포섭한 다음 놀자.

내가 골렘 동아리에 방문하고 싶다고 하자, 스텔라는 잠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다.

“저쪽, 농업 연구실을 지나서 바로 다음 건물이 연금술 연구실입니다.”

“……농업 연구실?”

그때까지 길 양옆의 먹거리 판매 부스만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던 니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스텔라가 차분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네. 농작물에 관해 연구하는 곳입니다. 지금은…… 거대 만드라고라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니키가 내게 열렬한 눈빛을 보냈다.

“……안젤리카 님!”

“안 돼.”

미친 골렘 마니아를 찾는 일이 먼저다. 그러니 이따가 다시 오자고 말했지만, 니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잠깐만! 잠깐만 보고 가면 되잖아, 응?”

으음,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안 된다고만 말하는 것도 그런가? 무도회는 저녁이니까 시간 여유도 있다.

‘거대 만드라고라는 어떻게 생겼는지 나도 궁금하고…….’

마음을 먹은 나는 스텔라에게 물었다.

“스텔라, 먼저 농업 연구실을 둘러보고 싶은데 가능할까?”

“네, 안내하겠습니다.”

커다란 유리 온실을 끼고 있는 농업 연구실.

온실의 중앙에는 내 키보다 위로 솟은 거대 만드라고라가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 만드라고라가 들어간 포션 따위를 파는 부스도 보였다.

뜻밖에 니키는 거대 만드라고라를 보자마자 심드렁한 반응을 했다.

“애걔? 생각보다 작네?”

그 말이 하필이면 거대 만드라고라 주변에 있던 학생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학생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사납게 말했다.

“뭐? 우리 만드라고라가 작다고? 이 정도로 키우기 쉬운 줄 알아?”

“그치만 나라면 더 크게 키울 수 있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작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옆을 보니, 나와 같은 기억을 떠올렸는지 사라와 루카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정말 끔찍했어, 그거.”

루카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작년, 니키는 올해야말로 거대 틸라 콘테스트에서 신기록을 세우겠다며 특별히 더 정성 들여 거대 틸라를 키웠다.

그런데 그녀의 재능이 너무 지나친 것이 문제였을까. 거대 틸라가 너무 거대하게 자라 버렸다.

그 때문에 왕성 2층 높이까지 올라온 틸라의 줄기가 바람에 흔들리다가 2층 창문을 와장창 깨 버렸다.

사람이 없을 때라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피해가 있을 뻔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틸라 뿌리가 땅속 너무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는 바람에 왕성 뒷마당에 온천수가 터지는 일까지 있었다.

‘그 온천수는 목욕탕에서 잘 쓰고 있지만…….’

내년쯤에는 온천수를 이용해 마을에 온천을 열까 한다. 데네브 왕국의 관광 수입을 극대화하는 데 힘이 될 테다.

아무튼 그 엄청나게 큰 틸라를 처리하는 데에도 꽤 힘이 들었다.

그 이후로 거대 작물 키우기를 금지하고 거대 틸라 콘테스트도 폐지했으니, 니키가 좀이 쑤시기는 할 테다.

니키는 학생이 들고 있던 노트를 빠르게 훑어보더니 몇 가지를 고쳐 썼다.

“비료는 이렇게 쓰고, 그리고 이걸 이렇게…… 이렇게, 하면 더 크게 키울 수 있을걸?”

“……!”

니키의 말을 듣자마자 학생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덥석 니키의 손을 붙잡았다.

“엄마야! 왜 갑자기 손을 잡고 그래?”

“너, 우리 연구실에 들어와라!”

“응? 나 이 학교 학생 아닌데?”

“크으윽, 여신이시여! 제 앞에 야생의 천재를 나타나게 하시고는 함께할 수 없게 하시다니……!”

“그보다, 아까 비료 배합 말인데.”

니키는 자신을 스카우트하려 한 학생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루카가 지루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나 쟤가 뭔 말 하는지 모르겠어.”

“응, 나도…….”

알아듣기 힘든 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길어질 기미다. 아직까지도 마차의 속도 구하기 문제는 못 풀지만, 농업에 관해서라면 참 대단한 애다.

결국 우리는 니키와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고, 원래 목적지인 연금술 연구실로 향하기로 했다.

그때.

“끼에에엑!”

상자 안에서 탈출한 작은 만드라고라가 비명을 지르며 내 쪽으로 달려왔다.

인삼을 닮은 뿌리가 움직이는 모습은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스르릉­. 푹!

순간 사라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더니 만드라고라를 베어서 죽였다. 깔끔한 솜씨였다.

“헉, 허억! 죄송합니다!”

만드라고라를 놓친 학생이 뒤늦게 달려와서 사과했다.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 얼굴이 창백했다.

만드라고라가 기괴하긴 했지만 위험하지는 않았으니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려 했는데, 스텔라가 먼저 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귀한 손님 앞입니다. 주의하세요.”

“넵! 네엡! 죄송합니다!”

거듭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과한 학생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학생회장님께 잘 말해 주세요.”

농업 연구실을 나와 연금술 연구실로 향하는 길, 나는 신경 쓰이는 점을 물어보았다.

“방금 그 학생, 상급생 아니야? 상급생인데 왜 저렇게 긴장해?”

스텔라는 평온한 투로 대답했다.

“그건, 제가 학생회 소속이라 그렇습니다.”

“그래?”

“성령제가 끝나면 바로 각 연구실 예산 심의에 들어갑니다. 학생회장님께 예산을 승인받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책잡히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구나…….”

학생들이 있는 곳이라지만 여러 사정이 있구나.

‘예산은 중요하지, 음.’

나는 농업 연구실의 학생들에게 약간의 공감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포섭해야 하는 미친 골렘 마니아, 이름이 뭐였더라?

<마.왕.꾸>를 할 때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고 미친 골렘 마니아라고만 불렀더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름을 모르는 채로 골렘 동아리에서 사람을 찾을 수 있으려나. 걱정이네…….’

그러나 잠시 뒤 연금술 연구실에 도착한 난 쓸데없는 걱정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연금술 연구실은 성령제로 들떠 있는 바깥과는 동떨어진 분위기였다. 어둡고 습한 데다가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났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진열장에는 용도를 잘 알 수 없는 기괴한 물건들이 가득했으며,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음침한 연구실 안을 좀비 같은 학생들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스텔라가 먼저 좀비 한 명을 붙잡더니 내게 물어 왔다.

“찾으시는 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글쎄, 실은 이름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골렘 동호회 소속이야.”

내 말에 좀비 같은 학생이 히히힛, 하고 웃더니 알은척을 했다.

“그 미친 골렘 마니아 말이군. 히힛.”

통했다?!

“히힛, 이쪽이야.”

좀비 같은 학생이 우리를 골렘 동호회로 데려다주었다.

잡다한 물건이 잔뜩 쌓인 책상 하나가 골렘 동호회의 전부였다. 주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잡동사니 사이에 ‘골렘 동호회: 마르코’라는 이름표가 파묻혀 있었다.

‘아, 맞다. 마르코였지. 미친 골렘 마니아의 이름.’

“히힛, 마르코는 지금 없어. 마석 제련 중이라…… 히힛.”

왜 자꾸 “히힛.” 하고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정확한 정보를 준 좋은 좀비였다.

그나저나 찾는 사람이 지금 없다니 이걸 어쩐다, 하고 생각하는 그때였다.

쾅!

근처에서 큰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도저히 못 참겠어! 나는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웬 학생 한 명이 책상을 주먹으로 치면서 벌떡 일어섰다. 우중충한 좀비들 사이에서 비교적 화려한 차림을 한 남자였다.

우리를 안내해 준 좀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히힛, 신경 쓰지 마. 아직 여기 적응 못 해서 그래. 이 약만 마시면 금방 조용해질걸.”

좀비는 손에 약병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상태창을 띄워 보니 평범한 영양제였다. 그런데 좀비가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 너무나도 수상해 보였다.

옆에서 루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안젤리카, 여기 괜찮은 거 맞아? 너 약쟁이 찾으려는 거 아니지?”

“응, 괜찮은 거 맞을……걸?”

좀비의 말에 따르면, 아직 이곳에 적응을 하지 못한 학생은 계속 화를 내는 중이었다.

“이 나딘 님을 감히 이딴 곳에 보내다니, 그 자식 용서 못 해!”

그는 성큼성큼 이쪽으로 오더니 스텔라에게 말을 걸었다.

“스텔라! 학생회장은 어디 있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이건 부당해! 학생회장을 만나야겠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이이익……!”

분에 못 이긴 나딘이 스텔라에게 손을 올리려 했다.

곧장 끼어들어 그를 제지하려는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텔라는 날렵한 동작으로 나딘의 팔을 붙잡더니 가볍게 쓰러뜨렸다.

쿵!

나딘이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스텔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딘을 질질 끌고 가 도로 책상에 처박아 두었다. 엄청난 힘이었다.

“스텔라, 괜찮아?!”

“죄송합니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니, 아니야. 그보다 저 인간…… 누구야? 왜 학생회장을 찾아?”

“나딘은 전 학생회 소속으로 직책은 부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학기에 학생회장님이 쫓아냈습니다.”

“헤에, 왜 쫓겨났는데?”

“학생들의 성적 처리와 예산 심의를 인질로 뒷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 뭐야, 쓰레기구만.

조금의 동정도 사라졌다. 나는 좀비가 준 영양제를 입에 물고 쓰러져 있는 나딘에게서 금방 관심을 거뒀다.

그보다 이 거대한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라. 어떤 인간일까?

이제껏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런 느낌이지. 예산은 까다롭게 심의하고, 모두가 어려워하는 데다, 뇌물을 받은 부회장을 쫓아낸 인물.

유능하고 철저하며 자비 없다. 그리고 대체로 이렇게 묘사되는 인물은 ‘그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째 촉이 오는데.’

마음속의 흑막 레이더가 반응한다. 그 학생회장은 흑막이 될 자질이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을 느끼고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려 하는데, 이제껏 온화한 표정으로 내 곁을 지키던 사라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럼 안젤리카 님, 찾으시는 사람도 부재중이니 이만 무도회 준비를 하러 갈까요?”

“응? 아직 시간 있잖아? 여유 있으니까 좀 더 여기 있으려고.”

“아니요, 전혀 여유 있지 않으시답니다.”

“무도회는 저녁인데……?”

“네,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지요.”

저 열렬한 사라의 눈빛을 외면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나는 미친 골렘 마니아는 내일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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